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렐류드(Prelude) (중)
부르고스의 카사 에마우스
내가 쓸 수 있는 남은 날은 맥시멈(maximum) 20일 뿐이다.
350km 마드리드 길을 12일간에, 사아군까지 250km 프랑스 길을 8일만에 걸으면 된다.
매우 타이트(tight)하지만 능히 할 수 있다.
더구나 프랑스 길은 이미 익혀진 길이므로 시간의 단축도 가능하다.
그러나 팜프로나에서 부르고스까지 약 120km는 열차를 이용했다.
전혀 생소한데다 페르난데스 박사가 염려하며 다른 루트를 권할 정도로 애로가 많다는
역(逆)방향 마드리드 길에는 4일쯤 비축하는 것이 정석이라 판단되어.
무엇보다, 내게 프랑스 길은 극히 일부 구간 외에는 재차 걷고 싶을 만큼 매력있는 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길이 아라곤 길이었다면 아마 밤낮 없이 강행했을 것이니까.
이미 언급했듯이 아라곤 길이 향기로운 생화의 길이라면 프랑스 길은 무미건조한 조화,
무수한 성형으로 매력을 잃은 얼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팜프로나에서 부르고스(Burgos) 가는 열차는 비토리아(Vitoria)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부르고스 철도(renfe) 역사(驛舍)가 다운타운에서 북동쪽으로 4km쯤 떨어진 비이마르
(Villimar) 근처 교외로 이사했다.
AVE(Alta Velocidad Espanola/고속철도)의 개통(2015년)에 대비해 옮겼단다.
마드리드 까지 84분이 걸릴 것이라니까 시속 300km를 상회하겠다.
부르고스 공항이 한결 가까워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공항 교통과 연계된 이전인 듯.
옮긴지 2년 반(2008년12월) 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역과 시내 사이가 아직 황량하다.
버스가 있으나 당분간은 택시가 호황을 누릴 듯.
전라북도 남원역사가 이전 초기에 그랬는데.
쉼터는 커녕 그늘막 하나 없어서 햇볕이 쨍쨍한 한낮에 힘겹게 걸었다.
팜프로나처럼 통과했던 전번과 달리 1박하려는 부르고스의 숙소는 이미 점찍어 두었다.
동남쪽 끝 산 페드로 데 카르데냐 거리(C/San Pedro de Cardena)에 있는 에마우스의
순례자의 집(Casa de Peregrinos de Emaus)이다.
부르고스 대성당 앞 주 광장(Plaza Mayor)에서 에마우스로 가기 위해 산 파블로 다리
(Puente de San Pablo)를 건너가려다가 두 한국청년을 만났다.
그들은 내가 알베르게를 찾는 중으로 보였는지 자기네가 정했다는 대성당 인근 숙소를
권했다.(전번에 들렀다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타르다호스까지 갔었는데)
한데, 이 청년들은 언제 산티아고에 도착하려고 이처럼 만만디일까.
다리를 건너 조금 가다가 한 중년녀와 한가한 외곽길을 동행하게 되었다.
이 동행녀가 에마우스의 집 이웃에 거주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더구나 영어 대화가 가능해 오순도순 얘기하며 걸었으니까.
이웃녀 덕에 아주 편히 도착한 에마우스의 집은 산 호세 오브레로 교구교회(Parroquia
San Jose Obrero)가 도나티보로 운영하는 순례자의 집이다.
폐가(ruin)에 가까운 건물을 교회와 순례자 숙소로 리모델링하였다는데 아주 훌륭하며
(excellent) 특히 세심하게 배려한 숙소는 침대의 2층구조 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다.
사물함과 실내 조명까지도 개인의 자유와 편의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있다.
기부금 운영(donativo) 알베르게는 허술하다는 관념을 깨는 집이다.
(특히 야간에도 타인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 개별 조명 아이디어는 살만 하다)
"순례자여, 당신의 집처럼 편히 쉬십시오(Pilgrim, here you are at home, rest)"
벽에 부착되어 있는 한줄 글은 아주 잘 된 표현이다.
카사 에마우스의 수수께끼
부르고스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
UNESCO세계문화유산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을 비롯해 산 레스메스 교회
(Iglesia de San Lesmes), 산타 마리아 라 레알교회(Iglesia de Santa Maria la Real)
산타 마리아 우엘가스 수도원(Monasterio Santa Maria Huelgas), 산 힐 교회(Iglesia
de San Gil),산 에스테반 교회(Iglesia de San Esteban), 산 니콜라스 데 바리 교회(Ig
lesia de san Nicolas de Bari), 산 아마로 교회(Ermita de San Amaro), 산타 마리아
아치(Arco de Santa Maria), 산 마르틴 아치(Arco de San Martin) 기타 등등..
그러나, 이 모든 유산을 다 준다 해도 나는 에마우스의 하룻밤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내게 아주 특별한 밤이었다.
기독교 용어로 은혜가 충만한 밤이었다.
다만, 이 좋은 집에 든 손님이 나를 포함해 단 3명뿐인 것이 무척 아쉬웠다.
그나마도 2명(젊은남녀)은 각기 관리인 마리에 노에예(Marie Noelle)와 친분있는 여행
객이고 순례자는 나뿐이다.
왜 그럴까.
적자 운영을 걱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알베르게의 현실을 익히 알고 있는 늙은이가 본의 아니게도 피크(peak)에 접어든 5월
하순에 28명을 수용하는 최고의 시설을 독점한 것이 민망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순례자들은 이 편안하고 은혜로운 집을 두고 왜 북적대는 곳으로만 집중할까.
준비에서 마무리(설거지)까지 관리인 마리에 할머니(64세)와 공동으로 하는 식사(저녁,
아침)가 부담스러운가.
자국어(한국어도있다) 교독, 기도문으로 참여하는 취침전과 새벽 미사가 유연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가톨릭 신도인 나도 적응하는데 하물며 신도들에게 문제될 리 없다.
말이 많은 편이지만 열성적이며 시원한 성격인 마리에도 카리스마(charisma)를 풍기기
는 하나 경건주의자는 아니다.
설마, 걷는 것이 일과인 순례자가 외곽까지 더 걸어가야 하는 불편 때문일 리 없다.
그렇다면 순례라는 고행에 걸맞지 않는, 지나치게 편안한 집이라 기피하는 건가?
혹, 마리에 할머니가 손님을 가려서 받는 건 아닐까?
침대들이 바삐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 순례자가 왔다가 인터폰으로 몇마디 나눈 후 발길을 돌렸는데 무슨 얘기를 나눴으며
왜 돌아갔을까.
밝혀내지 못하고 떠나온 부르고스의 수수께끼다.
카미노 프랑세스, 두번 걸을 가치는 없는 길인가
두 번째 걷는 프랑스 길에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전 번에 외면했던 대체로(우회로)를 걷는 것과 미련이 남아있는 통과마을에서 묵는 것.
부르고스 ~ 타르다호스부터 실천에 들어갔다.
짧지만 굵은 것과 가늘어도 긴 것.
사람은 어느쪽을 선호할까.
젊어서는 호기있게 전자 편이라 해도 늙어지면 마음이 변해 후자쪽으로 기우는가.
그래서 굵고 짧게 사는 것보다 나이 많은 것이 자랑인가?
굵고 길게 사는 것을 가장 바라겠지만.
나이 과시현상이 동양인 보다 서양인에게 더 심함을 글로벌(global)길인 사도 야고보의
길에서 확인하며 걷는다.
마주친 두 서양인이 대뜸 내 나이부터 물었다.
영국인 72세와 70세 형제다.
자기네가 나보다 위라고 판단했나 본데 내 대답에 겸연쩍어 하는 것이 라라소아냐에서
나이 대기를 제안했던 영국 영감과 흡사했다.
서양인의 에티켓은 지극히 자의적이고 독선적인가.
40일만에 다시 찾은 타르다호스.
고에스가 지키지 않는 알베르게가 삭막했는데(메뉴 '카미노 이야기' 13회글 참조) 93세
노모를 무료하지 않게 지성으로 산책을 돕는 갸륵한 59세 아들이 공기를 돌려놓았다.
삼강오륜의 나라에서도 보기 드물어진 모습이라 그랬을 것이다.
하긴, 세 강과 자동차 바퀴(4개의 바퀴와 스페아 타이어)로 변한 나라에 흔하겠는가.
무료한 시간에 집에 엽서를 보내고 남은 우표가 3장이다.
이 우표가 소진되면 아마 나는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될 것이다.
집 생각이 불현듯 나는 건가 지쳐가고 있다는 증거인가.
프랑스 길의 사람들도 4월의 그들과 판이하게 다른 느낌이다.
그 때는 나이든 이들은 품위를 아는 것 같고 예의 바른 젊은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
는데 40여일의 기간차(期簡差) 밖에 없는 지금은 왜 그럴까.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서 그런가.
품위와의 거리가 멀고, 젊은이들의 행실도 하나같이 날날이 같이만 보인다.
전번에는 내가 윗층침대에 오르도록 놔두지 않고 앞다퉈 자리바꾸는 일이 100%였는데
지금은 힘겹게 오르내리는 것을 하나같이 방관할 뿐 아니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때도 자리 양보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없었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파격적인 경로우대(무료)를 반대하는 늙은이다.
극빈곤층은 국가적 사회보장 차원에서 내실있게 지원하고 전체적인 경로우대는 국민적
합의에 의한 경의의 표현으로 일정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대접받는 것을 당연시 하지 않거니와 서양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양보 이유는
예외 없이 '젊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송강 정철(1536~1593)의 시(詩)
<이고 진 저 늙은이 짐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가.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가>를 실천하고 있다.
심한 코골이가 남녀 불문 부쩍 많아졌고 이갈이도 등장했다.
개판같다는 느낌은 카미노에 대한 싫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까.
체력은 아직 왕성한데 정신력이 한계점에 접근하고 있는가.
백두대간 종주때 짜증나면 쉬어야 한다는 두타산 댓재 지킴이 노식의 말이 생각났다.
환산거리 1.000km가 넘는 백두대간은 4회나 종주했지만 싫증은 커녕 늘 새롭고 신선했
던데 반해 겨우 2번째 길에서 짜증이 난다면 재평가해야 할 길이 아닌가.
"두번 읽고 싶지 않은 책은 한번 읽을 가치도 없다"는 책의 금언이 길의 금언도 될까.
그렇다면 카미노 프랑세스는 두번 걸을 가치는 없는 길인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