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세계와 함께 희망하고 행동하자!!
각각의 피조물은 저마다 고유한 선과 완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69항>.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계획안에서 모든 피조물은 그 자체로 고유한 선함과 완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덧없이 사라지는 작은 생명도 하느님 사랑의 대상이며, 그분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느님과 친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창조는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창조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과정 중에 있는 신비입니다.
이번 창조시기에서는 하느님께서 여전히 활동하시는 창조의 진화를 강조하며, Creation을 대문자로 표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지속되는 창조의 의미는 모든 피조물이 누군가의 소유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 있는 고유한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적 개념을 담아서 교회는 올해 창조시기 주제를 ‘창조세계와 함께 희망하고 행동하기’ 로 정했습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하느님의 전체 창조 질서 안에서 오늘의 희망을 발견하며, 그 희망으로 일어나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우리의 착취와 파괴로 인한 지구의 고통을 어머니가 겪는 해산 고통에 비유하면서(로마 8,22), 지금의 고통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한 아픔으로 이해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내버려두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믿음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때의 희망은 막연한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본성, 약속, 행동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몸을 일으켜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희망을 두 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희망에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는데, 그 이름은 분노와 용기입니다. 분노는 현실에 대한 분노이고, 용기는 현실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는 용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구와 모든 피조물의 고통을 목격할 때 우리는 거룩한 분노를 일으켜야 하고, 정의를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를 제어하기 위한 대담한 행동이 얼마나 시급한지 알고 있으며, 반면 인간의 생각과 마음,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더딘 과정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행동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하느님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모범(육화)을 따라 창조 세계를 돌보고, 가난한 이들의 아픔과 지구의 울부짖음에
거룩한 분노를 일으켜야 하며, 용기를 내어 변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선류 타대오 신부/2024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