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자동차생활 2000년 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96년형 시보레 카마로 Z28 SS 시승기
포니카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그르렁거리는 엔진음이 가슴깊이 저며온다. 꺼질 듯 말 듯 푸드득거리는 엔진음이 레이싱카를 닮았다.
카마로에서 힘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포니카의 역사는 60년대 포드 머스탱의 등장부터 시작된다. 값싸고 멋진 스포츠카는 폭발적인 인기를 불렀다.
머스탱의 인기는 곧 GM이 시보레 카마로와 폰티액 파이어버드를 내놓게 했다. 이후로 GM F보디의 머스탱 견제는 숙명이었다.
오늘의 시승차인 시보레 카마로 Z28 SS버전은 96년 당시 포드 머스탱 코브라에 맞서기 위해 나온 차로 305마력의 엄청난 힘을
뿜어낸다.
포니카의 진정한 맛은 V8 엔진에 있다. 폭발적인 힘과 뒷바퀴굴림은 미국이 자랑하는 머슬카의 기본조건이었다.
96년형 카마로는 6기통 `3.8ℓ 200마력의 기본형과 V8 5.7ℓ 285마력의 Z28 모델이 나왔다.
SS버전은 Z28에 `램 에어` 흡기 시스템을 달아 최고출력을 305마력으로 끌어올리고 서스펜션을 튜닝한 모델이다.
튜닝작업은 레이서 출신의 에드 햄버거가 운영하는 SLP(스트리트 리걸 퍼포먼스)사에서 맡았다.
GM의 캐나다 퀘벡공장에서 만들어진 카마로는 20마일 떨어진 SLP에서 흡기계통을 비롯해 6군데의 튜닝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아와 마무리되고, 이후 시보레 딜러를 통해 공식적으로 팔린다.
SLP는 폰티액 파이어버드 파이어호크도 튜닝했다. 연간 생산량이 1∼2천 대 가량인 SS버전은 희소가치가 크다.
Z28의 흡기계통과 서스펜션 튜닝한 모델
대시보드의 엉성한 마무리 이해 안돼
SS버전이 다른 카마로와 구별되는 큰 특징은 보네트 위에 자리한 공기흡입구다.
NASA 타입의 에어 덕트는 멋도 멋이지만 기선을 제압하는 역할이 크다.
시승차는 프론트 에어댐부터 뒤 트렁크 위의 스포일러까지 에어로 키트를 달았다. 그야말로 폼이 `죽여주는` 차다.
카마로는 사실 이런 장식을 달지 않아도 멋지다.
한때 GM에 입사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은 모두 카마로를 디자인하고 싶어했다.
디자이너 사이에서 카마로의 인기는 코베트를 능가한다. 카마로는 1967년 데뷔 이래 `가장 멋진 GM차`의 자리를 지켜왔다.
70년에 데뷔한 2세대 카마로는 나의 영원한 드림카였다.
시승차는 93년 데뷔한 4세대다. 모델 변화가 잦지 않은 것은 포니카의 또다른 매력이다.
사실 너무나 멋진 차는 모양을 바꿀 필요가 별로 없다. 4세대 카마로는 97년 한 차례 페이스 리프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디는 보네트와 리어 쿼터 패널만 철판이고 나머지는 모두 플라스틱이다.
GM차 중에서 실험적인 역할을 도맡은 기분이다. 유난히 앞뒤 오버행이 길어 실루엣도 신비롭다.
가느다란 헤드램프가 섹시한 눈빛을 보낸다. 유리 뒤로 감추어진 A필러 때문인가…
앞유리창과 옆창, 그리고 지붕이 하나의 커다란 유리 캡슐로 보인다.
68°나 기울어진 앞유리창은 뜨거운 햇볕을 받아 에어컨을 힘들게 한다.
그래도 멋이 중요하니 참아야 한다. 카마로 해치백의 뒤창은 미국 차 중 가장 큰 크기였다.
큰 보디에 어울리는 요코하마 275/40ZR 17 타이어도 우람하다.
운전석에 앉으면 사방 모서리에 대한 감각이 없다. 카마로는 역시 땅이 넓은 나라에서 탈 차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두 개의 스포일러 사이로 보이는 뒷시야는 만족스럽다.
낮게 앉는 운전석은 넓고 편하지만 뒷자리는 어른이 앉기에 비좁다. 카마로는 실내공간이 `서브 컴팩트` 클래스에 속한다.
스포츠카의 좁은 뒷자리는 앞시트를 눕힐 때 필요한 공간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뒷자리는 시트벨트 때문에 타고 내리기도 힘들다.
뒷시트를 접을 수 있지만 필요성은 의문이다.
시트를 접어 트렁크와 연결한다 해도 트렁크 안의 뒷바퀴 서스펜션을 감싸는 부분이 지나치게 튀어올라 실용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오직 멋만을 생각하는 카마로에서 이런 것은 따질 일이 아니다.
트렁크 뒤쪽에는 떼어낸 T톱을 세워 담을 수 있는 수납함도 따로 있다.
대시보드는 한숨을 내쉬게 한다. 미국차, 특히 일부 GM차의 엉성한 플라스틱 마무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카마로는 그나마 비싼 차가 아니라서 봐주기로 한다. 마음에 차는 것은 아니지만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대시보드 디자인이다.
계기판 양쪽으로 자리한 벤티레이션 구멍이 조금 느끼하지만 이 모양은 지금 없어졌다.
이 차는 또한 미국차에서 보기 드문 장비를 갖추었다. 바로 수동 6단 기어다.
그르렁거리는 엔진은 머슬카 카마로의 매력으로 자리잡았다. 5.7ℓ 푸시로드 엔진은 천천히 돌며 우렁찬 배기음을 전한다.
이 엔진은 튜닝을 달리해서 코베트에도 쓰인다.
차의 성질을 알기 위해 천천히 달리며 몇 가지 사실에 놀란다. 우선 운전하기가 쉽다.
스티어링 휠과이 페달이 가볍다. 시프트 레버의 조작이 부드럽고, 액셀 페달의 반응이 빠르다.
시승차는 약 5만7천km를 달렸지만 상태가 좋았다. 미국차는 거칠게 운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빗나간다.
좋은 조짐이다. 원래 F보디 포니카는 서걱거리고 덜컹이는 차체가 문제였다.
시승차는 3세대보다 차체강성이 상당히 좋아졌다.
매순간 박진감 있게 달리고 몸놀림도 좋아
굴곡진 길에서 6단 기어 쓰는 맛이 일품
힘은 생각했던 대로였다. 305마력의 힘을 끌어내는 6단 기어는 단마다 팍팍 당기는 맛이 기가 막히다.
시프트 레버의 운동거리가 좁고, 기어비도 가깝게 설정되었다. 알맞은 브레이크 성능 덕분에 달릴 때의 부담도 줄어든다.
엔진은 2천400rpm의 낮은 회전대역에 최대토크가 설정되어 있어 어느 순간에도 박진감이 살아난다.
덩치 큰 미국차가 급차선변경에서 보여주는 몸놀림은 뜻밖이었다. 예리하다.
0→시속 96km 가속시간이 5.3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편평율 40의 광폭타이어는 튀는 듯 부드러운 독특한 승차감을 전한다.
고속에서 뻗어나가는 박진감이 가슴 후련하다. 5단 기어에서도 치고 나가는 가속력이 좋았다.
반면에 6단 기어는 힘이 떨어져 경제적인 주행만을 위한 것 같다. 5단에서 최고속도를 내게 한다.
이 날 내본 최고시속은 210km. 힘이 남아돌지만 차들이 앞을 가로막아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카마로는 고속에서 긴장감을 요구한다. 안정감이 부족해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카마로가 가진 능력을 다 뽑아 쓰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차를 익혀야 할 것 같다.
`알고 달래야 할 차`라는 생각에 좁은 길을 달리며 있는 힘을 모두 끌어낼 수 없었다.
수동기어차 카마로에서는 미국 머슬카의 매력이 넘친다. 굴곡진 길을 달리며 1단부터 4단까지 모두 쓸 수 있는 기어가 재미있다.
요리조리 밀고 당기는 시프트 레버의 재미가 여간 아니다. 당기는 기어마다 치고 나가는 박진감이 카마로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차에 익숙해질수록 차와 한 몸이 되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마로의 성능은 커질 것이 분명하다.
V8 카마로는 2만5천 달러 정도였다. 미국차의 평균적인 값이다. SS는 조금 특별해서 2만8천 달러쯤 했다.
이 정도 값에 이런 성능을 얻기는 힘들다. 이 정도 값에 이렇게 멋진 차도 드물다.
미국의 포니카가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카마로가 판매경쟁에서 포드 머스탱에 뒤지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스포티한 차 카마로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차 머스탱에 항상 밀렸다.
요즘 포니카의 인기는 상당히 시들해졌다. 스포츠 쿠페의 인기 하락은 미국차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닛산 300ZX나 마쓰다 RX-7, 도요다 수프라 등이 미국 수출을 중단했다.
이제는 그 자리를 픽업트럭이 대신하고 있다.
또 혼다 시빅 같이 튜닝파트를 갖춘 일본차들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자동차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뛰어난 가치로 미국의 자존심을 지키던 포니카들이 무참히 무너지는 현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GM은 최근 카마로와 파이어버드의 생산을 끝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승협조 신일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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