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네’(루카 1,49)
교회는 오늘을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에서의 모든 삶을 마치시고 영광스럽게 하늘로 불려 올라가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로 지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아 기르며, 십자가 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분의 곁에서 그 모든 순간을 언제나 함께 하신 분, 자신의 죽음의 순간, 죽음을 이겨내는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하느님께로부터 하늘로 불리움 받아 하늘로 오르신 성모 마리아. 교회는 바로 이 성모님을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으로 삼고, 하느님 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의 자애에 모든 이의 구원을 의탁합니다.
이 같은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이의 구원의 모범으로서의 성모님의 삶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묵시록의 말씀은 묵시록의 저자가 환시 중에 본 두 가지 서로 다른 표징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표징은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의 표상으로서 우리가 성모님의 모습을 형상화할 때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표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편 또 다른 표징은 크고 붉은 용으로서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달린 이 용은 곧 해산할 여인의 앞에서 여인이 낳을 아기를 삼켜 버리려고 호시탐탐 그 때를 노리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여인은 아이를 낳게 되고 여인이 낳은 그 아이가 바로 모든 민족을 다스릴 분으로서 설명됨으로서 묵시록의 저자는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이 한 여인의 낳은 아이를 통해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될 것을 비유적으로 전하며 그 아이의 탄생의 순간 하늘에서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듣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묵시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묵시 12,10ㄴ)
이 같은 오늘 제 1 독서의 묵시록을 통해 전해진 말씀은 이어지는 오늘 제 2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통해 그 의미가 보다 자세히 설명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한 여인, 곧 성모님으로부터 잉태된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그 구원이란 다름 아닌 죽음을 이겨내는 부활입니다. 죽음을 굴복시킨 부활의 영광에 그리스도 자신이 첫 번째 수혜자가 되고, 그 다음으로 그 분에게 속한 이들이 그 분이 얻으신 구원의 은총을 얻게 된다는 사실, 바로 이 사실을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지적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0-22)
바오로 사도가 설명하는 이 은총의 수혜자,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모든 이에 앞서 첫 번째로 구원을 얻게 된 이, 그가 바로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여인, 교회가 성모 어머니로 칭송하며 오늘 그 성모님이 하늘로 승천한 사건을 기억하며 성모승천 대축일을 지내는 성모 마리아가 바로 그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의 어떠한 면모가 이 같은 놀라운 구원의 영광, 곧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도록 했던 것일까?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영광을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 또한 죽음이 아닌 하늘로 오르는 승천의 사건을 가능케 한 성모님의 면모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늘 복음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나자렛의 보잘 것 없는 처녀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갖은 자신의 친척 누이 엘리사벳을 찾아가 서로 상봉하는 장면을 전합니다. 이미 배속에 이제 곧 태어날 아기, 장차 예수님의 앞길을 준비할 세례자 요한을 태속에 품고 있던 엘리사벳은 그녀와 그녀의 태속의 아이 모두 성모님의 방문에 기쁨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굳은 믿음을 찬양합니다. 이에 성모님은 엘리사벳의 찬양의 말에 다음과 같이 응답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천사의 말은 분명 받아들이기 힘든 것, 아니 그것을 넘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만 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과연 일어날 것인가 또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가에 대한 어떠한 확신이나 보증도 없이 그냥 강요되듯 주어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성모님 역시 무척이나 겁이 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을 거부하고픈 마음, 그 부르심을 부정하고픈 마음 역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 부르심에 다음의 말로 결연히 응답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성모님의 이 고백의 말은 주님의 말씀은 그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꼭 이루어지리라는 성모님의 굳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믿음으로 성모님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잉태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한편 성모님은 자신에게 허락된 이 모든 영광이 온전히 하느님 그 분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다시 말해 당신 자신은 그 영광을 얻기에 합당치 않으며 그 영광은 온전히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시고,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하는 겸손의 자세를 보여주십니다.
‘굳은 믿음에 바탕을 둔 겸손의 자세’.
오늘 성모님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이 성모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성모님의 영광스러운 승천을 기억하는 오늘, 이제 곧 성찬의 전례 안에서 듣게 될 오늘 감사송의 말씀을 귀 여겨 듣고 마음에 새겨보십시오. 오늘 감사송의 말씀대로 성모님은 하느님을 낳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완성될 주님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의 확실한 희망이자 위안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모님이 보여주신 굳은 믿음과 겸손의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성모님은 모든 믿는 이들의 희망이자 위안이 되며 모범이 되어 주십니다. 동시에 성모님은 하느님의 곁에서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사실, 곧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곁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해 주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예수님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의탁하며 그 분의 모습을 따라 그 분의 믿음과 겸손의 자세를 본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루카 1,49.4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