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조조의 재치
이영숙 동양고전학자·'사랑에 밑줄 친 한국사’ 저자
입력 2021.11.03
우리는 입으로 말을 하고 맛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가끔 말로도 맛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삶은?’이라는 진지한 질문에 ‘감자’라는 허를 찌르는 답변으로 의외성을 안기거나, ‘차가운 심장’이나 ‘찬란한 슬픔’이란 역설로 풍부한 시적 감수성을 전달할 때 보면 그렇다. 득(得)과 아이템(item)을 결합한 ‘득템’ ‘유교걸(儒敎+girl)’ 같은 한자어와 영어의 조합이나, ‘치맥’ ‘심쿵’ 등의 줄인 말은 간결하고도 ‘신박한’ 소통의 미학이다. 평범한 말에 더해진 적절한 위트는 심심한 음식에 첨가된 감칠맛이라고나 할까?
정사(正史) ‘삼국지’의 영웅 중 한 사람인 조조도 말의 이런 묘미를 즐겼던 것 같다. 조조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간웅 이미지 탓에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인물로만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실상 그는 세상을 읽는 안목이 탁월하면서도 시와 문장을 사랑하는 문학가이기도 했다. 조조는 평소 주변인들과 재치 있는 입담을 즐겼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조조에게 유즙(소나 양의 젖 혹은 그 발효 음료)을 보내왔다. 지금은 흔한 게 유산균 음료지만, 당시 유즙은 꽤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조조가 조금만 마신 뒤 뚜껑 위에다 ‘합(合)’ 자를 써서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해 할 때 휘하의 재사(才士) 양수가 나섰다. 그는 호기롭게 조금 마시고는 말했다. “공께선 사람[人]마다 한[一] 입[口]씩 나눠 먹으라 하신 것이니, 더 이상 무얼 망설이시오.”
한번은 조조가 공사 중인 문에 ‘활(活)’자를 써놓은 적이 있었다. 이에 양수는 “‘문(門)’에 ‘활(活)’ 자를 쓴 것은 문이 ‘넓어(활·闊)’ 못마땅하신 것이다”라며 문을 허물라 명했다. 조조의 고품격 언어유희를 귀신같이 알아챈 양수. 그러나 그 때문에 조조는 양수를 ‘위험한 인물’이라 여겼고, 결국 군 소란죄를 씌워 죽였다. 그러고 보면, 기지 넘치는 언변은 날카로운 촉과도 비례하는 모양이다.
칼이 되기도 힘이 되기도 하는 말, 재미와 의미가 공존하는 말은 삶에 활력을 선사한다. 빡빡한 일상에 쉴 틈을 제공한다. 힘이 되는 그 한마디를 위해 오늘도 자판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