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교회의 선교적 사명
송 재 식 목사 (-평신도신문 2007년 8월 5일)
요즘 “한국교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 라는 지적이 늘고 있다. 그 이유로 교회학교와 청소년들의 급격한 감소 현상과 교회의 노령화 현상을 들고 있다. 이러한 이상기류는 오래 전부터 예고된 서유럽 교회의 답습 현상이다.
교회가 소수일 때는 항상 교회됨을 잃지 않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을 나타내곤 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다수가 되면 교회됨을 상실하고 그 정체성이 희박해지곤 하였다.
초창기 한국 교회 평신도를 움직였던 두 바퀴가 있다면 남선교회와 여전도회일 것이다. 선교와 전도만을 위하여 존재했던 두 기관은 한국교회 대부흥운동과 세계선교를 주도해 왔다. 그러나 이 두 선교회는 교회의 부흥과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18세기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기 시작하였다.
언젠가부터 한국교회 남선교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선교와 전도에만 몰입하던 그 열심은 둔화되고 다양한 목적으로 자주 모이기 시작하였다. 아주 정치적이고 친교적인 날개를 달면서 용감해진 지도자들이 나타났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도 않으셨는데 마치 말씀하신 것처럼 확신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예수님이 보여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보여 준 것처럼 웅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한국교회의 영적 비틀거림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총회를 비롯하여 정기노회나 각종 대회의 이슈가 임원선출에 쏠려 있다.
필자는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금년의 남선교회 전국연합회 전국대회의 최고 관심사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조심스럽게 한 가지 제언을 당부한다. 창립 83주년 전국대회를 “선교대회”라 호칭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세계 오지에 파송한 선교사들의 Home comming대회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선교보고를 통해서 보내는 선교사(남선교회 전국연합회)로서의 사명을 다짐하고, 새로운 자각과 각성을 모색하는 선교대회로서의 대전환을 희망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전도하여 부흥하는 지교회 남선교회의 간증을 들으면서 1907년 대부흥의 르네상스(재생)를 일으켰으면 한다. 유명 인사들의 강연은 TV나 인터넷을 통하여도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교회(남선교회)의 본질이고 비본질인지 구분할 줄 아는 성숙한 회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찍이 고대 교부였던 이그나티우스(Ignnatius)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요, 누룩처럼 확장해 가는 지상의 낙원이다”라고 하였다. 이렇듯이 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있다. 하나님의 선교와 전도에 있다는 말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래 성령께서 교회를 탄생시키셨고 교회를 보전하시며 끊임없이 예수님이 보여 주셨던 하나님 나라를 땅 끝까지 보여 주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선교하는 교회와 함께 하시며 활동하신다. 선교하는 교회만이 날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한다.
남선교회는 이제 선교에만 올인(all in)해야 한다. 열매 없는 무성한 가지는 의미가 없다. 불필요한 가지는 잘라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튼튼한 가지만을 가꾸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이 왜 지루하고 쉽게 피곤해질까? 그것은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한 모험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모두들 안정지향 쪽으로 선회하였다. 너무나 뻔하고 흔한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다들 지쳐버렸다.
선교는 하나의 모험이다.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 선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선교적 사명을 잘 안다. 사도행전 20장 23~24절에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다.
바울은 결박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환란과 핍박이 오면 더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선교를 위해 겁이 없는 사람,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
남선교회는 이 세속사회가 결박할 수 없는 선교를 위한 공동체이다. 이제 하나의 모험을 시도해야 한다. 선교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로의 전환이다.
예수님이 공생에 동안 가장 싫어 했던 부류가 있었다. 자신은 변하려 하지 않으면서 환경(남)만 변하기를 기대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반복해서 질타하셨다. “희망이 없다” “망한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변하지 않으면 희망 없이 망하는 것이다. 한국교회 남선교회가 “오직 선교 올인”으로 변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화 있을진저”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급변하는 문명 문화 속에서 변화를 두려워 했던 유럽교회는 “화”를 경험한바 있다. 껍질(교회당)만 남고 내용(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없다.
남선교회가 예수님이 주신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지 아니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접하지 못한다. 남선교회 창립 83주년 전국대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기를 바란다. 남선교회에 한국과 세계의 운명이 달려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글 : 송 재 식 목사
* 평신도신문 논설위원
* 광주 서림교회 담임
( 평신도신문 2007년 8월 5일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