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태기가 보이더니 큰 알을 낳았다. 왕은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을 해괴하게 여겨 유화가 낳은 알을 개와 돼지에게 주었다. 개와 돼지 들은 이를 먹지 않고 피했다. 다시 알을 길가에 가져와 버렸더니 말과소가 피하면 밟으려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알을 들판에 버리자 새들어 날아와 날개로 덮어 주었다. 금와 왕은 최후의 수단으로 일을 깨트려 버리려고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알을 깰수없어 포기하고 다시 어머니인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유화가 그 것을 감싸 따뜻한 곳에 두자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뛰어났다. 아이는 보통사람들과 크게달라 일곱살이 되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 이었다. 부여에는 화살을 잘쏘는 사람을 '주몽朱蒙' 이라고 하였는데 이런 이유로 이름은 주몽이 되었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라 주몽의 탄생에 관한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큰 흐름은 위와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주몽의 탄생 설화는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평범한 인간에서 신의 세계로 끌어 올리고 있다.
「동국 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동명왕전, 에는 해모수에 관한 글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을 이렇다 '천제가 태자를 보내어 부여의 옛 도읍에와 놀았는데 이름이 해모수 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오룡거 五龍車' 를 타고 따르는 사람 1 백형은 모두 흰 고니를 탔다. 채색 구름은 위에 뜨고 음악 소리는 구름속에서 울렸다. 옹심산에 머물다가 10여일이 지나서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조우관 鳥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 龍光劍 을 찼다.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물면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천왕랑 天王郞 이라 고 했다' 이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듯 평양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