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3.
이모님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다. 맛집이라는 소문도 없는데 빈자리가 없다. 고급 음식인 장어구이 가게에서 소금구이로 4인분 주문했다. 몸에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서민이 먹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음식이다. 소머리 국밥이나 순대국밥 한 사발이면 속이 꽉 차는데, 이건 뭐 후식으로 면이나 밥을 또 주문해야 한다. 그렇지만 맛있다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리부터 걱정이다. 분명히 밥값 실랑이를 하겠지만 못 이기는 척 얻어먹을 수도 없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이모님, 이모부님이라 무조건 내가 대접하고 싶다. 눈치껏 잽싸게 카드를 내밀거나 화장실을 핑계로 미리 계산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두 분의 성격으로 봐서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니라 생각된다. 여하튼 조카와 점심 한 끼 하겠다고 한 시간이나 차를 몰고 오셨다. 나머지는 내가 해야 할 도리다.
어머니는 일곱 남매의 맏이다. 나는 어머니의 맏이고, 막내 이모는 겨우 다섯 해 차이지만 나에게는 항렬이 다른 어른이다. 일곱 살 여자애가 겨우 돌 지난 조카를 등에 업고 시오릿길을 걸었다는 전설 같은 주인공이 나의 막내 이모다. 조카의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는 이모가 거의 다 했다. 고물을 바꿔 엿을 사주거나 용돈이 생기면 라면땅이라는 과자를 사 조카에게 먹이는 이모였다. 고등학생인 조카가 공부에 지칠까 봐 매주 누런 종이봉투에 든 통닭을 사 들고 퇴근하던 이모였다.
이모부는 전북 장수 사람이다. 이모부도 막내다. 처의 장조카인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처가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옛말처럼 이모가 무척 사랑스러웠나 보다. 내 첫 양복은 이모부의 작품이다. 짙은 녹색의 추동복으로 엇비슷한 색의 양복을 본 적이 없었다. 나만의 아주 특별한 양복이었다. 나의 두 번째 양복도 이모부가 만들어 준 것이다. 코발트 불루보다 약간 밝은 색이었다. “지금 입을 거면 앞으로 못 입을 색으로 고르자.” 벌써 칠순이나 된다니 장어는 내가 쏴야겠다.
예상은 어긋나지 않는다. 아내의 눈짓에 맞춰 득달같이 일어나 카드를 내밀었다. 이모도 내 마음 같았던 모양이다. 밥값 실랑이는 짧게 끝이 났다. “장수로 와라. 소고기도 내가 살게. 이모가 돈을 버니 이모가 사야지.” 공짜가 밥맛은 원래 더 좋은 법이다. 당신의 언니 이야기가 담긴 시집 <신(神)>과 조카인 내 이야기를 적은 시집 <길>을 건넨다. 시집 두 권이면 밥값 치레는 되는 듯하다. 좋은 글은 아니지만, 익히 잘 아는 사람의 삶이 담긴 글이니 생소하지는 않으리라.
어머니가 세상을 버린 지 스무 해나 되었다. 이모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보인다. 옆 모습에서, 오뚝한 콧등에서도, 웃을 때 순한 눈망울에도 엄마가 있다. 그렇게 많이 닮았다. 떠나는 차창에 손 흔들며 곧 찾아뵙겠다는 모래성 같은 약속을 던진다. 흩어지기 전에, 무너지기 전에 뵙겠습니다.
첫댓글 사람은 다 추억으로 꽉 차있다
5살 차이나는 이모가 참으로 반가웠겠다
나는 알라더라. 이모 앞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