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2월 14일 일제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879년 9월 2일 출생해 독립지사가 된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고, 1910년 3월 26일 31세 청년 나이로 순국했다.
경산 선비 정기연은 〈聞安義士 重根 殺伊藤博文(안의사 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라는 제목의 시로 안 의사를 칭송했다.
“封狐渡海禍俱臻
(간악한 왜놈 바다를 건너 와 화禍가 이르렀는데)
抱釰躕躇幾箇人
(칼을 품고 고뇌한 사람 몇이었던가?)
有一少年伸大手
(한 젊은이 있어 큰 손을 펼쳤으니)
東天快嘯動西隣
(우리나라 쾌재를 부르고 서쪽 이웃 감동케 하였네)”
중국인들도 감동했다. 쑨원(손문), 장제스(장개석), 위안스카이(원세개) 등 다수 중국 사람들이 시를 지었다. 위안스카이는
“平生營事只今畢
(평생에 벼르던 일 이제야 끝냈구료)
死地圖生非丈夫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 아니고)
身在三韓名萬國
(몸은 한국에 있어도 이름은 만방에 떨쳤소)
生無百歲死千秋
(살아선 백 살이 없는데 죽어 천년을 가오리다)”
하고 안 의사를 추앙했다.
대구 선비 서한기도 〈挽義士 安重根(의사 안중근을 추모함)〉이라는 시를 썼다.
“黑雨蕭蕭白日冥
(검은 비가 쓸쓸히 내려 흰 해를 가렸는데)
萬人叢裏一身挺
(만인 가운데 한 사람이 빼어났네) (중략)
太冬風雪孤松碧
(한 겨울 풍설에도 고송古松은 푸른데)
長夜乾坤獨炬明
(긴 밤과 같은 세상 홀로 횃불 밝혔네)
金櫃將書忠義字
(실록에 장차 충의忠義의 글자를 쓰고)
史官持筆淚先橫
(사관이 붓을 잡고 먼저 눈물을 흘리리라)”
김택영은 “未死得聞消息好(내 죽기 전에 좋은 소식 듣게 되니) 狂歌亂舞菊花傍(국화 옆에서 미친 듯 노래하고 춤추네)”라고 읊었다. 김택영이 미친 듯 노래하고 춤을 춘 것은 일제에 빌붙어 사익을 얻으려는 사특한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詩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시경 삼백 편은 한마디로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라고 했다.
인간세상이 어수선하다. 코로나 탓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현혹해 사욕을 취하려는 가짜 지도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사무사’한 시인들이 나서서 예언자다운 시를 민중에게 제시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칼을 품고 고뇌하는’ 시인이 없다보니 정기연 등이 보여준 것과 같은 강개한 시는 찾아보기 어렵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찌든 ‘서정시’들만 난무한다.
말세인가? 그렇다면 구세주가 출현할 것인즉, 좋아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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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수) 오후 2시-4시
대구 달서구청 대강당(2층)
"이상화 문학관, 그리고 우현서루와 현진건" 강연(강사: 정만진)
-이장가李庄家에서 기념품을 준비했으니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후 4시-7시
현진건문학의 밤(빼앗긴고향 2호 발간 기념)
설화명곡역 7번 출구 바로앞 "이창준 명가"
2월 25일(토) 11시 녹동서원과 한일우호관 답사
3월 1일(수) 빼앗긴고향 3호 발간, 4호 원고 마감clean053@naver.com
3월 4일(토) 침산 답사(시간 미정) 및 빼앗긴고향 3호 발간 기념식(시간, 장소 미정)
3월 11일(토) 오후 3시, 현진건문학의 밤(현진건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