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교양이 어우러진 작품
- 요즈음 동화 작단의 경향에 대한 소감
김 문 홍
1.
요즘 심심찮게 동화집이나 동시집이 배달되어 온다. 이따금 지역 소설가나 시인의 작품집도 간간이 섞이어 온다. 보내는 작가나 시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 책이 즉시 읽혀지고 책의 내용에 대한 일종의 독후감 형식의 서신이 오면 무척 반가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경우에는 책을 받는 즉시 저자의 이름을 확인하고책 전체를 주마간산 격으로 휘리릭 훑어보게 된다. 동화책의 경우 100여 페이지 얇은 책자에 삽화가 많을 때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본다. 그러나 삽화도 드문드문하고 200여 쪽이 넘으면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잠시 밀쳐둔다. 그렇게 밀쳐둔 책이 문간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별로 본 적이 없거나 갓 등단한 신인의 경우에는 그렇다 치고, 익히 아는 작가들은 일언반구의 낌새도 없으면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라는 걸 안 봐도 다 안다.
2.
동화책의 경우에는 여러 분류이다. 재미적 서사 중심의 짧은 것, 작가의 생각과 서사적 상상력이 그득 들어 있는 제법 부피가 있는 것 등으로 크게 양분된다. 두 가지 종류의 책 중에서 서평의 대상이 될만한 작품들은 한쪽에 따로 쌓아둔다. 거의 대부분이 부피가 두텁고 내용의 무게감이 있는 것들이다.
서사적 재미 위주의 부피가 얇은 책들은 서평의 대상이 되기가 쉽지 않다. 서사적 재미 하나 가지고 무슨 알차고 다양한 서평이 되겠느냐는 것과, 추천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많이 언급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여타 작가들로부터 서평이 상업적 경향에 일조한다는 질타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갓 등단한 작가들에게 이런 작품을 쓰라고 부추김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 즉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쓰려고 하는 신인 작가들을, 잘 팔리는 서사적 재미 위주의 작품을 쓰는 상업적 관행의 길로 안내하는 우를 범하는 선배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일단 등단해 놓고는 곧이어 상업적 관행의 작품을쑥쑥 뽑아내는 신인 작가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 진흙탕의 '쑥시기' 판에 해맑은 상상력의 그들을 몰아넣을 수는 없다.
나도 두 해 전엔가 익히 아는 시인의 소개로 <대나무숲의 임금님 귀>라는 내딴엔 제법 묵직한 작품을 출간한 적이 있다. 내가 책을 보내준 작가들은 하나같이 칭찬 일색인데, 1쇄라는 저조한 판매 실적으로 소개해준 시인과 출판사 사장에게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하는 부끄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독서 풍토에 대한 자괴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이후 나는 작가들의 호평과 판매 실적은 작품의 완성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희한한 상관관계를 뼈저리게 경험한 적이 있다.
3.
언제부터 우리 아동문학계의 동화 작단이 이렇게 서사적 재미 위주의 풍토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모호하나 주관적으로 유추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어린이들이 동화를 끝까지 읽어내는 호흡이 짧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등단해 왕성하게 활동하던 7, 80년대만 해도 장편동화나 아동소설의 분량만 해도 200자 원고지 5백 매 안팎이었다. 이런 추세가 90년대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분량이 4백매 안팎으로 갑자기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2010년대부터 갑자기 3백 매 안팎으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3백 매도 많다고 해 고학년의 경우에는 2백 4,50 매가 되어 버렸다. 현재는 고학년의 경우에는 거의 200매 안팎이 대세이다.
이처럼 어린이의 읽기에 대한 호흡이 줄어든 데에는 출판사, 작가, 부모, 사서들이 만들어낸
독서 환경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출판사는 재미 없으면 어린이들이 읽어내지 못하니 서사적 재미 위주의 짧은 분량의 작품을 원하고, 작가들은 출판사의 요구에 '깨춤' 아닌 깨춤을 추고, 부모들 역시 문학 작품은 비싼돈 주고 사 읽히기 아까워 문학과 실용적 학습이 적절히 어우러진 작품을 구매하고, 도서관 사서들 역시 문학 작품의 깊이와 넓이보다는 교보문고, 알라딘, YES 24 등 인터넷 독서 정보에서 판매지수가 높은 책이 좋은 책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그런 책을 추천하고 구입하는 관례가 서로 맞물려 일차적 독자인 어린이의 독서 호흡을 짧게 한 것은 아닐까?
4.
문학과 예술 작품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재미를 우선하는 '쾌락적 기능'과 성찰하게 하는 '교시적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쾌락적 기능의 작품은 서사적 재미 위주로 일관하고, 교시적 기능은 문학 작품을 통한 성찰을 목표로 한다.
쾌락적 기능에 충실한 작품은 서사적 재미에 이끌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미는 있지만, 책을 읽고 나면 서사적 줄거리만 남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교시적 기능에 충실한 작품은 난삽해서 읽어내기가 무척 어려운데, 읽고 나서도 나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여운을 내내 주는 작품을 말한다.
그럼 어떤 동화가 쾌락적 기능에 충실한 작품인가? 우선 발단 부분만 읽고 나면 금방 알 수 있다. 서사적 상황만 연쇄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지리한 서사와 묘사는 금물이다. 주로 대사 위주로 사건과 장면이 이어지고 만화에 가까운 삽화가 구미를 돋군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같이 감질나게 이어지다가 끝 무렵에 '다음 주에 다시'라는 문구와 함께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주일 뒤에 다시 이어지는데 별것도 태반사이다.
교시적 기능의 작품은 대화보다는 지리한 서술과 묘사가 지면을 가득 채우고, 독자를 가르치려 할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내공이 없이는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방대한 서술에 중세의 역사와 종교, 고대 그리스 비극의 본질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인 '희극론'에 대한 인문학적 내공으로서의 지식 없어는 단 몇 페이지만 읽다가 그만 책을 덮어 버리고 만다.
우리 동화문학의 가벼움은 21세기 초의 후기 자본주의적 상황과, 디지털 매체로 인한 생각의 깊이와 넓이의 경향에 대한 기피의 환경과 무관하지 않아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사회 전체가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추세인데, 문학예술만 고고하게 버틸 수도 없는 것이다. 지식과 경쟁 위주의 교육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떻게 손 쓸 방도가 없다. 문학예술의 세기말적 현상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5.
그럼 이런 왜곡적인 독서 풍토와 창작 관행을 바꿀 길은 없는 것인가?
아동문학계 동화 작가들의 창작 태도를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문학의 두 가지 기능 중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이 둘을 조화시키는 방법은 어떨까? 쾌락을 위한 서사적 재미도 살리면서, 그러한 서사를 통해 성찰의 기능도 아울러 살려내는 창작 방법은 어떨까?
필자는 서너 해 전에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아동소설을 쓰다가 잠시 멈추
게 된 적이 있다. 150 매 가량 쓴 내용을 어느 후배작가에게 읽어보라고 부탁했더니, 요즘 아이들은 잘 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 그 기점에서 멈춘 상태이다. 그래서 서사적 재미와 교양적 지식을 적절하게 어우러지게 하면 어떨까 하고 지금 궁리 중에 있다.
그렇게 하려면 대사 분량을 대폭 확대하고, 지리한 서술과 묘사 분량을 줄이는 대신, 창작기법에 대한 묘수를 부려 대화 속의 서브 텍스트(속뜻)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나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고 이리저리 궁글리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의 끝에 올려놓은 사진 두 장이 있다. 하나는 지난번 통영 기행 때 찍은 다도해 섬들의 수묵화적인 풍경의 사진이고, 다른 하나의 사진은 어린이집에서 내 손자가 그림 동화책을 뒤적이는 장면이다. 손자가 그림책의 서사적 재미에 탐닉해 있는 동안에, 교시적 기능으로서의 성찰과 같은 수묵화적 다도해 풍경의 교양을 은근슬쩍 스며들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억지에 가까운 제안이다.
이 손자는 아직 두 돌도 채 되지 않았는데, 텔레비전의 '뽀로로' 에니메이션만 나오면 스스
로 웃음을 터뜨리며 숨죽이고 본다.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모양으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데 곁에서 지켜보는 내게는 너무 신기하다.
아동문학 단체에서도 "요즘 동화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심리학자, 동화작가, 도서관 사서들을 기조 발제자로 선정해 동화문학의 위상과 위기 진단에 대한 포럼이나 세미나를 한 번 마련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6.
문득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의 냉소적인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아침에 시를 가지고 등교했다가 하교할 때 시를 버리고 간다."는 그 말은 제도교육의 문학 수업의 파행적인 모순을 지적한 말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동화 작가들이 한번 음미해 볼 만하다.
전국의 동화작가들이여!
앞으로 저에겐 쾌락적 기능에만 충실한 동화는 보내지 말지어다. 서사적 재미와 교양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동화집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런 작품이 있다고 연락이라도 해주면 직접 구매해 읽어볼 생각이다. 작품을 톺아 읽어보고 서평이라도 써 볼 생각이다.
(20240722)
첫댓글 김문홍선생님의 *요즈음 동화작단의 경향에 대한 소감*
잘 읽었습니다
새겨야 할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