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한국의 기도 도량 / 서울 삼각산 도선사
뭇 중생 고통 가슴에 사무쳐 천년 바위 관음으로 나투다
▲사시예불이 봉행되자 석불전 객들은 끊임없이 절을 올렸다.
108염주를 부여잡은 두 손은 방석과 맞댄 이마에 자리했고
입에서는 간절한 마음들이 새어 나왔다.
풍수대가 도선국사가 창건
엷은 웃음 띤 얼굴은 차라리 신심이었다.
도량은 부처님 오신 날 찬탄과 기도를 위한 간절함이 신묘하게 몸을 섞고 있었다.
찬탄과 간절함이 어우러진 신심이 서울 삼각산 도선사를 휘감았다.
우이동 시내버스 종점에서 사찰 진입로인 청담로를 약 1km 오르면
첫 번째 고개(일명 도선고개)에서 도선사(주지 선묵혜자 스님) 산문이 객을 맞는다.
산문은 자비문이다.
청담대종사 친필 휘호인 자비무적 방생도량을 조각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200m 더 올라 불이문인 천지문과 돌을 붙여 떨어지지 않으면,
원(願)이 이뤄진다는 붙임바위를 지나 ‘마음의 광장’ 미소석가불 앞에 섰다.
연꽃 좌대 위 가부좌 튼 부처님은 누구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일까.
선정 속에 번뇌 여의고 진리 위에 앉은 여여함이리라.
그 법향이 객들 마음에 번지는 모양이다. 아침부터 기도객들이 연신 마음 모아 허리 굽혔다.
▲마음의 광장 미소석가불.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는 길을 수놓았다.
사천왕문에서 도선사로 이르는 길 곳곳이 기도처였다.
도선사를 거쳐 간 선사들 부도탑과 선사 법어들이 오만했던 마음들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도선사를 호국참회관음기도도량으로 일군 청담대종사.
스님 법어가 대웅전 향하는 길 위로 내딛는 발걸음을 경책했다.
“길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있고 그러므로 그 길은 영원하다.
인간의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다. 완성이란 언제나 없다. 완성이란 죽음뿐이다.
그리고 그 죽음도 다만 탈바꿈에 지나지 않는다.
뜬 구름 같은 우리의 삶, 끊임없이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 길에 어느 때는 저토록 붉은 노을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인간의 외로운 발자국이 남겨지리라.
그 길은 나에게 젊음을 빼앗아갔다.
그러나 그 길은 더 많은 것을 나에게 바라고 또 주겠노라고 약속하고 있다.”
청담 대종사가 중흥 이끌어
대웅전과 호국참회원, 반야굴, 명부전이 맞닿은 앞마당은 부처님 오신 날 연등 천지였다.
연등은 연두, 노랑, 주황, 파랑빛으로 도량을 물들였다.
풍경은 바람에 몸을 맡겼고 삼성각 옆 꽃나무는 잎을 떨궜다.
대웅전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석불전을 참배했다.
석불전은 사시예불을 준비 중이었다. 예불 봉행되자 객들은 끊임없이 절을 올렸다.
꿇은 무릎과 굽힌 허리 조아린 머리는 세속 지위나 나이, 성별, 부와 명예를 깔아뭉갰다.
108염주를 부여잡은 두 손은 방석과 맞댄 이마에 자리했고
입에서는 간절한 마음들이 새어 나왔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객은 아주 천천히 절을 공양했다.
석불전에 좌복을 깐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연신 절이었다.
그들이 빚어낸 간절함이 석불전을 맴돌았고, 석불전 하늘 가린 연등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등에 달린 소원지가 바람에 나부꼈다. 그러나 뜯겨 날아가지 않았다.
간절히 등을 붙들어 매고 있었다. 한국불교의 시작과 끝이 예 어디쯤이리라.
▲석불전 관세음보살입상.
석불전은 관세음보살 기도영험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석불은 암벽을 깎아 만든 마애불이다. 높이 20m, 암벽에 8.43m 크기로 새겨진
관세음보살입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4호)으로 옆엔 진신사리탑이 있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 말엽 철종 14년
동호 스님은 운수행각을 하며 관세음보살 염불수행 중이었다.
그러다 도선사에 인연이 닿았고, 석불전에서 부처님 광명을 친견하고 수기를 받으리라 발원하며
10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지성으로 기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주위가 금빛으로 빛났다.
홀연 나타난 한 도승은 주장자를 들고 남쪽을 가리켰다.
“왜 저쪽으로 가보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예삿일이 아니었다.
스님은 남쪽으로 길을 떠나 폐사가 된 남지장사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방광하는 부처님 사리와 치아를 발견하고,
소중히 모시고 와 석불전에 7층 석탑을 세우고 봉안했다고 한다.
발길 끊이지 않는 참회도량
10년 넘게 석불전 화주소임을 맡고 있는 보리심(75) 보살에겐
“열심히, 끈덕지게”라는 단어가 기도였다. 보살은 삼각산 인수봉을 가리켰다.
인수봉의 기가 직선으로 석불전에 이른다고 했다.
인수봉 바위들이 관을 쓴 모양새라 공직에 관한 좋은 일을 성취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3000배를 매일 같이 수년째 하거나 매일 1만배를 올리는 객들도 있다 했다.
‘끈덕지고 열심인’ 보살의 기도가 예삿일은 아니리라.
보살은 도선국사가 주장자로 조성했다는 석불 마애 관세음보살 설화를 얘기했다.
뒤에 자료조사에서 확인했지만 도선사 창건설화였다.
풍수지리대가 도선국사는 평생을 방방곡곡 답사하는 일을 업 삼았다.
기운 탁한 땅에 절과 탑을 세워 불법 중흥을 기원했다.
삼각산에 다다른 도선은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 솟은 모습을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여겼다.
도선은 세 봉우리가 닭이 알 품듯 감싼 터에 도선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목욕으로 몸을 청정히 한 도선은 7일 기도에 입재했다.
4일 뒤 주위에 빛이 사라지고 바람이 불고 흙먼지가 날렸다.
호랑이 떼가 몰려와 도선을 에워싸고 사납게 울부짖었다.
산 주인이던 산신이 기도를 방행하려는 소행이었다.
도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도 삼매에 든 것이다.
기도를 마친 뒤 주변을 천천히 살핀 도선은 법력을 사용해 바위를 둘로 갈랐다.
놀란 산신이 굴복하자 주장자로 마애불을 만들고 도선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1000여년 전 일이다.
얘기를 듣고 나니 석불전 관세음보살이 달리 보였다.
관음보살은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보호각 그늘이 미소를 감췄다.
탐진치 삼독 그늘이 불성을 가리 듯. 뻣뻣한 마음 수그려야 하리라.
석불전에서 기도하는 객들에겐 관음보살이 보일까.
문수행 보살은 대불정능엄신주를 독송 중이었다.
성철 스님이 1년에 4번 기도 날짜를 정해준 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던 조계사에선
‘능엄경’을 108독하고 3000배를 했다.
보살은 “마음을 비우라”고 일렀다. “나를 비운 자리에 일체중생을 담으라”고 했다.
“성심성의껏”이란 단어엔 힘을 실었다. 뜨끔했다. 또 하나 배운다.
입구~석불전 곳곳이 기도처
노란 티에 흰 파마머리가 인상적이었던 할머니 한 분이 불편한 무릎을 굽혀가며 절했다.
관음보살을 바라보는 눈빛에 물기가 서렸다.
홀린 듯 할머니를 따라 종각과 12지신상 사이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할머니는 청담 스님 석상을 바라보며 108계단을 올랐다.
그곳엔 스님 사리탑과 3천 지장보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탑돌이를 하다 잠시 숨을 고르던 할머니에게 말을 붙였다.
71세 할머니는 밝은 웃음을 머금고 합장 인사했다.
그는 미션스쿨에 다녔다. 풀 한포기도 사랑하라고 가르친 교회에서 사랑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인과 도리를 알았고, 우울하거나 마음이 산란하면 도선사를 찾는다고 했다.
부처님에게 기도 올리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졌단다.
이날도 얼마 전 운명을 달리한 오라버니 생각에 도선사로 걸음했다고.
그는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다며 웃었다. 모두가 인연법이라고 했다.
도선사 부처님 영험도 간절한 마음이 맺어준 인연이라 했다.
어느 절에서 7~8년 전 잃어버린 아들을 찾던 부부를 만났다.
무당집을 전전했다는 말을 듣고 그는 도선사 부처님을 권했다.
도선사로 향하던 길에 남편은 쌀 10kg을 어깨에 짊어졌고,
부부는 수없이 절하며 기도에 마음을 바쳤다고 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아들을 만났다고 한다.
▲부처님오신날 연등으로 장엄한 도선사.
할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름도 불명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바람이 철 지난 꽃잎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인연이 다한 게다.
다시 대웅전으로 향했다.
삼성각 아래 반야굴, 객이 참 오랫동안 마음을 공양 올렸다.
초와 향공양 뒤 합장 3배로 참배하고 지나가는 여느 객들과 달랐다.
공양 올리는 맘에 누가 될까 “한 컷만 허락하시라”며 합장으로 참회를 전했다.
반야굴엔 쌍용그룹 창업주
고 김성곤 회장이 석굴암을 참배한 뒤 감동을 받아 보살 3명을 모셨다.
중앙엔 십일면관세음보살, 오른쪽엔 잔을 든 문수보살, 왼쪽이 경책을 든 보현보살이다.
대웅전 참배 뒤 도량을 나서다 포대화상을 친견했다.
배꼽 둘레가 거뭇거뭇하다. 배꼽을 만지면서 아랫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리고
포대화상 웃음 따라 웃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사람들 바람이 배꼽 둘레처럼 거뭇거뭇하다고 할 수 있을까.
포대화상이 세속에 찌든 중생의 때를 배꼽에 두르고 환히 웃는다고 믿고 싶다.
▲포대화상.
청담 스님 진영에 예를 다하고 청담기념관과 호국참회원을 뒤로 했다.
관음보살의 천년 자비가 뿌리내린 산문을 나서는 길, 도량 어디선가 본 글귀가 떠올랐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석등문도 한 마디 보탠다.
신념무적 만고광명(信念無敵 萬古光明).
신심으로 무장한 맘들은 적이 없고 예나 지금이나 지혜의 빛을 비출 터다.
부처님 마음 찾는 날, 우리네 중생심도 지혜 등불을 켜리라.
그날, 부처님 오신 날이다.
2012. 05. 08
최호승 기자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