유계(柳磎) 처사(處士) 정삼영(鄭三永) 公 미망인 조정자(趙靜子) 여사가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소재 성운요양병원에서 2024.7.26(금) 오후 8:46 경 노환으로 향년 85세로 소천(召天, 별세)하셨다.
장례식장(빈소)은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 소재 함안하늘공원 공설장례식장 2호실로 발인(고별식)은 4일장으로 2024.7.29(월) 07:00, 장지는 군북면 유현리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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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석 정면
草溪鄭三永公字得文號柳磎
配德愛咸安趙靜子女史双墳
《 초계 정삼영 공 자 득문 호 유계
배 덕애 함안 조정자 여사 쌍분 》
우측
생몰연대
공 1937.10.13(음9.10)~2003.3.4(음2.2) 67세 몰
배 1940.5.15(음4.9)~2024.7.26(음6.21) 85세 몰
좌측
아들 : 경문 희태 성문 종대
며느리 : 홍경미 이기화 권현수 전선미
딸 : 순문
사위 : 민인식
손자 : 유빈 한길 해찬 성훈
손녀 : 빈나 주연 지민 주은
외손자 : 민상호
외손녀 : 민평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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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시대에 五福 중의 최고 福인 자손중다(子孫衆多)를 갖췄다. 손주가 합 10명이다. 우리나라의 지방 농촌지역(군)은 대부분이 '인구소멸지역'으로 편입 중이다. 애국자가 따로 없다. 오늘날에는 자식을 많이 두는 사람이 애국자다.
우리나라(남한)의 인구수는 2024. 8월 현재 5,175만 명이다. 인구 절벽을 극복하지 못하면 50년 후 한국의 인구는 3.600만 명대(2023.12.15 연합뉴스 보도)로 축소된다고 한다. 한민족 소멸의 시대로 간다고 보면 된다.
덕애(德愛) : 조정자 여사가 살아온 평생의 인품(망자의 호 격)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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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자(趙靜子) 여사는 함안군 3대 명산의 하나인 방어산(防禦山, 530m) 동쪽 기슭 군북면 하림리 667번지(우계마을)에서 함안조씨 부 조봉제(趙鳳濟)와 합천이씨 모 이순림(李順林)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 군북면 유현리 331번지(평촌마을)의 초계정씨 부 정현락(鄭鉉洛)과 함안조씨 모 조복희(趙福煕)의 7남 2녀 중의 3남인 24살의 정삼영(鄭三永)에 21살 때 시집왔다.
옛날에는 결혼도 당사자 끼리는 선도 안 보고 집안에서 부모님이 대신 가서 보고서 군복무(강원도 양구군 소재 부대 병장 때) 중인 아들에게 전보쳐서 불러 내려서 성혼시켰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조혼을 했기에 일찍 4남 2녀를 낳았다. 불행히 맏이되는 첫딸 정정미(鄭貞美, 1962.5.12~1967.11.5, 제적부 자료)는 5~6살 때 뇌염으로 잃었다. 당시 1960년대(1961.5.16 : 박정희 군사혁명ㆍ군사정변으로 민생고 보리고개 극복 시기) 한국 농촌의 의료시설은 열약했던 시대로 병원에 가기는 커녕 집에서만 치료하다 아이를 잃었다.
전두환 대통령시대(재임기간 : 7년 5개월, 1980.09~1988.02)에 두 아들을 육군사관학교(42ㆍ44기)에 보냈을 정도도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자녀 교육열도 헌신적이었다. 박사 학위 취득이 2명으로 자식 농사가 잘된 집안에 속하고, 다 지극한 조정자 여사(형수)의 모성애 덕분으로 꽃을 피웠다.
조정자 여사의 집안은 군북면 하림리 생육신의 한 분인 어계(漁溪) 조려(趙旅) 선생의 서산서원과 어계 생가지가가 있는 원북리와 접하는 함안조씨의 집성촌으로 함안조씨 조려 선생의 후손 씨족마을 중의 대표적인 명문집안이다. 세칭(별칭) '하림조씨 가문'이다.
사는 곳 유현리 평촌마을은 임진왜란 선무원종1등공신 수재공(壽齋公) 정구룡(鄭九龍) 장군의 재실인 경충재(景忠齋) 앞에 집이 있어 부군(형님) 정삼영(2003.3.4, 67세 졸) 생존시에도 그랬고, 사후에도 21년 동안 조정자 여사가 대신으로 재실의 관리소장(조선시대 명칭 : 고직이:庫直이) 역할을 단단히 하신 공로가 크신 분이다.
한 예만 든다면, 재실 지붕 기와에 물이 세는 것도 태풍이나 폭우가 온 후에 예비 관찰을 하여 종중에 알리기도 했다. 한옥은 강우에 물이 세면 기와 아래의 황토 알매가 흘러내려서 서까래가 금방 부식한다. 평소의 오랜 경충재 관리 인연으로 초계정씨 수재공 문중 종친들이 유현 평촌마을 방문시 재실 바로 앞에 있는 집에 세상을 떠난 조정자 여사가 살고 있는 것으로 한 5~10년 간은 착각할 것이라 생각된다.
인품도 군북면 하림리 명문 함안조씨의 가문 출신답게 마음이 넓으며 너그럽고 사려깊고, 마음에서 울어나는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네며, 대인관계의 윗 아래의 인사를 차릴 줄 알고, 시가 형제간의 우애를 알고, 여러 사람을 보듬는 포용력이 있었다. 60대 늦으막에는 기독교에 귀의하여 함안군 가야읍의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신심과 성심이 좋기로 교회에서 알아주어서인지 교회의 관계자(집사나 전도사)가 매주 일요일마다 9km 집까지 왕복으로 매번 태워주기도 했다.
그래서 노환으로 85세로 돌아가시면서(2024.7 26, 소천 : 召天 ) 4일장(7.29) 기독교 장례식으로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선영에 안장했다. 평소 자신에게 따라다니는(붙어다니는) 노환과 자식들의 무병무탈(無病無頉)을 기원하여 자신이 죽거들랑 일신(一身)을 깨끗이 태워달라는(소천:燒天) 간곡한 주문(유언)이 있었다기에(딸 정순문의 전언) 상주들이 그에 따랐다.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인연(2남 정희태, 2녀 정순문)이 있는 함안 ㆍ거제ㆍ창원과 먼곳 서울까지 4곳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분이 찾아와서 기도해 주었다.
숙부인 내 생각으로 장지 선영의 지목이 묘지이고, 함안공설하늘공원에서 거리가 3km 이내라서 정삼영 형님처럼 매장(생장:生葬)하면 좋겠다고 마음으론 생각했지만, 조카되는 상주들이 그렇다니 흔쾌히 따랐다. 또 요즈음은 화장장례 문화가 88.4%(2020.10.12, JTBC 보도 기준)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외간에 한쪽 산소는 육신(肉身)이고, 한쪽 산소는 재(유골:遺骨)이니, 바란스(형평:衡平, 균형:均衡, 좌우대칭)를 맞추기 위하여 생존시의 주요 소지품 2~3개를 봉분 상단에 뭍는 것이(호박구덩이처럼 파서)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생각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다만 글쓰는 사람의(기록자) 개인 의견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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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정희태의 외할머니 이순림(李順林)은 합천이씨고, 옛날 남산리(현 장지리 지동마을, 소포리 소개마을 지칭)에 친정(조정자 외가)이 있었다 함. 지금은 후손이 모두 출향하여 아무도 살지 않음.
정희태의 외숙모는 재령이씨 이성호(96, 남자 이름임)이고, 항렬을 따라 짓다보니 남자 이름이 되었다 함, 친정은 방어산 아래 군북면 영운리 지실마을이라 함.
이웃마을인 군북면 유현리 아랫덕재마을에도 10여 가구 재령이씨 집성촌에 이필호, 이장호, 이영호, 이강호, 이정호(정호 외는 모두 작고함) 등 호자 항렬 이름이 있었음.
군북장터(5일장)와 옛 군북역에 인접한 곳에 외숙모(이성호)의 삼촌(이임술)이 살았고, 외숙모의 삼촌이 어머니(조정자) 중매를 섰다고 함. 이임술과 아랫덕재 재령이씨는 잘 아는 종친간임.
정희태 외숙모되시는 이성호(96) 할머니와 통화를 한참했는데, 연세에도 불구하고 발음이 똑똑하고 통화가 잘 되었음. 별세한 조정자의 올케 이성호 할머니를 통하여 정희태 외할머니 이순림(이성호의 시어머니가 됨)의 본관(관향)을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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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의 전 과정 사진을 《1》《2》《3》《4》부로 나뉘어서 남긴다. 훗날에는 소중한 추억의 가족사(家族史)가 될 것이다.
추록 : 2024.8.16(금) 창원시 북면 감계리 휴먼빌아파트 하자소송금(54만여 원) 지급신청서 제출차 오전에 들리고, 오후에는 바로 함안으로 내려가서 함안고 정문 앞 자연산추어탕(좋아하기에 함안 가면 꼭 들린다)에서 점심을 하고, 가야읍 가야리 2차 아라가야 고분군 정부 수용 편입지 탐방, 가야읍 혈곡리 인곡마을 종토 탐방, 유현리 평촌마을 선영 등을 둘러보았다.
지난 8.14(수)이 말복이고 닥아오는 8.22(목)이 처서인데도 함안지방도 폭염이 연일 계속중이라서 땀깨나 흘렸다.
선영에는 자생하는 삐삐풀(잔디보다 삐삐풀이 주종이다)이 20cm 정도 자랐다. 특별히 2024.7.26 별세하신 계림 형수(조정자 형수) 산소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다. 택호 '계림'은 군북면 하림리 우계마을에서 한 자씩 딴 이름이다.
차자 정희태 : 《민초나라》친족 밴드 댓글에서 옮김.
어머니 장례식 때 여러가지 절차들을 지도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조성된 산소까지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폭염이 계속되어 잔디가 활착되지 못하고 말라버렸을까봐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잘 살아있는 것을 보니 애통했던 마음이 조금은 놓여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밖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같이 쏟아지는데 저희들을 대신해서 살펴주신 노고에 재삼 감사드립니다.
장손자 재 호주 정유빈 : 《페이스북》정유빈 타임라인 댓글에서 옮김.
감사합니다!
작은할아버지(종조부의 우리말 존칭임)
추록 : 《 진주 심산회》밴드 댓글 옮김.
2024.7.26(금) 85세로 별세하신 조정자 형수님은 75~78세 때 쯤에 내가 함안 고향집에 어느날 가니, 형수님이 평소에도 여러번 생각했다면서, 진주 장모님과 통화를 주문함. 육성으로 상호 길게 인사를 전하고(내가 전화를 바꿔줌, 생각지도 않는 전화에 반가웠는지!! 장모님이 대화 중에 크게 우는 소리도 들렸음),
작은 돈이지만 30만원을 전함(내가 받아서 계좌 이체함, 송금자 : 조정자 명의, 장모님도 알고 계심)
옛날 장남 정경문(나의 조카)이 대아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일 때, 망경동 처가집에서 1년간 하숙한 적이 있음. 당시 남강 천수교가 있었는지는 확인 안됨. 있었다면 강 건너라서 바로 2.5km 정도를 걸어서 갈 수 있음. 천수교가 없었다면 남강 진주교 쪽으로 나와서 버스를 타야됨.
이렇게 조정자 형수님은 시골 사람이지만 예의와 인사를 차릴 줄도 아는 여인임.
《 진주 심산회 》밴드 회원들이 알게 지난 추억을 회상합니다.
추록 : 《 진주 심산회》밴드 댓글 옮김.
한동안의 전화가 끝나고서 너무 의아해서?? 내가 조정자 형수님께 다시 물어보았다.
형수님이 아들(장남 정경문) 하숙에 대하여 고마웠다늗 인사말을 한참 하던데, 왜 진주 장모님이 되레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까?
범철이 외할머니 댁에 옛날 폐를 많이 끼쳤다며 내 아들 하숙에 대하여 인사하는 과정에 정경문 순직(소령 때 파키스탄와 인도와의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으로 파견함, 현재 대전현충원 중령 추서 안장됨)을 사돈이 나를 너무 안 됐다는 뜻으로 위로하시길래, 내가 먼저간 아랫 동서(정범철 모)가 동서 중에 가장 인품이 있어서 너무 좋아했고, 정말 아까운 동서(큰따님)라고 위로를 드리니, 갑자기 감당하지 못할 울음보가 터져서 내가 다시 달래고 위로드리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는 전말이었다.
정경문 순직을 위로 받는 과정에 동서(범철 엄마)를 들먹이는 바람에 이심전심(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뜻이 통함)의 잠재된 울컥 감정의 눈물샘 표출로 울음바다 통화가 된 것이다.
당시 옆에서 지켜보니, 당시 형수는 장모님처럼 울지는 않았고, 장모님을 더 위로하는 대화만 했다. 보통의 사례로 아들과 딸에 대한 부모의 애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조정자 형수님은 평소에도 섬세하고 심성이 여린 여인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여장부형에 가까운 성격이다. 대신 마음에서 울어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인사)을 할 줄 아는 인품을 지녔다.
하이순(92) 장모님께서 현재 건강하게 건재하시니 옛 추억의 회상으로 《 진주 심산회 》 밴드에 기록으로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