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 2016. 04.24
곳 : 임천중학교, 성흥산성, 낙화암,고란사
코스 : 대전-강경-세도-임천중-성흥산성-부여 고란사,낙화암-대전
소요시간 : 6시간. 미세먼지가 최악의 날.
1966년부터 3년간 初任으로 재직한 임천중학교를 50년만에 2번째 방문하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제자들에게 이 사진을 보내려고 합니다.
임천면 군사리 식당-소머리국밥으로 점심
임천면소재지 본통: 50년전보다 건물이 좀 변함. 일심옥, 청송원,송의사 댁, 박동수네 양복점은 간데없고 작은 건물이 새로 들어 서 있다.
옛 평화옥 (임난규 집= 내 하숙집)앞 쪽에 경찰지서와 우체국이 지어져 있다.
아래 사진 기와집이 "평화옥"인가? 내 하숙집
林川中學校
내 교단 초임지다 1966.4.16~1969.2.28
화단 동 쪽의 낙엽송이 50년이 지났으니...어른되었네
운동장 남동쪽의 사작정
정원
서쪽에서 동쪽으로 촬영
운동장
북쪽 정문앞
학교앞에 도로가 새로 났다. 위 사진 우측 마을에 2-3 우옥자가 살았다.
가운데 집이 교장 사택(1966년 당시 김종태 교장선생님) /오른쪽 끝부분 박군(소사)의 집은 헐려 건축 작업장이 되고...
- 군사리에서 점심을 먹고 성흥산성으로 -
이 느티나무를 "사랑나무"라 부른다
사랑나무 밑에서- 50년전 소풍한 그 때를 생각하며
성순례, 세도의 조희구,군사리의 송재화.전승호, 전찬호,박동순, 임난규, 각개의 이왕복 발산의 성열희, 등,...
이름을 다 잊었고나 !!
유윤호,최종갑, 손인배, 김일성, 권용희,장석창선생님이 계셨지요.
사랑나무(느티나무) 나무 - heart가 보이지요?
봄,가을 소풍하던 곳
매년 봄, 가을로 소풍하던 성흥산성! 감회롭다. 오른 쪽으로 사진에는 없지만 장암면 지토리에서 겨울에 토끼몰이 하던 곳.
배구넷 펼쳐놓고 토끼몰이 하면은 이왕복 이가 다이빙으로 토끼를 끌어 앉았어요!!~~
성흥산 오르는 길에 걸린 프래카드
돌아오는 길에 부여 부소산을 들렸습니다. 부여여고 재직때가 그리워 학교를 방문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왔습니다.
아래는 부소산을 오르며 중얼거린 내 노래 입니다.
따듯한 봄날에 동무들과
백재의 옛 서울 찾아드니
무심한 구름은 오락가락
바람은 예대로 부는구나
부소산 언굴은 아름답고
우는 새 소리도 즐겁도다
낙화암 절벽이 솟았는데
꽃 처럼 떨어진 궁녀들의
한 맺힌 원한은 멈췄으랴
.... .... .... ....
높으신 스님도 계셨으리
고색이 찬연한 오층 석탑은
모두다 회구의 느낌이라
떨어진 기왔장 한쪽에도
천년전 문화꽃 아름답다.
생각나는 데로 적어 보았습니다.
..........................................................................
;;;;;;;;;;;;;;;;;;;;;;;;;;;;;;;;;;;;;;;;;;;;;;;;;;;;;;;;;;;;;;;;;;;;;;;;;;;;;
원문을 찾아 옮겨봅니다.
扶餘 春園 李光洙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
백제의 옛 서울 찾아드니
무심한 구름은 오락가락
바람은 옛 대로 부는구나
부소산 얼굴은 아름답고
우는 새소리도 정답도다
성터는 지금도 반월이란
이름과 한가지 남아있다
백마강 맑은 물 흐르는곳
낙화암 절벽이 솟았는데
꽃처럼 떨어진 궁녀들의
길고 긴 원한이 멈췄으리
고색이 찬연한 오층석탑은
외로이섰지만 이 근방은
큰절의 옛 터란 전하도다
높으신 스님도 계셨으리
반갑다 부여 땅 산천초목
모두 다 회고의 느낌이라
떨어진 기왓장 한쪽에도
천년전 문화 꽃 향기롭다.
내가 외운 노래가 많이 틀렸네요. 국민학교 때 배운 시인데 (국어 교과서에 있었음)
대전 삼성국민학교에서 배움- 아하 ! 이제 半치매로다 !~
위 3.3.4조의 시조는 춘원 이광수선생의 작품으로 1945년 해방 후부터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나기 전까지
초등학교 4~5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글이라 생각된다.
고란사 뒷 곁에는 石井정이 있고 절벽에는 석란이 붙어 있었는데 못 찾았다.
부여여고 3년 세월이 그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것은 왠일 일꼬!!
유숙종(劉叔鐘)은 지금 어디 사는고?!~ "꿈결에 계시가 오도록" 널 위해 기도했다.
다음엔 부여여고를 꼭 방문하리라.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여 온다...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서럽고나...
......................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 아래 울어나 보자!~
첫댓글 재직 수십년이 지낫으니 감개가 어덯하셨을꼬... 그래도 이름을 기억하니 대단합니다.
9개class인데 남자 2반, 여자1반씩 9개반의 작은 시골학교지요. 임천면,세도면,양화면,충화면,장암면 아이들은 강경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하고 부여는 멀고해서 모두가 유학을 하지 않고 원거리를 걸어서 통학했지요. 그래서 팔다리가 발달하여 달리기를 잘 합니다. 부여에서 군체육대회가 있는데 마침 체육담당 유윤호 선생님(교무과장)이 출장중이어서 제가 인솔하였는데 아 글쎄 농구, 달리기,배구 축구빼고 모두 석궜했습니다.
공부도 부여군에서 학력이 제일 높고 특히 세도조씨 자녀들이 공부를 잘했습니다.
세도는 강경이 코밑인데 다리가 없어 임천으로 뻐스 통학이 용이하므로 다녔지요.김윤환은 장관급. 미국 이민 제자가 많고...
@강가_루 부여에 있는 제자들이 와서하루 이틀 쉬다 가시라고 하는데 잘 안가게 되네요 어는 제자는 정년했던데.
아주 좋은 여행 하셨네.회포가 많을텐데 아는 사람과 같이 갔었는지? 아뭏든 추억이 깃든 곳을 두루 다니면서 옛날 생각하고 오늘의 나를 돌아보고....좋은시간 보냄을 축하합니다.
50년전 느티나무는 지금보다 작았을테고 "바다의물결"님이 "사랑나무"라하여 가보니 하트 모양으로 하늘이 뚤려있더이다.
나도 50여년전에 근무 했던 곳을 가보면 학생은 줄고 건물은 더 많이 짓고 해서
근무하던 시절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더이다.그래도 학생의 이름을 몇이라도 외우고 있는것을 보면 그때가 처음이라
열심히 했겠지요. 백화정을 올라 고란사 까지 갔는데 나는 등에 권총을 대도 못 올라갑니다. 부럽소이다.
포승줄로 묶고 따발총 드리대면 고란사 쯤이야 가겠지요. 살려준다면
5월이면 스승의 날에 제자들이 찾아오는데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하네요 매년 몇팀이 찾아와서 만나기도 하지만
나도 보답을 해야 하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생각하네요
추억은 아름답고 그것이 역사가 되는 것인데 그런 역사를 젆라고 그 당시의 모습이나 생활을 말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역사의 쌓임이리라 생각합니다
나도 어는 제자의 나이를 물었더나 저도 70이 넘어섰습니다 하면서 게면쩍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홍산성 부여의 부소산 백마강의 떠다니는 배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겠는데 그래도 옛날은 옛날이고
미래에 우리는 옛사람으로 역사의 주인공이 됨은 틀림 없는 것이니 바른 행도도 꼭 명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여에 가고 싶다. 연꽃 축제가 생각나고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싶다 자전거라도 타고 갈까
부여여고 뒷뜰 위로 아침마다 부소산에 올랐습니다.최송춘교장선생님을 모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