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본격적인 순례를 시작하는 날이다. 아침은 간단하게 미숫가루로 먹고 냉장고에서 전날 만들어서 얼려둔 포카리스웨트를 꺼내서 챙긴다. 히로씨가 조심해서 순례하라고 하면서 부적(오마모리)라 쓰여진 종이 봉투를 하나씩 챙겨준다.
"이게 뭐에요?" "소금이에요." "소금이요?" "포카리 들고 있으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되지만. 중간중간 염분섭취를 않하면 일사병에 걸리니까 조심해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요^^"
료젠지의 대사당
산문을 들어서서 먼저 몸을 정결히 하는 의미로서 미즈야에 가서 손을 씻는다. 어제도 봤지만 참 절이 작다. 종을 칠까 하다가 이른 아침이라 패스하고 순례용품을 사러 본당으로 향한다.
료젠지의 명물(?) 13불 입상과 그 앞에 모셔진 성관세음보살상. 13불상은 뭐랄까. 매우 투박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료젠지 본당 내부
본당 안쪽 부처님이 모셔진 불단부분. 불상은 비불(秘佛)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
료젠지는 6세기경 쇼무천황의 발원으로 백제계 고승인 쿄키대사가 창건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후 2백년 정도 지나 코보우대사가 코닌 6년(815)에 태장계 4중 입체 만다라를 세울 만한 도장을 찾아다니며 시코쿠의 동북지역에서부터 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 이르렀을 때 공중에서 환한 빛이 비추며 석가여래가 영취산(?鷲山)에서 설법을 하고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코보대사는 이 곳이 영험한 곳임을 알아 모시고 다니던 탄생불(부처님이 탄생하는 모습을 조각한 불상)을 본존으로 모시고 팔십팔개소의 영장중 한 곳으로 정했다. 그리고 산의 이름을 천축(天竺;인도)의 영산을 야마토노쿠니(和?;일본의 별명)에 옮겨 왔다는 의미의 지쿠와산(竺和山)으로. 절이름을 료젠지(?山寺)로 정했다고 한다.
납경소와 함께 있는 헨로용품 판매코너.
한국어 지도도 팔고 있다. 한 권에 2000엔이다.
납경소에 딸린 가게에서 백의를 고른다. 나는 소매가 없는 오이즈루로, 도균이는 소매가 있는 백의다. 와게사를 살까... 하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일단 제쳐둔다. 납경장은 제일 싼것으로 골랐다. 하지만 순례를 돌면서 '납경장은 조금 비싼걸로 할껄 그랬나....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무래도 여행끝에 남는 것 납경장이 가장 애착이 간다. 조금 투자를 해도 좋을 것 같다. 계산을 하고 백의로 갈아 입고 출발하려니 납경소의 비구니 스님이 잠시 멈춰 세운다.
"여기 노트에 이름하고, 주소. 출발일을 써주세요." 노트를 보니 지금까지 왔다 갔던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 출발일이 다 쓰여있다. 앞으로 조금 넘겨보니 결원하고 돌아온 순례자들이 도착한 날짜와 서명을 한 것이 보인다. 일단은 다시 1번 절로 돌아올 예정이니 나도 이름을 써본다.
드디어 출발이다. 2번절 고쿠라쿠지까지는 1.4Km다. 절을 나와 절 앞의 12번 현도를 타고 나아간다. 아침 햇살이 강하다. 눈도 부시거니와 덥다. 한국 같았으면 시끄럽다고 싫어할 덤프트럭이 지금은 오히려 바람을 가져와 주는 고마운 차가 ?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게 부처님 말처럼 숲속의 원숭이 같다.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하나로 모을 수 없으니....
한 40분 정도 걸었을까. 2번 고쿠라쿠지의 붉은 산문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산문=일주문이라는 개념으로 일주문의 편액에 산이름과 절이름을 같이 써놓거나 그 절이 어떠한 도량인지를 써 붙여 놓는데 일본은 말 그대로 산문(山門) 산의 입구에 세우는 문이다. 그래서 절의 이름보다 산의 이름을 산문에 붙여 놓는다. 고쿠라쿠지가 있는 산의 이름은 닛쇼우잔(日照山). 햇?이 비추는 산이란 뜻이다. 이 산호(山?)에는 전설이 같이 전해진다.
아무리봐도 약수터의 포스를 풍기지만 마실 수 없는 물이다.
본당으로 가는 계단 앞에 모셔진 불족석(佛足石). 불상을 만들지 않았던 초기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던 조각이다.
고쿠라쿠지 본당 내부.
이 절 역시 원래는 쿄키대사가 창건했던 절이 근간으로 홍법대사가 이 절을 찾아 와 17일간 아미타경을 독송하고 마지막날 아미타여래를 조각하여 본존으로 모셨다고한다. 그런데 그 아미타여래의 얼굴에서 ?볕과 같은 금빛광채가 비추어서 멀리 나루토의 바닷가까지 비추자 그 빛에 물고기들이 놀아 흩어졌다고 한다. 이에 어부들이 그 빛을 막기 위해 본당앞에 작은 산을 쌓았다고 전한다. 산호인 닛쇼우산은 본존의 광채가 ?볕과 같다는 데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본당과 대사당 사이에 모셔진 태장계 대일여래와 보협인탑, 관세음보살상
자신의 소원을 써서 걸어 놓는 에마(?馬). 에마는 원래 옛날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감사의 의미로 절이나 신사에 말을 봉헌하던 풍습을 가난한 이들이 실제 말 대신 말그림을 그린 나무판을 봉헌하던 것이 전해오는 것이다. 지금은 소원이 이루어졌을 ?가 아닌, 소원을 빌기위해 걸어 놓는다.
고쿠라쿠지의 대사당. 아침 일찍부터 자동차로 순례하는 노부부를 보다.
고쿠라쿠지에는 코보우대사가 직접 심었다고 전하는 수령 1200년이 넘는 쵸우메이스기(長命衫)가 서있다. 이 나무를 만지면 장수한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나무의 보호를 위해서 나무에 연결된 희고 붉은 띠를 잡고 장수의 기운을 받는다. 주차장에 붙어있는 납경소에서 납경을 받고 3번절로 향한다.
3번 곤센지 본당
3번절 곤센지는 대사당 옆에 있는 '오우곤 이도(黃金井戶)'라는 우물의 전설이 있다. 홍법대사가 물이 부족해 고생하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판 우물이 남아 있는데. 이 우물이 오우곤 이도이다. 이 우물에 얼굴을 비춰을때 얼굴이 보이면 92살까지 살 수 있지만 보이지 않으면 3년이내로 죽는다는 전설이다..
대사당에 모셔져있는 코보우대사상.
대사당 안에는 코보우 대사의 생애를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
대사당 옆의 사당에 우물이 남아있다.
바로 이녀석.
우리 둘은 92살까지 괜찮겠군 ㅎㅎㅎ
헨로미치(순례길)이 절 뒤로 들어와서 앞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보니 산문을 통해서 나간다. 4번까지의 길은 살짝 숲길이다. 여름이 되서 풀이 무성하니 길이 풀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3번 곤센지의 오쿠노인인 아이젠인을 지나 숲길을 벗어나오자 뜬금없이 우동집이 튀어나온다. 마침 물도 다 떨어졌겠다. 물도 얻고 좀 쉬어 갈겸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난데 없는 한국어와 뭔가 낯익은 그림을 발견했다.
바로 만화가 메가쑈킹(고필헌)님의 그림!! 정말 메가쑈킹하다ㅎㅎ.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가의 그림을 여기서 보니 느낌이 새롭다. 메가쑈킹님은 예전에 이 길을 도보 순례를 했다고. 지금은 제주도 올레길 중간에 '쫄깃센터' 라는 게스트 하우스를 짓고 있다고 알고있다. 주인 아주머니께 물을 받아서 다시 다음 절로 걸음을 옮긴다.
4번절의 산문은 종루를 겸하고 있는 종루문이다. 아깝지만 종은 칠 수 없게 되어있다. -_-
다이니치지는 이곳에서 오랜기간동안 머무르며 수행하던 코보우 대사가 대일여래와 이 땅이 인연이 있음을 알고 한 번 새길때 마다 세번 절을 하여서 나무로 1자 3촌(55cm 정도)의 대일여래상을 조각하여 본존으로 모시고 본존의 이름을 따서 다이니치지라고 했다한다.
다이니치지 본당. 지쳐서 대충 앉아있는 도균이ㅋ
본당 내부에 모셔진 대일여래상. 아무리봐도 55cm가 넘는다. 이건 코보우 대사가 직접 새긴 본존이 아닌 마에다테(前立) 본존이다. 마에다테 본존이란 비불등으로 모셔져 공개되지 않는 불상을 대신하여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불상을 말한다.
길을 내려오다가 문든 전봇대 옆의 안내판에 눈이 간다. "도보 오헨로상들께. 이 앞으로는 길이 없습니다. 뒤에 있는 고속도로 아래로 가주세요." 어익후! 살짝 길을 잘못 들었다. 고속도로 아래로 가야하는 데 옆길로 샌 것이다. 그래도 금세 바른 길로 들어서서 다행이다. 5번 지죠지에 다와가서 시코쿠 유일의 고햐쿠라칸(五百羅漢)을 지나친다. 입장료가 500엔이다... 불상감상을 매우 좋아하는 롭상은 망설인다.. '우짜지... 시간상으로는 괜찮긴한데..돈이.....' 결국 눈물을 머금고 포기. 곧바로 지죠지로 향한다.
5번 지죠지 본당
지죠지의 본존은 코보우대사가 조각한 승군지장(勝軍地?)으로 장군지장이라고도 한다. 승군지장은 일본에만 있는 독자적인 지장보살로 지장보살이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군마에 올라있거나 지휘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무사들의 신앙이 두터웠다.
바로 이분이 승군지장보살님
대사당앞의 수령 800년이라는 대 은행 앞에서 쉬고 있으려니 한 아주머니가 오셔서 묻는다.
"도보 순례에요?" "네^^" "어머나, 날도 이렇게 더운데.... 조심해서 순례해요~"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끝! 이 아니었다. 주차장으로 사라진 아주머니는 커다란 하귤을 들고와서 "오셋타이에요 맛있게 먹어요^^"라고 하시며 귤을 건네주신다.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오셋타이란 말인가!! 좋다. 이건 오늘 점심 후식이다!
일단 도균이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기로 하고 납경장을 들고 납경소로 향한다. 자동문이 달린 납경소다. 그리고 납경소에 들어서자 에.어.컨.이 켜져있다!! 아~ 이 곳이 극락이군요. 압니다. 아마 저기 납경 써주시는 할아버지는 보살의 화신쯤 되시겠죠ㅋㅋㅋㅋ. 일단 다시 나가서 도균이를 부른다.
"어머~ 사랑하는 형제님 언능 가방 드세염." "벌써 납경 끝났냐?" "아니요" "그럼 뭐냐. 더워 죽겠는데" "납경소에 에.어.컨.이 켜져있어요" "뭐 하냐, 니 가방 챙겨와라. 가자."
납경소에 들어가서 일단 양해를 구한다.
"저기 한국에서 온 아루키 헨론데... 여기 에어컨이 켜져있어서, 잠시 쉬어도 될까요?" "예, 물론. 편하게 쉬세요." "저, 그리고 죄송한데 마실 물은 어디서 뜨면 되나요?" "저기 옆에 있는 세면대 물, 마실 수 있어요."
일단 납경을 받고 점심으로 먹을 미숫가루를 꺼낸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도 될지...." "예, 괜찮습니다. 근데 먹을 만한 장소가.... 잠시만요 상 펴드릴께요." "아, 아니 괜찮아요 그냥 땅바닥에 앉아도ㅎㅎ" 할아버지는 끝내 절 안내 팜플랫과 이래 저래 놓여있던 탁상을 정리해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옮겨주시곤 의자까지 갖다주신다. 거듭 감사하다고 하고 한국서 가져온 스뎅 밥공기(후에 여러모로 사용되는...)에 미숫가루를 푼다. 납경소 할아버지께서 미숫가루를 처음 보는지 궁금해하신다.
"이게 점심인가요?" "네^^. 이건 여러가지 곡물을 가루로 낸건데. 한국에서는 종종 식사대용으로 먹어요^^"
할아버지께서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나이가 몇인지. 왜 이 길을 걸으려고 하는지. 등등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고 미숫가루를 먹는다. 먹고나서 셋타이 받은 귤을 까먹으려는데 할아버지께서 녹차를 한 잔씩 타오신다. 친절에 몸둘바를 모르겠다.ㅎㅎ 옆에서 지켜보시던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말한다.
"왜, 그거 있잖여. 그 거 한장씩 이 학생들 주재그랴?" "뭐 말이여?" "아, 비단~" "아, 그렇지!!"
그러시더니 서랍을 여시곤 비단으로된 후다를 꺼내서는 주신다!! 비단으로 된 후다는 100회 이상 순례한 사람들만이 쓰는
생각치도 못하게 받게된 비단 후다. 뒤에는 순례 211회째라고 쓰여있었다.
"헉! 비단 후단가요?! 혹시 할아버지의...?" "아니, 예전에 온 순례자가 봉납하고 간거에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소중히 보관할께요^^" "날이 더우니까 조심해서 순례해요^^"
점심도 잘 먹었겠다. 비단 후다까지 받았겠다. 너무 감사해서 가방 안쪽 깊숙히 넣어두었던 자수 동전지갑과 향주머니를 꺼냈다. (인사동에서 5개 만원하는 세트를 사갔다.)
"이거 한국에서 가져온 지갑하고 향주머닌데 받아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뭘 이런걸...."
마지막으로 납경소 분들의 사진을 한 컷 찍고 다음 절로!! 지죠지 납경소 분들. 엄청난 친절에 몸둘 바를 몰랐다.
지죠지 산문
이 때까지만 해도, 그러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천천히~ |
출처: 롭상의 토굴 원문보기 글쓴이: 아왕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