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허씨 시조(始祖) 허선문(許宣文) 이하 10세조까지의 제단(祭壇)전경소재지 :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풍곡리 산 87-3김포시 고촌면 풍곡리에 시조 허선문 이하 9세조까지 묘의 실전(失傳)으로 설단을 하고 매년 4월 둘째 일요일 제향(祭享)
을 받들고 있다. 10세조 문경공(文敬公) 공(珙)의 묘소는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 현 판문점 부근에 있어 출입이 불가능하
므로 후에 문경공도 이곳에 설단하여 현재로 시조부터 10세조까지 열 분의 단이 모셔져 있다.제단비(祭壇碑)와 기념비(記念碑)는 1984년 설립하고 비문은 양천허씨대종회 초대 화징인 우석(又石) 허혁(許혁)이 짓고
창포(蒼浦) 허유(許由)가 썼으며 전면 비문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글씨다. * 위치 :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풍곡리.* 신곡 사거리에서 천둥육교까지는 약 1km 정도 입니다.* 천둥 육교에서 설단지까지도 약 1km 안쪽입니다.* 천둥 육교 지나기전 오르막길에서 우측으로 진입하시고 즉시 좌회전하세요.* 풍곡리 방향 진입전 설단지 표석이 있습니다
양천(陽川)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일대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의 재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공암현(孔巖縣)
으로 고쳤으며 율진군(栗津郡)의 영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陽川縣)으로 개칭되어 현령을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그
대로 이어졌다. 1896년(고종 33)에 경기도 양천군(陽川郡)으로 개편되었으나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경기도 김포군(金浦郡)에 흡수되었
고, 1979년 양천군 관할이었던 양동면과 양서면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양천허씨(陽川許氏)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의 30세손으로 전하며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
譜)》에 의하면 공암촌(孔巖村: 현재의 서울특별시 양천구)에 살았다고 한다. 당시 많은 양곡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왕건(王建)이 후백
제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군량을 보급해 준 공으로 공암(孔巖)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양천
(陽川)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양천허씨는 김해허씨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악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양천허씨는 40,260가구 총 130,286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인의 성보(姓譜)》 (삼안문화사, 1986)《성씨(姓氏)의 고향》 (중앙일보사, 2002)뿌리를 찾아서 (http://www.rootsinfo.co.kr/)《전통족보문화사(傳統族譜文化社)》 (http://www.genealogy.co.kr)
출처 : 양천허씨대종회 네이버지식백과
출처: 한국의 묘지기행 원문보기 글쓴이: 文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