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이란 사물의 도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근거를 대어 증명하거나, 또는 주어진 판단 이 옳고 확실한지 이유를 들어 증명하는 기술 양식이다. 설명의 목적이 어떤 사물이나 사실과 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분명하게 알도록 하는 데 있다면, 논증은 쓰는 이의 견해에 대하여 의혹이나 반대 의견이 있는 이들을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설득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Ⅰ. 논증의 특징
논증의 특징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드러난다.
(1) 논증의 기도(企圖)
논증은 지적인 이해로서의 납득에 호소하며, 감정에 바탕을 둔 설득을 꾀한다.
그러나 지적인 이해의 단계에 앞서서 지적인 납득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논증에 있어 감정이 표면화해서는 안 된다.
(2) 논증과 대립
논증은 대립, 갈등이나 그 가능성을 내포하고서 출발한다. 처음에는 자기의 논리가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견지에서 출발하나, 그 과정에서 수정당하기도 한다.
논증의 목적은 대립되는 견해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다.
(3) 논증의 이해
논증은 인간의 이성적 본성인 이해력에 호소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한다.
논증은 합당한 논리로써 지성적 납득을 얻을 만큼 이론의 정립과 증명의 과정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4) 논증의 과제
아무 대상이나 논증의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과제로 삼느냐에 따라 논증이 불필요한 것 또는 불가능한 것과 논증에 적합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이나 진리는 논쟁이나 표결이 붙일 수 없다.
(5) 논증의 명제
명제는 행동의 일정한 한계가 혀용 또는 제한되는 사실이나 상태에 관한 진술이다.
여기서 사실 명제와 정책 명제가 드러난다.
(6) 명제의 단일성·명료성·공정성
명제는 판단이나 주장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막연한 말이 아닌 명료한 말로 정의를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하며,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이 공정해야 한다.
논증이란 무엇인가? 어떤 전제(주어진 사실)로부터 어떤 결론(새로운 사실)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논증은 전제와 결론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말한다.
논증의 특징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논증은 항상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전제를 가지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둘째, 논증은 확인되어야 한다. 논증의 전제와 결론은 유기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셋째, 논증의 전제와 결론은 확인되어야 한다. 대부분 전제가 앞에 나오고 결론이 뒤에 나오지만 어떤 경우는 결론이 앞에 나오고 전제가 뒤에 나온다.
넷째, 생략된 전제와 결론은 보충되어야 한다. 전제와 결론 중에는 당연한 것이나 강조를 위해서 전제나 결론을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논증을 약식논증이라 한다.
한편, 논증은 직관, 통찰, 상상과 다르다. 즉 논증은 전제에 기초하고 전제를 가지고 진행된다. 전제는 바로 결론을 지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그 전제에 기초하여 결론이 얻어진다. 따라서 전제에 기초하여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전제가 없이도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얻어내는 것은 직관이거나 통찰이거나 상상이다. 논증은 직관, 통찰, 상상과는 다르다.
증거를 기초로 하여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명료하고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논증을 구성하는 일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
▪ 논증이란 무엇인가?
논리학은 올바른 추리, 사유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론, 논리학은,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추리를 하는가를 기술하는 경험적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유하여야만 하는가 하는 당위, 혹은 규범에 관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추리의 과정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면 '논변(argument)'이다. 논변은 문장들로 구성되며, 대개 일련의 전제들과 이들 전제들이 지지(정당화)하려고 하는 하나의 결론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최근에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비판적 사고가 전제와 결론사이의 적절한 관련성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둔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역논리와 그 타당성의 개념은 여전히 중요한 개념이다. 어떠한 논리가 되었던 간에, 타당성의 개념은 좋은 논변이 갖추어야 할 가장 최소한의 요건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증이란 '전제'라고 부르는 하나 이상의 명제로부터 '결론'이라고 부르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올바르게 도출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 문장(sentences)과 명제(proposition) 혹은 진술 (statement).
명제는 기본적으로 자연어의 여러 문장들 중 진리치를 가질 수 있는 문장들이 주장하는 객관적인 주장 내용을 의미한다 . 따라서 상이한 문장들이 하나의 동일한 명제를 표현할 수도 있고, 또 역으로 상이한 명제가 동일한 문장 형태에 의해 표현될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올바른 도출관계'란?; 연역적 vs. 귀납적 타당성
연역적 타당성 : 전제 모두가 참이면서 결론이 거짓일 경우가 불가능한 경우, 주어진 논증 은 '연역적으로 타당하다' 고 말한다.
귀납적 타당성: 연역적으로 타당하지는 않지만, 전제들이 결론을 믿을 만한 근거를 제시해 경험적인 증거로 이루어져 있을 경우, 이 경우 전제들은 결론이 참일 확률, 즉 '참일 개연 성'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귀납 논증과 그 규정 방식
(2) 일반화에 의한 귀납 : 부분을 보고 전체를 안다
귀납이라 부르는 논리학 분야는 때로 특수 실례들로부터 보편적 일반명제에 도달하는 추론으로 정의되는 수가 있는데, 완전히 만족스러운 정의는 못 된다. 이 정의는 제대로 방향을 잡아 탐구를 해나가기 위한 지침에 불과할 뿐이다.
만일 어떤 집합의 모든 원소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집합의 약간의 원소들로 이루어지는 임의의 부분집합이나 임의의 개별 원소 또한 그 속성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연역논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전체로서의 집합은 그 집합의 원소들이 가지지 않은 어떤 속성을 가질 수 있으며, 또 집합의 원소들은 각자 개별적으로 전체로서의 집합이 가지지 않은 속성들을 가질 수 있다.
똑같은 종류의 또 다른 오류는 어떤 집단에 속하는 각 개체의 특징이 단순한 방식으로 전체로서의 그 집단에 적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가 자연히 집단과 개체에 관해 생각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집단에 대해 어떤 고정 관념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 집단의 모든 원소가 그 고정 관념에 들어맞기를 기대하거나, 또는 우연히 마주친 경험이 있는 몇 개 원소의 작용을 근거로 그 집단의 모든 원소를 판단하게 마련인 것이다. 무작위 선정이란 말은 우리가 선정한 각각의 집단들에서 각 개인이 선택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 보편명제와 특수명제
"모든 "명제 대 "모든 은 이 아니다" 명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약간의 " 명제 대 "약간의 은 이 아니다" 명제의 구별은 중요하다. "모든" 명제와 "모든 은 이 아니다" 명제는 보편명제이라 불리며,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집단이나 집합의 모든 원소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약간의 "명제와 "약간의 은 이 아니다" 명제는 특수명제이라 불리며, 어떤 집단이나 집합의 약간의 원소에 관해서만 정보를 제공한다.
일반명제는 모호하거나 막연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일반명제가 주장하는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가를 자문해 보는 것이 유용하다.
2) 일반화
기술적 일반명제는 가치 있는 정보를 많이 제공해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기술적 일반명제는 예측하는 데 유용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일반화는 귀납적 일반화이다. 귀납적 일반화는 해당 집합의 약간의 원소들만을 관찰하는 일에 기초를 두고 일반화가 이루어진다. 귀납적 일반명제 가운데 약간은 어떤 특성을 집합의 개개의 원소 모두에 귀속시키거나 어떤 원소에도 귀속시키지 않는 보편적 일반명제이다. 그러나 귀납적 일반명제 가운데에는 어떤 특성을 집합의 원소들에 일정 비율로 귀속시키는 통계적 일반명제가 많다.
통계적 추리는 어떤 수학적 원리들을 실제 세계의 상황에 적용하는 일을 포함한다. 통계적 추론의 일반원리들 가운데에는 비수학적 용어로 논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일반원리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귀납적 일반명제를 구성하는 문제를 처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일반원리들을 제시하기 위하여 표본과 모집단이라는 통계학 용어를 채택하기로 하자. 모집단이란 우리로 하여금 기술적 일반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일반화하고 있는 것의 전체 집합 또는 관찰된 것의 총 수효를 의미한다. 표본이란 집합의 원소들 가운데 실제로 관찰된 원소들이나 실제로 이루어진 관찰들을 의미한다.
이제 일반명제를 구성하는 몇 가지 일반 규칙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다른 조건이 동등하다면 당신이 이용하는 표본이 크면 클수록 좋다.
② 고르거나 선택하지 말고 당신의 표본 전체를 이용하라.
③ 해당 집합의 개개의 원소 모두가 선정될 수 있는 기회를 똑같이 갖는 방식으로 표본을 선택하라.
④ 표본으로 삼은 집합 내에 문제의 특성과 관련하여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집합들이 있다면, 전체 집합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각각의 부분집합에서 표본을 선택하라.
3) 원인과 결과
한가지 중요한 일반명제는 두 종류의 사건 사이의 인과 관계를 주장하는 명제이다.
원인들과 관련된 한 가지 중요한 구별은 필요조건(때로 필요원인이라 불린다), 충분조건(또는 충분원인), 필요충분조건(또는 필요충분원인)의 구별이다.
어떤 사건의 원인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는 원인이란 말로 이런 세 조건들 중에 어떤 것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원인을 이룬다고 이미 제시되어 있는 용인들로 결합된 어떤 사건을 의미하는 수가 아주 많다.
인과 관계를 명제 하는 일반명제를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내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에 관한 우리의 기대와 연관되어 있다. 어떤 상황을 가능하거나 가능하지 않은 상황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우주에 관한 우리의 생각들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 생각들은 과학의 발견에 기치를 두고 있다.
4) 과학적 방법 : 가설은 다양하게, 시험은 엄격하게
① 과학적 방법
가상논증에 대해 논의하면서 가설의 방법이 과학의 방법과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진짜 과학의 방법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가설에 대한 시험을 시작했을 때이다.
갈릴레오 시대 이후 과학의 특징을 이루는 방법은 보통 가설-연역적 방법이라 불린다. 이 방법에 가설이란 말이 붙은 것은 가설을 제안하는 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연역이란 말이 붙은 것은 그 귀결이 이 가설로부터 연역되며 그때서야 가설이 시험되기 때문이다. 가설이 시험도기 위해서는 명료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 이 가설로부터 연역되어야 하는 귀결들은 정확해야 한다. 이 귀결들은 또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시험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전부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과학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중요하다.
첫째, 우리 사회에서 과학은 대단히 중시되고 있다. 그래서 상업, 정치, 심지어 종교 같은 다른 분야의 기획에서 과학의 명성을 빌기 위한 온갖 종류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우리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과학의 기법들을 빌리는 수가 많다. 명료한 가설을 구성하고 그 가설로부터 정확한 귀결들을 연역한 다음 이 귀결들을 잘 제어된 관찰에 의해 시험하는 일을 해볼 수 있다. 여기서 가설이 만들어지는 원천은 과학적 방법에 관계하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론에서는 시험 가능한 귀결들을 갖는 어떤 가설도 그 귀결들 가운데 어떤 것이 그르다고 관찰되기 전까지는 반증된 것이 아니다. 물론 반증되지 않았다는 말은 증명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는 진지하게 채택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시험 가능한 귀결을 꽤 좁은 의미로 설정한 다음, 그들은 시험 가능한 귀결들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윤리적 명제와 종교적 명제를 무의미하다고 규정하였다. 이 철학적 입장은 논리실증주의라 불리며, 유의미하다면 증명 가능하거나 반증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실증주의판 원리는 검증 원리라 불린다.
실증주의의 입장의 주요 난점 한 가지는 검증 원리가 명확하게 정식화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실증주의자가 보유하고자 하는 몇몇 과학적 명제를 제외하고는 그가 제외시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무의미하다고 하여 제외시킬 수 잇게 된다. 그렇지만 실증주의 입장의 치명적인 난점은 검증원리가 정한 방법들에 의해 검증 원리 자체가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명료한 가설과 시험 가능한 귀결들에 관한 요구를 지닌 가설-연역적 방법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에 의거해야 한다는 말은 또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실증주의 입장의 기운을 숨기고 있을 수 있다.
② 통계적 방법
기술적 통계는 정보를 쉽게 파악하고 관련 요인들에 대한 정확한 생각을 형성하도록 목록이나 도표, 그래프 등으로 정보를 제시하는 일에 관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좀더 중요하고 과학적 방법에 좀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통계적 추리이다.
영가설이란 보통 무변화, 무차이, 무의의 가설로서 예컨대 그 치료가 그 질병에 아무런 효과도 없다거나 흡연이 폐암에 걸릴 기회를 증가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가설이다. 대립가설이란 보통 변화, 차이, 의의 가설이다.
어떤 경우에는 가설에 관해 의미 있는 시험을 하기 위해서 모집단에 관한 어떤 정보가 필요하다. 이러한 종류의 정보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비모수적 방법이라 불리는 통계적 방법이 약간 있다.
어떤 통계적 추리라도 두 가지의 위험이 있다. 하나는 옳은 가설을 거부할 위험이고, 하나는 그른 가설을 승인할 위험이다. 이 두 가지 위험은 어느 정도 상보적인 작용을 한다. 한 가지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은 흔히 다른 위험을 증가시킨다.
전형적인 귀납논증의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열식 귀납><통계학적 삼단추론(statistical Syllogism)>
이제까지 관찰된 A의 x %가 B 이었다. 관찰된 A의 x %가 B 이다.(x >50%)
고로, 전체 A의 x %가 B 이다. O는 관찰되지 않은 A이다.
고로, O는 B이다.
"좋은" 귀납논증과 귀납논증
일상적인 교과서의 귀납논증에 대한 정의는 실은 "좋은" 귀납 논증, 즉 설득력이 있는 귀납 논증만을 소개하고 있다. 즉 논증의 전제가 결론의 참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믿을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혹은 개연성을 높이는 것으로 등등, 이런 방식을 회피하는 길 중의 하나는 귀납 논증의 결론을 개연성 진술로 보는 것이다.
예: 관찰되지 않은 그 한국인 아기의 머리카락 색은 까말 것이다 => (확률)개연성이 매우 높다
연역 및 귀납 논증의 대비.
추론은 크게 연역과 귀납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연역추론은 전제가 옳다면 결론이 반드시 옳을 수밖에 없는 논증들을 포함하는 반면에, 귀납추론에는 전제가 옳다면 결론이 일정한 정도의 옳을 확률을 갖는 논증들이 포함된다.
즉, 연역논증과 귀납논증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각각 고려하게 된다.
전제들의 참이 결론의 참을 믿을 좋은 이유를 제공하는가
전제의 참이 결론의 참을 보장하는가? 필연적으로 진리 보존적인가
Monnotonic or not? 한번 타당하면 영원히 타당한가?
결론을 지지하는 정도의 정도 차가 있는가
귀추법.: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
(놀라운) 경험적 사실 E가 (존재한다)발생했다.
설명 가설 T는 현상 (사실) E를 설명한다.
T보다 E를 잘 설명하는 경쟁적 가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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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가설 T는 참일 개연성이 높다.
(사례) 진화론/ 뉴톤의 만류 인력/한보 사태에 대한 철학적 분석 등.
▪ 논증의 타당성(validity)과 건전성(soundness)
(일반적으로 기초논리학은 단지 연역적 논증만을 다루므로, 이하의 모든 문맥에서 '타당성'은 항상 '연역적 타당성'만을 의미한다.)
(1) 타당성/ 필연성/ 불가능성/논리적 형식
타당성(validity): 어떤 논변이 좋은 논변인가를 평가할 때, 논리학자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는 개념이 바로 타당성(validity)의 개념이다. 우리는 어떤 논변이, 그 전제들이 모두 참이고 그 결론이 거짓인 경우가 있을 수 없을 때, 그 논변을 연역적으로 타당(deductively valid)하다고 한다. 한가지 유의할 점은, 타당한 논변이 배제하고자 하는 경우는 오직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경우뿐이어서, 타당한 논변에는 참인 전제와 참인 결론으로 이루어진 논변뿐만 아니라, 거짓 전제와 거짓 결론, 거짓 전제와 참인 결론의 논변들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논변의 타당성을 결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사실상 어떠한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가능한 경우를 고려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설령, 어떤 논변의 전제와 결론이 사실상 참이라고 하더라도, 이곳이 곧 그 논변을 타당한 논변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어떤 논변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한 상황에서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것이 불가능해야만 한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경우를 발견할 수 없다면, 다른 경우가 어떠한지에 상관없이 그 논변은 타당한 논변이 된다.
우리는 '타당성'을 '전제들 전체가 모두 참이면서 동시에 결론이 거짓일 경우가 불가능한 경우'의 논증의 특징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매우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논증의 '타당성'은 언뜻 보아 전제나 결론의 진리치에 의거해서 정의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타당성은, 전제나 결론의 진리치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전제와 결론 모두가 거짓인데도 타당 하나 논증이 있고, 또 역으로 전제와 결론이 모두 참인데도 부당한 논증이 무수히 많다.
타당성은 본질적으로 전제의 진리치가 결론의 그것과 결합될 수 있는 관계에 (즉, 조건부적)관계에 의해 정의된 것이다.
바로 이런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여, 논리학자들은 "논증의 타당성은 단지 논증의 형식에만 의존한다 "고 말한다. 다시 말해 논증의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결합되었는가 만이 중요하지 그 요소들이 어떤 진리치를 갖는가 혹은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논증의 내용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런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타당한 논증에서 전제는 결론을 "함축" (entail/imply)한다고 말하고, 또는 결론이 전제로부터 타당하게 "도출된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2) 타당성과 건전성
논증의 전체 구성요소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이루어진 타당한 논증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은 타당한 논증을 추구하는 논리학의 실용성에 대해 중요한 의문을 던진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논증하고 타당한 논증을 사용하려는 것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만일 이처럼 타당한 논증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결론에 도달한다면, 논리적 논증이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이 물음의 답은 논증의 타당성과 건전성간의 구분에 의해 주어질 수 있다.
연역 논증의 타당성은 이미 언급했듯 기본적으로 조건부적이다. 주어진 논증의 형식이 타당하더라도, 그 논증의 전제를 거짓 명제들로 채우면, 결론이 참이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참으로만 이루어진 명제들로 타당한 논증의 전제를 채우면, 결론은 필연적으로 참이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타당한 논증은 이유와 근거들, 즉 전제들의 참을 필연적으로 결론의 참으로 연결해준다. 즉 진리 보존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논증을 통해 항상 참인 결론을 얻기 위한 확실한 보장은 다음의 두 조건이다.
1) 결론이 타당한 논증의 결론일 것.
2) 전제들 모두가 참일 것.
이 조건을 둘 다 만족시키는 논증을 건전한 논증이라고 부른다.
즉, 건전성(sound)이란 어떤 논변이 타당할 뿐만 아니라, 모든 전제들이 참일 때, 우리는 그 논변을 건전한 논변이라고 한다.
건전한 논변은 참인 전제들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타당하다고 했다. 그러면, 위에서 정의한 타당성의 개념을 여기에 적용하면 (전제가 참이고 결론이 거짓인 경우가 있을 수 없으므로), 그 결론도 참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건전성의 개념이 타당성의 개념보다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좋은 논변의 개념을 훨씬 더 잘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논리학자들의 주 관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건전성보다는 타당성의 개념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일단은 타당성의 개념이 건전성의 개념에 가장 핵심적인 두 부분 중의 하나다. 뿐만 아니라, 논변의 건전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전제의 실제의 참, 거짓 여부를 알아야 하는데, 이는 논리학자가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물리학, 역사학, 경제학 등의 개별과학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유용한 논변은, 실제로 참인 전제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어떠한 것이 참이라고 가정할 경우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를 따져본다거나, 전제가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의 참을 가정하고 여기에서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결론을 도출함으로서 역으로 그 전제가 참일 수 없음을 보여주려 한다.
한편, 타당성뿐만 아니라 건전성의 개념도,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말하는 좋은 논변의 핵심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논리는 외연논리라고도 하는데, 그 중요한 특징은 어떤 문장이 갖는 참, 거짓의 진리가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위의 정의들을 잘 살펴보면, 모두 문장들이 갖는 진리가에만 입각하여 그 정의가 주어진 것을 알 수 있다.
(3) 논증의 타당성과 유용성
우리가 위에서 정의한 논증의 타당성은 본질적으로 형식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우리의 정의에 따르면 'P이므로 P이다'와 같은 논증이나, 모순을 전제로 한 논증과 같은 것들도 '타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실생활에서 이와 같은 논증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논증이 형식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 항상 그 논증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논증'이란 특수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인간의 활동이다. 따라서 그 유용성은 맥락에 의해 판별되어야 한다.
함축(Implication)과 동치(equivalence): 타당성은 논변이 갖는 성질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문장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일련의 문장의 집합 S 와 어떤 문장 A가 있을 때, 만일 S에 포함된 모든 문장이 참이고 A가 거짓일 수 없을 때, 우리는 집합 S가 A를 함축(imply)한다고 말한다. 물론 S는 하나의 문장만을 포함할 수도 있다. 가령, A라는 문장이 참인 동시에 B라는 문장이 거짓일 수가 없으면, 문장 A가 B를 함축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함축관계가 양방향으로 성립하면, 두 문장은 모두 가능한 경우에 서로 동일한 진리가를 갖게 된다. 이때, 우리는 이 두 문장이 서로 동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두 문장이 서로 진리가를 달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없다면, 두 문장은 서로 동치다.
(4) 필연성/불가능성/우연성 그리고 선험적/ 경험적 명제의 구분 (애매/모호)
문장의 논리적 속성 : 위에서 우리는 문장들 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물론 이것이 논리학에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이다. 한편으로 이와는 별도로 우리는 개별적인 문장들을 이들이 갖는 논리적 속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타당(항진)(valid): 어떤 문장이 항상 참일 때, 혹은 거짓일 수가 없으면, 우리는 이를 타당한(혹은 논리적으로 참인) 문장이라 한다. (valid라는 표현이 여기서도 쓰이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하였던 논변의 validity와는 서로 구분되는 개념임을 주의한다.)
우연(contingent): 어떤 문장이 때에 따라서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으면, 우리는 이를 우연적 문장이라고 부른다.
모순(contradictory): 어떤 문장이 참인 것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항상 거짓일 때, 우리는 이를 모순 문장이라고 한다.
만족가능(satisfiable): 모순문장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어떤 문장이 모순이 아니면 만족 가능한 문장이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된 논리적으로 참인 문장과 우연 문장 모두 만족 가능한 문장이다.
그런데, 만족가능성과 모순의 개념은 한 개별문장뿐만 아니라, 문장들의 집합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이때의 만족가능성과 모순의 개념은 다시 문장간의 관계에 그 초점을 맞추게 된다. 여럿의 문장들로 이루어진 집합 S가 있다고 할 때, S를 이루는 각각의 문장들이 동시에 참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S가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이때, S가 모순적이기 위해서, 꼭 S의 원소문장들이 모순적일 필요는 없다. 가령 S가 논리적으로 참인 문장과 우연 문장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정합적이지 못하면(양립 불가능하다면) S는 모순적이 된다.
한편으로, 각각의 원소 문장들이 동시에 참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 우리는 S가 만족 가능하다고 말한다.
1. 필연성/ 우연성 (Necessity/Contingent)
예컨대 "지금 왕산에 비가 온다" 라는 명제와 "지금 왕산에 비가 오거나 아니면 비가 안 온다"라는 명제를 비교해 보자.
"지금 왕산에 비가 온다"라는 명제는 참 (혹은 거짓)이지만 만일 세상이 다른 방식이었다면 거짓(참)일 가능성이 있는 명제이다. 이처럼 실제로 참(거짓)이지만 거짓일 가능성이 있는 명제들을 모두 우연적이라 부른다. 한편 '왕산에 비 가 오거나 안 오거나 둘 중의 하나다'라는 명제는 단순히 참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참 즉 거짓일 가능성이 없다. (왜하면 이를 부인하면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참이면 반드시 참 혹은 모순처럼 거짓이면 반드시 거짓인 명제들을 필연적 참/거짓 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세상이 어떻게 바꾸더라도 그 진리치가 변할 수 없는 그런 명제들을 필연적 명제라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 구분은 "형이상학적" 구분이다.
2. 선험적/경험적(후험적) 구분
예컨대 1+1=2, 왕산에 비가 오거나 안 오거나 한다, 모든 장끼는 꿩이다, 모든 총각은 남자다, 와 같은 명제들을 보자. 이 명제들은 위의 구분에 따라 명백히 필연적인 명제들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또 한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들 명제의 진리치를 인식하는 것이 즉각적이라는 점이다. 즉 '수원에 지금 비가 온다' 혹은 '옆방에 지금 학생들이 있다'라는 명제가 참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우리는 경험이 필요하지만, '수원에 비가 오든지 안 오든지 한다'와 같은 명제의 진리치를 알기 위해 우리는 수원에 진짜 비가 오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필연적 명제들은 단지 그 명제의 듯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그 명제의 진리치를 알 수 있다. 이런 명제들을 선험적 명제라 하고, 그 명제의 진리치를 알기 위해 경험이 필요한 (다시 말해 명제의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는 그 진리치가 결정되지 않는) 그런 명제를 경험적 명제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