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민주지산 눈꽃산행, 그리움을 풀다
2018. 2. 4. (일)
갈바람, 겨울이면 늘 그리운 눈입니다.
어릴적 고향서 만나던 하얀 눈꽃 세상 만나려
수백리 달려 영동 민주지산으로 갑니다.

08:00 동래를 출발한 버스가 김천을 지나고서 부터
먼 산꼭대기들이 희끗희끗합니다.
어제 내린 눈이 녹지는 않았나 봅니다.
11:20 버스는 도마령에 우리를 내려 놓습니다.
도마령(영동군 상촌면 고자리)은
충청도 영동에서 전라도 무주로 가는 고갯마루인데
옛적 칼든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다해서
도마령(都馬嶺)이라고...
이곳 해발이 840m라
400m 정도만 더 높이면 민주지산이라
이 곳을 들머리로 많이 택하지요
들머리부터 눈길 계단,
싸한 바람이 코끝을 스칩니다.

11:27 상용정,
그 멋진 배경을 뒤로하고 산길로 들어섭니다.

차거운 바람이 온 몸을 칭칭 감싸게 합니다.
아덴만에 가면 모두 해적감입니다.

상고대가 활짝 웃습니다.

계속되는 오름길, 때로는 매서운 바람에 손끝이 아리고...
눈꽃 세상인데 이정도는 감수해야겠지요?
12:15 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이 조용합니다.
보상 받는 느낌, 완전 살판 났습니다.

아늑함까지, 순백의 눈길입니다.

산님의 머리에도 상고대가 꽃으로 피었습니다.

새로 설치한 데크를 건너서
12:30 각호산 (1,176m)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흰구름 두둥실~~

옛적 이곳에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데서
각호산이라 불린답니다.

그보다 이 산꼭대기에 삐쭉 바위 봉우리가 두개 있어서
각호산이라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그 바위 봉우리 사이에 테크가 놓였지만...

와, 저 멋지고 아름다운 정경!
말과 글로는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곳 삐쭉한 바위 봉우리 내려간 산님들이
나뭇가지 사이 눈길을 걷고 있습니다.

13:00 각호산 출발,
미끄러운 바위 벼량에 줄을 잡고 조심 조심 또 조심...

각호산 내려와 능선길, 바람이 다시 차거워 집니다.
손끝이 아려와 장갑을 바꿔 낍니다.
갈바람표 특급 방한 장갑,
얇은 속장갑에 비닐 위생장갑을 씌우고
마지막엔 방풍장갑을 낍니다.
효과 만점!!!
양쪽 다 가파른 능선이 이어집니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설국(雪國) 속으로 쑤욱 하겠지요?
바람까지, 점심은 엄두도 못냅니다.
13:25 고개 하나 넘었는데
바람이 잦아듭니다. 완전 다른 세상 느낌...

14:15 삥 둘러 앉아 뜨건하게 점심을,
바람에 눈발이 휘날립니다.
참 묘한 분위기의 점심입니다.
어디가서 이런 분위기를 맛 볼 수 있을까요?

다시 눈길을 걷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아무도 밟지 않은 순결함도 있습니다.
꼬옥 지켜주고 싶은...

14:40 대피소

"세계 최강 특전용사 이곳에 영원히 잠들다"
위령비 앞에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운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모윤숙 님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서

1998년 4월 1일 오후 6시15분께 충북 영동군 용화면 민주지산(해발1249m)은
눈보라와 강풍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산속의 시야는 이미 어둠에 묻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밤이 되면서 기온은 영하 20도 이하까지 떨어졌고,
늦은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이미 30㎝ 이상 쌓여
등산로를 찾을 수도 없었다.
당시 천리행군을 하면서 이곳에 진을 친 5공수 특전여단의 김광석 대위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폭설과 강풍을 정신력으로 간신히 이겨내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일부 특전대원이 탈진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 대위는 부하 특전대원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긴급 요청한 헬기는 악천후로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고,
급격히 떨어진 기온 때문에 무전기 배터리마저 작동하지 않아 외부와 교신도 끊겼다.
상황은 더 악화했다. 탈진하는 특전대원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데다
김 대위 자신도 더는 추위와 강풍을 이겨낼 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탈진상태서 전우들의 응급구호를 받던 이광암(34) 하사가
끝내 그가 지키고 싶었던 조국의 품속에서 눈을 감았다.
특전대는 임시 구호소를 설치하고 대원들을 대피시키고 있었지만,
밤이 깊어지면서 눈보라와 추위는 더욱 거세졌다.
오후 9시10분께 영동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간신이 현장에 도착한 뒤 탈진한 특전대원들을 이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너무 늦었다.
전해경 하사와 오수남 하사가 이송 중
눈보라 치는 민주지산을 바라보며 숨을 거둔다.
이어 오후 9시35분께 부하를 잃은 김 대위마저
끝내 생사를 같이했던 부하 대원들의 뒤를 따르고,
한 시간 간격으로 하오한 하사와 이수봉 중사가 구호소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렇게 시작한 특전대원들의 동사 사고는 결국 꽃다운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한 특전대원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5공수 특전여단은 당시 충남 청양의 칠갑산에서부터 민주지산을 거쳐
속리산과 월악산을 종주하는 고강도 천리행군을 하던 중이었다.
이날은 특전대원들이 5일 차 훈련에 돌입한 날이었다.
당시 이 민주지산 특전대원 동사 사고는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물론
전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국방부는 사고의 지휘 책임을 물어 대대장을 보직 해임한 데 이어
훈련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여단장과 여단 정보참모를 징계했다.
17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국방부는 1999년 특전대원들의 천리행군과 사망 순간까지
전우와 조국에 관한 사랑을 보여준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
'아! 민주지산'을 제작하기도 했다.
국제평화지원단은 매년 3월 말께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사고현장 아래인 물한리에 세워진 위령탑에서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 뉴시스(2015.3.31) 에서 -

사고 뒤 지었다는 무인 대피소를 뒤로하고 걷는 마음,
저 나뭇가지처럼 마구 뒤헝컬어 집니다.

눈보라 속에서 이 길을 얼마나 헤메고 또 헤메었을까!

용사들이 지금 돌아와도 모두 동생들 나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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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가 있습니다. 한 걸음 아래서 내려보라고....

14:55 민주지산 (1,241m)

일렁이는 산들의 바다입니다.

민주지산 하니까 민주산악회, 문민정부...
뭐 민주(民主)라는 등등의 의미와
연관될 것도 같아 한번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산 아래 물한리에서 바라보면
각호산,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이 비슷비슷하게
산 높이가 '민두름하다'해서 민두름산이라 불리다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민주지산(岷周之山)이 되었다고...

민주지산, 민두름하다해서 별거 아닌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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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봉 방향으로 내려가는 눈길이 정말 멋진데
카메라에 담지 못했습니다.
운치에 취해서 그만...

15:05 갈림길,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왼쪽 물한리 계곡 방향으로 ~~

잠시 비탈길 내려오니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분위기입니다.

차분함, 푸근함이 있는...

상고대가 없는 걸 보니 기온 차는 능선보다
크지 않을것 같습니다.

봄, 여름이면 여기가 야생화 천지라고...

눈길을 마냥 걷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산길 다 내려와 가는 데 앞서 가던 선녀 산님
"저기 가서 나 좀 벗겨줘요~~"
무슨 사정인가 했더니
글쎄, 아이젠 좀 벗겨 달래는 거 였어요
^)^
16:15 황룡사 출렁다리
출렁이고 흔들림에 잠시 몸을 맏기셔도 좋습니다.

16:20 물한계곡 주차장

16:40 영동 맛집 찾아 주차장을 출발합니다.
17:25 월류봉

매운탕집보다 월류봉입니다.
'달이 머물다 가는...'

매운탕집에서 뜨껀한 빠가탕으로 언 속을 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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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 부산 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월류봉은
'달 뜨는 밤에 좋은 사람과
꼭 다시 찾아 오라고...'

감사합니다.
2018.2.5
갈바람이었습니다.
첫댓글 민주지산 미처몰랐던 우리장병들의 장렬한희생에 숙연한마음으로 당시상황이그려집니다~항상 산님들위해 친절한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시고 많은 배려 감사합니다.

겁고 따뜻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카페 방문을 환영드리면서
수고많았읍니다 민주지산에 군장병의 희생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더강하게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늘 수고 많습니다. 활기찬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