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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정의 전성기. 한말 궁중에서 퇴출당한 한 일급 요리사가 차린 명월관이 그 시초이다. 70년대 요정의 상징은 삼청각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대 많은 정치적 결정들이 이 삼청각의 밀실에서 이뤄졌다.
수많은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 요정정치 속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포장마차가 등장하여 대폿집의 바통을 넘겨받는다. 붉은 페인트로 왕대포라고 씌어진 창문이 달린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다란 드럼통에 화덕을 만들고 연탄불을 피워 실내는 매캐한 냄새와 사람들의 입김으로 가득 차 있던 훈훈한 대폿집의 정경이다.
자유부인들이 드나들던 카바레는 도시의 춤바람과 함께 번성하면서 술집이 다양화되고 주머니 사정에 맞춰 계층화되기도 했다. 나이트클럽이 대중화된 것도 70년대. ‘사랑과 평화’ 같은 밴드들이 나이트클럽에서 활동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2차까지 이어지는 룸살롱과 단란주점이 생겨난다.
그리고......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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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총리를 신혼시절부터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13년간이나 옥바라지하게 한 통혁당사건의 주모자인 영천출생 김종태는 대구에서 학생들이 벽에 마음껏 낙서할 수 있는 낙서문화를 만들어 내는 학사주점을 구상한다.
통혁당사건 이후 학사주점은 동무란 말처럼 불온시 되다가 술을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정권유지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는 정보부의 판단에 따라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DJ도 당시에는 간첩이었다. 하기사 현재 노무현대통령보고도 간첩이라고 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이니 통혁당에 연루된 158명이나 되는 학생, 문인들 역시 변명한마디 할 수 없는 간첩이었던 것이다.
당시 대구는 박정희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의 도시였었는데 박정희 사후에 박정희를 맹목적인 교주로 받들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김재규의 손가락하나로 청와대가 상갓집으로 변하던 날 잔치가 열린다. 학생들은 집에 갈 생각도 않고 밤새도록 뉴스속보를 시청하며 막걸리 파티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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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哭)하고 유신을 저주(呪)하는 선비(士)인 곡주사에서의 풍경이다.
지금은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안기부 대공분실 요원들과 정보과 형사들에게 군부독재정권에 맞섰던 수많은 학생들이 잡혀갔던 곡주사가 문을 연지 32년이 지난 오늘에도 옛날 인심 그대로 할매가 지키고 있다.
그 시절에는 고등학생들도 각반까지 착용한 교련실기대회라는 명목으로 군사훈련을 하였고 1일 군부대 입영, 학도병 행군, 격전지 순례 그리고 자연보호운동, 국어순화 계몽운동, 거리질서 계몽운동, 국기달기 계몽운동, 보리 베기 봉사활동 등으로 세뇌교육의 중심지에 있었지만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평은 없었다.
여학생들도 예외일수는 없었고 학도호국단 행사 때면 교련모자에 구급가방을 둘러맨 채 친구들의 팔에 붕대를 정확하게 빨리 매는 연습을 반복하였었다.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교복의 호크를 채운 학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수학과 영어의 천국이었다. 수학 완성의 독무대를 지나 홍성대가 쓴 수학1의 정석이 수학 시장을 싹쓸이 하였고 성문영어 시리즈를 마스터한 학생들은 헌책방거리에서 영어왕도를 찾곤 하였다.
서슬 퍼런 유신헌법이 지배하던 암울한 시기. 긴급조치가 있어 정치이야기는 물론 친구 간에 사소한 이야기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하면 내 아이들이 믿어줄까?
지금에야 남자들이 머리를 뒤로 묶고 염색까지 하여도 개성으로 보이지만 당시 거리의 경찰들은 한 손에는 가위를 또 한 손에는 자를 들고 다니며 장발을 자르고 아가씨들의 허벅지에 자를 들이대는 웃지 못 할 코미디 시대가 있었다면 믿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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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이 중단되고 국회가 해산되었으며 지금은 없어져 버린 궁정동 안가에서 1972년 10월26일 풍년산업이라 불린 10월 유신이 기획된다. 그리고 체육관 선거쇼가 펼쳐지면서 이 쇼는 무려 15년이라는 세월동안 1인 독재의 시녀노릇을 하다가 공교롭게도 유신이 기획된 궁정동 안가에서 7년 뒤 비명과 함께 10,26이 벌어지니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시작과 마무리가 되니 신기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아마 그 광기의 역사를 단죄한 하늘이 만들어낸 우연이 아닐까.
가혹한 노동현실을 분노하는 폭발처럼 그려낸 불후의 명작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왜곡된 근대화가 만들어낸 사회모순을 고발한 윤흥길의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 그리고 삶의 천국을 근원적으로 추적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같은 문학들은 당시 시대가 만들어낸 우리들의 작품인 것이다.
파멸의 폭력이 기승을 부리었건만 어느 때부터인가 자기를 포기한 온순한 양으로 변하여 갔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역사는 절대로 과거로 회기 하는 법은 없다. 아직도 왜곡된 정치형태를 용납하는 책임은 정치하는 수구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에게도 있을지니 그 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인간들에게도 연민의 정이 남아 있음은 역사에 대한 책임은 바로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지금도 냉엄히 진행될 뿐이다. 다만 내 아이들에게만은 두 번 다시 그러한 시대를 물려주고 싶지 않을 따름이다.
ⓒ 손오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