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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사경수행정진 이야기..... 스크랩 위빠사나 수행 황영희 씨-고교시절 불교에 관심
禪海印 추천 0 조회 67 08.07.04 12: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위빠사나 수행 황영희 씨-고교시절 불교에 관심

 

고교시절 불교에 관심, 대학 3년 때 출가
속퇴 후 한의대 입학…보통 여인으로 살아

 

통찰지혜란 일종의 자기 치유력이다. 부처님께서 진실로 우리에게 전해 주시고자 했던 가르침이란 바로 자기를 치유해 나가는 방법이다. 위빠사나를 만나고 나서 내가 사회를 비판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나의 탐진치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릴 때부터 내가 옳다고 믿고 고집을 부려서 주위와 불화를 일으킨 것이나 결혼해서 시댁과 겪었던 갈등 등 이런 것들이 모두 나의 강직한 성격 때문인 줄만 알았었다.

그러나 그 성격의 근저에 자리잡은 탐욕과 성냄을 보고 나니 마치 병든 사람이 약을 먹은 것처럼 내 행동이 저절로 고쳐졌다. 이런 것을 일러 법에 의한 치유라고 하던가. 흔히 통찰에 의한 치유를 근본적인 치료법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기존의 선정 수행법을 모두 버리고 위빠사나로 전환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마음의 원리에 근거한 수행법을 발견했다는 말이다.

나는 그 빛을 오십이 다 된 나이에 만났다. 유난히 불교적인 감수성이 예민하면서도 성격이 온화하지 못했기에 사춘기 이후의 삶을 회상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고문에 가까울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굴곡 많은 과정들이 오직 한 점을 향해 돌진해 왔다는 확신이 들기도 한다. 위빠사나 수행과 묘원 법사님을 만난 것이 그것이다.

집안이 불교와는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낡은 표지의 『불교개론』을 그때 만났고, 사성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인생이 고(苦)라는 대목을 보았다.

그 후 이렇게 말씀하신 분의 가르침이 뭔지 알아보리라는 결심을 했다. 『반야심경』을 보고, 테이프를 들으며 외우고 한자로 쓰는 것까지 2∼3일 정도 걸렸다. 그리고 혼자 도서관에 들어앉아 불교전집 같은 것을 보기도 했다. 그때 선불교를 처음 접하기도 했다.

처음 대학에 다닐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교양으로 듣는 미학수업 시간, 어수선한 시국에 대부분은 시위대열에 합류하고 남은 몇 명이 모여 교수님과 둘러앉았다. 인생의 목표를 주제로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나는 인생의 목표가 해탈이라고 했다.

다들 놀란 표정들이어서 공연히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사고방식 자체가 세속에 물들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대학 3학년인 스물 두 살 때 출가를 했다. 그리고 사미니계를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왔다. 그때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한겨울 삼천배 100일 기도를 하기도 하는 등 많은 경험을 했다.

그렇게 산을 내려와 몇 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한의대에 입학했고, 거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고 아이의 엄마이고 직장인이다. 외적인 흐름과는 달리 내면으로 추구하는 것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뒤늦게 나마 위빠사나 수행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자기의 병을 치유하면서 살라고 하셨다. 그 끝이 어디에 가 닿으리라는건 자명하지만, 우선 바르게 보고 바른 견해를 가지라고 하셨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바른 삶의 길이라는 것을 위빠사나 수행을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이다.

 

묘원법사 글 통해 ‘진짜 수행’만나
좌선과 경행은 삶의 유일한 활력소

 

지난해 3월 29일, 위빠사나를 기초부터 차례대로 배울 수 있는 한국위빠사나 선원을 찾아갔다.

강의를 들으면서 ‘몸과 마음은 있지만 내 몸과 마음이 아니다’라는 말이 강렬한 여운으로 남았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을 배우려면 직접 수행처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선원을 찾아가기에 앞서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었다. 한국위빠사나 선원의 인터넷 카페를 방문했는데 여러 게시물 중에서도 ‘옹달샘’이라는 코너를 보고부터 나는 그 코너에 중독이 되었다.

묘원 법사님이 수행자들에게 주는 글들이 올라와 있었는데, 삶과 수행이 일치한 글이었고 균형 잡힌 글이었다. 3일에 걸쳐 그 글들을 보면서 머리 속에 있던 먹구름이 확 걷혀나갔다. 그 며칠동안 마치 블랙홀을 통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당장 정신이 맑아졌고 잠이 두 시간이나 줄었다. 원래도 잠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수면시간이 6시간 정도였는데, 직장이며 집안 살림에 지쳐서 정작 혼자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는데 그 불만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었다.

경전에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당장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등 도과를 성취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마 법이란 것이 그렇게 작용하는가보다 생각만 했었는데, 나 자신이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선원을 찾아서 처음으로 위빠사나에 대한 법문을 들었다. 책으로 보고 방송 강좌로 듣다가 왔음에도, 바르게 수행하는 수행자를 통해 직접 접한다는 것이 또 다른 차원임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법문이 있는 날은 법문과 경행과 좌선, 그리고 인터뷰로 이어질 뿐 어떤 의식도 없었다. 의식에 의지한 무임승차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야 내가 제대로 된 수행을 만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은 그 핵심이 인식작용의 변화임이 확실하다. 일주일에 한두번 선원에 법문 들으러 다니면서 빠르게 인식작용이 변해갔다. 위빠사나에서 가장 중요한 모토는 ‘바라지 말고 없애려 하지 말고’이다. 그러나 이것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집중을 원하기에 좌선을 하는데 이 원하는 마음이 바로 탐욕이다. 이 탐욕이 다시 집중을 방해한다. 부처님은 욕심을 없애려는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이 마음의 원리에 근거한 수행법이고,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가르침이다. 처음 선원을 찾은 이후로 법문을 듣고 시간이 날때마다 좌선을 하고 있다. 수행에 대한 갈망이 남달랐던지 종종 좌선하고 경행만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좌선과 경행은 내 삶의 활력소가 되었고, 내 마음 상태를 먼저 알아차리고 들어가는 집중이란 집중을 먼저 요구하는 수행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집중을 가져오게 했다. 또 법문과 인터뷰는 수행자의 인식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승이 없이는 수행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알아차림. 사실 모든 수행는 삶이 무지와 탐욕으로 점철되고 있음을 알아차려 이를 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경행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알아차림이 선행하는 집중, 그리고 스승과의 인터뷰와 일상의 알아차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한의사(47·서울 동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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