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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들은 누구나 한두 곳 정도 몸을 담고 있는 곳이 있기 마련입니다.
산악회라는 곳이죠.
산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산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하고, 어느 정도 산을 익힌 이들에게는 산우山友를 만들어주고 그리고 산을 좀 안다는 이들에게는 산행의 편의를 제공해 주는 곳입니다.
그러니 산행을 하는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산의 참 의미도 모르는 체 그저 안내자 역할만 하거나 쓸데없는 유희의 장으로 변질된 곳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산악회를 별로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게 산행 코스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는 유일한 산악회.
분당·수지·죽전에 터를 잡고 있는 해밀산악회입니다.
'비가 온 뒤에 맑게 개인 하늘'이라는 뜻이라고는 하는데 순우리말은 아니랍니다.
그럼 외래어?
아직 그 단어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지켜 볼 일이긴 합니다.
어쨌든 이 해밀이라는 산악회는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야돈 회장님을 위시하여 산행에 전문성을 가지고 계신 고문님이나 총대장님 그리고 '봉사'라는 너그러운 혹은 아름다운 일을 몸소 행하고 있는 대장님들.
거기에 회원들 면면히 산을 알고 싶어하는 의지가 충만되어 있으니 늘 산행은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안전 산행'을 첫 번째로 추구하니 별다른 사고가 없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일 것입니다.
사실 광명에 사는 제가 멀리 떨어진 이 해밀산악회에 다닌게 된 원인을 따져보면 참으로 우연이었습니다.
2016. 3. 13. 21:39
제 블로그를 들른 지혜총무님으로부터 해밀에 딱 맞는 사람이라며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냥 한 번 들른 산악회의 행선지는 땅끝지맥을 하고 있던 제게 딱 맞는 주작·덕룡 코스.
그날 불행히도 봉회장님 장모님께서 돌아가신 날이 됐고....
그러고는 같은 해 6. 6. 특별산행으로 설악 화채능선이 올려졌는데 그걸 뒤늦게 알게된 저는 지혜총무님께 한 자리를 청했으나 이미 만차.
그런고로 특별하게 결원이 생기지 않는다면 가지 못하는 상황.
출발하는 시간까지 결원이 생기지 않자 지혜총무님의 통큰 양보로(뒤에 알게 됨) 겨우 화채로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해밀사람이 된 것인데 오랜만에 지혜총무님이 산행에 참석을 하신다니 그때의 고마움을 전해드려야겠습니다.
그 해밀에서 2019년도 안전산행을 기원하고 회원들 간에 이런 취지를 다짐하는 시산제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제일 잘 먹힌다고 하는 계룡산.
개인적으로 많은 추억과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동학사 사하촌의 한 식당.
대성암.
용산고등학교 3수형.
중장옥 탱크....
시산제를 위한 산행 코스가 역시 남다릅니다.
그저 시산제라고 하면 간단하게 산행을 마치고 '딩가딩가' 술이나 마시다 오면 되는데 해밀에서는 천장골 루트를 이용한다고 하는군요.
생각 같아서는 장군봉512.4m ~ 신선봉649m ~ 큰배재 루트를 이용했으면 좋았으련만 그 루트는 위험하기도 한 곳이니 많은 인원이 진행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뒤따를 것 같습니다.
수지구청으로 나갑니다.
늘 그러하듯이 03:00 정도 일어나 책 몇 장 읽고 서해안선 ~ 외곽순환도로 ~ 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합니다.
설렁탕집 앞에 주차하고 이른 아침을 든든하게 먹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30년 지기인 '노박사(닉 여운)' 부부가 나와 있는 것입니다.
대단한 산꾼인 노박사를 만나게 되다니....
잠시 옛 얘기를 나누며 추억에 젖습니다.
앞으로 해밀의 정회원으로 자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역시 계룡산은 첫사랑의 산인만큼 많은 것을 주는군요.
계룡산을 봅니다.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차령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가다가 금강의 침식으로 허리가 잘리면서 분리되어 형성된 잔구이다. 지도상으로 대전·공주·논산을 연결하여 세모꼴을 그린다면 그 중심부에 자리 잡은 것이 계룡산이다.
이 산은 대전에서 서남쪽으로 25㎞ 지점에 있는 동학사 지구와 공주에서 동남쪽으로 19.6㎞ 지점에 있는 갑사 지구로 구분된다. 동경 12.7°7′∼12.7°19′, 북위 36°16′∼36°28′에 있으며, 총 면적은 65.34㎢인데, 공주시에 42.45㎢, 계룡시에 11.9㎢, 논산시에 2.12㎢, 대전광역시에 8.86㎢로 걸쳐 있다.
산 이름은 주봉인 천황봉(天皇峯, 845m)에서 연천봉(連天峯, 739m)·삼불봉(三佛峯, 77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계룡산은 풍수지리에서도 우리나라 4대 명산으로 꼽힐 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제5위를 차지하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계룡팔경은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삼국시대부터 큰 절이 창건되었으며, 지금도 갑사·동학사·신원사(新元寺) 등 유서 깊은 대사찰이 있다. 특히, 철당간·부도·범종, 각종 석불, 『월인석보』의 판목 등은 현전하는 중요한 불교 문화재이다.
또, 숙모전(肅慕殿)·삼은각(三隱閣) 등 충절들을 제사하는 사당과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오누이탑, 그리고 조선 초에 왕도를 건설하다가 중단한 신도안 등 명소가 많다.
이 산은 『정감록(鄭鑑錄)』에 피난지의 하나로 적혀 있는데 이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 신도안을 중심으로 수많은 신흥종교, 또는 유사종교들이 성하였으나 지금은 정리가 되었다. 계룡산은 공주·부여를 잇는 문화 관광지로서, 유성온천과도 연결되는 대전광역시 외곽의 자연공원으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계룡산을 쳐보면 나오는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여암 신경준(1712~1781) 선생이나 최성우, 육당 최남선 심지어 돌아가신 이우형 선생이 묘를 박차고 뛰어나올 얘기들의 연속입니다.
계룡산이 차령산맥에 속해 있다니!
차령 산맥을 눈으로 본 사람 어디 있습니까?
산맥이란 그저 땅속에 있는 지질구조선을 사람의 머릿속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표 위로 끌어올린 것 아닙니까?
고토 분지로(1856~1935)가 이 차령 산맥을 걸어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알려준 대로 그저 정맥의 꽃이라 불리는 금남정맥이 지나는 곳에 있는 산으로 보면서 여기에서 하나의 지맥枝脈 즉 용수지맥(신산경표에서는 관암지맥)이 가지쳐 나가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인식하면 될 것이고 또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계룡산이 닭계鷄에 용용龍 자를 쓰고 있는 것에 착안해 '능선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하거나 나아가 풍수지리를 동원하여 ’금계포란형‘이니 ’비룡승천형‘이니 하는 말까지 도는 데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어 이제는 누구나 그런 얘기에 전혀 의심을 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폐해입니다.
그런데 국어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 龍은 그저 산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죠?
계족산이 나오고 달뜨기봉 즉 월출산이 나왔으니 이쯤 되면 이들의 어원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국어학적으로 ‘ᄃᆞᆯ’은 ‘높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지금은 쓰이지 않고 있다. 굳이 지금 쓰고 있는 용례를 보자면 ‘매달다’나 ‘키다리’ 같은 말들을 들 수 있겠다. 이 ‘ᄃᆞᆯ, 달’이 지명에 쓰이면서 ‘높다, 크다’라는 말 이외에 ‘고을, 성城’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러니 ‘달동네’라고 하면 지대가 높은 ‘산동네’를 뜻하는 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달천, 달내‘ 등도 높은 산에 있는 물줄기로 이해하면 되겠다.
문제는 이 ‘달達’이 하늘에 떠 있는 달로 보아 ‘月’로 변형 되었다는 것이다. 그 예가 월출산이나 월악산이 되며 월봉산도 같은 이유로 생기게 된 산 이름인 것이다. 그러니 ‘달나뫼’나 ‘달래뫼’가 월출산이 된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딸뜨기봉’은 오히려 월출산이었던 이름을 우리말로 좀 부드럽게 순화시킨 모양새다.
<사진 4> 뒷줄 우측 끝의 오산과 그 앞줄의 삼태봉과 오봉산.
그런데 여기서 ‘달’이 발음이 비슷한 닭鷄‘으로 쓴 경우다. 풍수지리학에서는 ’산山‘을 ’용龍‘이라 하기 때문에 계룡산鷄龍山의 경우도 그저 ’높은 산‘ 정도의 의미였지 결코 ’금계포란형‘이니 ’비룡승천형‘이니 하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즉 이 산 이름을 보고 지어낸 이름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鷄'는 우리말 '달'을 나타낸 글자로 국어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계족산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여 ‘닭발’ 혹은 ‘닭다리’ 모양을 한 산 나아가 ‘닭 벼슬’ 모양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 근간 '현오와 걷는 지리산' 342쪽 이하
다른 얘기는 산에 올라가면서 얘기하도록 하죠.
09:18
동학사 주차장에 내려 천장골 입구로 갑니다.
2015. 9. 18. 존경하는 산우 '산으로' 박흥섭과 함께 용수지맥을 하기 위하여 이 길을 오른 후 처음이니 무려 3년 6개월 만이군요.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하긴 37년 전 어느 날 첫사랑의 그녀와 버섯전골로 점심을 먹었던 곳이 바로 저 식당이었으니....
제3학봉교 앞 동학식당 우측.
09:27
천장골 입구로 우틀하여 들어갑니다.
시작이야 다들 두툼하게 끼어입고 나서지만,
09:41
천지암 입구 정도에서 다들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완연한 봄이라는 느낌입니다.
여성 대원들의 옷차림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나무 계단을 올라,
10:24
신선봉649m 사거리인 상배재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우틀하면 신선봉 ~ 장군봉 루트로 진행하여 박정자로 진행할 수 있고 좌틀하면 635.7봉으로 올라 동학사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직진하여,
10:30
남매탑 고개를 지나,
10:35
동학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 후,
10:37
남매탑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이른 점심을 먹고가기로 합니다.
이 남매탑은 男妹라 쓰지 않고 娚妹라고 쓰는군요.
비문에 쓰여진 글을 보니,
이 남매탑은 신라 성덕왕 23년(723년)에 회의화상에 의해 건립된 후 오랜 세월을 견뎌오다 1944년 봄 도굴배에 의해 쓰러진 후 복구되지 못하다가 1961년 가을 대전 효동에 거주하던 김선용씨의 희사로 중수재건 되었다고 합니다.
상원암.....
45분 정도 있다가 일어납니다.
노박사와 지리산 님 덕에 맛있는 미역국과 무두부국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11:28
삼불봉 삼거리로 올라,
B조는 시산제 준비를 위해 금잔디 고개 방향으로 내려가고 A조는 좌틀하여 삼불봉으로 오릅니다.
드디어 계룡산 천혜의 경관을 가진 소위 자연능선 코스로 듭니다.
그 얘기는 곧 지금부터 금남정맥에 듦을 얘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밀하게는 이 삼불봉을 사면치기하는 길이 정맥길이긴 하지만 정맥에서 이 삼불봉을 빠뜨린다면 좀 찝찝해서리.....
이곳부터 관음4거리까지 잠시 금남정맥을 밟습니다.
삼불봉을 오르면서 좀 성급하기는 하지만 그 금남정맥을 확인합니다.
중앙 아래 금잔디 고개가 보이고 바로 우측의 안테나봉 옆이 수정봉675m입니다.
여기서 보면 정말이지 볼품 없는 봉우리입니다.
하지만갑사방향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죠?
그 정맥길은 그 뒷 능선에서 좌틀하여 내려가다 우틀하여 만학골 고개를 넘어 326.9봉 ~ 팔재산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멀리 희미하게나마 용수지맥의 우산봉573m이 높게 보이는군요.
11:42
그러고는 삼불봉입니다.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얘긴데 부처님 상이라는 얘깁니까?
불교지명설입니다.
오늘도 후미를 보며 많은 조고를 아끼지 않으신 월드썬 부회장님.
아!
뒤로 천황봉과 그 우측의 쌀개봉이 보입니다.
이 길과 이어지는 금남정맥 길인데 저 쌀개봉에서 좌측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보입니다.
그 지능선과 이 삼불봉 능선 즉 정맥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용수천입니다.
그러니 저 지능선이 이 용수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갈 경우 그 능선의 길이가 30km가 넘으면 지맥枝脈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그 이름은 용수지맥이라 불릴 겁니다.
그런데 웬 용수지맥?
지맥 좀 했다고 하는 분들이라면 용수지맥이라는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관암지맥 아니야?"하실 겁니다.
물론 존경하는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에 따를 때 '관암지맥'이 맞습니다.
대한산경표와 신산경표 좁게는 용수지맥과 관암지맥의 차이점을 살펴볼까요.
참고도 #1 관암지맥 개념도
신산경표에 의하면 계룡산의 쌀개봉에서 분기한 지능선은 천왕봉 ~ 황적봉 ~ 민목재 ~ 관암산 ~ 우산봉 ~ 부용봉을 지나 금강으로 잠기는 도상거리 42.7km의 산줄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지맥의 끝을 보면 합수점이 아닌 그저 긴방향으로만 진행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바, 그렇다면 이는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에 어긋나게 됩니다.
3. 지리산의 지맥枝脈
지맥은 대간과 정맥의 하위개념이다. 즉 대간大幹〉정맥正脈〉지맥枝脈이니 지맥은 산줄기 계급 체계의 제일 하위에 있는 개념이다. 물론 기맥, 분맥, 단맥, 여맥도 상정할 수 있지만 너무 세분시키는 것이기도 하며 논란만 부추기는 격이니 여기서는 언급을 피한다.
지맥이라는 계급이 붙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①‘산줄기 요건’으로 백두대간이나 정맥 그리고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지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여야 한다. 그리고 ②‘물줄기 요건’으로 그 줄기가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합수점형)여야 하며, ③마지막으로 ‘산줄기의 길이 요건’으로 그 도상거리가 30km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들이다.
다만 ②요건의 경우 산줄기를 조금 더 유용하게 쓰기 위하여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는 바, 가령 관련된 물줄기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울타리형)이나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산줄기형)의 경우 등이 그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합수점형, ㉯울타리형, ㉰산줄기형 등 세 가지가 유형에 해당되어야 한다. 좀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산줄기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차근차근 살펴보자.
㉮ ‘합수점合水點’형의 예
<사진 4>
위 개념도는 백두대간 지리산 입구인 여원재에서 고리봉을 지나 만복대 ~ 반야봉으로 진행하는 대간능선과 대간길의 만복대 바로 앞에서 가지를 쳐 밤재 ~ 견두산 ~ 형제봉을 지나 서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3.2km의 가지줄기 개념도이다.
이를 위 지맥의 3요건에 대입시켜본다.
보다시피 이 가지 줄기는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줄기이니 ①요건에 합당하다. 그리고 이 줄기가 백두대간 만복대 부근에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 서시천이라는 물줄기가 발원을 하는데, 이 서시천이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인 섬진강과 합류되는 합수점인 개념도 ‘A'의 곳에서 이 줄기의 맥이 잠기게 되니 이 역시 ②요건에 합당! 그리고 이 가지줄기의 도상거리는 33.2km가 되므로 기본 요건인 30km를 넘으므로 이 역시 요건 ③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가지줄기는 枝脈이라는 계급을 얻게 되고 그 이름은 강 이름인 서시천을 따서 ’서시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는 고유명사가 된다.
㉯울타리형의 예
합수점형에 비해 설명이 조금 복잡해진다. 산줄기가 여러 개 나오긴 하지만 원리는 같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사진 5>
좌측 개념도의 주主줄기는 역시 백두대간이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백두대간에서 큰 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쳐 나가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에서 보청천이 발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정맥 이름이 암시하듯 이 산줄기는 금강의 북쪽을 진행한다. 그러므로 이 보청천이 10대 강 중 하나인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을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보청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두 개의 산줄기가 잠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산경표 상으로는 팔음지맥과 금적지맥이 그것이며 대한산경표 상으로는 보청지맥과 보청북지맥이 그것이다.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필자가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대한산경표의 이름으로 얘기를 이어가겠다.
똑같은 물줄기로 들어가는 두 산줄기의 우선권은 그 산줄기가 속한 주산줄기의 계급이나 세력에 따른다. 이 경우 백두대간〉정맥이므로 이 물줄기는 백두대간 몫이다. 따라서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으로 잠기는 줄기는 대간에서 분기한 줄기이므로 ①의 요건을 충족하고 합수점으로 갔으니 이 역시 ②의 요건을 충족한다. 마지막으로 이 가지 줄기의 도상거리가 57.7km가 되니 지맥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 지맥의 이름은 물줄기 보청천의 이름을 따 보청지맥이라 명명한다.
이렇듯 ‘합수점’형인 이 보청지맥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보청천으로 들어온 다른 줄기가 문제이다. 즉 이 줄기 역시 한남금북정맥이라는 정맥에서 분기 되었으므로 ①요건은 충족하며 이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약 49.6km가 되므로 이 역시 ③요건을 충족한다.
다만 합수점은 합수점인데 주主산줄기가 아닌 부副산줄기이기 때문에 위 보청천에 밀리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보청천의 북서쪽 울타리 역할을 하므로 이런 경우는 지맥의 유형 ‘②울타리형’으로 보아 지맥에 편입시키기로 한다. 엄격한 해석보다는 산줄기를 유용하게 사용하자는 취지이다. 따라서 보청천의 북쪽으로 잠기는 산줄기이므로 이름은 ‘보청북지맥’으로 명명한다.
㉰산줄기형의 예
위에서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의 유형을 ‘산줄기’형이라고 분류한다고 했다. 이는 혹시나 합수점형이나 울타리형으로 분류될 경우 모두 잔가지 가령 여맥이나 단맥 등으로 처리되어 지맥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됨에 따라 선조들이 물려주신 이 소중한 산하를 유용하게 선용하지 못하는 불합리함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라 이해하면 된다.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인 합수점으로 가지 않는 특수한 경우니 이를 산자분수령의 예외 유형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강이나 하천을 동원할 수도 없으니 물줄기 이름을 붙이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그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로 한다.
<사진 6>
물론 이 경우도 ②의 합수점 요건에만 예외가 되기 때문에 ①, ③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위 참고도의 경우 금북정맥의 구수산에서 3.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태안군 이원면 내리의 후망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이원’면의 이름을 따서 이원지맥이라 하고 같은 방법으로 금북정맥의 솔개재에서 1.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대산읍의 이름을 따 대산지맥이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이하 지리 2지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횡천지맥도 지리산의 영역인 낙남정맥의 삼신산에서 가지를 쳤으며 상당 구간을 지리남부능선과 함께 하므로 이것까지 살펴본다.
- 근간 '현오와 걷는 지리산' 405쪽 이하
이를 관암지맥과 용수지맥에 대입을 해보면,
참고도 #2 용수지맥
위 참고도 #2에서 명백하듯 금남정맥에서 이 지맥이 가지를 칠 때 이 사이에서는 용수천이라는 물줄기가 발원하게 됩니다.
그러면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용수천과 이 용수천의 상위 개념의 물줄기인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을 찾기만 하면 됩니다.
용수천을 따라 내려갑니다.
용수천은 신선봉과 장군봉 줄기에서 내려오는 하산천을 받고는 길마재산에서 내려오는 안산천 하나를 더 받습니다.
그러고는 수양산, 금병산에서 내려오는 금천을 흡수하고는 금남면 대평리에서 금강을 만나 그 맥을 다하게 됩니다.
참고도 #3 용수천과 금강의 합수점
바로 이 그림이죠.
그러면 신산경표의 관암지맥과 대한산경표의 용수지맥과의 차이점은?
참고도 #4
이 개념도와 같이 용수지맥은 금병산에서 좌틀하여 비학산을 지나 용수천과 금가의 합수점으로 가는 반면 신산경표의 관암지맥은 그저 꾀꼬리봉을 거쳐 부용봉을 지나 합수점이 아닌 곳에서 금강에 맥을 잠기게 됩니다.
도상거리를 보면 용수지맥은 35.7km인데 반해 관암지맥은 42.7km로 약 7km가 줄어들었습니다.
사실 어떤 게 맞다 틀리다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나라에서 공식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죠.
어쨌든 대한산경표는 이렇게 그은 남한의 지맥을 175개로 정리했습니다.
사설이 좀 길었습니다.
3등급삼각점(공주316)을 확인합니다.
삼불봉을 내려오면서 천황봉을 봅니다.
그런데 천왕봉입니까?
아니면 천황봉입니까?
천왕봉인가? 천황봉인가?
“형. 근데 천왕봉이야? 천황봉이야? 예전에 신문에 떠들썩했던 한 기사가 생각이 나네.”
벌써 10년이 됐나? 한때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일제 잔재 청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증폭시켰던 일이었다. 바로 천황봉(天皇峰)이냐 아니면 천왕봉(天王峰)이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논쟁의
불씨는 녹색연합이 던졌다.
1991년
환경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배달환경연구소가 있었다.
이
연구소가 확대 ·
개편되면서
출범한 게 녹색연합인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백두대간,
연안해양,
탈핵운동(脫核運動)
등을
이끌면서 SOFA
협정에
환경조항이 들어가게끔 하였으며 왕피천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케 하였고,
4대강
문제,
백두대간
보호법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화 등 많은 가시적인
문제의 핵심은 천황(天皇)이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는 일제가 천왕(天王)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꾼 것이므로 일종의 창지개명(創地改名)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은군도 힘을 보탰다.
반면 이 개명작업에 시종일관하여 반대를 한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이었다. 선생의 지론은 간단했다.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한 기록을 통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통성 회복과 정체성 확립, 민족정기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황(天皇)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련의 산 이름 변경고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자.
천왕봉으로의 개명을 찬성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녹색연합과 보은군의 연합군이다. 우선 녹색연합은 2005년 2월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이름 보고서’에서 ‘천왕봉’이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어 산림청도 2007년 8월20일 충청북도에 ‘지명정비’ 협조 공문을 보냈다.
녹색연합은 이 보고서에서 “일제 때 땅 이름을 바꾼 ‘창지개명’ 작업의 하나로, 속리산 천왕봉을 일본 왕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 증빙자료로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 법주사 소장 고지도뿐만 아니라 1911년 5월 일본육군참모본부가 만든 ‘한국지형도’ 등을 제출하면서 이들 지도에는 천왕봉으로 돼 있지만,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은군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위원장 이향래 군수)를 열고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일제 잔재로 지적한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개명 근거로 대동여지도, 팔도군현도 등 고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스님이 그린 법주사도(法住寺圖) 등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개명작업을 반대하는 이는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한다.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첫째, 일제가 만든 1 : 50,000 지형도에는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봉이나 산이 9개나 있다. 속리산 같은 유명산에도 있지만 사천시와 통영시의 작은 섬에도 있다. 속리산 같은 큰 산이면 모를까 어디 있는 지도 모를 봉이나 산까지 찾아 일일이 천황이란 이름으로 바꿨을까?
둘째, 일제는 같은 한자어인 천황(天皇)이라도 일본 것과 우리나라 것을 구분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만든 지형도를 보면 우리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산이나 봉 이름은 그대로 天皇山 또는 天皇峰으로 기재하고, 자기네 문자로는 그들이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 않고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또는 チョンフヮン으로 써서 천황에 가까운 음으로 기재했다. 그래서 속리산 천왕봉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심지어는 조그만 섬에도 천황산이나 천왕봉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은 우리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황봉(天皇峰)이나 천황산(天皇山)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쓴 이름이지 일제가 만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고전의 예로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 기(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라 하여 속리산의 문장대와 천황봉이 나옴을 든다. 그리고 계속하여, 조선 후기 실학파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天地篇) 지리류(地理類) 동부(洞府) 세전우복동도기변증설(世傳牛腹洞圖記辨證說)을 거론하여 ‘…一去槐山 一去尙州 俗離山天皇峯南幹也…俗離山天皇峯 在洞北爲祖 洞右白虎外 天皇峯兩間少下…’.라 하여 속리산 천황봉이 나옴 등을 거론한다.
그리고 고지도의 예로는, ⓵1872년 전라도 영암군 지방지도에 월출산 천황봉이 있고, ⓶전라도 장수현 지도에 장수읍 동북쪽 지금의 노곡리 뒷산에 천황봉이 있으며, ⓷전라도 용담현 지도에 지금의 천황사가 있는 곳에 천황산이 있다. ⓸그리고 광여도의 전라도 구례현 지도에는 지금의 천황봉이 천황산으로 기재되어 있음 등을 든다.
어쨌든 한 민간지리학자의 노력도 헛되이 속리산 천왕봉은 2007년 12월26일 천왕봉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뻔히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 장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굳히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박성태 선생이 내 사부 같은 존재라서 장감독이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천왕이라 하면 나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떠올리게 돼. 그의 불함문화론을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백두산근참기’를 읽던 생각이 난다 그거지. 즉 1927년 그가 백두산을 오르던 중 허항령 부근에서 만난 사당을 보면서 감격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이 사당에서 목주(木主)에 ‘천왕지위(天王之位)’라고 쓰인 글을 발견하게 되지. 거기서 그는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돼. 그러면서 환웅이 천왕인데 그 용례(用例)가 산으로 와서는 지리산의 천왕봉, 속리산의 천왕봉이 되고 민간으로 가서는 태백산의 천왕사(天王祠), 대구 달성의 천왕당(天王堂) 등이 된다고 했어. 그러니 천왕은 곧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것이지. 육당의 글을 어찌 보면 일제와 상관없이 속리산은 천왕봉으로 불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런데 천황의 사전적 의미로는 ⓵ 옥황상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⓶ 일본의 임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 즉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앙과 관련하여 옥황상제를, 일본에서는 현실적인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박성태 선생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도 이미 천황산 혹은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옥황상제와 관련한 민간신앙과 함께 일제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 이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각 산 이름을 고시할 때 천황봉으로 불렀던 것은 그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형은 ‘천황봉파’라는 것이네. 좋아. 그렇다 치고 계룡산도 명산 아니야? 민간신앙에서는 속리산보다 더 신령스러운 곳이라고도 보는데 거기도 천황봉이 있잖아?”
좋은 지적이다. 천황봉이 천왕봉이어야 한다면 속리산보다는 오히려 계룡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형. 그런데 예전부터 이 봉을 천왕봉이라고 불렀으니까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건 천황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지. 조금 이따 이정목을 볼 거야. 지금도 천왕봉 아래 대목리에 가면 천황사라는 절이 있어. 물론 창건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가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18쪽
그나저나 저 쌀개봉이나 천황봉에서 보는 이곳 삼불봉의 모습은 어떨까요?
이런 모습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고....
우측이 용수지맥이고.....
용수지맥이 한결 가까워졌습니다.
아까 애기했듯이 아래 골짜기로 흐르는 물줄기는 용수천이 되고....
쌀개봉830.6m에서 흘러내리는 용수지맥이 이제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운데 수정봉과 금남정맥길을 보면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중앙 좌측으로 이따 하산식을 할 갑사 사하촌이 보이는군요.
암봉.
정맥길이 한 줄로 보입니다.
눈으로 덮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중앙에 관음봉이 보이고....
지나온 삼불 2봉도 보고
딱 중간 구간.
좌측 중앙에 32번 도로가 지나는 용수지맥의 삽재가 보이는군요.
저 고개 넘어 좌측에 현충원이 있죠.
아래로 용수천이 흐르겠고....
정맥길.....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용수지맥.
관음봉을 향해 계단을 치고 올라갑니다.
12:39
그러고는 관음봉765.8m입니다.
연천봉742.9m은 앞 두 봉우리에 가려서 잘 안 보이고....
지나온 길.....
천황봉과 정맥길.
중앙에 희미하게 보이는 게 국사봉449m 넘어 향적산574m.
향적산은 정맥외 봉이지만 그래도 정맥을 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봉우리입니다.
이곳에서 비박을 한 노고단님, 나두야님과 합류합니다.
대단하신 분들.....
여기서의 진행은 바로 안전시설을 넘어가야 하지만 위험한 바위 구간이라 우회를 합니다.
12:49
관음봉 사거리를 지나,
13:06
신원사 삼거리를 지나,
연천봉을 향합니다.
헬기장을 지나,
관음봉과 좌측 삼불봉 그리고 우측 쌀개봉을 봅니다.
우측을 좀 더 확실하게 바라보고....
저 쌀개봉에서 보는 이곳 모습은 어떨까요?
이런 모습입니다.
제일 좌측에 있는 봉우리가 연천봉이고 그 아래 동운암도 보입니다.
질리도록 실컷 봅니다.
여기도 각자가 있군요.
降仙臺?
降仙亭?
그렇게 심오한 뜻이?
無念佛?
우측이 삼불봉.
그러니 그 좌측 파인 데가 금잔디 고개.
그 좌측이 수정봉이니 그 좌측 라인이 금남정맥 라인.
우측 두 번째 봉우리가 관음봉인데 살짝 보이다 마는군요.
이제 무조건 하산길입니다.
13:28
연천봉 삼거리로 나와서 노고단님의 비박배낭을 매어보고 있는 홀대장님.
사실 하산길은 요즘이 제일 위험하죠.
안전이 제일입니다.
산사태의 흔적.
14:11
예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한 삼수형들이 대성암에서 내집 드나들 듯 오르내리던 대자암.
그 형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이제 갑사길로 접속합니다.
하대천의 원류.
갑사 구경을 해야죠.
1974년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어린 현오는 저 대나무 밭을 보고는 아주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월인석보 목판본이 보존되어 있는 각으로 일종의 장경각 같은 곳입니다.
예전에 서원이나 사찰에는 책을 인쇄하기 위하여 목판을 만들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하여 장경각 같은 곳을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해인사의 장경각이죠.
스님 뒤를 따라 대웅전으로 내려갑니다.
대웅전 뒤로 계룡산의 산세가 아주 멋집니다.
.........
범종각.
복수초라는군요.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좌측에 있던 여관도 없어졌고.
이제 다 왔습니다.
선발대에 의해 잘 차려진 시산제 제삿상.
경건한 마음으로 열심히(?) 절을 올립니다.
2호차.
1호차는 안 보이니 빨리 끝내고 다시 동학사 주차장으로 가서 탑승하여야 한다고....
이쪽에서 보니 수정봉이 그 이름을 가질 만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시산제 시작.
뒷풀이는 닭볶음으로 맛나게 먹는데....
무사히 오늘 행사도 다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귀갓길에 오릅니다.
수고들 많으셨고 특히 집행부의 노고가 컸습니다.
첫댓글 꾼이 일반산악회도 다니시네?
네. 얘기 그대로...
관암지맥을 함께한게 벌써 3년이 넘었다고요?
그때는 대한산경표 개념 정리가 덜 되어서 3유형 지맥인 관암지맥을 변형하여 차선의 방법으로 2유형 지맥인 갑천우지맥으로 갔으나, 이제는 완전하게 합수점을 향하는 1유형 지맥으로 용수지맥을 마무리하러 빨리 가야겠습니다.
그러자고요. 얼마나 근질거리던지. 거기부터 갑시다.
@현오 문산지맥은 끝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