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대 악녀: 여후(여치), 측천무후(무조), 서태후(서행정)
중국 역사상에서 황제보다도 높은 권력을 쥐고 나라를 흔들었던 여인들 3명을 칭하는 말.
이 중 측천무후 같은 경우는 아예 황제 자리에 오르기도 했었다. 흠좀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 정도로 권력을 쥐고 흔든 것 이외에도 이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많은 수의 대신들이 숙청당하는 공포정치 시기가 있었고 나라가 크게 뒤흔들렸기 때문에 3대 악녀로 불리우고 있다.
다만 이들을 악녀라고 부르면서 까는 것은 과거의 역사 서술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기에 남성 중심의 세계관에서 여성이 남성들을 휘어잡는 것이 안 좋게 보여서 의도적으로 악하게 만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측천무후 같은 경우는 통치기간 동안 백성들의 삶은 윤택했다는 의견도 있다. 여후나 서태후는 황실에서 권력을 잡느라 집안싸움을 해서 나라가 뒤흔들릴 정도였으나 측천무후는 합법적으로 남편에게 정치적 실권을 이양받았기 때문에 정권을 잡느라 황실을 풍비박산내지는 않았다. 아들 두명을 황제에서 몰아낸 건 빼고
근래에는 측천무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가남풍이 그녀를 대신하기도 한다. 근데 가만 보면 목록에 있는 인물에 대한 옹호론은 모두 있긴 하다. 그러나 가남풍은 그런 거 없다.
이 4명 중에 측천무후를 제외하면 말로가 비참한 편이다. 먼저 여후는 사기와 전설에 의하면 그동안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원한이 실체화된 거대한 개한테 겨드랑이가 물려서 얼마 가지 않아서 사망했다. 그리고 그의 조카였던 여록과 여산의 무능함을 틈타 왕릉, 주발, 하후영 등의 쿠데타가 일어나 그의 일족은 전부 몰살당했다. 더구나 한이 멸망할 때 적미군에게 무덤이 털리고 시신은 능욕당했다. 더욱 안습한 것은 왕릉 일당의 쿠데타로 황제가 된 문제는 한 고제의 아들이지만 여후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건국의 어머니'라는 정도의 의미가 있는 고황후의 칭호를 여후에게서 박탈하고 자신의 어머니인 박씨에게 바쳤다. 서태후는 청나라가 망한 후에 군벌 손전영의 군대의 의해 크고 아름다운 무덤이 도굴당했다. 시신은 옷이 벗겨지고 보물을 찾을려고 몸을 난도질당했으며 발로 밟히기까지 했다. 가남풍의 경우는 조왕 사마륜에 의해 유폐됐다가 독살되었으며 일족은 몰살되었다.
반면 측천무후는 자신의 막내딸 태평공주가 당현종과 손을 잡고 위씨를 몰아내면서 꼽사리로 끼어있던 무씨 일족이 도륙당하긴 했지만 그의 손자 현종와 그 자손이 당나라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깎아내림도 당하지 않고 남편 당고종과 합장된 건릉도 당나라 황릉 중 유일하게 도굴당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