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이형옥
불완전함의 비상 외
세상은 편린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태초에 빌려온 뼛조각으로 태어난 인류도
별빛에 닿아 발아한 씨앗도
먼 데서 불어오는 바람에 닿은 석상도
해석되지 않을 뒷모습으로
고요한 생의 순항을 따라 채워갈 뿐
보다 가까운 것,
보다 낮은 것,
보다 조그만 것,
불완전한 것들이 만드는 세상 위해
나는 노래하리라
순간순간을 갈아 공간을 나눈다
베어낸 시간을 쌓아 끌로 새긴다
한 단을 올리는 것은 온몸으로 부딪히며
나를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
상처 입고 숨어드는 나날 사이
다시 일어서려 비틀대는
작은 것들을 위한 아타락시아를 짓는다
눈 뜨지 않은 마음속 꿈들이
낱별로 흩어지지 않을 완성을 위해
그믐의 달빛에 잠겨 들어도
서둘지 않기를
그대, 작은 영혼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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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말 트리스테Animal Triste*
통점의 원인을 몰랐습니다
번져오는 아픔만을 더듬었죠
오래 삭은 조각 하나 박혀있었죠
치대오는 세월에도 미동없던 것이
부풀어 올라 몽울이 되었더군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통증의 시작은
닮은 사람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남겨진 것들을 뒤적여도 무덤덤할 뿐
그러다
문득 허물어졌죠
가시가, 박혀있었거든요
게다가 지금도 발아하는 중이죠
움튼 어린 뿌리가 혈관을 타고
뻗어가고 있어요
나라는 존재의 결락을 아는
고집스러운 생장이 멈추지 않아요
인간은 홀로 서 있는 짐승
마침내 마주할 허무를 향해 걷는 중이죠
박혀버린 가시는 뿌리털인지도 몰라요
나를 구원해 달라고 뻗어 나온
소리를 입지 않은 손길인지도요
스치는 걸음 사이
촉수에 닿은 살갗이 공명한다면
나를 멈추어줄래요?
거기 어디쯤 선 자리에서
같이 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감춰진 기억의 연대로 위로받을지도 모를
우리는 아니말 트리스테
*아니말 트리스테 : 모니카 마론의 소설 제목, 슬픈 짐승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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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옥|2024년 최치원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시산맥》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