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림병 2
계곡 건너편으로 가로질러 나무다리 위에
포졸하나가 병든 닭처럼 꼬박꼬박 졸고있었다.
포졸이 화담 일행을 발견하고는 냅다 소리를질렀다.
"여보시오. 어디들 가는 길이오?
여기는 통행을 못합니다."
"우리는 팔도를 주유중인 송도 선비들이오.
대체무슨 일이 있길래 길을 막고 그러시오?
어디산적이라도 나타났소?"
박지화가 물었다.
마흔쯤 되어보이는 포졸은
힘없이 한숨을 푹내쉬었다.
"소문도 못 들으셨소?"
"무슨 소문 말이오?
밀양재에서 주막을 안 들리고곧장 오는 길인데…"
"말도 마시오. 근동에 염병이 퍼져서 난리라오."
"염병이라니요?"
"경주서부터 옮아온 염병이
벌써 경상도 사방으로퍼졌다오
온 데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바람에
시체를치울 손마저 달리는 형편이라오."
주막이며 석남사가 비어 있더니
이미 염병이거기까지 휩쓸고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왜 그러고 있소?"
박지화가 또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묻고 나섰다.
"염병이 퍼진 곳에 사람 통행을 막으라는
포도청지시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오.
원래는 열 사람이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가 버리고 나만남았소."
"당신은 왜 도망가지 않았소?"
"나마저 도망가버리면
멋 모르고 이 지방으로 오는사람들이
다 병에 걸릴 것 아니오."
"그런데 왜 그리 힘이 없소?"
며칠 전까지는 저 건너에 있는 마을에서 자고
밥도얻어먹었소이만
저기도 병이 퍼져서 밥을 굶은 게벌써 사흘째요."
"쯧쯧."
박지화가 혀를 찼다.
"거 답답한 양반일세.
당신 목숨이 경각에달려있는데 남 걱정이 되오?"
"먹고 살기가 막막해서 포졸이 됐소만,
맡은 일은책임져야 하지 않겠소?"
사흘이나 굶었다는 포졸은
따박따박 말대답은 잘도했다.
"거 참 앞뒤가 꼭꼭 막힌 양반일세.
우리야아무것도 몰랐으니 이 길로 들어섰소만…
소문이 이미널리 퍼졌다면
더 올 사람도 없을 게요.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오."
"집에 돌아가 봤자 우리 집 식솔들도
모두 원귀가돼 있을 거외다.
예서 죽으나 게서 죽으나 뭐가다르겠소
당신들이나 왔던 길로 돌아가시오.
난죽어도 여기서 길을 지키다가 죽을 거요."
그제야 박지화는 잔뜩 근심스런 얼굴로
화담을돌아보았다.
"선생님, 어떻게 하지요?"
"나야 살 만큼 산 사람이니 어떻든 무슨 상관이있겠나?
자네들이 알아서 결정하게나."
화담은 슬쩍 자리에서 물러나
이미 염병이 돌았다는개울 건너 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염병이 돌고 있다는데 어찌 갈 수 있겠나.
돌아가세. 아쉽기는 하네만 어쩌겠나."
박지화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지함 역시 망설이고있었다.
몸이 오랜 여행으로 몹시 허약해져 있었다.
그 몸으로 전염병이 돌고 있는 곳을
무사히 지날 수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염병이란 것이 얼마나무서운지
알고 싶은 욕망도 있긴 했으나
병에 대한호기심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그러나 이때 민이 생각이 떠올랐다.
민이는정순붕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스스로 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팔뚝을 잘라다가
베개 속에 넣어두었다고들었다
민이는 하루하루 염병에 걸려가고 있는
자기자신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지함이 민이 생각으로 잠시 멍하니 있을 때
화담이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두사람에게 등을 돌린 채였다.
"어허. 죽음이 그리도 두려운 것인가.
왜 이 먼길을 떠나왔던고.
이 땅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있는지
보고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진실을구하려는 욕망도
죽음 앞에서는 뒷걸음질치고 마는것인가?
염병은 이 땅의 병이 아니고,
염병에 걸린백성은 이 나라 백성이 아니던가?
포졸 하나도 제책무 때문에
이토록 목숨을 내놓고 길을 지키고있는데,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들이…"
화담의 탄식이 두 사람의 가슴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지함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화담은 죽음을 앞두고 힘든 여행을 계속하고있었다.
두 제자를 가르치고 일깨우기 위한 고행임을
그제야 지함은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지함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붉히고 있는
박지화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박지화가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가시지요."
그제야 화담은 빙그레 웃으며 뒤돌아섰다.
세 사람은 염병이 퍼졌다는 경상좌도를 향해
다시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포졸이 길을 막고나섰다.
"여보시오, 선비님들.
그쪽으로 가시면 안된다니까요."
"괜찮소. 우리라도 가서 환자들을 살펴보리다."
"그러시면 선비님들까지 다 병에 걸려
살아남지못합니다."
"고맙소. 포졸 나리.
허나 우리라도 가서 사람들을거두겠소."
포졸은 하는 수 없이 길을 비켜 섰다.
"정 가시려거든 이름자나 남기고 가시오.
누가죽었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겠소?"
"허허. 이름은 남겨 무엇하겠소.
한 세상 살다가면그만인 것을…
당신이나 몸조심하시오."
더 이상 말할 힘도 없는지
포졸은 고개를 흔들어보이고는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처처에 저런 인물만 있어도
나라꼴이 이렇게까지되지는 않았으련만…"
화담이 안타까운 듯 포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이의 운명은 감정할 수도 없다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운명에 맞서 저렇게 의연한 이는
하늘도 비켜가는법이지."
"운명을 극복하는 것은 스스로 의지를 갖는것입니까?"
"그렇지. 제가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스스로끌고가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힘도 미치지 못한다네."
화담 일행은 주린 배를 감싸안고
인적이 끊긴 길을따라 울주로 향했다.
해가 기울 무렵 산등성이 아래에 지붕 몇 채가
산새집처럼 깃들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녁 연기가 오르는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마을도 이미 염병이 휩쓸고 간 모양입니다."
어쨌든 가보세."
아까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 박지화가
용기충천해서
직접 마을로 들어가보자고 성화였다.
작은 징검다리를 건너자
장승 한 쌍이 세 사람을맞이했다.
마을은 한적했다.
어느 마을에서나 사람보다 먼저 객을 반기는
그흔한 삽사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집으로
들어섰다.
주인 계시오? 주인장, 주인장!"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박지화는
가까운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노인네가 썼던 듯 곰방대가 놓여 있는 방은
역한냄새만 풍길 뿐 텅 비어 있었다.
"아이구, 이런, 쯧쯧…"
방문마다 다 열어젖히던 박지화가
안방문을 열더니코를 감싸쥐고 돌아섰다.
지함도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젊은 부부와 아이 둘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벌써 숨이 끊어졌는지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이들이 부모보다 조금 늦게까지
숨이 붙어 있었던듯했다.
이미 죽은 에미의 품으로 파고든 자세였다.
시체는 모두 살 한점 없이 깡말라 있었다.
쇠파리들이 시커멓게 달라붙어
그나마 남아 있는 살을파먹은 시체는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일을 어쩌지요?"
지함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난감했다.
화담은 턱을 고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단 시체를 불태우세."
"예? 불태우다니요?"
"염병이란 것이 본시 열이 끓는 것 아닌가?
의술이야 잘 모르네만
도의 이치란 무엇이나매한가지인 법.
본시 산불이 거세면 맞불을 놓는법이고,
양기가 지나치면 더 강한 양기로 기를 누르는 법일세.
열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니
그 열로 열을죽여 없애버리잔 말일세."
그제야 지함과 박지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시체를 옮기는 것도
문제였다.
보는 것은 웬만큼 참을 수 있었지만
코를찌르는 역한 냄새와
들끓는 파리는 비위가 뒤틀려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다.
이왕 들어온 김에
시체나치워주고 가자고 작정은 했지만
세 사람은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
한동안 고심하던 지함이 성큼성큼 대문 밖으로나갔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마을을 돌아볼생각이었다.
바로 옆집은 더욱 끔찍했다.
죽은 지 사나흘 되어 보이는 시체는
이미 형체를알아볼 수 없게 썩어 있었다.
시체마다 온갖 벌레들이시커멓게 들끓었다.
방안에는 진득진득한 송장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온 동네에 시체가 널려 썩어가고 있었다.
마을을 돌던 지함은 기어이 토역질을 하고 말았다.
지함은 시퍼런 감이 조랑조랑 매달린 감나무 기둥을
붙잡고 웩웩거리며 토했다.
악취와 끔찍한 정경을보고난 탓이었다.
언제던가,
처형당한 안명세의 목이
종로거리에내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뱃속에 있는 것을 모두토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지함의오장육부를 더 자극했다.
지함은 노란 물이 나오도록 토하고 또 토했다.
하루를 꼬박 굶어서 토할 것도 없는데
구역질은그치질 않았다.
지함은 구역질을 하면서도 마을을 계속 돌았다.
어떤 집의 대문을 들어섰을 때였다.
어디선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의 신음소리가들려왔다.
끔찍한 주검만이 가득 찬 마을에서
사람의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는지
지함은 구역질이 저절로 멈추었다.
지함은 소리가 흘러나오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 안에 뼈밖에 남지 않은 여자가 홀로 누워있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몰골이었다.
머리를 땋아내린 걸 보아
아직 출가하지않은 처녀인 모양이었다.
"무… 물…"
아직 정신이 남아 있는지 처녀는 물부터 찾았다.
지함은 당장 우물로 뛰어갔다.
정신없이 두레박을끌어올려
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달려가던 지함은
방문앞에 다다라 멈칫 했다.
불은 불로 다스려야 하는 법일세…
화담의 말이 머리 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지함은 뒤란에서 바싹 마른 잔솔가지를 주워다
불을지폈다.
생전 불 한번 피워본 적이 없어
부싯돌을수십 차례나 부딪친 끝에
간신히 불을 붙일 수있었다.
잔솔가지는 금세 거센 불길로 타올랐다.
지함은 부지런히 물을 길어다 가마솥을 채우고
물을펄펄 끓였다.
그리고 부엌에서 놋그릇을 가져다
끓는물에 집어넣고 삶았다.
그리고 삶은 그릇을 꺼낸 다음
끓는 물을 떠내 찬 우물에 담구어 식혔다.
지함은식힌 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처녀는 머리가 불덩어리인데도 덜덜 떨고 있었다.
지함은 처녀를 일으켜 안아 물을 먹였다.
어디서그런 기운이 솟아나는지
처녀는 거센 힘으로 물그릇을 움켜쥐고
벌컥벌컥 마셨다.
급하게 너무 많이마시면 체할까봐
물 그릇을 잡아당기자
처녀는우악스럽게 달려들어
물 그릇을 나꿔채갔다.
물 한그릇을 순식간에 다 마셔버린 처녀는
다시기진해서 누웠다.
그러나 물을 마시기 전보다는
생기가 많이 올라 있었다.
지함은 처녀가 잠이 든 것을 본 뒤
일행에게달려갔다.
"선생님, 선생님!"
화담과 박지화는
동네 어귀에 장작으로 단을 쌓고있었다.
시체를 태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있습니다. 산 사람이 있습니다."
지함의 말에 화담과 박지화는 일손을 멈추었다.
세 사람은 온 동네를 샅샅이 뒤져
산 사람을찾아냈다.
그래서 이십여 호쯤 되는 마을에서
아직 숨이 붙은사람 여섯 명을 찾아냈다.
건강한 사람은 한 명도없었다.
화담 일행은 깨끗한 집을 골라
환자들을 그곳으로옮겨 놓았다.
그리고 병의 경중을 살펴 방 세 칸에
나누어 눕혔다.
그런 뒤에 방마다 불을 지펴 방을덥혔다.
환자들의 용태를 살핀 박지화와 지함은
밖으로나왔다.
그리고 나뭇더미 위에 시체들을 얹어놓고
불을 붙였다.
땅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을
땅으로되돌려 보내지 못하고
한줌 재로 화하게 하는 것이안되긴 했다.
그렇지만 병이 더 퍼지는 것을 막기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벌써 주위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지함과박지화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시체를 배분해서태웠다.
주검을 사르는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제각기 다른 세월을 살아왔을 사람들이
장작더미속에서
함께 타올라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체를 다 태우고 났을 때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