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노산시조백일장 대학 일반부 입상작
<장원>
- 고관희
역
친정집 울타리에 지천으로 핀 줄장미
꽃밭 앞 라탄의자 구부정 기대 앉은
아흔 살 우리 아버지 물끄러미 바라보네
황해도 까까머리 사범학교 통학 중
철로변 그 해 6월 핏빛 붉은 꽃 닮아
플랫폼 벤치에 앉은 양 그 시절을 그리시나
총성과 포성 속에 까마득 멀어져간
눈감아도 떠오르는 볼 붉은 첫사랑
지금은 어느 역으로 떠나가야 만날까
임진강 저 건너편 한달음에 달려갈
기차표 살 수 있는 그런 날 사무친 듯
해주역 머언 먼 기적 환청처럼 들린다네
<차상 1>
- 김두기
역
다음 역은 인생 역 봄날의 출발역입니다
조금은 낯선 풍경 서툴지만 가야 합니다
두려움 던져버리고
승차하면 됩니다
차창에 흔들리는 만남이 곧 마중합니다
조금은 지연되는 구간이 괴로웠고
늦어진 시간 속으로
바람처럼 달려가요
가슴에 북풍한설 몰아쳐 험난해요
초승달 실눈 뜨고 하늘 끝에 내릴 때
어느새 주름살 꽃은
환승할 준비한다
역마다 내려놓은 흔적이 기억되고
입술에 묻어가는 긴 한숨 하차한다
환승은 하늘 끝 물든
노을로 기적 울린다
<차상 2>
- 최애경
역
편의점 진열대
냉기 모인 맨 아래 칸
한 벌의 조끼로 그 남자는 거기 산다
오늘로 기한을 넘긴 바코드 명찰을 달고
투 뿔에서 원뿔로 진열에서 행사 떨이로
한창때는 기차처럼 저만치 떠났어도
폐기품, 내일 기한의
연장된 발권 이름
반쯤은 지하에서 반쯤은 지상으로
가끔은 터널에도 무지개가 걸리는
아래 칸, 아직 신선한
내일로 가는 집합 역
<차하 1>
- 김갑주
역
1.
출렁출렁 물결 위로 가물가물 숨결 위로
김서린 차창에 무지갯빛 연서를 쓰면
아라리 아린 속내를 풀며가는 기차역
2.
떠들썩한 사투리를 칸칸이 싣고 가다
쉬어가며 가십시다, 세월도 씹어가며
어떻게 지내왔는지 되새김질 해가며
3.
생과 사의 한세상은 간이역일 뿐이다
다시는 못 돌아올 덜컹이는 시간들
기어코 잎사귀 하나 또 가지를 놓듯이
4.
기억 먼저 끓어오른 기차가 들어온다
길게 뺀 목덜미에 기다린 시간 앉아
담쟁이 타는 높이로 생의 지도 그린다
소망 싣고 설레는 듯 미지의 꿈 부려놓고
한없이 밀고 가는 거리만큼 멀어지는
숨 멎은 기적소리가 그리움을 옮긴다
<차하 2>
- 김동한
역
어느 날 갑자기 떠나다는 소식 듣고
돌아와 곁에 오니 먹구름 덮인 하늘
꿈같은 삶의 현장 앞
그리움만 토(吐)하고 있다
잘 살려고 끈질기게 붙잡고 씨름했던 땅
강원도 철암역은 까만색만 받아들였다
찬바람 휘몰아치면
하늘마저 까맸다
나 자신을 이기려고 안간 힘 쓰던 시절
우리는 함께 일하며 스스로의 약속으로
이승을 마감할 때까지
힘주며 살 것이란다
오늘만 너를 보고 마지막 길 널 보낸다
텅 빈 대합실 의자 걸터앉던 너의 모습
사람들 다 떠나고 없는
철길 위엔 보슬비 소리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다면
난 이승 끝나는 그 역에서 내리고 싶어
죽음만 돌아올 수 없는
그 종착역은 피하고 싶다
<차하 3>
- 권경주
역
반가워 마중 걸음 손녀딸 안아 들면
터지는 함박웃음 다시 봐도 기쁨 두 배
오늘도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고속철
아쉬워 배웅 걸음 손녀딸 건네주며
온 세상 내 것인 듯 품었던 짙은 사랑
손꼽아 세어보는 날 다시 만날 플랫폼
네 자리 내 터전이 다른 것 탓할 수도
한 시간 남짓하면 손마디 깍지 끼고
정겨운 웃음 소리로 다시 만날 기차역
<참방 1>
- 정현경
역
오월의 고운 햇살 쓰담쓰담 볼 부비자
바람에 꽃쌀 일어 이밥 짓는 나무들
순백의 봄맞이 하늘
진주역을 찾는다
시간에 발 담근 담쟁이 역장이
오고가는 바람에 소식을 전하고
간이역 제시간 맞춰
기적소리 울린다
산으로 강으로 끝없는 그 철길
콩깍지 희망들이 신나게 달리는
반도역 환히 밝히는
희망의 징검다리
<참방 2>
- 이원지
역
소박한 간이역에서 열차에 올랐을 땐
목마르게 기다리던 얼굴들이 반겼다
운명을 같이 섞으며 아웅다웅 달렸다
꽃도 피고 바람 불고 때때로 비도 왓다
산모롱이 벼랑길로 안개 낀 강기슭으로
길고 긴 외줄 철길은 한결같이 이어졌다
크그 작은 역들을 수없이 거치면서
이런 이도 오르고 저런 이도 내렸다
가슴은 만남에 떨고 이별 앞에 미어졌다
동백꽃 툭 툭 지는 어느 종착역에서
허물을 벗어버리듯 내려서는 백두옹
하늘은 붉게 물들고 검은 산이 다가서다
<참방 3>
역
1.
기차는
달리다가
잠시 숨을 고른다
낯선 도시 그늘 밑 차창 밖 낯선 풍경
안개 속
부화기처럼
질려 있는 간이역
양손에
쥐어진 고향
짐칸 가득 실리고
입가에 추억들 마른버짐 번지고
레일 위
뜨거운 기대
가속력에 데워진다
끼이익 허공 긁는
숨 가쁜 비명소리
좌석과 입석의 생을 오고가는 삶이여!
기차는 미끄러지듯 꿈 속으로 달렸다
2.
평생을 미친 듯이 달려와 깨우는
어머니, 기차는 고향역 어디쯤
조그만 돌부리 같은 생생한 알 낳을까?
<참방 4>
- 남민아
역
수많은 인연들이 오가는 기차역에서
저마다 사연을 안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아빠는 어느 먼 역에서 오실 채비를 하고 있을까
도착하면 마중 나와 손 흔들며 서 계셨지
작별 인사 채 못하고 보내드린 그날의 기억
아득히 아빠 목소리 바람결로 들리는 듯
하늘역 그곳에서 바라보고 계시나요
하늘역 그곳에서 미소 짓고 계시나요
역 앞을 지나가면 떠오르는 그리운 그 얼굴
<참방 5>
- 곽선규
역
잠깐의 머무름에 미련 짓지 않는다
다가온 모두가 때 되면 떠나간데도
그들의 여정 한 켠에 내 흔적 선명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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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작품
제34회 노산시조백일장 대학 일반부 입상작
서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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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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