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나를 떠나소서
본문 : 눅 5:8-11 (신 96)
초등학교 시험에
‘선물을 받았다면,
어떻게 인사해야 할까요?...
“다”자로 끝나는 다섯 글자의
인사말을 쓰세요.’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정답은 물론, “고맙습니다” 이거나
“감사합니다” 였지만....
짱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뭘 이런걸 다.” ....
그런데,
오늘 베드로의 인사는 짱구보다
더 심해 보입니다.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는 대답입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
그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두 배가 잠길 만큼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인사는 당연히
“감사합니다”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을 알려주기를 간청하든지....
아니면 지분을 나누어서 동업을
부탁하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대답은 짱구보다
더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절)”였습니다.
그의 대답은 우리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매우 의미심장한 대답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신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대답에서 우리는 먼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이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시몬이 예수님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5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예,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신적존재가 아닌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그저 존경의 표시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기적을 체험한 후
그는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8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예, 그렇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주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아직 그 분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
그분은 보통의 인간이 아닌
신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표적을
행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우리 인간의 연약한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어느 날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기에 예수님은
기적과 이사를 통하여 당신의 권능(신성)을
드러내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요4: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이러한 기적은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훗날 베드로는 사도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설교할 때에...
기적이 믿음을 확고히 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지 고백하였습니다.
행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기적은 사람에게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적이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적을 본 후에
더 큰 기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많은 무리 앞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어
배불리 먹였습니다(요6).
그런데 그들은 몇 일이 못 되어
예수님께 이처럼 물었습니다. (30절)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요6:30-31).
이런 말은 그들이 예수님께 모세와 같은
방법으로 더욱 큰 이적을 보여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예수님은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며
그들의 믿음 없음을 탄식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적을 보고도 의심하므로
불신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한 청년의 눈을
뜨게 하셨을 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쟁론이 벌어졌습니다.
이 기적을 확인하려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
소경 되었던 청년이나....
그의 부모의 말을 믿지 않고 의심하므로...
스스로 정죄에 빠진 것입니다(요9:17-34).
사랑하는 성도님들 !
저는 저와 성도님들에게도
주님의 놀라운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확고하게 믿게 되기를 원합니다.
‘선생님’이 아니 ‘주님’이라고 고백하시는 ......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욱 더 바라는 것은 표적이나 이적이 아닌.....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을 고백하는
성숙함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신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자신이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절)”.
이 장면은 구약 이사야서 6장에서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 벌벌 떨고 있는
이사야를 생각나게 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5절).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현현 앞에
무서워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저절로 무릎이 꿀려졌고....
자신의 죄를 바라볼 때......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주님을 감당할 수 없는 심정으로.......
“나를 떠나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베드로의 고백처럼,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의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앞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첫 과정이요 단추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요일1:10 “만일 우리가 범죄치 아니하였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 첫 번째로 느끼는 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에 사람들은 설교자가 청중을 향해
“당신들은 죄인입니다.”라고...
선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도 예수 믿고...
어떤 일이 잘되고....,
기분이 좋아지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듣기 좋아합니다.
요즘 유명한 설교자 중에...
죄에 대한 깊은 터치가 별로 없습니다.
신앙은 죄의 문제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죄를 느끼지 못하고 .....
자신이 죄인임을 마음 속 깊이 깨닫지 않으면......
신앙의 문에 아직 못 들어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한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죄인이야?” ........
우리는 죄인하면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를 생각합니다.
감옥소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도 법을 어긴 죄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죄인으로 확정되기 까지는
법정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판사는 증거와 정황을 참작하여 법이
정한 벌을 내립니다.
하지만 죄가 많은 데도
처벌받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고.....
반면 제가 적은데도 상대적으로
크게 처벌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피의자가 좋은 변호사를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인가와도
관계가 있지만,
또 한 가지는 검사와 판사가
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확한 마음과 행동을
100%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는 분이 아니라.... 마음을 보는 분이시기 때문에 .....
누구라도 어떤 구체적인 일을 행하지 않았어도......
마음 속에 벌써 더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죄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좌 앞에서는 복잡한
심문 절차와 기간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기 때문에 ......
어떤 사람에게 곧바로 유/무죄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무디어진 증거입니다.
1) 알람 시계를 처음에는 들리지만
매일 울리다보면 그냥 알람시계가
울려도 잠이 듭니다.
2) 노동자들이 손을 많이 사용하면
굳은 살이 생겨 감각을 잘 못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3) 남도 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옆에 사람을 보고 위안을 받고...
자신이 정당하다고 계속해서
마음 속에 mind-control을 합니다.
“너는 죄인이 아니야. 그만하면 훌륭해.”
죄라는 것은 특정한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한 것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6:7에는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사역 가운데 ...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 있는데........
거기에서 그 죄는 바로
“믿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이 세상의 약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은 것이 곧 죄라고 합니다.
죄는 겉으로 드러난 특정한 잘못이 아니라 ...
마음이 부패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어디에다
대 보아야 합니까? .....
형법이나 양심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 깨끗하게
하얀가를 대 볼 때 먹지와 대보지 않습니다.
회색지에 대보지도 않습니다.
백지에 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백지는 말씀 밖에 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말씀 앞에 자신을 대 보면
금방 자신이 죄인인 것이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베드로처럼 무릎을 꿇고
죄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 중에 자신이 죄인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옆 사람에게 대 볼지 모릅니다.
“내가 제 보다는 낫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대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회개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0)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나오는 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한
베드로의 고백은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 받는 모든 사람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히1:3).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 앞에서 자신의 죄성을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바로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참된 은혜를 누리고 .....
나아가 주의 영광 위해 더욱 헌신하시고
충성하셔서 ......
주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