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람이 좀 잦아지려나? 해맞이모텔은 바로 바닷가 옆에 있어서 밤 새 으르렁대는 파도소리가 엄청났다. 만약 피곤하지 않았더라면 잠을 못 이루고 밤을 새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오늘 아침준비도 못할 정도로 피곤해서 아침은 꼼짝없이 굶었다. 어떻게 되겠지. 커피만 한 잔 마시고 6시 40분, 출발했다. 다행히 비는 안 온다. 그러나 여전히 바람은 아주 거세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이어서 마을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마치 유령의 거리를 걷는 듯하다. 창포항을 지난다. 청어과메기 광고가 보이기 시작하니 포항이 가까운 모양이다. 대부항을 지날 무렵 날이 완전히 밝았다. 남서쪽 하늘부터 벗겨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날이 갤 모양이다. 대부항은 앙증맞을 만큼 작고 아담하다. 7시 50분, 하저해수욕장을 지날 때까지 문을 연 식당이 없다. 보온병에 물을 담아 왔으니 슈퍼라도 있으면 컵라면을 사서 아침을 때울 수 있으련만….
지나는 곳 마다 화려한 펜션이 많다. 금진리에는 대구대학 영덕연수원이 있다. 엄청 크고 멋지다. 대체 무슨 연수를 하기에 저리도 화려하고 규모가 큰 연수원이 필요할까? 참, 호기심도 많다. 8시 반, 마침 문을 연 가게가 보인다. 가게에 들어서니 이불을 쓰고 누워있던 아주머니가 부스스 일어난다. 자는 사람을 깨웠나?
‘아직 문 안 열었나요?’
‘아니, 열었어 예.’
‘컵라면을 하나 사려고요.’
‘조오기’ 여자는 이불 속에 손을 그래도 넣은 채 입을 꽁치처럼 내밀어 가리킨다.
‘여기서 먹고 가면 안 될까요?’ 빈 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더니 별 싱거운 사람 다 본다는 투로 더운 물도 없고 여기서는 먹고 가는 곳이 아니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에고, 물어 본 내가 잘못이지. 벌써 인상을 보면 알 수 있잖아.
아직 문을 열지 않는 식당 앞의 의자에 앉아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보온병의 물이 모자란다. 라면이 반만 물이 잠기고 반은 그대로다. 라면이 익을 리가 없다. 아무렴 어때. 생 라면도 먹는다던데…. 반은 익고 반을 딱딱한 라면의 맛이 희한하다. 세상에 이렇게 궁상을 떨어도 되는 거야? 그래도 그나마 요기를 하고나니 훨씬 났다. 이제 아침 약만 먹으면 된다. 그러나 물이 있어야지.
약 반 시간을 걸으니 식당이 줄줄이 보이고 여기가 어딘가 물으니 강구4리란다. 그제야 문을 연 식당이 눈에 띈다. 아이고,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런 궁상을 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허지만 점쟁이가 아닌 바에야 어찌 앞일을 알 수 있으리오? 동광어시장이 보인다. 저기 가면 고기랑 게랑 모두 구경할 수 있겠구나. 어시장에 들어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가장 마음이 여리게 보이는 40대 부인에게 다가갔다. <대게를 먹으려면 작아도 살이 꽉 찬 놈으로 골라서 먹어야 제 맛이다. 그러자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골라달라는 수밖에 없다. 지금 시세라면 한 사람이 2만5천 원짜리는 먹어야 한다. 박달게가 최고 상품인데 1킬로그램에 10만 원 꼴이다. 홍게는 싸기는 하지만 크기도 작고 대게보다 맛이 덜하다.> 남두희 씨(동광어시장 53호 일월수산/011-525-3435)의 말은 믿음이 간다. 왜냐고? 예쁘니까. 다음에 오면 꼭 들려야지.
동광어시장을 돌아 나오니 어럽쇼, 바로 항구가 보이고 식당들이 즐비하다. 여기가 어디야? 바로 강구항이다. 겨우 10시밖에 안 되었는데 강구라니…. 천천히 어정거리다가 점심이나 먹고 가야겠구나. 그런 차에 박창용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는 오지 않느냐. 점심은 먹었느냐. 서울에는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참, 자상하기도 하지.
‘동해안에는 눈비가 온다던데 올라왔어? 아직도 걷고 있는가? 비 맞지 마슈.’ -박제건이다.
‘산에 갔어? 나는 강구항.’
‘이진영이 스키 타러가서 오늘은 쉼. 비 안 와?’
‘조금’
‘어딘고? 여그는 홍천휴게소. 오버.’ -심재구다.
‘강구항. 홍천은 왜?’
‘당신 땜에 바람이 나서 속초로 점심 먹으러 가요. 왜? 으아. 강구항! 영
덕게!’
‘팔자는 우리 따라 올 사람 없구먼. 잼 많이 보슈.‘
영덕의 괴물처럼 엄청나게 큰 게가 건물을 삼키고 있다.
오늘이 마침 토요일이라 관광객이 많다. 식당마다 손님을 끄느라고 지나가는 차마다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든다. 그런데 걸어서 지나가는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건네질 않는다. 행색이 초라해서 그럴까? 그럭저럭 지나치다 보니 결국 강구항 맞은편 해변의 ‘신일수산’까지 왔다. 곰치국이 된단다. 혼자서는 먹을 게 마땅치 않다. 그래서 물회, 회덮밥이나 먹는 게 고작인데 마침 잘 되었다. 이 식당에는 아줌마 혼자서 주방 일을 하고 있다. 50대의 푸짐한 아줌씨다. 손님도 나 혼자 뿐이어서 예쁘다고 수작을 걸었더니 신이 났다. 돌미역이며 새로 무친 산나물을 맛보라며 내온다. 어제 마시다 남긴 소주를 꺼내어 한 잔 한다. 바로 앞의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한 잔 하는 맛이 기가 막히다. 더구나 묵은지 대신 냉이를 넣고 끓인 곰치가 별미다. 마침 그 때 전화기가 울린다. 심재구다.
‘점심 자셨나? 여기는 속초 선인장식당 오바! 눈 뒤지게 많이 오네그랴. 큰 탈났음’
‘여기는 눈 안 와. 난 신일수산에서 이쁜 아줌씨랑 곰치국에 소주 한 잔 카아~.’
‘오늘 제대로 식사 한 번 하시는군. 골주 핑계대고 전화번호 찍어오시게. 난 마눌님과 생태찌개로….’
‘왜 만성횟집에 가지. 거기 회가 죽이던데’
‘회보다 조림이나 구이가 다양해서 낫더라구요.’
‘취미도 별나’
‘양식 사시미 내주면서 자연산이라구 온갖 별소리 다 하는 것두 맘에 안들구….’
‘다 속이구 속고 사는 거지 뭐. 파도가 너무 좋아’
‘줌마와 손잡고 함께 보면 샛강물도 안 좋을 수가 없지.’
‘부인한테 들킬라. 지금 담배도 한 대 꼬실리고 있지롱.’
‘진짜 마싰겠당! 냉동 오징어 좀 사갖고 대관령으로 출발. 미시령은 안 될 것 같에.’
‘왜 하필 냉동오징어? 피데기가 맛있던데’
‘피데기가 뭔고?’
‘반 건조 오징어. 이번에 알았지롱. 근데 누가 운전?’
‘잘 아랐시유. 운전은 내가 담당. 교신 끝’ 참 재미있는 친구다.
자, 이제 천천히 걸어서 남정면으로 가자. 거기서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가서 서울로 올라가자. 남정면에서 포항은 28킬로미터고 영덕은 15킬로미터로 더 가깝다. 그러나 포항에서는 서울 행 버스가 수시로 있지만 영덕은 버스도 드물고 5시 이후면 끊어지니까 포항으로 가는 것이 더 편리하다. 구계, 원척, 화석박물관을 거쳐 3시 50분, 장사해수욕장 앞 남정면 버스정거장에 도착했다. 4시에 포항으로 가는 버스가 있단다.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5시, 서울 행 고속버스를 탔다. 4시간 40분이나 걸린다니 정말 지겹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한 시간 정도 지날 무렵 전화가 울린다. 최병은이다.
‘오늘도 걸으랴, 글 쓰랴, 서울 올라오랴 엄청 바쁘시겠수. 오후 5시 반에 오늘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하려면 말이야…’
‘저녁에 마저 써야 해. 아직 미완성이야’
‘그럼 오늘 안 올라 오는겨?’
‘지금 버스 안이야. 오후 4시까지 걸었어’
‘버스 안? 그럼 잠이나 푹 자면서 편안하게 올라 오슈’
※신일수산(강구면 삼사리 5 / 010-9150-3374)
오늘 걸은 길 : 영덕읍 창포리-창포항-대부항-대구대학 연수원-강구4리-강구항-구계-원덕-남정면(장사리). 18.3킬로미터 ※아래 지도를 잘 보려면 앨범(사진첩)을 참고하시오.
첫댓글 매일매일 신명나는 읽을꺼리 주셔서 넘 넘 감사합니다. 오늘은 현장 사진 까지 올려 주시니 더욱 실감 나네요. 좋은곳 좋은꺼리 혼자만 만끽 하지 마시고 같이 좀 봅시다. 형님이 예쁘다고 칭찬 하시는 여자들 사진도 곁들이면 더 좋지 않을까요?? 다들좋아 하실 텐데요
사람마다 여자 취향이 다르니 내가 이쁘다고 해봐야 뻔하다니께
아직 시작 안하셨나요??? 두꺼비는 박창용 닉네임 임다
6일에 다시 갑니다. 기다려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