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부 산문 우수상 >
‘자네’론(論)
신언식 안셀모 - 둔산동 성당
중학교 동기동창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친목과 우의를 다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난지 꽤 오래되었다.
이제는 모두 현직에서 은퇴해 백수가 되었지만, 만나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곤 한다.
은퇴전의 직업도 다양하고 개성들도 강해서 모이면 항상 시끄럽다.
하지만, 교육자 출신들이 많아서인지 보수적 성향이 강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이지만, 호칭만은 옛 중학교 시절이 재현된 듯하다.
서로 존칭은 아예 없고, ‘야’, ‘너’는 물론, ‘이 새끼’까지도 자연스러우며 참석율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자 출신인 한 친구가,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호칭에 대해서 좀 신경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물론 나도 교육자로 반평생을 살았으니 크게 동감하고, 적당한 호칭을 생각하다가 ‘자네’라는 용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 딴엔 그렇게 야하지도 않고 나이에도 걸맞다고 판단했으나, 큰 착각이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중학교 동기동창이긴 하지만 자주 만나지고 않았으며 직업도, 성격도 다른 한 친구가 그 호칭에 노발대발하며, 거의 언쟁 수준의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모였던 친구들은 ‘자네’라는 호칭의 타당성에 대해서 갑론을박하며 어색한 상황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네’라는 호칭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도 해보고, 사전도 찾아보며 고민을 했다.
국어사전에는 ‘자네’란 『‘하게’할 자리의 상대자를 가리켜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막역한 사이가 아니면 곤란한 용어라는 판단을 해줘서, 나의 경솔하고 단문함을 심각히 후회한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이후, 나는 나를 자네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전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나이도 있고 체면도 있으니, 직접 대놓고 싫은 감정을 말 할 수는 없어서, 자네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운동의 일환인 셈이다.
나를 자네라고 부르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나의 심각했던 경험을 은유적으로 얘기하면서 내 속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고는 있으나, 뜻과 같지 않아서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자네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판단되는 분들이 자네라고 부르는 것도, 기분 좋지 않게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자네라는 호칭이 무난한 제자나 나이어린 친척이나 친지에게도, 자네라는 호칭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호칭은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새삼 느꼈고,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기도문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신중하게 처신할 생각이다.
호칭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또 다른 모임은, 퇴직 교육자들의 모임인 삼락회인 것 같다.
은퇴한 교육자들이니 관례상 퇴직 당시의 직책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지만,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교육감・국장・과장・교장 등등의 호칭이 있지만, 그렇게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당연히 교육자들이었으니 ‘선생님’이면 될 것 같으나, 부르는 사람도 그렇고 듣는 사람도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어떤 분은 모든 삼락회 회원들에게, ‘교장(校長)이 아닌 ’교장(敎長)‘으로 부르자는 아이디어를 낸 바 있으나 반응은 별로였다.
대학교수나 의사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것 같으나, 초・중・고교에서 재직하던 교육자들은 자연스럽고 만족할만한 호칭이 아님은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전・현직의 직위에 관계없이 불러서 좋고, 들어서 즐거운 호칭이 있다면, 아마 삼락회는 회원도 늘 것이며 더욱 화기애애할 것이라 상상해 본다.
이렇게, 호칭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나에게 새로운 호칭이 등장한 것이다.
교육자로서 40여년을 봉직하다가 퇴임을 한 후, 보람 있고 즐거운 여생을 위해 신앙생활을 궁리하다가, 열심한 신자인 아내의 권유도 있고 해서, 천주교 신자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툴고 어색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차츰 적응이 되어 감은 큰 은총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성경의 구절도 있고 해서, 매일 기도도 바치고 성경・매일미사・야곱의 우물 등을 비롯한 신앙 관련 서적을 읽고, 더러는 내 생각을 글을 써서 투고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니 교우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고 ‘형제님’, ‘자매님’이란 생소한 호칭을 듣고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아직 익숙치는 않으나 듣거나 불러도 호감이 간다.
‘자네’나 나의 현직 때 직위를 부르는 호칭과는 전혀 다르게 정감까지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익숙해지도록 계속 사용할 생각이며, 욕심 같아서는 ‘자네’라고 부르던 친구도 ‘형제님’이라고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해 본다.
‘자네’란 역시 나에게는 묘한 느낌을 주는 호칭이 되고 말았다.
호칭 같은 사소한 문제로도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를 하는 이웃들과 어울려 살게 되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울까를 상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