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1639)
귀도 레니
제2의 라파엘로라 일컫는 볼로냐의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는
풍부한 색채감각과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이탈리아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이다.
현재 모데나 에스텐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마태오복음 27,32-56; 마르코복음 15,21-41;
루카복음 23,26-49; 요한복음 19,16-30이 그 배경이다.
1639년경에 그린 이 작품은 예수님께서 고독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이다.
1619년 작품처럼 십자가 아래 성모님과 사도 요한과 마리아 막달레나도 없고,
아담의 해골도 사라졌다.
검은 구름을 가르고 예수님의 몸을 비추는 빛이 수난의 운명을 지켜볼 뿐이다.
레니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거룩하게 빛나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몸을 선택했다.
예수님의 몸은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고,
어깨 뒤로 비스듬히 젖힌 머리의 자세와 완곡한 S를 그리는 상체와 둔부의 곡선은
비극적 격정보다는 애틋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하다.
바로크의 달콤한 회화적 문법은 승리의 예수님과 고난의 예수님에 이어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예수님의 도상을 고안했다.
군사들은 그분의 머리 위에 죄명을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라고 쓰여 있었다.(마태 27.37)
예수님의 머리 위 명패에는 INRI 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라틴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로,
그 뜻은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이다.
야코부스는 <황금전설>에서 INRI의 뜻을 이렇게 풀이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인간들에게는 세 가지 축복을 가져다주었는데,
죄를 사하심과 은총을 베푸심과 영광을 나누심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명패에 쓰인 ‘예수’는 그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구원자라는 뜻이고,
‘나자렛’은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신다는 뜻이며,
‘유다인들의 임금’은 우리도 그날에 하늘에 올라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 고정한 못은 모두 손과 발에 세 개 박혔다.
예수님의 발은 세로대 아랫부분의 발 받침대에
한쪽 발을 다른 발 위에 겹쳐 두고 대못 한 개로 관통했는데,
이런 전통은 12세기 중엽 이후에 생겼다.
두 다리를 겹쳐 올리면
척추와 둔부의 흐름을 화가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두 팔이 고정되었어도 예수님의 자세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레니는 17세기 볼로냐의 미술 관례에 따라
예수님의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려 두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서는 선혈이 조심스럽게 흐른다.
예수님의 허리에 있는 하얀 수건은 바람에 펄럭인다.
생명 없는 허리 수건조차 수난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나부끼고 있는 것이다.
보는 이의 눈높이는 십자가 아래에 놓여 있다.
이런 시점은 십자가 밑에 주저앉아 울부짖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올려다보는 시점과 같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의 눈을 그림의 관찰시점으로 고른 것은
보는 이를 뉘우침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마태 27,45-46)
예수님께서는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고 입을 약간 벌리며
힘없는 눈빛으로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고 계신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가시관의 고통마저도 거룩하게 만든다.
가시관 뒤로 빛나고 있는 예수님의 후광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거룩한 아버지의 뜻임을 강하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