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를 강해하기 전에 과연 고린도전서가
현재교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인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집니다.
당연히 적용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지만 인간들이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완전과 불완전 사이의 긴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합니다.
고린도서가 정치서신이라고 하는 것은 미숙한 고린도교회의
문제 때문에 교회가 조직화 되고 제도화 되어왔기 때문일 겁니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들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 조직을
세우고 제도와 법을 만들다가 이 땅에 카토릭처치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교회의 암흑기를 거쳤습니다.
사실 인간의 본성적이고 구조적인 잘못은 법을 만든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이 법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지만 인간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교회 또한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교회정치가 어려우므로
제도와 법을 만들었다가 결국은 현재의 교회의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조직신학이 강한 교단일수록 정치 또한 강고합니다.
그건 인간은 조직된 법과 논리를 따르는 걸 선호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웃는 말로 조직신학은 조지는 신학이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인간들의 세계는 법을 따라 행하지만 영의 세계는 원리입니다. 곧 진리입니다.
교회도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피동이 되는 원리를 따라 살아가지만 어린 신자들은 항상 법의 눈치를 봅니다.
우리가 고린도서를 통해 정치서신을 공부하고는 있지만
오직 법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만 거룩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추적해서 판단하고 처벌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일으킬 우려가 있습니다.
예컨대 아이들이 클 때는 당연히 문제를 일으킵니다.
갓난아이를 두들겨 팬다고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크고 나면 넘어지지 않고 의젓하게 걸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양육은 아이들이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를 정치적인 안목으로 법적으로만 보지 말고
은혜적인 입장으로 바울이 처방하는 해결방법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법은 사람을 죽이지만 은혜는 사람을 살려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개관을 며칠을 걸쳐 해 볼까 합니다.
고전1장은 인사와 문안으로 시작합니다(고전1:1-3)
비록 고린도교회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라고 부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교회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외적인 문제로 인해 소동이 있었는데 바울은 그들의 행위를 두고
그들의 내적인 가난이 외적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하고 있음을 우리는 유념해야 합니다.
사실 알맹이만 충실하면 껍데기는 저절로 되어가는 법입니다.
그러면 콩깍지가 있으므로 콩알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합니다.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모든 식물은 처음에는 알맹이와 껍데기가
엉키어 있다가 나중에 완성이 되면 갈라지는 원리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의 수준은 아니지만 장래의 가능성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현재 온전한 교회가 된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한국교회가
고린도교회의 수준이라면 이건 심각한 이야기가 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고린도교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울리는 꽹과리들입니다. 시끄러운 빈 양철동입니다.
사람의 속이 차면 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하고 푸근합니다.
교회가 법으로 찍소리 하지 못하게 하여 월하의 공동묘지가 되서는 안 되지만
지금처럼 광화문에 모여서 난리를 치고 교회철거문제 때문에 저렇게 시끄러우면 안 되죠.
목소리나 앰프 성능으로 사람들을 장악하려고 해서는 그건 주님의 방법과는 거리가 멉니다.
누룩과 겨자씨처럼 교회는 소리 없이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고린도교회처럼 백가쟁명으로 파당을 이루어 서로 잘 낫다고 우기는 모습을 보여서는
가뜩이나 기독교는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의 여론에 의하면
60% 이상 배타적으로 나오는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질시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특별히 부활장이라고 말하는 고전15장의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고 수용이 되어서
예수의 부활만 앰프의 볼륨을 끝까지 높여 꽹과리처럼 외칠 것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으로 하늘의 형상이
밖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캄캄한 밤하늘에 풍등처럼
무수히 캄캄한 밤과 같은 온 세상을 두루 비추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