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의 메아리 원고
성현이 본 양구인의 신바람 나는 삶
양구인의 긍정수치는 얼마나 될까? 옛 문헌을 보면, 양구인은 참 열심히 일하고 현실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신바람 나는 삶을 살았다. 아마도 지금 양구인의 긍정 수치를 따진다면 백 퍼센트가 넘어 하늘을 찌를 것이다. 이런 긍정성은 15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더욱 확실해 진다.
15세기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1504)는 강원도 곳곳을 다니면서 풍속시를 많이 지었다. 그 가운데 양구를 대상으로 지은 풍속시도 그의 문집 허백당집에 세 편이나 있다. 먼저 양구동헌에 이르러 양구를 본 소감을 지은 시이다.
<題楊口軒韻>
度壑穿雲緩轡行 樹林深處聽溪聲 天開沃野包楊麓 山作奇峰拱四明 滿畝秧針分水種 連村麥浪逐風生 此間刀犢無人佩 布穀如何苦勸耕(허백당집 시집 권10 <제양구헌운>)
깊은 골짜기 구름을 뚫고 느릿느릿 말고삐를 당겨가며/ 숲속 깊은 곳에서 졸졸졸 시냇물 소리 듣노라/ 하늘은 기름진 들판을 열어 양록을 품었는데/ 산세는 기이한 봉우리를 이루어 사명산을 떠받쳤네/ 논이랑에 가득한 볏모는 물을 대어 모내기하고/ 마을마다 이어진 보리물결은 바람을 따라 일어나네/ 이곳엔 칼 대신 송아지를 길러 노리개 찬 사람 없는데/ 뻐꾸기는 어찌하여 괴롭게 밭갈 것을 재촉하는가.
허백당은 말을 타고 양구 곳곳을 다니며 감상을 했다. 아마도 넓은 양구의 들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양구를 멀리 굽어보는 사명산을 바라보았다. 다시 넓은 양구 들판을 보니 벼와 보리가 들녘에 가득했다. 참 흡족한 모습이다. 그래서 양구 사람들을 관찰해 봤더니 모두 검소한 생활에 부지런 했다. 저 멀리 뻐꾸기 우는 소리마저 들려 그야말로 낙원이었다.
그런데 양구 사람들은 일만 하지 않았다. 양구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신성시공(神聖時空)으로 만들어서 신과 인간이 어울러 함께 놀 줄도 알았다.
<迎神曲>
淸晨鼓笛花山阿。端午隍神降人家。競扶風馭相傳芭。鴉鬟萬袖紛婆娑。老巫變顏降神語。穀朝鬷邁同飽飫。漉醪炊黍自來去。歸途月黑長林阻。溱流渙渙紅芍藥。邂逅相逢爭戲謔。偶因神會醉爲歡。不必更憑靑鳥約(허백당집 시집 권10. <영신곡(迎神曲)>)
<신맞이 노래>
맑은 새벽 북과 피리를 화산기슭에서 치고 부니/ 단옷날 성황신이 인가에 내리는 구나/ 다투어 바람처럼 서로 향기로움 전하니/ 비녀 꽂고 옷 겹쳐 입고 분단장에 너울너울 춤을 추며/ 늙은 무당 얼굴 바꾸며 신의 말씀 내리네/ 낱알을 일찍 솥에 넣고 푹 삶아 배터지고 물리도록 먹으며/ 막걸리 걸러놓고 기장으로 밥을 해서 스스로 오가며 먹네/ 돌아가는 길은 달빛이 흐려 오래도록 험한 숲속을 헤매어도/ 흐르는 물엔 붉은 작약 꽃잎이 이곳저곳 흩날리도다/ 우연히 서로 만나 다투어 실없이 농지꺼리하며/ 뜻하지 않게 신을 만나 취하여 기쁘게 보냈으니/ 꼭 다시 파랑새의 약속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리.
이 시는 성현이 본 성황제를 지내는 양구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자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성현도 이 성황제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양구의 꽃산 곧 화산(花山)에서 단옷날 성황제를 지내고 노는 풍경이다. 봄날 꽃이 화창하게 핀 산기슭에서 무당을 불러 성황제를 지냈다. 아침부터 달밤까지 이어진 단오제였다. 게다가 배불리 먹을 정도로 풍요로움이 배어 있다. 단오제를 지내면서 양구사람들과 무당이 함께 마시고 춤추며 신나게 노는 장면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처럼 선명하다. 질펀하게 난장이 벌어진 단오제 행사였다. 양구를 보호하는 신을 내려 양구사람들이 신명으로 풀어내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신바람 나는 양구사람들의 삶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지 성현은 이곳이 이상향이라고 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는 양구사람들, 이들의 긍정수치를 알만하다.
성현은 또 하나의 풍경을 목격하여 시로 지었다. 아마도 성현은 관찰사이고 유학자이기에 무당의 굿을 좋게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에 담긴 내면의 세계를 보면 양구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살아갔는지를 알 수 있다.
<送神曲>
雲林蒼翠多喬木。葯撩芝樑編小屋。坎坎伐鼓振幽谷。茅縮淸醪宰黃犢。爭膜萬指祈百福。淫祀年年自成俗。三日醉歡猶未足。又向豪門來糶穀。紙錢燒罷風生寒。渺渺霓裳不可攀。攔街兒女紛聚觀。送神萬騎還松巒。(허백당집 시집 권10. <영신곡(迎神曲)>)
<신 보내는 노래>
구름이 걸린(隱者가 깃든) 푸른 숲속엔 나무가 울창하고/ 지초로 대들보를 묶어 작은 집을 지었네/ 둥둥 북소리는 고요한 계곡을 울리고/ 띠풀로 만든 제당엔 맑은 술과 누런 소를 제물로 올렸도다/ 다투어 비손짓하며 온갖 복을 기원하니/ 음사는 해마다 풍속을 이루는 구나/ 삼일 간이나 취해 즐겨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재산 많은 집을 향해 곡식을 내라하네/ 종이돈 태워 날려 바람에 흩뜨리나/ 아득히 먼 신선세계엔 갈 수가 없구려/ 거리에 가득 아녀자들은 어지럽게 구경하고/ 신을 보내는 갖은 행렬은 솔숲으로 돌아가네.
강신을 해서 어울려 놀다가 신을 돌려보내는 장면이다. 삼일 간이나 제사를 지냈으니 엄청 큰 제의였다. 농사지을 소를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당시 소는 아무나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소를 잡아 제물로 올릴 정도로 컸다. 거리에 가득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이 시를 성현의 표현처럼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양구사람들이 소를 잡고 술을 빚어 성황제 또는 산신제를 지낼 여력이 있었고, 모든 양구사람들이 신바람 나게 이를 즐겼다고 볼 수 있다. 인간과 신이 함께하는 신성시공 속에서 무당의 굿 장단에 맞춰 삼일 간 축제를 연 것이다. 어쩌면 양구 배꼽축제와 곰취축제의 역사는 옛 양구사람들의 유전인자를 이어받은 것은 아닐까. 이 시는 양구사람들의 긍정수치가 하늘을 뚫고 올라 신과 함께 했던 사실을 보여 준 사례이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신바람 나고 멋진 양구인의 삶이 주어지기를 빌어본다.
(문학박사,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이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