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벚
전호영
너는 본시
호젓한 산길 고적함을 더 좋아해
차가운 이슬 은은한 달빛에 몸을 적시고
어쩔 수 없는 봄빛 그윽함에 이끌려
진달래 입술 수놓인 새벽 어스름
향기도 없이 잎새 사이
이른 산꾼의 거친 손길에 떨고 있나니
나도 본시
소슬한 산길 적막함을 더 좋아해
차가운 바람 푸릇한 산빛에 몸을 적시고
어쩔 수 없는 봄빛 그윽함에 이끌려
개나리 나팔 울리는 새벽 어스름
허락도 없이 입안 가득
이른 꽃잎의 들뜬 입술에 떨고 있나니
우린 본시
외로운 산길 한적함을 더 좋아해
어쩔 수 없는 봄빛 그윽함에 이끌려
산에서 벗으로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2, 이방의 초승달
전호영
초승달이 칼처럼 빛나는 이방의 낯선 밤
순대국밥에 곁들인 소주 2잔이 마취처럼 깰 무렵
달이 차오르는 건지 저무는 건지
왼쪽 오른쪽 벌린 아가리를 살피며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모호한 이야기 생각한다
그날의 초승달은 또 몇 십번 차오르고 저물어갔겠지만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너의 목소리
이 어둠 속에서 또 분별없는 나는
하루를 끝맺음인지 시작함인지
참으로 모호하다
3, 남산과 신정호
전호영
산은 내려올 수 없고
물은 올라갈 수 없으니
허리춤 비스듬히 팔짱을 끼고 앉아
천년바위 사랑편지에 시간가는 줄 모르네
물안개 자욱한 날에는 사랑을 나누는지
달콤한 꽃향기 천지를 진동한다오
호국의 영웅 충무공의 부릅뜬 눈
학익진을 펼치는지 학의 날개 수면을 가르고
연꽃 만발한 호수에는 거북이의 쾌속 질주
산에서 내려온 나무가 물 속에 발을 담그고
물에서 올라간 이슬이 산 속에 몸을 말리는
산과 호수가 더없이 상서로운
온양의 명물 남산과 신정호라오
*천년바위 : 옛날 마을의 한 총각과 설화 아가씨가 사랑편지를 주고받던 남산에 있는 바위로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깃든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