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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신생 국가인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74년 동안 유지해 왔던 연방에서 슬로바키아 국토의 면적은 4만 9036km2이며 타트라 산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슬로바키아는 자연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높은 효용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하이킹과 스키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최상의 시설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전 국토의 80% 이상이 해발 750m 이상에 위치하고 있어 봄과 가을이 매우 짧은 기후 특성을 보인다. 또한 180여 개에 달하는 고성들이 옛스런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색슨 게르만족에 의해 13세기에 세워진 도시를 비롯한 많은 중세 도시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II. 역사 1. 대모라비아 제국의 성립 슬라브족이 현재의 슬로바키아 지역에 정착한 것은 5세기께이다. 833년 모라비아의 왕자는 니트라를 점령하고 지금의 중·서부 슬로바키아와 모라비아, 그리고 체코를 포함하는 대모라비아 제국을 세웠다. 대모라비아 제국의 왕자는 서쪽의 프랑크족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비잔틴 황제에게 선교사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863년에 그리스 선교사인 키릴과 메토디우스가 파견되었다. 이들은 그리스 정교로의 선교는 이루지 못했지만 예식과 성경의 전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최초의 슬라브 문자인 키릴 문자를 만들었다. 2. 헝가리 지배기 907년 들어 대모라비아 제국은 내부 지배층의 분열과 독일과 헝가리의 압력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침입자인 헝가리인은 슬로바키아 남부에 정착하여 1000년에 헝가리 왕국에 병합시켰고, 1018년에는 슬로바키아 전역이 헝가리에 통합되었다. 이 때 헝가리의 군주는 서구의 라틴 문명을 흡수하고자 로마 카톨릭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13세기 들어 타타르인의 침입을 받은 후, 헝가리 왕은 독일인들을 동쪽 국경(현재의 동슬로바키아)에 정착시켜서 차후의 침략에 대비한 완충 역할을 맡겼다. 이 때 슬라브어에서 분리된 슬로바키아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슬로바키아는 동슬로바키아 지역의 스피시(Spi午)가 1412~ 1772년까지 폴란드에 귀속된 기간을 빼고는 1918년까지 헝가리의 지배를 받게 된다. 16세기 초반 투르크가 헝가리를 침공했을 때 헝가리는 수도를 부다에서 브라티슬라바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후 합스부르크가에서 헝가리의 왕위와 영토를 맡게 되자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9세기 이래 처음으로 하나의 통치권 안에 놓이게 된다. 3.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19세기 중반에 시인인 루도비트 슈투르(L'udov 匨tu :1815~1856)는 슬로바키아어로 쓰여진 문학 작품의 창작을 선동했고, 곧이은 1848년 혁명도 슬로바키아인의 민족 의식을 자극하였다. 그러나 1867년 형성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헝가리에게 문화적인 자치권을 부여했고 이에 헝가리는 1868년과 1918년 사이에 슬로바키아에 대한 강력한 마자르화 정책을 펼쳤다. 급기야는 1907년 초등 교육에서 헝가리어가 유일한 공식 언어가 되자 슬로바키아의 지식인들은, 함께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체코인들과 긴밀한 문화적 유대감을 갖게 되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몰락하자 슬로바키아, 보헤미아 그리고 모라비아가 합쳐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의 융화는 쉽지 않았다. 문화적·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와 함께 체코인 중심의 중앙 집권적 정책에 슬로바키아인들의 불만은 커져 갔다. 1938년 뮌헨 협정으로 주데텐 지방이 독일에 할양되자 슬로바키아는 연방 내의 자치권을 선언하였다. 이 때 헝가리는 체코슬로바키아 내의 불안정을 이용하여 슬로바키아 남부를 할양받았 다. 한편 1939년 3월,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에 침공하자 티소(Jozef Tiso)를 수반으로 한 파시스트 괴뢰 정부가 독일의 보호 아래 슬로바키아에 세워지기도 하였다. 티소는 슬로바키아를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편으로 가담케 하지만 1944년 8월, 슬로바키아 유격대는 민중 봉기로 그의 정권을 타도하였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슬로바키아 국민의 민족적 자부심으로 살아 있다. 결국 티소는 1947년 전범으로 처형되었다. 1945년 초 소련이 진주한 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프라하가 해방되기 전까지 두 달 동안 코시체(Kosice)에 세워졌다. 전후 재창조된 체코슬로바키아는 양 민족간의 평등에 기초하여 운영되어 왔으나 1948년 2월 공산화되자 행정부는 다시 체코 지역의 프라하에 집중되었다. 이에 저항한 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민족주의로 몰아붙이며 비난하기도 하였다. 1960년 헌법에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동등하게 인정했지만, 1968년 두브체크(Alexander Dub匸ek)에 의해 주도된 ‘프라하의 봄’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이 개념이 실제 적용되었다. 4. 연방 분리와 슬로바키아로 독립 1989년 동유럽에 불어 닥친 혁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슬로바키아에서는 민족주의와 슬로바키아의 자치권 문제가 다시 거론되었다. 마침내 1992년 2월, 슬로바키아 의회는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조약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분열은 1992년 6월 총선에서 메치아르(Vladim Me匸iar)가 이끄는 좌파 진영의 민주 HZDS(민주 슬로바키아 운동)이 승리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총선 결과, 총150석의 슬로바키아 의회는 74석을 차지한 HZDS와 구공산당 계열인 SDL(좌파 민주당)이 29석, KDH(기독 민주당)이 18석,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SNS(슬로바키아 국민당) 14석, 그리고 MKDHE(헝가리 소수당)이 14석 등을 얻으면서 분열되었다. 이어 7월, 새로 들어선 의회는 슬로바키아의 독립을 투표로 승인하였다. 메치아르 총리는 체코의 클라우스 총리와 협상을 갖고, 통화와 군대 그리고 대통령에서 느슨한 동맹 관계를 요구한 반면, 체코의 클라우스 총리는 중앙 정부를 가진 연방제를 주장하였다. 개혁 이후 1992년 5월까지 슬로바키아의 실업률은 118%로 체코의 3.2%보다 높았고, 슬로바키아에 대한 외국의 투자도 연방 때의 10% 수준밖에 되지 않는 등 슬로바키아의 경제 상황은 계속 열악해져 갔다. 이런 어려움을 완화시키고자 슬로바키아인들은 점진적인 경제 개혁을 원해 왔다. 결국 양측은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고, 1992년 8월에 다시 회담을 열어 연말까지 평화적인 해결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독립 후, 슬로바키아는 과거의 동반자에서 이제는 경쟁자가 된 주변 국가와 경제적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III. 정치 1. 정치 참여 슬로바키아는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의회의 비밀 투표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으로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 수상과 각료 임명권 및 국회 해산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미할 코바치(Michal Kov c) 대통령이 행정부는 수상 아래 16개 부처로 이루어져 있으며 HZDS, SNS와 ZRS(슬로바키아 노동자 연맹)의 연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1995년 6월 현재, HZDS 출신의 메치아르가 수상직을 맡고 있다. 한편, 슬로바키아는 수도인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와 동·서·중앙 슬로바키아의 세 지역 밑에 38개의 지방 행정 구역을 두고 있는데 현재 새로운 지방 행정 체제를 논의중에 있다. 2. 정당 현황 1994년 10월 총선 결과 HZDS와 `슬로바키아 농민당(RSS)' 연합이 총 150석 중 61석을 차지하였고, 뒤를 이어 SDL, SDSS(사민당), SZNS(녹색당), 그리고 HPS(슬로바키아 농민 운동)의 연합인 민중의 선택 연합(Common Choice Bloc)이 18석, 전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헝가리인들의 연합인 헝가리 동맹(Hungarian Coalition)이 17석을 차지하였다. 슬로바키아의 사법 체제는 지역 법원, 지방 법원, 대법원의 3심제이며, 임기 7년의 10명의 판사로 구성된 헌법 재판소를 설치하고 있다. 3. 우리 나라와의 관계 우리 나라는 한편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주한 대사관을 분리하여 독립 운영하고 있다. 슬로바키아는 IV. 경제 또한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관세 자유 지역을 설립할 계획도 수립하였다. 1992년 중반까지 슬로바키아에서는 약 2100건의 합작 투자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체코에서 이루어진 8000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 오스트리아, 독일, 미국, 체코 순으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는 낮은 임금과 고급 노동력으로 투자가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자의 10% 이상이 대졸 출신이며 36.4%가 고졸 이상의 학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많은 관료주의적 규제는 투자의 장애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게 분리 독립 후 경제 회생에 노력한 결과 슬로바키아는 1994년들어 5%에 이르는 GDP(국내 총생산) 성장률을 보이며 본격 성장 국면을 맞고 있다. 우리 나라는 삼성, LG 등이 진출해 있고, 연방 분리 후 교역량은 1993년 상반기 기준 약 1400만 달러 수준이다. 가전 제품, 자동차, 의류 등을 주로 수출하고 섬유 직기, 볼베어링, 유리 제품 등을 수입하고 있다. 한편, 슬로바키아는 1993년 2월 체코와 화폐를 분리하여 슬로박 코루나(Sk:Slovensk koruna)를 사용하고 있고, 1995년 1월 현재 환율은 1달러당 32Sk를 나타내고 있다. 1993년 기준, 1인당 GNP(국민 총생산)는 1900달러, 월평균 급여는 200달러 수준이다 . V. 문화와 생활상 1. 인종 및 종교·인구 1994년 기준 533만 6455명의 인구가 있다. 전체 인구의 86%가 슬로바키아인이고 체코인은 1%에 불과하다. 소수 민족으로는 헝가리인이 11%(57만 명), 집시 1.5%(8만 3000명) 등이 있다. 슬로바키아 내 최대 소수 민족인 헝가리인은 대부분 동부와 남부에 거주하고 있는데, 1992년 9월에 발효된 슬로바키아 헌법은 소수 민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실제로 3분의 2의 헝가리 어린이들이 모국어로 수업을 받고 있다. 역사적인 이유로 슬로바키아인과 헝가리인들 사이에는 좋지 않은 민족 감정이 남아 있는데, 양국 정상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주요 도시로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 약 45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코시체(Ko午ice) 24만 명, 프레쇼프(Pre午ov)와 니트라(Nitra)에 각각 약 1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2. 전통 문화 슬로바키아는 고유 민속과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전통 민속 악기로 길이가 2m나 되는 플루트의 일종인 푸야라(fuyara), 백파이프의 일종인 가이디(gaydy), 그리고 목동들의 플루트였던 콘코브타(Konkovta) 등이 있다. 특히 슬로바키아의 민요는 1000여 년 동안의 헝가리 지배 기간중 슬로바키아어를 지켜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냈으며, 동슬로바키아 지역에서는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랑, 슬픔, 기대 등을 노래한 민요와 격렬한 민속 춤은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슬로바키아인들에게 삶의 불확실성을 잊게 해주는 묘약이었다. 3. 음식 슬로바키아인들은 식사 때 고추의 일종인 파프리카와 치즈와 베이컨 조각을 얹은 작은 경단인 할루슈키(halu午ky)를 곁들인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에서는 복숭아를 넣어 만든 팬케이크인 팔라친키 소 자바레니노우(Pala匸inky so zavareninou)와 마늘을 넣고 튀긴 도넛인 랑고셰(Lango午e)를 맛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샐러드가 있다. 한편, 구체코슬로바키아 연방 포도밭의 3분의 2가 브라티슬라바 동쪽 지역에 밀집되어 있어, 슬로바키아에서는 값싸고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해 낸다. 4. 일과 시간 및 공휴일 슬로바키아의 공휴일로는 신정(1월 1일), 부활절(4월), 노동절(5월 1일), 독립 기념일(5월 8일), 키릴과 메토디우스 기념일(7월 5일), 슬로바키아 민중 봉기 기념일(8월 29일), 제헌절(9월 1일), 성인 축제일(1 월 1일), 크리스마스(12월 24일~26일) 등이 있다. 토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박물관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상점과 관공서는 문을 닫는다. 5. 언론 매체 신문·잡지 1994년 현재 슬로바키아에서는 787종의 신문과 정기 간행물이 발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80종은 개혁 이후 새로 창간된 것이며, 발행 종류로는 일간지 20종, 정기 간행물 465종 그리고 지역 간행물이 302종을 차지하고 있다. 브라티슬라바에서는 13종의 일간지가 발행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991년에 창간된 『노비 차스Nov 匸as』가 23만 부로 최대의 발행 부수를 나타내고 있고, 이어 좌파 계열로 1920년에 창간된 『프라브다Pravda』가 16만 5000부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Sport』도 인기 있는 신문 중 하나이다. 방송 1992년 현재 라디오는 110만 대, 텔레비전은 130만 대가 보급되어 있다. 방송국의 설립은 슬로바키아 라디오, 텔레비전 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라디오 방송으로는 라디오 슬로바키아(Slovensk rozhlas)가 1926년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고 텔레비전 방송으로는 1956년에 설립된 공영 방송 슬로바키아 텔레비전(Slovensk Telev ia)이 있다. 6. 여행 정보 슬로바키아에는 타트라 산맥을 이용한 스키 리조트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시설을 즐길 수 있다. 스키 시즌은 12~4월까지로 렌탈도 가능하지만 그리 좋은 장비는 구할 수 없다. 슬로프마다 난이도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데 흑색은 고급자, 적색은 중급자, 청색은 초보자 코스로 구분된다. 그리고 리프트 시설은 열악해서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슬로바키아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덜 붐비는 도로 덕에 사이클링을 하기에도 최적이고, 20여 개의 온천, 수많은 성들과 잘 간직된 그들 고유의 전통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여행 정보 및 안내는 전국에 52개 지점을 두고 있는 `사투르(Satur)'를 통해 얻을 수 있다. 7. 박물관 미식가들은 브라티슬라바의 와인 박물관에 가볼 만하다. 바르데요브스케 쿠펠레(Bardejovsk K ele)의 샤리스케(匨ari午sk 박물관은 동유럽의 전통 가옥을 재구성해 놓았다. 그리고 반스카 비스트리차(Banska Bystrica)에 소재한 슬로바키아 민중 항쟁 박물관은 공산 정권기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고난의 슬로바키아 역사를 되새기기 위한 교육장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그 밖에 가볼 만한 곳으로 스피슈케 포드흐라디에(Spi午sk Podhradie) 근교의 스피슈키 흐라드(Spi午sk hrad) 성과 완벽한 방어가 가능한 요새로 알려져 있는 트렌친(Tren匸 ) 성, 그리고 전쟁중 파괴되어 복구시켜 놓은 브라티슬라바 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