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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9 편
원시적 인간 제도
.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 1934년
69:0.1 사람의 유머ㆍ예술ㆍ종교를 이해하는 능력은 동물 조상을 뛰어넘는다. 사회적으로 사람은 기구를 만들고, 서로 교통하고, 제도를 건설함으로 그 우수성을 드러낸다.
인간이 오랫동안 사회 집단을 유지할 때, 결국 제도화되는 경향을 낳는다. 인간의 제도 대부분은 노동을 절약하고, 집단의 안전에 무언가 기여하는 것이 입증되었다.
문명화 된 사람은 자신이 설립 한 제도의 성격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제도는 금기에 의해 보존되고 종교에 의해 위엄이 축적된 것이다. 그러한 유산은 전통이 되고 전통은 궁극적으로 관습으로 변모한다.
1. 기본적 인간 제도
69:1.1 제도의 지나친 발전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창의성을 줄인다. 그런데도, 인간의 제도는 사회적 필요를 보살핀다. 사람은 진보하는 문명이 자신이 지배되도록 버려두기보다 그 제도를 통제해야 한다.
인간의 제도는 세 가지 일반 등급이 있다:
1. 자아 유지 제도. 굶주림과 자아 보존의 본능에서 생겨나는 관습으로, 이런 제도는 산업과 재산, 이익을 위한 전쟁, 그리고 사회의 모든 통제 작용을 포함한다. 두려움의 본능은 금기, 관습, 종교적 제재의 수단을 써서, 생존을 위한 이런 제도의 확립을 촉진한다.
2. 자아 영속 제도. 이러한 제도는 성욕, 모성 본능, 종족의 상급 감정에서 생겨난 질서이다. 가정과 학교, 가족 생활, 교육ㆍ윤리ㆍ종교를 보호하는 사회 조치를 포함한다. 이런 제도는 결혼 관습, 방어를 위한 전쟁, 가정 만들기를 포함한다.
3. 자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도. 이것은 몸을 치장하는 풍습, 사회의 관행, 영광을 위한 전쟁ㆍ춤ㆍ흥행ㆍ놀이 등 관능을 만족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문명은 자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도를 진화시킨 적이 없다.
69:1.6 이 세 집단의 사회 관습은 서로 밀접하게 관계되고, 세분화되어 있다. 유란시아에서 이 여러 제도는 단일 사회 기구로서 활동하는 복잡한 조직이 된다.
2. 산업의 시작
69:2.1 원시산업은 끔찍한 기근을 막기 위해 천천히 생겨났다. 기근에 대비하여 풍부한 수확물을 비축하는 교훈을 동물로부터 얻었다.
원시 인간은 먹을 것을 얻으려고 동물 세계 전체와 경쟁해야 했다. 경쟁의 당기는 힘은 늘 사람을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재산은 저절로 생기는 선물이 아니요, 노동과 지식과 조직으로부터 생긴다.
원시인은 교제의 이점을 깨달았다. 교제는 사람을 조직하도록 이끌었고, 조직의 처음 결과는 노동의 분업이었으며, 즉시 시간과 물자가 절약되었다. 이 노동의 전문화는 압력에 적응함으로―저항이 약한 길을 추구함으로―생겨났다.
원시인은 고된 일을 싫어했고, 심각한 위험에 부딪치지 않으면 서두르려 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한 맹렬한 싸움과 늘 높아지는 생활 수준의 2중 요구가 원시 인간을 근면의 길로 몰았다.
노동은 사람을 짐승과 구별하며, 노동의 필요성은 사람에게 최고의 축복이다. 영주의 참모진은 다 일했고, 유란시아에서 육체 노동을 고상하게 만들려고 많이 공헌했다. 아담은 동산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히브리인은 근면을 최고로 친 처음 부족이었다. 그들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하고 처음으로 선포한 민족이었다.
69:2.6 산긱 부족들은 상당히 부지런했다. 그러나 게으른 마술 추종자와 일하기를 외치는 사도들 사이에는 길고 긴 싸움이 있었다.
최초 인간은 불과 물과 먹을 것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시인은 날 때부터 노름꾼이었다. 원시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기 바랐으며, 성공을 마력의 탓으로 돌렸다. 마술은 선견ㆍ절제ㆍ산업에게 느리게 길을 비켰다.
원시인은 일도 하지 않고 무언가 얻기를 바랐으며, 너무나 오래 동안 기다려서 얻은 성공을 마력의 탓으로 돌렸다. 마술은 선견ㆍ절제ㆍ산업에게 느리게 길을 비켰다.
3. 노동의 전문화
69:3.1 원시 사회에서 노동의 분업은 자연스런 상황과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다.
1. 남녀 구별에 따른 전문화. 여자는 자연히 남자보다 아기들을 더 사랑했다. 여자는 일상적인 일꾼이 되었고, 남자는 사냥꾼과 투사가 되어서 강조된 일과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오랜 금기는 여자를 밭에 붙잡아 두도록 작용했다. 남자는 더 편한 일을 골랐고, 일상적 고된 일은 여자 몫이었다. 언제나 남자는 여자의 일 하기를 부끄러워했지만, 여자는 남자 일 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이상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집을 짓고 장만하는 데 언제나 같이 일했다.
2. 나이와 질병에 따라서 생기는 수정. 늙은 남자와 병든 자는 일찌기 연장과 무기를 만드는 데 종사했고, 나중에는 관개 시설을 만드는 데 배치되었다.
3. 종교에 기초를 둔 분화. 주술사는 처음으로 육체 노동에서 면제된 인간이었다. 대장장이는 마술을 쓰는 주술사와 경쟁한 작은 집단이었다. “흰 대장장이”와 “검은 대장장이”는 백마술과 흑마술을 믿는 초기의 믿음을 낳았다. 이 믿음은 나중에, 착한 귀신과 악한 귀신, 곧 착한 영과 악한 영을 믿는 미신과 결부되었다.
69:3.6 대장장이는 특권을 누린 첫 비종교 집단이었다. 그들은 이 특권을 악용함으로 널리 미움을 받게 되었고, 주술사는 기회를 놓칠세라 경쟁자를 미워하도록 부추겼다. 대장장이들은 마을에서 쫓겨나 변두리에 첫 여인숙집을 만들었다.
4. 주인과 종. 노동의 다음 분화는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서 생겨났는데, 이는 노예 제도가 시작된 것을 의미했다.
5. 다양한 신체 및 지성 자질에 기초를 둔 분화. 사람의 타고난 차이가 노동의 계속된 분업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태어나지 않는다.
산업에서 초기의 전문가는 부싯돌 벗기는 자와 석공이었고, 그 다음에는 대장장이였다. 부족의 주술사를 제쳐놓고, 초기에 사제 계급 중, 칼 만드는 전문가들의 집단을 미신으로 높이 섬겼다.
산업에서 처음 전문가 집단은 돌소금 수출상과 도공이었다. 여자는 평범한 오지그릇을 만들었고 남자는 화려한 것을 만들었다.
69:3.11 초기의 상인은 여자였는데, 여자는 첩자로 고용되었고 상업을 부업으로 했다. 무역이 확대되면서 여자는 중개인으로 활동했다. 상인 계급이 나왔고, 일한 대가의 수수료를 받았다. 집단의 물물 교환은 상업으로, 뒤이어 기술 노동자의 교환이 생겼다.
4. 무역의 시작
69:4.1 침략으로 약탈하던 시절 이후에 물물 교역이 따랐다. 말없이 물물 교환하던 시절과 현대 방법으로 무역하는 사이에 해적 행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무장한 무역상들이 처음 물물 교환을 했으며, 여자는 아주 일찍부터 있었던 상인이었는데, 짐꾼이었고, 남자는 무사였다. 일찍부터 무역 카운터가 발달되었고, 이것은 상인들이 무기로 서로 손이 미치지 못하도록 충분히 넓은 벽이었다.
말없이 물물 교환을 위해서 맡긴 물품을 지키려고 주물이 사용되었다. 그러한 시장은 도둑맞을 염려가 없었다. 초기의 상인은 정직했지만, 먼 데서 온 낯선 사람을 속이는 것은 괜찮게 여겼다.
오랜 세월 동안 말없는 물물 교환이 계속되었다. 바로 이런 장터는 어떤 피난자에게 첫 성소의 자리가 되었고, “피난의 도시”로 알려졌다. 안전했고, 공격받을 염려가 없었다.
처음의 저울추는 밀알과 기타 곡식의 낟알이었다. 교환의 처음 매체는 물고기나 염소였다. 나중에 송아지가 물물 교환의 단위가 되었다.
69:4.6 현대의 글자는 초기의 상업 기록에서 생겨났다. 사람의 처음 문서는 장사를 선전하는 기록, 소금 광고였다. 맨 처음 맺은 공식부족 조약은 소금 매장물을 부족들 사이에 같이 쓰는 것이었다. 이는 평화롭게 생각을 교환하고 여러 부족이 서로 섞이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글쓰기는 “소식 막대기,” 매듭진 끈, 그림으로 기록하기, 상형 문자, 조가비 띠의 단계를 거쳐서 초기의 상징 알파벳까지 발전했다. 소식 전달은 연기 신호, 달리는 사람, 동물 타는 사람, 철로, 비행기까지, 전보ㆍ전화, 무선 통신에 이르기까지 진화했다.
고대의 상인은 사람 사는 세상을 돌아다녔다. 모험과 연결하여, 탐험과 발견으로 이끌며 수송을 낳았다. 상업은 문화의 교류를 조장함으로 사람을 문명화시키는 좋은 도구였다.
5. 자본의 시작
69:5.1 자본은 오늘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한 노동을 이용한다. 저축은 유지관리 및 생존 보험의 한 형태이다. 식품 저장 창고는 자제를 개발시켰고, 자본과 노동의 첫 문제를 만들었다.
초기의 은행가는 부족에서 용감한 사람이었다. 개인의 자본과 집단 재산의 축적은 군대 조직을 낳았다. 처음에 바깥의 침략자들로부터 재산을 방어하려고 고안되었지만, 나중에는 이웃 부족의 재산과 재물을 침략하려고 군대 조직을 연습시키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자본의 축적으로 이끈 기본 욕구는 다음과 같다:
1. 배고픔―식량의 저축은 기근과 재난에 대비한 보험이었다. 원시의 도덕 관습 전체가 정말로, 사람이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고안되었다.
2. 가족 사랑―가족이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려는 소망. 자본은 앞날의 필요를 보장하기 위하여 오늘의 욕구가 강요하는데도 필요에 대비하여, 또 자손을 위하여, 재산을 저축했다.
3. 허영심― 사람이 재산 축적한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여벌의 옷은 탁월을 나타내는 첫 표시의 하나였다. 수집하는 허영은 일찍부터 사람의 자존심을 끌었다.
4. 지위―돈으로 사회 및 정치적 위신을 사려는 열심. 상업화된 귀족들이 일찍부터 생겨났고, 돈을 낸 댓가로 허락되기도 했다.
5. 권력― 주인이 되려는 갈망.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수단으로서 귀중품의 임대가 행해졌는데, 1년에 100%가 옛 시절에 이자율이었다. 종들은 아주 초기 형태의 축적한 재산이었다.
6. 죽은 자의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보호를 받으려고 사제에게 내는 요금. 사람들은 일찍부터 사제들에게 죽음을 위한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제들은 아주 부자가 되었고, 고대에 으뜸가는 자본가였다.
7. 성욕―아내를 하나 또는 여럿 가지려는 욕구. 남자가 처음으로 한 장사는 여자 교환이었다. 성 매매는 결코 사회를 진보시키지 않았다. 우수한 민족들의 생물학적 건강을 해쳤다.
8. 수많은 형태의 자아 욕구의 충족. 초기의 사람은 (그리고 후일의 어떤 사람들도) 재산을 사치품에 헤프게 쓰는 경향이 있었다. 취하게 하는 물품과 마약은 원시 종족들의 흥미를 끌었다.
69:5.12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저축하는 동기를 얻었다. 최초의 배고픔 위에, 새로운 욕구가 빨리 불어났다. 부자들만 천국으로 바로 간다고 생각되었고, 허영의 잔치는 그 사람의 불명예를 씻곤 했다.
재산의 축적은 사회에서 탁월함을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다. 어떤 부족에서는 사람들에게 거저 나누어 줌으로 감명을 주려고 몇 년 동안 재산을 쌓곤 했다. 현대의 민족들도 아낌없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어 주면서 흥청거리며, 한편 부자들은 큰 박애 및 교육 기관에 기부한다. 사람의 방법은 다르지만, 그 성향은 아주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옛날의 많은 부자는 피살되는 위험이 두려워 많은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을 기록해야 공평하다. 부유한 사람들은 재산을 경시하는 것을 보이려고, 보통 노예 몇십 명을 잡아 바쳤다.
자본은 사람을 해방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사회 및 산업 조직을 크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자본과 발명을 통해서 지금 세대는 땅에서 이전에 있던 어떤 세대보다도 더 높은 정도의 자유를 누린다. 이것은 이기적인 관리자들이 자본을 많이 악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로서 기록한다.
6. 불과 문명의 관계
69:6.1 원시 사회는 네 분과―산업ㆍ규제ㆍ종교ㆍ군사―와 함께 불ㆍ동물ㆍ노예ㆍ재산을 도구로 씀으로 생겨났다.
불은 인간의 기본 발명이다. 모든 동물이 불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불은 땅에서 사람을 보호하였다. 불은 또한 저녁때 사회적 교제를 북돋았다. 불은 추위와 들짐승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했을 뿐 아니라, 귀신에 대하여 방어 조치로도 쓰였다.
타고 있는 목탄을 이웃에게 줌으로, 불은 손해 보지 않고 남에게 이익이 되는 수단을 주었다. 가족은 불, 가족의 화로 둘레에 모였다. 아들이 새 집을 차렸을 때, 가족의 화로로부터 횃불을 가지고 갔다.
불을 발견한 안돈은 불을 예배 대상으로 다루기를 피했지만, 그 후손의 다수는 불꽃을 하나의 주물이나 영으로 여겼다. 쓰레기를 태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불이 주는 위생적 이익을 얻지 못했다. 초기의 인류는 불을 지필 때 쓰는 황철광과 부싯돌조차도 성스럽게 여겼다.
불을 끄는 것은 죄였다. 오두막에 불이 붙으면, 타도록 내버려 두었다. 성전과 성당에 있는 불은 신성했고, 결코 불이 꺼지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여자들이 집의 불을 관리했기 때문에, 여자들은 사제로 뽑혔다.
69:6.6 불이 어떻게 신들로부터 내려왔는가에 관한 초기의 신화는 번개로 불이 붙는 것을 지켜본 데서 생겼다. 불의 숭배는 “불을 지나가는” 관습으로 발전되었으며, 이는 모세의 시절까지 계속된 풍습이었다. 불의 신화는 초기 시절에 좋은 단결 수단이었고, 파시 교도의 상징에 아직도 남아 있다.
불은 음식을 익혀 먹게 만들었고, “날로 먹는 사람”은 비웃는 표현이 되었다. 익힌 음식은 소화에 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여서 초기 인간이 사회적 문화를 가질 힘을 얼마큼 남겨 주었다. 동물 사육은 식량 확보의 노력을 줄임으로 사회 활동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불은 금속 세공의 길을 열었고, 증기 동력의 발견과 오늘날 전기의 사용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7. 동물 이용
69:7.1 동물 세계 전체가 사람의 적이었다. 처음에 사람은 동물을 먹어치웠지만, 나중에는 길들이고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만드는 것을 배웠다.
야만인은 동물을 통제할 수 있었고, 식량에 필요한 대로 동물을 죽일 수 있었다. 우리가 건축되면서, 동물의 떼 전체를 사로잡곤 했다.
어떤 동물은 길들이기 쉬웠지만, 코끼리는 사로잡혀 있을 때 새끼를 낳으려 하지 않았다. 동물 길들이기 좋은 종자를 골라 사육하게 되었고, 이것은 달라마시아 시절 이후로 크게 진보한 기술이었다.
개는 처음으로 길들인 동물이었고, 오랜 세월 동안, 개는 식용으로, 사냥과 수송에, 그리고 동반하는 동물로 쓰였다. 개의 후각은 개가 영을 본다는 생각을 낳았고, 따라서 개를 주물로 모시는 종파가 생겼다. 망보는 개를 고용한 것은 처음으로 씨족 전체가 밤에 잘 수 있게 만들었다.
사냥꾼이었을 때 남자는 여자에게 꽤 친절했다. 그러나 동물을 길들인 뒤에, 칼리가스티아가 일으킨 혼란과 더불어 동물을 다루듯이 여자를 대했다. 남자가 여자를 무자비하게 대한 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의 하나이다.
8. 문명의 한 요소인 노예 제도
69:8.1 원시인은 서슴지 않고 동료들을 종으로 만들었다. 여자는 첫 종, 가족의 종이 되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의존하는 성향이 줄어들자, 여자를 열등한 성의 종으로 만들었다.
전쟁 포로들은 잡아먹히든지, 고문을 받아 죽든지, 서로 싸우게 되든지, 영들에게 희생되든지, 아니면 노예가 되었다. 노예 제도는 학살이나 잡아먹기보다 대단히 진보한 것이다.
노예로 만드는 것은 전쟁 포로를 자비롭게 취급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전진한 것이었다. 히브리인은 적을 “남김없이 죽였고,” 그 재산을 모두 전리품으로 가졌다. 당대의 많은 부족은 우수한 포로를 부족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관습을 시작한 지 오래 된다.
아메리카의 홍인처럼, 사냥꾼은 노예를 만들지 않았다. 전쟁에서 목자들은 남자 포로를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만 노예로 취했다. 모세의 법에는 이 여자 포로를 아내로 만드는 것에 관하여 특정한 지시가 들어 있다. 히브리인의 사회 기준은 어설프기는 했지만, 둘러싼 부족들보다 훨씬 위에 있었다.
목자는 첫 자본가였는데, 가축 떼가 자본이었고, 그들은 그 이자―자연 증가분―으로 먹고 살았다. 나중에 남자 죄수들을 받았고, 죄수들에게 땅을 갈도록 강요했다. 이것이 농노의 첫 기원이다.
69:8.6 노예 제도는 인간 문명의 진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고리였다. 노예 제도는 게으른 민족들이 일하도록 강요하였고, 우수한 자의 사회적 진보를 위하여 부와 여가를 마련해 주었다.
노예 제도는 원시 사회를 규제할 정부의 시작을 낳았다. 노예 제도는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고, 봉건 영주들이 노예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세의 유럽에서 거의 사라졌다.
노예 제도가 사람을 억압한 것은 참말이지만, 억압이라는 학교에서 사람은 부지런함을 배웠다. 노예들은 상급 사회가 생기는 것을 마지못해 도와주었고, 궁극에는 그 사회의 축복을 함께 가졌다. 노예 제도는 문화와 사회적 성취가 있는 조직을 창조하지만, 파괴적인 모든 사회악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며, 안에서 사회를 공격한다.
현대의 기계 발명으로 노예가 필요 없게 되었다. 노예 제도는 일부다처와 마찬가지로 수지가 맞지 않아 사라진다. 그러나 큰 무리의 노예를 갑자기 해방하는 것은 재난임이 반드시 입증되었다. 이들이 단계적으로 해방될 때 문제가 덜 따랐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포부 때문에 빚의 노예로 전락한다. 새롭고 개량된 형태로 수정된 산업 노예 상태가 대두되었다.
69:8.11 사회의 이상은 모든 사람이 자유를 가지는 것이지만, 게으름은 결코 묵인되어서는 안 된다. 튼튼한 육체를 가진 사람은 모두 적어도 자기가 먹고 살 만큼의 일을 하도록 강요되어야 한다.
현대의 사회는 거꾸로 간다. 노예 제도는 거의 사라졌고, 길들인 동물도 사라져 간다. 사람은 불, 동물, 노예 제도를 거쳐서 야만 상태에서부터 올라왔다. 오늘날 사람은 자연의 원소 창고에서 동력의 비밀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9. 사유 재산
69:9.1 원시 사회는 거의 공동체였지만, 원시인은 현대 공산주의 신조를 지키지는 않았다. 이 초기의 공산주의는 신조 보다는 실용적인 자동 조정이었다. 공산주의는 빈궁과 빈곤을 막았고, 구걸과 매춘을 거의 알지 못했다.
원시 공산주의는 비활동과 게으름을 높이 쳐주었다. 근면을 짓누르고 포부를 죽였다. 공산주의는 네 가지 강한 인간의 성향과 어긋나기 때문에, 더 진보된 사회를 만들었다.
1. 가족. 사람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초기의 공산 사회에서 재산 상속이 없었다―상속세가 100%였다. 나중에 자본을 축적하고 재산을 물려주는 관습은 사회의 뚜렷한 진보였다. 자본을 잘못 사용함으로 지나친 남용이 따랐지만 이것은 참말이다.
2. 종교적 경향. 원시인은 또한 죽음 이후를 위해 재산을 저축하고 싶어했다. 옛날 사람들은 부자만 쾌락과 위엄을 가지고 죽음에서 살아난다고 믿었다. 계시 종교 선생, 특히 기독교 선생들은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와 같은 조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처음으로 선포했다.
3. 자유와 여가를 가지고 싶은 소망. 자유와 여가를 누리고 싶은 소망. 일하는 자는 게으른 자의 노예였다. 선견이 없는 자는 검소한 자에게 붙어사는 것이 버릇이었다. 자본이 없는 자는 아직도 자본이 있는 자가 먹여 주기를 바란다.
4. 안전과 권력의 욕구. 개인들의 속이는 버릇 때문에 공산주의는 무너졌다. 재산을 많이 쌓는 것은 위험했다. 임금은 부자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죄를 뒤집어씌우곤 하였다.
69:9.7 초기에 여자는 공동체의 재산이었고, 어머니가 가족을 지배했다. 공산주의가 사라지자, 아버지가 가정의 통제권을 쥐었다. 일부다처 관습은 차츰 일부일처로 바뀌었다. (일부일처제는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기르고, 공동의 문화를 가지고, 자아를 개선하는 아름다운 기업에서 생기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 노예가 없는, 비할 데 없이 이상적인 관계이다.)
처음에는 연장과 무기를 포함해서, 모든 재산이 부족의 공동 재산이었다. 처음에는 만진 모든 물건이 사유 재산이었다. 낯선 사람이 한 컵으로 마시면, 그때부터 그 컵은 그의 것이었다. 다음에 피가 흘린 곳은 어디나, 다친 그 개인이나 집단의 재산이 되었다.
사유 재산은 소유지의 인격이 일부 담겨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존중받았다. 집단 안에서는 도둑질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다른 부족의 물건을 취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재산 관계는 개인의 소유물을 불에 태우고 죽은 자와 함께 파묻었으며, 나중에는 남아 있는 가족이나 부족이 이를 물려받았다.
치장하는 종류의 소유물은 부적을 달고 다니는 데서 생겨났다. 허영과 귀신 공포증 때문에 원시인은 좋아하는 부적을 지녔고, 이것을 필수품보다 귀중하게 여겼다.
69:9.11 잠자는 자리는 아주 일찍부터 사람의 한 재산이었다. 부족의 추장은 집터를 배정하고, 집단을 위하여 모든 부동산을 관리했다. 불 피는 자리는 소유권을 부여하였고, 그 뒤에 우물은 인접한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었다.
물웅덩이와 우물은 첫 사유 재산으로, 이를 지키기 위해 주물 신앙이 생겼다. 주물 신앙이 사라지자, 법이 사유재산을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사냥 법은 토지법을 훨씬 앞섰다. 아메리카의 홍인은 백인의 토지 소유권 관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유 재산은 일찍부터 가족의 문장으로 표시되었다. 히브리인은 이 가족 땅의 경계 표지를 크게 존중했다. “이웃의 경계 표지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표시하는 돌덩이는 사제의 머리 글자를 가졌다. 머리 글자로 표시했을 때는 나무조차도 사유 재산이 되었다.
옛날에는 농작물만 사유가 되었고, 농업이 자리 잡게 되자 토지 소유권이 생겼다. 개인들은 처음에 종신 소유권을 받았고, 죽을 때 땅은 부족에게 되돌아갔다. 부족이 개인에게 수여한 최초의 토지 소유권은 무덤―가족을 묻는 땅―이었다. 후일에 땅은 울타리를 친 자에게 속했다. 그러나 도시는 언제나 어떤 땅을 공유 목초지로서 남겨 놓았다. 이런 “공유지”는 초기 형태의 집단 소유권이 남은 것이다.
결국에는 나라가 재산권을 개인에게 나누어 주었고, 세금 부과 권리를 보존했다. 지주들은 임대료를 걷을 수 있었고, 토지는 소득의 한 근원―자본―이 되었다. 마침내 땅은 매매ㆍ이전ㆍ저당, 권리 상실과 함께, 남에게 양도할 수 있었다.
69:9.16 사유 재산권은 자유를 늘이고 안정성을 높였다. 곧 노예ㆍ농노, 그리고 땅을 가지지 못한 계급이 뒤이어 따랐다. 개량된 기계는 차츰 사람을 종이 하는 고된 일로부터 해방시키고 있다.
재산권은 절대적이 아니고, 순전히 사회적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부ㆍ법ㆍ질서, 그리고 현대 민족들이 즐기는 시민의 권리, 사회적 자유, 관습ㆍ평화ㆍ행복은 개인의 재산 소유권을 둘러싸고 성장했다.
현재의 사회 질서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 그러나 인류는 개선하는 것이 좋다. 너희가 가진 제도는 조상의 어떤 제도보다도 훨씬 더 좋다. 사회 질서를 바꾸려면, 버려진 조상들의 제도를 실험하지 말라.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더 좋게 진화해야 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