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황제'로 알려진 이는 50년대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이 나라 건달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인물.
1952년 대구 현병대 사령부에서 상사로 진급한후.1953년에 전역후
건달세계에 입문 하게되었다.계기는 일자리를 찾으로 다니다
대구에서 복무하던 시절 알던 대구 건달 2명을 만나 술먹는 자리까지 가
게되었는데 그곳에서 의기를 투합하자는 뜻에서 부터 비롯되 건달세계에
진출하게 된것이다.(23~24살)구 인현동 향다원 이라는 곳에 들락거리다
정팔 밑에 들어가게 되었지만.새까만 후배였다.신상사는 한번에 이름을
날리게된 건달이다.평양출신의 씨름꾼 최시헌을 꺽은후.정팔의 눈에 띠
어 명동파의 행동대장으로 5년간 맹활약을 떨쳤으나.58년에 일어난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그후부터 4.19가 터질때까지
건달계와 인연을 끊다가 1965년 봄부터 다시 명동으로 와 활동을 재개하
였다.신상사가 돌아오자 후배들이 명동으로 다시 모여 들었다.
이때부터 주먹들과 사람들은 이를 보고 '신상사파'라고 불리게 된거다.
어느 누구도 명동의 터줏대감인 신상사를 무시 못했으며.전국의 조직도
신상사파 와는 모두 친하게 지내려 했다고 합니다.세칭 '명동 사보이 호
텔 사건'의 표적 이기도 했습니다.1975년 1월 2일 오후 2시쯤 벌어진 이
사건의 지시자는 무교동의 황제 오종철 이었고.행동대장은 조양은 이었습
니다.이 사건으로 인해 조양은은 세까만 무명 주먹에서 전국구 주먹이 되
었고.신상사는 떨어지는 별이 되었죠.처음의 근거지는 사보이호텔 커피
숍 이었지만.이 사건후.충무로쪽의 수다방으로 활동무대를 옯겼습니다.
1978년에는 강남센터를 했고.1980년대 말에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그후.이태원 8군 사령부 옆에있는 크라운 호텔로 또다시.활동무
대로 삼았고.1990년 10월 13에 실시된 범죄와의 전쟁 선포후,건달계에서
완전히 손을 씻었다고 합니다.그후.외제차 판매 대리점 사업을 했다고 합
니다.유명한 유지광 과는 친구사이가 아닌 서로 적 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신상사 보다 유지광이 세상에 더 알려진거 같습니다.
허나.주먹계에서는 유지광보다 신상사가 더 알아줬고.전국구 주먹들도
신상사 앞에서는 전부다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1~3세대를 대표하는 전국구 보스 였습니다.
신상사의 심복:윤형기
오른팔:구달홍(마신주먹이자 경상도에서는 제일 잘나간다는 주먹)
중간보스:박웅(박정희 대통령의 조카로서 신상파파의 중간보스)
참.사보이 사건후.박웅은 박정히 대통령에게 조양은을 잡이 들여 달라고
까지 했다고 합니다.그만큼 큰 사건이였죠.
카페 게시글
『야인자료실』
신상사 "신.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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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2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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