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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우리집 대소사
*혁범 영통으로 이사
*혁진 회사 이전
*중기 보험 사고
*핸드폰 교체
*와이프 그린내과
*임대주택 신고
*광화문 집회와 코로나
*종을 친 해외여행
*종중 가묘
혁범 영통으로 이사.
작은 아들 혁범이가 수원 인계동에서 영통 살구골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신축 아파트는 아니지만 59평이라 널직하고 위치도 좋았다.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들을 의식하고 여기서 고등학교까지 마치려고 장기 계획을 세우고 집을 구입한 것이다.
5억5천에 구입을 하고 6천을 들여 전체 수리를 하고 3월 4일 이사를 하였다.
아파트에 가 보니 자기 취향대로 집을 고처 남에게도 자랑할 만하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이사 선물로 대형 TV를 신형으로 선물 하였다.
년 말이 되니 이 아파트가 2억이나 올랐다고 좋아한다.
혁진 회사 이전
큰아들 혁진이가 카나다 IT 회사에 10여년 근무하더니 poker stars 로 회사를 옮겼다.
옮긴지 1년도 되지 않아 교육 수학 게임 회사로 다시 옮겼다.
교육관계 게임이라 자기의 적성에도 맞는다며 이 회사에서 끝까지 자리 잡겠다고 한다.
년봉이 15만 불이니 상위계층에 속한다.
큰 아들이 교육 게임사로 취업하자마자 카나다에 코로나가 확산되어 전 도시가 셨다운 되어 온 국민 외부 출입을 금지한다.
본의 아니게 출근한 날로부터 재택 근무를 하여 응근히 신경을 쓰이게 한다.
지금은 일주일에 반은 재택근무 반은 출근을 하는 모양이다.
발전하고 있는 대형사에 취직을 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나 갈수 있게 된
것이 부모의 입장에서는 너머나 고마울 따름이다
SC 800의 수모
내가 일본 스미토모 크로라 크레인 SC 800을 1995년에 수입하여 장비 임대 사업을 하였다.
한국 리스에서 리스로 장비를 구입을 하였는데 정상적으로 작업을 하여 5년간에 리스료를 갚으면 장비 값을 다 갚는 구조이나 실제로는 10년이 걸린다.
10년이면 장비는 고물이 되는 편이고 리스사는 리스료를 챙기니 금융사를 위한 일 같지만 자금이 하나도 없는 우리는 리스로 장비를 구입하게 해 주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한 판이다.
다행히 사업이 일이년 잘 돌아가다가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라고 1998년에 IMF 금융 환란이 닥쳤다.
장비를 수입할 때 리스료를 딸라로 계약하였는데 이 딸라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하더니 계약할 때 800;1로 계약을 하였는데 순식간에 1700;1이 되어 버렸다.
한 달 벌어 간신히 한 달 리스료를 내는데 3개월 벌어 한 달 치 리스료를 내야 하는 어이없는 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당시 은행의 원화 대출 금리는 잘 받으면 12%에 대출을 받는데 연체 이자는 18%가 한도다.
은행의 대출 받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라 은행대출은 생각도 못하고 제2금융권으로 쏠리는 형편이다.
제2금융권인 보험사나 단자회사 등에서 대출을 받는 사람도 실력자에 속할 정도로 일반인은 대출받기가 힘들은 시절이다.
딸라의 리보금리는 5%미만이기 때문에 딸라로 리보금리를 받는다는 것은 은행 대출보다 매력 있는 일이었다.
IMF 환란이 닥치니 은행의 연체금리는 월 18%가 한도인데 어떤 법을 적용했는지 별안간 30%를 받는다.
제2금융권인 리스사는 연체료를 32%를 받는다.
나는 장비 리스료가 연체가 되니 연체의 이자가 눈덩이 같이 불어나니 해결할 방책이 없다.
장비를 헐값에 팔려고 하여도 구입할 사람이 없고 리스사에 장비를 가져가라고 하여도 묵묵부답이다.
환란으로 국가 경제가 무너지니 장비의 가동률도 떨어지고 연체금액은 쌓여만 간다.
국가의 중소기업들이 부도가나고 경제 질서가 무너지니 대량실업자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장비 계약서와 리스사의 연체금액 청구에 하자가 있다고 자료를 첨부하여 이의 신청을 하였다.
공정거래위원이 연락이 와서 나의 이의 신청을 인정하는데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인정금액을 돌려주라는 판결은 할 수 없고 상대방 리스사의 약관을 수정하라고 공문을 보내야 하는데 상대 한국 리스주식회사가 부도가 난 상태라 상대가 없으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온다,
내가 이의신청한 것이 소용없이 된 것이다.
고생고생하며 수입 장비 금액의 3배 이상 들여가며 이자를 포함하여 재계약을 하는 등 장비 값을 갚는데 또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 장비 크로라 크레인 80톤을 2020년 초까지 엔진부터 로라 크로라 슈판 모터 까지 새로 사고 수리하고 고처서 체대 빼놓고는 거의가 수리 교체하니 장비는 20년이 넘었어도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데 는 조금도 이상이 없이 수리 하였다.
SC800 전복 사고
수리 완료된 장비를 건설 현장에 투입하자마자 붐 조립 중에 사고가 났다.
보험사에 신고를 하여 보름동안 조사하더니 조립 시에 난 사고는 면책조항이라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장비사업을 지금까지 해오면서 조립 중에 난 사고가 면책이란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의 무지와 소홀도 문제지만 업계의 대다수가 이 문제를 놓고 그런 것이 있느냐고 나에게 되물어 오니 보험계약 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중에 하나다.
사고시의 구난작업비나 운반비를 제외하고 수리비만 견적이 1억이 나왔다.
2년 동안 작업을 하여야 수리비를 보충할 수 있으니 고물장비 가지고 고생길만 열렸다.
공장에서 2개월 동안 수리하며 공장장이 장비의 공구를 다 꺼내라고 하여 기사가 공구뿐만 아니라 예비 부속 전자용품까지 꺼내 실내에 보관해야 하는데 실외에다 놓는 바람에 2개월 장맛비에 공구가 녹슬고 전자부속은 접속 불량이 되어 나에게 손해를 가중시킨다.
돈 벌려고 장비를 구입하였는데 구입하자마자 IMF 환란에 이어 계속되는 사고와 부족한 기사 고용의 고뇌, 장비가 오래되어 연식 규제에 대한 현장의 기피 등 첩첩산중이다.
나는 돈을 벌기는커녕 사회봉사를 하러 다니는 사람 같다.
사업성의 가성비로 따지면 형편없는 사업실적이지만 쉽게 정리할 수만도 없는 여건이다.
그래도 팔십이 되어가는 나이에 집에서 놀지 않고 현장에 돌아다닌다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신형 핸드폰 교체
내가 쓰고 있는 핸드폰 삼성 겔럭시 S7은 우리 같은 사람이 쓰기에는 충분하고 남음이 있다.
이 핸드폰에 탑재해 있는 사용기능은 너머나 많고 복잡하여 나는 이 기능의 10%나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전화 걸고 메시지 받고 사진 찍고 카톡만 하면 그 외의 기능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문명의 이기를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작은 아들이 핸드폰을 교체하란다.
필요도 없는데 무엇 하러 바꾸느냐고 하였더니 지금 특별할인 해준다고 이때에 교환하라고 한다.
핸드폰이 1백만 원이 넘으니 생각해 볼만하다.
아들 쫓아 집사람과 나는 금년에 나온 신형 삼성 겔럭시 S20으로 핸드폰을 교체하였다.
화면은 커서 좋은데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에는 좀 커서 불편하다.
천지인의 알파벳 숫자 배열도 틀려 혼란을 준다.
사진을 찍을 때 렌즈와 화소가 많아 선명하게 나온다는데 우리 육안으로는 분별이 잘 안 된다.
통신사는 KT에서 LG로 바뀌었는데 청계산에 올라가 카톡을 하려면 잘 안 터진다.
수신 상태가 좋지 안다는 안내 문구만 뜬다.
KT 통신으로 할 때는 이런 일이 없이 카톡이 잘되었는데 LG 통신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통신사를 다시 갈아타려면 약정기간 2년 동안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대기업 LG에서 이런 전파수신을 모를 리 없는데 수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나는 핸드폰도 삼성 겔럭시 S20으로 바꾸고 시계도 삼성 액티브 X2로 바꾸어 장비는 신식으로 무장은 하였는데 사용하는 본인이 구식이라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와이프 그린 내과
막내 누이가 전화가 왔다.
우리 집사람이 대장암인데 나보고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들어 본적이 없다고 하였다.
압구정 복지관에서 들었는데 그럼 유방암인지도 확인해 보라고 한다.
그러고 집사람이 암에 걸려 큰일이 일어나면 내가 어떻게 살아 갈 거며 혼자 밥은 어떻게 해 먹을 것이냐며 근심 걱정을 쏟아 놓는다.
집사람이 그 지경에까지 되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느냐고 나를 문책 한다.
지금 병원에 가서 확인하자고 나보고 나오란다.
우리가 단골로 다니는 신사동 네거리에 있는 그린내과에서 누이를 만났다.
같이 원장실에 들어가 집사람의 병력을 보았다.
큰 병은 없고 혈압이나 약간의 조심할 점을 가리켜 주었다.
일단 암은 아니라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막내 누이의 전화 한통에 천국과 지옥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다.
집사람은 평소에 내가 아프면 요양병원에 간다, 연명치료도 하지 말라,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하기도 한다.
막내 누이와 집사람은 시누올케 사이인데 스스럼없이 잘 지낸다.
우리 집사람이 성질이 급하고 대가세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고 좋던 나쁘던 간에 속에 있는 말을 참지 않고 즉시 내뱉는 스타일이라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며 당황스럽게 할 때가 종종 있다.
막내 누이도 우리 식구들 중에서는 제일 성질이 급해서 다른 누이들도 조심을 하는데 우리 집사람 성질에는 못 쫓아온다.
막내 누이는 그런 점을 알고 시누이 인데도 참고 잘 지낸다.
이런 사건이 있고 한참이 흘렀는데도 집사람은 불숙 나에게 병원에는 왜 갔느냐?
내가 빨리 죽기를 원하는 거냐?
누가 먼저 병원에 가서 확인하자고 했느냐? 하며 강자를 부린다.
주택 임대 신고
건평 55평에 빌라를 짓고 맨 위에는 내가 살고 원룸 투룸은 임대를 주고 살고 있다.
임대차법이 바뀐다고 지금까지 제대로 신고가 안 된 몇 년치 임대서류를 모두 다 신고하라고 하니 전국의 세대주들은 우왕좌왕하며 물어보려고 해당 구청 주택과에 전화를 하니 10대나 되는 구청 전화가 하루 종일 통화가 안 된다.
세대주가 구청에 뛰어가 신고를 하려면 사람이 많아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고 서류 준비하는 데도 옛날 것 들이라 황망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우리는 세입자 서류가 다 있는데도 서류작성을 하는데 그것이 만만한 게 아니다.
아들이 집에 와서 밤늦도록 작성하여 구청에 신고하여 급한 불은 껐다.
정부에서 만들어 국회에서 통과한 부동산 3법이다.
정부에서 국민들을 편하게 만들지는 않고 불편하게만 한다.
차라리 법을 만들지 말고 그대로 두면 자동으로 해결 되는 것이 시장 원리인데 정부가 쓸데없이 참견하여 세대주를 골탕 먹이고 있다.
그러고는 전세는 1년에 7%이상 못 올린다,
또는 세입자가 만기가 되도 더 있겠다고 하면 2년 동안 더 있어도 되고 세대주가 나가라고도 할 수 없다는 법이다.
그 바람에 전국의 전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랐다.
아파트 값도 역대 정권 중 최고치로 올랐다.
이런 추세라면 무주택자는 저기주택을 보유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일 것이다.
자유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정부의 횡포고 통제 사회의 첫걸음이다.
우리는 부동산 임대 사업자를 냈는데 정부에서 임대 사업자를 모두 취소해 버렸다.
그러고는 정부에 입맛 맜게 금년 내로 임대사업자를 다시 내란다.
또 부동산 증세 4법이 시행되어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특히 2채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난처한 입장에 처해 버렸다.
집을 양도할 수도, 증여할 수도, 판매할 수도 없게 법을 만들어 놓았다,
세무사에게 증여하는 게 낳겠느냐고 물으면 자기들도 하도 법이 바뀌어 정확한 답변을 못해 준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을 편하게 하여 주어야 한다.
세입자가 약자라고 한쪽의 사정만 놓고 다른 역작용이 더 크게 일어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최하 책이다.
24번 뜯어 고친 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정부에서 제정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광화문 집회와 우한 코로나
1.정부와 박원순의 승리.
2.광화문 8.15 태극기 집회
3.광화문 집회 참가자 코로나 검사,
4.광화문 재인 산성
정부와 박원순의 승리.
광화문 태극집회를 막는데 정부와 서울시장 박원순이 성공 했다.2월22일 토요일 광화문 태극집회 때도 서울시에서는 우한 바이러스 감염으로 광화문 집회는 불법이니 의법 처리 하겠다고 세 시간 내내 방송을 광화문에서 했다.그러나 광화문 태극집회는 광장을 다 메우고 열기가 올라 우한 바이러스는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면 바이러스 감염은 안 된다는 경기도 의사 협회장의 안내방송도 나온다.
2월29일 3.1절 대 집회에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적인 모임에 모두 동참 하겠다는 결의가 팽배했다.
우한에 갔다 온 중국인 간병인이 청도병원에 감염을 시키고 신천지 교인이 대량 감염이 되어 대구가 우한바이러스 소굴이 되었다.
이 틈을 타고 서울시장은 바이러스가 전염이 되니 서울역에서 부터 광화문까지의 집회를 금지한다고 강력히 공고한다.전국적인 태극집회를 막을 수 있는 좋은 찬스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태극집회의 주력인 전목사를 구속하고 애국 구국 동지회에서는 우한바이러스로 3.1절 집회를 취소한다는 공시를 한다.이로서 3년간의 광화문 태극집회는 마지막 고지를 앞두고 열기가 싹 죽어 우익의 실패를 만천하에 공지해 주는 꼴이 되었다.
이로서 좌익 정부와 박원순 서울 시장의 성공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가 된 것이다.
3.1절 광화문 광장은 태극기가 하나도 안보이고 썰물에 빠져나가듯 인적 없이조용하기만 하였다.
이것이 우한바이러스에 속은 점잔은 신사 같은 애국우파의 태극기집회의 현실이다.
광화문 8.15 태극기 집회
광화문 8.15 태극기 집회에 집사람과 같이 참석 하였다.
오후에 광화문에 도착하였더니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인원이 인산인해였다.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북쪽으로 이순신 동상에서부터 세종대왕상을 넘어 광화문 정문까지 차도 인도 할 것 없이 꽉 찬 인파가 어마 어마 하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남쪽으로는 청계천 광장을 지나서 시청 대한문에서 남대문 까지 온통 태극기 물결이다.
집회에 참석한 인원이 가지고 온 태극기를 흔들 때면 광화문 잔체가 장관이다.
작년인 2019년 10월 3일 개천절 집회 때보다도 더 많이 나온 것 같다.
금년인 2020년 10월 3일 개천절 집회는 주최 측에서 최대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마지막 결전장으로 생각하고 만반의 각오로 대비하고 있었다.
좌익 정부는 태생부터 학창시절에 데모만 한 학생회 집단으로 정부와 청와대를 장악한 후에는 자기약점은 감추고 남의 약점을 잡아내는 데는 귀신이다.
더구나 데모하는 방법은 자기들이 경험 했던 터라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좌익 데모대에 비해 우익 태극기 집회는 광화문에서 정부 성토만 하다 끝나니 좌익 정부 관리들이 보기엔 새내기들의 젖비린내 나는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데모진압 방법은 경험 많은 좌익 데모꾼들이 온순한 우익 태극기 집회를 얼마든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온순한 태극기 집회라도 작년 10.3일 개천절 집회나 금년 8.15광복절 집회와 같이 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태극기 집회에서는 금년 개천절 집회에서 한번 보자고 벼르고 있다.
진일보한 방법으로 정부전복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잡겠다는 각오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 코로나 검사,
정부에서 광화문 8,15 태극기 집회 참석자는 모두 우한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동기회장도 대승적 차원에서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광화문 태극집회 참석한 동기생들이 하나 둘씩 검사를 받기 시작한다,
코로나 잠복기간이 5일이라 집회참석 후에 5일이 지나면 조용할 줄 알았다,
5일 후에도 메시지나 전화로 광화문 집회 참석자는 검사를 받으라고 연락이 와서 신경을 자극한다,
귀국자도 보름격리면 끝나는데 문자메시지 는 계속 날라 온다,
보름후인 8월 말일에 최총장도 검사를 받으니 참석한 동기생중에 나만 빠진 것 같다,
나도 많은 갈등을 했다,
광화문 집회를 잠재우기 위한 정부의 기막힌 전략을 감지했음에도 순한 암소 모양 끌러가서 내 이름을 올릴 가하다 여태껏 버텨온 내 자존심이 허락 하지 않아 포기 하였다
여름휴가차 강원도 휘닉스에 가니 평창군에서 광화문 집회참석자는 검사받느라고 연락이 온다.
8.15 광화문 집회 참석 후 보름이 지나 성남에 가서 식사를 하니 성남 시에서 검사받으라고 연락이 온다.
수원을 가니 여기서도 연락이 온다.
전화까지 와서 어디냐고 물으니 팔달이라고 하여 나는 거기에 간적 없다고 하니 다시 확인 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통신은 잘되어 있지만 개인 통신정보를 통신사가 정부에 제공하여 개인의 위치파악까지 나서는 것은 범법자도 아닌데 심히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같이 광화문에 참가 한 집사람도 열흘간 끌다가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음성판정이 나왔다,
집사람이 같이 가서 받자고 하여도 나는 단호히 안 간다고 하였다
걸리면 벌금도 나오고 구상권도 나오는데 고집 부린다고 한다,
정부 정책에 맞서는 게 아니라 얄팍하고 기만적인 시책에 순응할 수 없다는 나의 마음이다,
정부에서 건강을 첵크해 준다는데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마는 그것을 뿌리 처야 했던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지 알고 싶지도 않다,
광화문 재인 산성
우익에서 기다리던 10.3일 개천절이 왔다.
우익에서는 광화문에서 시청을 거처 서울역까지 태극기 집회참석자들이 꽉 메워서 좌익 정부에다 국민의 매운 맞을 보여주기 위한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광복절 태극기집회의 열기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나는 전철로 경복궁역애서 하차하려고 하니 전철이 무정차 통과한다.
독립문 역에서 내려 다시 회차하여 안국역에서 내렸다.
안국동 네거리에서 내려 광화문으로 가려는데 경찰들이 몇 겹으로 막는다.
종로 쪽으로 발길을 돌려 조계사에서 교보빌딩 쪽으로 골목골목 경찰의 제지 선을 피해 교보빌딩 뒤쪽까진 같으나 더 이상은 경찰의 벽에 막혀 진출할 수가 없었다.
종로통까지 나와 광화문 네거리의 이순신 동상이라도 보려고 하니 보이지 않는다.
광화문이고 시청이고 서울의 경찰이 다 모인 것 같다.
광화문에서 시청은 지하철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이나 일반차량도 모두 통제하여 경찰들만 있고 일반인은 얼씬도 못하게 한다.
집회중심축인 광화문 광장에는 수백 대의 경찰차가 대형 사각으로 둘러싸서 경찰차 안쪽으로 한사람도 들어 갈수 없게 버스와 버스를 붙여 놓았다.
이를 두고 문재인 이름을 따서 재인산성이라고 부른다.
텅 빈 광화문 광장에는 둘러 처진 버스만 있고 그 외각으로는 경찰들이 겹겹이 국민들 못 들어오게 방어하고 있다.
태극기 집회 참석하러오는 국민은 경찰 방어막 외각에서 산발적으로 모여 열을 내다 흩어지는 현상이다.
우익에서는 정부 측이 이렇게 재인산성을 쌓으며 경찰을 동원하여 원천봉쇄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결과는 우익태극기 집회가 좌익 정부 측에 완패를 당한 것이다.
힘 한번 못 써보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전략도 없으니 우익이 패할 건 명약관화한 것이다.
코로나 방어한다고 광화문 집회를 막는 정부는 이번에 코로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폭 망해도 코로나 핑계되면 모든 것이 끝이다.
종을 친 해외여행
나는 해외여행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갔다 온 사람 중의 하나다.
부부 동반해서 72개국을 갔다 온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각 나라를 샅샅이 뒤져 구경한 것은 아니고 여행사 쫓아서 각 나라를 점찍고 왔다는 표현이 맞을는지 모르지만 여행사도 나름대로 목적의식을 갖고 여행지를 선정하니까 각 나라의 포인트는 섭렵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금년 우한코로나 코비드19로 2020년 1월부터 10월인 지금까지 해외여행 금지라 지금서부터 1년 이상 더 가야 해외여행이 풀릴 전망이다.
우한코로나로 금년은 전 세계가 난리라 여행사나 항공사는 죽을 맛이고 세계경제는 침체되어 현상유지를 하면 선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우한코로나 발생 전부터 경기가 하락하여 중소기업이 문 닫기 시작하고 대량 실업자가 생기는데 우한코로나가 덮치어 국민이 우한 코로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경기침체는 덮어져 버렸다.
여행을 다닐 때 가이드를 어떤 사람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역사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되면 여행의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동유럽 갔을 때 가이드의 해박한 지식은 나를 놀라게 했으며 유럽의 역사와 사회상을 깊이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에 갔을 때는 현지 가이드가 성탄절은 예수가 탄생한 날이 아니고 골고다 언덕을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간 것이 아니고 힁목을 메고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여태껏 신부 목사들이 거짓말한 것을 생각하니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폴투칼에서는 여권을 잊어버려 곤욕을 치르고 이태리에서는 소매치기에게 몸 뒤짐도 당하고 발칸반도에서는 일행을 잊어버려 허둥대기도 하였다.
유럽이라고 하면 질서 있고 예의 바르고 정의롭다고만 생각하고 우리보다 선진국이니 우리는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였다.
막상 유럽을 돌고나니 이런 나의 생각은 우리나라가 최빈국일 때 들은 이야기 이다.
현재는 소매치기의 천국이고 화장실에서 돈 받고 옛날 영화를 누리던 시절의 잘 지어진 유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여 돈을 벌어 먹고사는 나라로 보인다.
지금의 우리나라 화장실은 세계최고다.
유럽관광지는 우리보다 10년 앞에 일본인이 쓸고 갔고 다음 우리나라사람들이 몰려다니다가 10년 후에 중국인들이 물밀듯이 유럽을 쓸고 다녀 명품을 싹쓸이 하고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여행객들이 제 잘났다고 키 재기를 한다.
어디 나라 갔다 왔느냐 무엇을 보았느냐 하며 자기가 제일인줄 안다.
여행 초반엔 북 유럽 갔다 왔다고 하면 경쟁자가 사라지더니 다음엔 발칸반도 갔다 왔느냐로 바뀐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행이 무르익을 땐 비행기 티켓 16매 들고 남미에 갔다 왔다고 하면 여행의 고수라고 인식한다.
아프리카 갔다 왔느냐고 물으면 3번 갔다 왔다고 하면 입을 다물고 경이의 대상으로 본다.
여행하며 감동을 한 것은 중세 유럽을 그대로 유지한 체코의 체스키 크롬로프를 봤을 때 동화의 그림 같은 풍경에 황홀함을 느꼈다.
인도의 카주라호의 에로사원을 봤을 때 인도를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에로사원 안팎으로 그 많은 미투나를 조각한 것이 상상을 뛰어 넘는다.
또 엘로라 힌두사원은 땅위에서부터 돌을 파내려가며 그렇게 큰 사원을 완성하였다는 것이 현대 기술로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페루의 마추피추.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의 거대함에 경이감을 느낀다.
우리나라는 대형 토목공사가 없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유적은 없지만 기록문화가 발달하여 실록이나 인쇄는 우리나라를 쫓아올 나라가 없다.
일반 팻케지 여행 외에 환갑이 넘어 집사람과 작은 아들을 데리고 일본 하꼬네 스키여행을 갔다 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군대 동기생들과 옛날에 전투를 했던 월남 전적지 방문과 임관 45주년 미국 동기회에 참석하기 위해 먼저 멕시코 엔세나데 까지 갔다 온 것도 기억에 남는다.
여름휴가로 큰아들 식구와 작은 아들하고 필리핀 보라카이여행에 이어 큰아들은 캐나다로 가고 작은 아들 식구와 필리핀 세브로 두 번이나 갔다 왔다.
우리나라 여행객은 60대가 주류이며 50대가 다음을 이룬다.
10여 년 전부터 여행하는 팀 중에서 항상 내가 제일 상좌다.
내가 어리게 보이니 나보다 서너 살 아래인 사람이 상좌라고 행동하다 내 나이를 알아보고는 여행객 모두가 놀라는 기색이다.
임오생 말띠이니 이제80이 되어 간다.
나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 일단 80개국을 채우려고 했으나 우한코로나로 세계의 길이 막혀 두고 볼일이다.
같이 동행한 우리 집사람이 처음엔 여행에 매우 부정적이더니 차츰 적응하여 지금은 여행가자면 두말안고 따라온다.
자기 친구들에게도 여행이야기만 나오면 자기를 앞지를 사람이 없다고 흐뭇해 한다.
이 모든 여행을 자가 경비로 했으니 여행비도 제법 많이 들었다.
여행해 보니 그래도 한국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다.
경치 좋고 계곡물을 마실 수도 있고 사계절이 있으며 그래도 어른을 공경할 줄 안다.
선영 가묘
우리 집안의 선영은 청계산 하오고개 근처에 모여 있다.
금토동 증조 묘를 사촌이 파묘한 것을 제외하면 5대조 묘가 청계산에 있어 성묘할 때에 시제 지내려고 음성으로 서울로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되어 교통에 불편함이 없어서 다행이다.
명절에 친구들은 고향 갔다가 오는데 교통 혼잡으로 고생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집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고조부와 부모님 산수가 청계산 칠 부 능선에 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로 좋다고 하여 자리를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후손들이 경배 드리기 위하여 산소에 오르기에는 길가에서 너머 멀리 떨어진 고지에 있는 것이다.
정월인 겨울에 산소에 올라가도 몸에 땀이 나니 시제도 좋지만 조카나 손자들의 불평을 매년 들어야 했다.
결국은 집안에서 공론화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이장을 하자 화장을 하자 새로운데 가족묘를 만들자는 등 의견이 분분한데 조카들은 나의 눈치만 본다.
특히 집사람이 제일 불만이 많다.
아버님 어머님 젯날 차례음식을 싸 가지고 산소에 오르는데 무릎이 아파 죽겠는데 이렇게 높은데 계신다고 나에게 분풀이를 한다.
그래도 우리 집의 큰일이 있으면 우리 부부가 또 올라와 부모님에게 큰일을 고한다.
살다보니 형들은 작고하고 막내인 내가 집안의 좌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안동 권씨 세향을 음성 안동 쫓아다니며 참석하고 있는데 우리 직계조상을 이제 와서 화장을 한다니 나의 마음가짐으로서는 도저히 화장은 용납이 안 된다.
그렇다고 가족 납골당을 하자니 경비도 만만치 않아 종중산만 팔아먹고 나 몰라라 하는 사촌보고 경비를 대라고 하면 펄쩍뛸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매년 명절만 되면 나는 정장을 하고 시제를 지내려고 산소에 가는데 고조와 부모님 묘를 올라갈 때면 은근히 신경이 쓰여 결정을 못하고 있는 내가 괴롭다.
내가 조카들에게 말을 하였다.
내 생전에 이 묘의 이장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후손들은 나중에 폐총으로 만들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어떤 해결방안이라도 찾아야겠으니 너희들의 의견을 말하라고 하였다.
조상한테 잘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겠다는 마음의 방침을 세웠다.
조카들은 5대조가 같이 들어가는 가족묘가 아니고 한기가 들어가는 납골당을 생각하고 있어 나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평장을 하자는데 그렇다면 현재의 자리에 그대로 두지 애쓰고 이장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차라리 청계산 능선 밑에 자리 잡자고 하였다.
혁용이 보고 할아버지 묘 올라가는 초입능선에 자리 잡으라고 가리켜 주고 일단 가묘를 하는데 이 작업을 네가 맡아서 하는데 경비는 내가 대겠으니 해보라고 하니 알아서 해 보겠다고 한다.
또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일의 진척이 없다.
내가 들어서서 굴삭기를 찾았다.
공투 포클레인 기사를 찾아 지형정찰을 시켰다.
작업을 시작한다고 하더니 월대가 잡혀서 못한다, 다른 기사는 올라가는데 험하고 하천법 산림법에 저촉돼서 자기는 안한다, 또 다른 기사는 젊은 기사를 찾아봐라 하며 애를 태운다.
다행히 처음 소개했던 기사가 시간이 되어 작업을 시작하였다.
오전에 길 닦고 오후에 본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틀 동안 증조 부모 외에 한자리를 더 했다.
내가 죽으면 현충원에 가던지 여기에 묻히던지 자식이 결정하라고 예비 묘를 만들었다.
내가 여기 묻히면 우리 대 까지는 여기 청계 산에 모두 묻히는 것이다.
고조나 부모님 이장은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날 잡아서 모실 것이다.
몇 년 동안 신경 쓰던 이장관계를 어느 정도 진행하니 마음이 홀가분해 진다.
이 작업을 할 때 집사랍은 집에서 촛불을 키고 안전을 기원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