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에 대하여
얼마 전 학창시절에 읽었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책읽기에는 감춰진 즐거움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같은 책을 여러 번 다시 읽어도 새로운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닌가 싶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잘 씌어진 고전일수록 그 재미는 더 쏠쏠하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심지어 내가 이 책을 읽긴 읽었었나 싶기도 하다. 아마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즉 세상을 좀더 알아가면서 또는 처한 상황이나 감정상태가 변하가면서 같은 책에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글 쓰는 사람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의 작품이 오랫동안 읽혀지는 것도 있겠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아닐까 싶다.
'동물농장'은 사실 작가가 보여 주고자하는 주제나 인물의 상징이 명확하여 여느 고전처럼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라면 모를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읽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발전을 꾀한다는 것은 비록 지식인의 의무라 할지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안다고 모두 쓸 수 있는 것도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조지 오웰이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실 내게 더 많은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 준 것은 '동물농장'의 뒷머리에 붙어 있던 1947년에 씌어진 '나는 왜 쓰는가' 라는 짧은 에세이였다. 그 글에서 작가로서 조지 오웰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잘 엿볼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작가들, 특히 산문작가들이 글을 쓰는 데는 크게 네가지의 동기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로 순전한 이기심을 꼽는다.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한 어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욕망, 이게 작가의 동기, 그것도 가장 강력한 동기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특징적인 동기를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 법률가,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말하자면 인류의 꼭대기 층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을 넘기면 개인적인 야심을 바리고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인 삶에 짓눌려 야심 자체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는 소수의 재능있는 인간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는 고집 센 인간들이 있고 작가는 이부류에 속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동기로 미학적 열정을 이야기한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언어의 아름다움과 언어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경험을 공유하려는 욕망,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세 번째는 역사적 충동, 즉 사물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두려는 욕망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을 든다. 여기서 '정치적'이란 넓은 의미의 것으로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을 내포한다.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라고 말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동기들이 때로는 충돌하고, 사람과 시대에 따라 각각의 무게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지 오웰은 자신이 평화의 시대를 살지 못했기 때문에 나머지 세 가지의 동기들보다 마지막 정치적 목적이 가장 강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작가로서 조지 오웰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글을 쓰는 내내 고민하고 갈등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공허한 허튼 소리가 아니면서 생명력이 있는 예술 작품을 쓸 것인가에 대하여.
아직 작가도 무엇도 아닌 내가 그저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을 가진 것만도 이 글은 내게 부끄러움을 일깨워 주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쓰려고 하는가. 대답할 수 가 없었다. 나는 첫번째 동기,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사치란 물질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 정신적 사치만큼 꼴불견에 썩은 내를 풍기는 것도 없다. 나에게 허황된 사치심이나 과장 된 감정말고도 재능이 있는가. 그것에도 대답할 말이 없다. 미학적 열정을 가지기에는 배운 바도 아는 바도 적은 문외한, 아마추어이며 역사적 정치적 충동을 가지기에는 내가 몸담고 있는 작은 사회에서조차 열심히 주시하고 고민하고 참여하는, 가치있는 일원이 되지 못하는 전형적 소시민에 불과하다. 거기다 조금의 쓴소리에도 고개를 껍질속으로 쳐 박고 상처 받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인간이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 하고 있는 걸까 기막힌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들 말한다.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면 장편소설 몇 권은 될 거라고.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니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게 중 몇몇은 용감하게 자서전 같은 것을 펴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저절로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람들이 몇 명쯤 모인 그룹에서 글 쓰는 재주가 있다하여 원고지 몇 장쯤은 너끈히 화려하게 채울 만한 자신이 있는 이들도 꼭 한 두 명씩은 있다. 그러나 모든 글재간들이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자신만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누군가가 시간을 투자하여 읽고 싶은 글, 읽고 난 후 그것이 감동이든 교훈이든 무엇인가를 건질 수 있는 글, 그래서 종국에 가서는 어떤 작은 변화라도 가져 올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시작선상에 서서 나는 골똘히 생각한다. 왜 그리고 무엇을 쓰고자 하며 써야 하는가.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읽고 생각해야 하는가. 나에게 쓰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작가로서의 그 무엇이 과연 내재되어 있는가. 순간 내 자신이 발가벗겨져 한길가에 세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싸구려 광택이 번쩍번쩍 요란한 모조 금뱃지를 쫒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시작은 작은 이기심이었지라도 끝은 좀더 나은 동기들을 실현 시켜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자 발걸음이 한층 무거워졌다.
발 없는 말은 무섭다. 그리고 소리 없는 글은 더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첫댓글 나는 첫번째...인가?
으




<시간 없음> 이란 굴레에 가두어 놓은 나의 머릿 속 생각들은 언제나 활자로 쓰여 질꺼나
.......... 나는 절대로 천재가 아니다, 고로 나는 써야 한다 


.........

나는 두번째 같은데?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글로 풀어내다보면 실타래처럼 엉킨 상념들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부단히 노력해야겠지요. 저도 두번째 같은데... 장르를 넘나드는 글솜씨에 또 한 번 놀라고 갑니다. 잘 자요. 굿~나잇. ^^
사실은 두 번째가 동기이지만 그 안에 세번 네번째가 수용되고 그 결과가 첫뻔째가 되는 거죠. 첫번째만 머물면 장식문인, 두번째만 머물면 김동인과 같이 탐미작가, 세번째에 머물면 역사소설로, 네번째 머물면 목적 문학의 정치문학이 되는 거죠, 두번째에서 출발하여 세번째 네번째를 형상화하면 그 결과로 첫번째가 나타나는 거 아닌가요.
글 잘 읽었습니다. 표제가 주는 의미는 정말 간단치 않아요. 어제도 동아리들이 모여서 점심을 나누며 이구동성으로 글쓰기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조금이라도 펜을 노아두면 영 글이 안써진다구요.그런데 그런 글을 왜 쓰느냐에 대한 저마다의 변이 조금씩 다르더군요. 취미로, 보람된 일이므로, 조금쯤은 명예스러운 일일 것 같아서, 무었인가 남기고 싶어서, 예전부터 끼(소질)가 있어서 등등,
구상선생님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밤낮없이 으르렁대며 그 무었인가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 야수와도같은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성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야수성이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현실의 모순이나 부조리를 물어뜯는 힘이 있어 이것이 문학적 생명력으로 발휘될때 그것이 곧 문학이라 했습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치열한 삶의 경쟁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 당하고 일상적 삶의 황폐함 속에서 갈등과 고뇌를 느끼면서도 이를 제대로 표출할 수가 없는데 글을 씀으로써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한 말을 감명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