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맛! 맛! 맛!
20060377 역사학과 황현이
부산에서 태어나 살면서 경상도와 강원도 쪽으로는 가족끼리 꽤 여행을 다녀왔다. 할아버지 산소가 충청도에 있어서 충청도도 다녀와봤고.. 하지만 전라도쪽으로는 제대로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광주비엔날레를 한번 다녀온 기억이 다다. 그래서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지형이나 문화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전라도를 다녀온 것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비교하는 체험적 게기가 되었다. 답사내내 다녔던 모든 곳을 쓰기보다는 크게 인상에 남은 곳 몇 곳과 전라도 음식에 대해 느낀 감상을 적어보고 싶다.
첫째날 점심시간 백반부터가 전라도구나!하는 느낌을 주었다. 전라도 익산에서 온 동기인 유리학우에게 “우리는 찌게가 세 개 이상 올리오지 않으면 밥상도 아니야”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듣고 전라도 음식이 대단하긴 대단한가보다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라도 백반은 상상을 넘어서는 밥상이었다. 옆에서 전주에서 온 후배인 김희붐 후배가 식혜좀 먹어봐라며 권해줬다. 식혜가 흔히 생각하는 단술이 아니었다. 홍어라는 생선을 숙성시킨 반찬이었다. 매콤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즐거운 음식이었다. 반찬도 계속해서 추가 시켜주시는 주인 아저씨도 전라도 인심 좋구나라는 생각을 들게했다. 혼자서 속으로 경상도의 대표적인 음식은 뭐가 있나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생선 종류의 회와 아구찜, 간고등어 그리고 젓갈만 계속 떠 올랐다.
내소사에 들어가는 자작나무길이 운치있었다. 내소사 입구의 두그루의 큰 나무도 근엄한 분위기를 더해 내소사에 있는 내내 아늑하고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소사 대웅보전에 얽힌 이야기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정말로 목침하나가 없었고 단청이 완성되지 않았다. 답사다니면서 신발을 신고 벗는 것이 귀찮아 전각내에는 잘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허리를 밀어 보곤했다. 하지만 이번에 전각내에 들어가 스님의 설명도 들어보고 전설의 모습도 보고하면서 가는 절마다 다 들어가 봤다. 이후 금산사의 대적광전에는 들어가서 아에 절까지하고 나왔다. 그 밖에도 내소사의 매화와 목련, 대웅보전의 문의 문양 때문에 내소사에 다시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고 그것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가 하는 역사적 의미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마음의 휴식공간으로써 아름답다는데 의미를 더 주고 싶다.
이날 도착한 숙소에서 주는 급식은 전라도는 역시 전라도구나 하는 생각을 주었다. 식판에서 반찬 놓는 곳이 7군데 였다. 거기에 밥 놓는 곳과 국 놓는 곳까지 모두 9칸이 나뉘어져 있었다. 물론 식판크기도 컸다. 여태껏 식판에서 본 칸 중에 제일 많은 것은 6칸. 실제로는 5칸이지만 한칸을 작게 나누어서 6칸으로 만든 것이었다. 배식하는 방법도 달랐다. 보통은 고기류의 인기가 많은 것을 조리사 아주머니가 직접 퍼주시곤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고기류가 아니라 반찬을 퍼기 힘든 두부조림을 아주머니께서 퍼주셨다. 다같이 전라도는 급식에서도 큰 손이라며 찬양하며 밥을 먹었다. 물론 다음날 아침에 나온 아침밥 반찬역시 쟁쟁하였다. 맛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맛있었다.
화창하게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고창고인돌 고분군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고인돌에 대해서는 1학년 1학기 고고미술사학입문시간에 배워서 그런지 고인돌에대해 조금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족장의 무덤이라기에는 그 개수가 너무 많다는 점에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한 부족과 부족이 싸워서 이긴 부족이 진 부족의 노동력을 이용했다는 생각이다. 진시황은 전쟁 포로들을 만리장성을 쌓는데 동원했다. 노동력 충당을 위할 뿐만아니라 반란을 모의하는 것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마도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죽은 전사들의 무덤을 만들도록 한 것이 아닐까? 단순히 무덤을 만들면 쉽고 금방 끝나기 때문에 고인돌을 만들도록하였다고 짐작해보았다.
지금은 물이 고이고 썩어서 냄새도 나고 지저분 했지만 군자정이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운치는 당시의 멋드러진 풍광을 연상케했다. 연꽃이 꽃 중의 군자라하여 군자정이라고 했다고한다. 아마도 군자정을 빙 두르고 있는 이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 피었을 것이다. 문화재를 볼때 아직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것을 보고 감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폐허가 된 곳에가서 상상해보는 것도 즐겁다. 황룡사지 9층 목탑 터를 찾았을 때 그 넓은 곳을 뛰어다니며 상상했던 즐거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처럼 지금은 지저분하게 변했지만 중간 중간 꽃핀 나무와 새겨둔 비석을 보면 아름답고 한가한 곳이었다고 상상된다. 이렇게 내가 상상한 군자정은 고등학교때 다녀온 화청지보다 훨씬 더 운치있고 고요한 곳이었다.
저녁으로 왱이콩나물국밥을 먹게되었다. 콩나물 국밥을 몇 번 먹어봤는데 대부분 콩나물과 김치를 그냥 끓인 밋밋한 맛이었다. 그런데 여기 콩나물 국밥은 국물을 어떻게 우려냈는지 찌개같은 맛과 국의 맛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저녁 식사의 꽃은 모주였다. 식당에서 나가는 길에 모주를 한잔 마시게되었다. 막걸리에 약재와 설탕을 넣고 끓인 술로 알콜 성분은 날라가고 달면서도 막걸리의 향과 약재의 향이 남아있는 술이었다. 게다가 따뜻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맛이었다. 술을 데워서 마신다는 점에서 차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탁해서 그런지 코코아 같은 종류의 차를 마시는 것 같으면서도 한약재의 향 때문에 동양의 코코아라고나 해야할 것같다.
답사 셋째날은 칼국수와 비빔밥을 먹었다. 전주 사람에게서 직접 추천받은 베테랑 칼국수는 칼국수뿐만 아니라 만두도 맛있었다. 칼국수 한 그릇에 삼천원이라는 점과 만두 한 접시에 10개 정도 밖에 안 들었는데 삼천원이라는 점이 의심스러운 상술이었다. 비빔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익산에서 왔다는 김유리 학우는 고명이 12개가 올라가고 마지막엔 육회까지 올라가는 것이 전주 비빔밥이라고 자랑을 했었다. 하지만 비용적인 측면 때문에 우린 육회가 올라간 비빔밥은 먹지 못했다. 돌솥비빔밥을 먹었는데 이 정도의 맛은 꽤 흔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전주비빔밥이 워낙 유명해져서 전국에서 비슷한 맛을 많이 보았기때문이 아닐까.
이날 본 국악은 사실 처음엔 좀 지루했다. 말의 속도가 빠르기도 빠르고 운율을 타다보니까 잘 알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말을 알아 듣지 못해도 그 감동이 전해진다. 네명의 국악인이 차례로 번갈아가며 나와 창을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때 나 개인적으로도 맨 왼쪽의 사람이 가장 창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표정에서도 무엇인가 애절한 감정이 묻어났고 손짓하나하나에서도 감동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만 느낀것이 아니었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최지선 학우와 이세정 학우역시 제일 왼쪽에 있던 분이 제일 잘하는 거 같다며 감동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 함께 아름답다고 공감했던 것이다.
답사 마지막 날 교과서에서만 보던 미륵사지를 가게되었다. 황룡사지를 다녀왔기 때문에 미륵사지와 비교가 되었다. 터만 놓고 보면 황룡사지가 훨씬 더 컸다. 하지만 황룡사지의 석탑은 남아있지 않아 목탑만 계속 상상했었다. 그 넓은 들판에 높게 솟았을 목탑은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미륵사지에는 석탑이 남아있어 목탑을 상상하기 보다는 양쪽의 석탑을 더욱 상상하게 되었다. 당시 목조 건물로 가람을 짓고 양쪽에 화강암으로 갓 만든, 아직은 하얗고 뽀얀 석탑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것은 무왕의 백제의 강한 국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국력을 강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세운 절일까. 역시 폐사지에서 복원해 보는 절의 모습은 아련하면서도 생상함을 더해준다.
마지막날의 점심이 맛있으면 그 답사는 성공했다고 한다. 이번 답사의 마지막 식사코스는 간장게장 정식이었다. 경종이 땀까지 뻘뻘 흘리며 먹었다는 간장게장이다. 양념게장은 몇 번 먹어봤다. 아마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으니까 간장게장이 양념게장보다 앞서는 것일 것이다. 간장게장은 간장 맛이 나는 게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맛이 났다. 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며 먹었는데 간장 맛이 아니었다. 아무튼 다들 맛있게 먹었는지 간장게장 1.5kg 양념게장 1.5kg을 포장해가는 학우도 있었다. 간장게장뿐만 아니라 김치찌개도 얼큰하게 맛있었으므로 이번 답사는 매우 성공한 답사였다.
전라도의 푸짐한 음식은 평탄한 지역 때문에 농사가 잘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내가 사는 경상도는 저장식품등이 잘 발달했다. 그래서 음식도 맵고 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라도의 맛깔난 음식을 먹는 만큼 전라도인에 대한 수탈도 심했다. 관리들이 일단 전라도에 한자리 차지하고 나면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이번 답사의 주류였던 동학도 이 곳 전라도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전라도가 자랑하는 맛있고 인정 많은 음식의 이면에는 그것을 수탈당한 아픈 사연도 함께 서려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음식답사기로 보이는군. 그것도 답사는 답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