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과 십승지’
정감록(鄭鑑錄)은 작자도, 저술시기도 알려지지 않은 일종의 예언서다. 조선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짐작되지만 정(鄭)씨 성을 가진 이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그 시대는 물론 2002년 말에 치르진 대통령 선거에서 정몽준이 출마하면서 크게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내용이 변형되어졌을 뿐 아니라 막연한 추론(推論)과 상상, 예측 등으로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음은 물론 난해하기까지 한 것이 정감록이라는 책이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3」 (이덕일 김병기 지음)에는 ‘정감록의 십승지(十勝地)는 정말 명당인가’ 라는 의문에 답하는 내용의 글이 있는데 내용을 간추려 옮겨 보면서 정감록과 십승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 나중에 책 다 읽고 따로 독후감 같은거 적지 않아도 되지 않을 하는 생각을 미리 해 보면서 말이다
‘정감록은 정감(鄭鑑)과 이심(李沁)의 대화형식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저자를 정감 혹은 이심으로 보기도 하지만, 정도전(鄭道傳)이 조선의 역성혁명을 합리화하고 민심을 조작하기 위해 저술했다는 설도 있다. 예언과 참요(讖謠)* 역수의 풀이와 풍수지리설* 등을 다양하게 기술하면서 직설적 표현을 피하고 은어(隱語), 우의(寓意), 시구(詩句), 파자(破字) 등을 많이 써 해석하기 쉽지 않고 애매한 표현도 많다.’
* 참요 : 민요의 한 가지. 흔히 정치적 변동을 암시함. 이성계의 목자요(木子謠)등
* 풍수지리설 : 동진(東晉, 317~420)때 곽박(郭璞)이 쓴 「장서(葬書)」에“죽은 사람은 생기에 의지해야 하는데... 그 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져버리고 물에 닿으면 머문다. 그래서 바람과 물을 이용하여 기를 얻는 법술을 풍수라 일컫게 되었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풍수는 산, 수, 방위, 사람,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며 「삼국사기」의 탈해이사금조에“탈해는 학문에 힘썼는데 지리도 아는지라 양산(陽山)밑에 있는 호공의 집터가 바로 길지(吉地)였다. 그가 거짓 꾀를 내어 이 집을 빼앗아 살았으니 후에 월성(月城)이 그곳이었다”고 한 것이나 고구려 고분의‘사신도’등은 모두 풍수지리에 근거했다.
정감록의 핵심은 두 가지로 정씨 성을 가진 진인(眞人)이 나타남으로써 이씨 왕조는 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과 다른 하나는 큰 재앙 때 난을 피할 수 있는 열 곳의 명당터. 즉 풍수설에 따라 지복(至福)을 누릴 수 있는 피난처를 적시했는데, 이곳이 병화를 피하고 흉년에도 보신할 수 있는 땅 즉 십승지지(十勝之地)라는 것이다
그 십승지가 어디어디인지 차례로 짚어보자. (전부터 관심을 가졌었고,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어 여기 다 옮겨 적는다)
첫째, 풍기(豊基) 차암(車岩) 금계촌(金鷄村). 지금의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 소백산 비로사 방향에 있는 금계동, 옥금동, 삼가동으로 추정
둘째, 화산(花山) 소령(召嶺) 고기(古基)로 청양현에 있다. 지금의 경북 봉화군 내성면으로 추정
셋째, 보은(報恩) 속리산 사증항(四甑項). 지금의 보은 증항 부근에서 상주 함창 방면 가는 40리. 충북과 경북 도계에 있는 시루봉 아래 관기리로 추정
넷째, 운봉(雲峰)행촌(杏村) 지리산 북쪽 임천유역. 혹은 운봉 향촌으로 추정
다섯째, 예천(醴泉) 금당실(金塘室).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임금의 수레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지금의 경북 예천군 금당동 북쪽으로 추정
여섯째, 공주(公州) 계룡산 유구(維鳩) 마곡(麻谷) 두 물곬의 둘레가 200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의 공주와 유구 사이로 추정되며 6.25때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일곱째, 영월(寧越) 정동 쪽 상류로 난을 피해 종적을 감출 만 하다고 하면서도 수염 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고 했으니 풍수에도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있었는가 보다. 지금의 영월군 상동읍 석향천 좌우 연하리 일대로 추정
여덟째, 무주(茂州) 무봉상(舞鳳山) 동쪽 동방(銅傍), 상동(相洞)이라고 했는데 무주군 무풍면 북쪽 덕유산 자락으로 추정
아홉째, 부안(扶安) 호암(壺岩) 아래로 지금의 부안군 변산 호암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지명은 알 수 없다.
열째, 합천(陜川) 가야산 만수봉(伽倻山 萬壽峰)으로 둘레가 200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지리산 만수동, 지금의 구품대로 추정. 그 외에도 정선현(旌善縣) 상원산(上元山), 계룡봉(鷄龍峰)도 난을 피할 만하다 했다.
이상의 십승지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는데, 1)가파른 계곡을 끼고 있는 협곡 지형에 위치. 2)큰 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전략적인 간선도로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점. 3)협곡 한쪽 면은 도읍지와 연결되어 있으나 연결된 협곡의 폭은 병목처럼 좁다는 점. 4)협곡 내에는 하천이 있는데 병목 같은 협곡 입구를 지나면 바로 큰 하천과 연결된다는 점 등이다.
이런 십승지는 세상에서 피난하기 가장 좋은 땅은 될지언정 영속적인 주거지로도 적합하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정감록의 십승지는 난세라는 전제가 붙었을 때 ‘명당’이라 할 만 하지만 평상시에는 명당으로 보기 곤란한 땅이다. 다만 세속을 잊고 마음 편히 지내기에는 적당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