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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 다산초당(왼쪽), 해남 땅끝마을(오른쪽).
ⓒ해남 땅끝마을 |
전남 남부 지방 해안을 중심으로 해남군·강진군·장흥군과 도서 지역인 진도군·완도군이 이마를 맞대고 있어 이 지역을 같은 생활권으로 보고 있다. 이곳 출신들은 목포나 광주로 유학을 가거나 아예 서울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예부터 호남을 예향이라 부르고 이 지방 출신 중에 법조인이 강세인 것으로 알려져 있듯이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제제다사(濟濟多士). 법조계·재계·문화예술계 등에 주요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을 뿐 아니라 사계(斯界)의 권위자와 기록 보유자들도 적지 않게 있다.
그런 만큼 법조계에 거물급 인사 또한 많다. 호남 출신 법조인들 중 다수가 광주일고와 광주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사람들이다. 윤일영 전 대법원 판사, 윤재식 전 대법관, 윤관 전 대법원장, 변정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학재 전 대검 차장검사, 명동성 전 법무연수원장이 법원과 검찰을 떠나 현재 주요 법무법인의 대표 또는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변협 회장을 지낸 박재승 전 대법관과 김창국 변호사가 있는데, 김변호사는 국가인권위원회 초대 위원장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윤관 전 대법원장(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은 법원 재직 시절 사건 당사자나 일반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던 법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50여 년 법조 인생 중 전반은 연고지인 호남의 광주·장흥·순천 등지의 법원에서 보냈고 1980년 이후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북부지원장, 청주·전주지법원장을 거쳐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그가 중앙선관위원장과 대법원장으로 있던 10년간은 문민정부 출범과 헌정 사상 첫 여야 정권 교체 등 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큰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였다. 장남은 윤준 대전지법 부장판사이고, 차남은 윤영신 조선일보 경제부장이다. 현직 법조인으로는 이귀남 법무부장관, 손용근 사법연수원장, 정갑주 광주고법원장, 윤준 대전고법 부장판사, 이경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비롯해 다수의 판검사가 각급 법원과 검찰청에 재직하고 있다. ‘옷로비 사건’을 수사했던 최병모 특별검사도 강진 출신이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관운이 좋았던 검사 출신이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도 대검 공안부장과 중수부장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한때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거론되었으나 사법시험 동기가 총장 후보자로 내정되면서 법무부 차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판소리 등 중요 무형문화재도 즐비
18대 국회의원으로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김영진(민주당·광주 서구 을)·김영록(민주당·해남 완도 진도)·조영택(민주당·광주 서구 갑) 의원이 있다. 전직 의원 중에는 김봉호 전 국회 부의장, 김옥두 전 의원이 있다. 지자체장으로는 황주홍 강진군수, 이동진 진도군수, 김종식 완도군수가 고향에서 출마해 당선의 영예를 안은 경우이다. 그 밖에 박영순 구리시장, 노관규 순천시장,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 박형상 서울 중구청장도 있다.
유영찬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해남)은 자리를 부인인 정희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2010년 8월 연구소가 연구원으로 명칭 변경)에게 물려준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유 전 소장은 광주고-성균관대 약학과 출신으로 성균관대 약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으며 대학을 마치자마자 들어간 국과수에서 소장을 지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이력도 다채롭다. 강진농고-부산수산대 어로학과 졸업, 국내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 실습 항해사, 고려원양어업 수산부장, 동원산업 설립, 동원그룹 회장, 23-24-25대 한국무역협회 회장 역임을 비롯해 명예박사 학위만도 부산수산대 수산학, 고려대 경영학, 한국외대 경영학, 조선대 문학 등 4개나 된다. 참치잡이로 시작해 수산·식품·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기업을 확장했다.
조선내화는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다. 이훈동 명예회장은 광산업을 하던 1953년 이 회사를 설립해 키웠다. 1971년부터 대한내화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아오고 있으며, 전남일보 발행인 겸 회장직도 맡고 있다. 현재는 장남인 이화일씨가 회장직을 맡고 있다. 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차남 이정일씨는 지난해 사망했다.
고 박세정 대선제분 회장이 세운 회사는 아들 박관회 회장이 맡아 경영하고 있다. 경복고와 미국 하트퍼드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박회장은 대학 강의와 일반 직장 경험을 두루 거친 후 대선제분 전무이사로 취직해 가업을 이어받았다.
이수영 코오롱그룹 경영기획실 전략사업팀 상무는 재계에서 주목받는 42세의 당찬 여성 기업인이다. 전남여고-서울대 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이상무는,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를 거친 후 코오롱으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차장에서 곧바로 상무보 승진, 37세 때 임원 승진이라는 기록이 말해주듯 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가 그녀를 받쳐주고 있다.
지역 출신 전문 경영인 중에는 김두봉 롯데알미늄 대표이사 부사장이 있다. 장흥고와 고려대 상대를 나와 롯데칠성음료 경리부장으로 일한 김부사장은 롯데백화점, 롯데햄, 롯데우유에서 경리-관리 업무를 거쳐 롯데알미늄의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롯데자이언트 구단주 일도 보고 있다.
<서편제>의 작가 이청준은 재작년 69세를 일기로 고향 땅 장흥에 묻혔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43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2003년에는 자신의 작품을 <이청준 문학 전집> 25권으로 정리했고, 그 후에도 몇 권을 더 내는 등 투병을 계속하면서도 펜을 놓지 않는 집념을 보였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본명 김윤식)의 고향이 강진이다.
중요 무형문화재로는 김성래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 정철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 김귀봉 진도다시래기 기능보유자, 김대례 진도씻김굿 기능보유자가 있고, 국악인으로 유명한 신영희가 있어 이 지역의 향취를 말해준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했던 강진이나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 보길도가 이제와서는 ‘강퍅했던’ 유배지라기보다 아련한 ‘수향(水鄕)’을 떠올리게 하는 듯도 하다. 한국 화단의 거목 의제(毅齊) 허백련, 남농(南農) 허건이 진도 출신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의 고향도 강진이다. 그의 기풍은 ‘중후(重厚)’ 두 자로 압축된다. 일본의 기타니 문하에서 1년8개월간 공부하고 1964년 돌아온 ‘도일 유학 2호’ 김인이 ‘1호’ 조남철의 아성을 허물었다. 그는 1973년 최고위전에서 10세 연하 조훈현에게 바통을 넘기기까지 10년 남짓 무적 시대를 구가했다.
공사 출신의 명영남 예비역 공군 준장(전 공군 훈련비행단장·강진 출신)은 미국 공군 계기비행학교에서 외국군 장교로는 최초로 수석 졸업을 했으며, 비행 경력 30년에 5천2백46시간의 전투 조종사 최고 제트 비행 기록을 세웠다. 또 한 사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가 있다. 오장근 한국비행기제작연구소 소장(해남)은 한국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한 신학도인데 일찍부터 비행기에 심취해 낙하산 비행기 국내 최초 제작, 엔진패러글라이더 국내 최초 제작을 시작으로 TV 촬영용 무인비행기, 호버크래프트, 공기 부양 거북선, 태양전지 자동차, 태양전지 비행기 등의 제작에 나선 진기한 기록을 갖고 있다.
둘 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얼마 전 열반한 법정 스님과 수영 실력 못지 않게 구수한 입담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선수가 해남 출신이다. 허정무 인천유나이티드 FC 감독의 고향이 진도이고, 듬직한 체구로 믿음을 주었던 고 황호동 역도 선수는 강진 출신이다. 또 인기 탤런트 김창숙과 영화배우 이보희, ‘탱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골프 선수 최경주가 완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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