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산신제
아침 여덟시가 되어 어제 준비해 놓은 쿠퍼랑 버너와 산신제 지낼 때 사용할 축문과 향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배낭에 주섬주섬 챙겨 넣고 덕일상가에 있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조금 사서 여분의 배낭에 넣으니 무게는 얼마 되지 않는데 자크를 겨우 닫을 만큼 배낭이 꽉 찬다.
당초 산행하기로 약속한 보련산에 대해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 보았지만 산행 시작점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고 회원들 중에 다녀온 사람이 있으리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약속 장소인 롯데마트로 향했다.
일요일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마트의 주차장은 며칠 전 부터 주차해 놓은 듯 앞 유리창에 눈이 얇게 덮인 너덧 대의 차량 이외에는 없어 텅비어 있는 주차장이 썰렁하기만 하고 직원 몇몇만 분주한 걸음을 옮겨 놓는다.
늦게라도 올 회원들을 기다리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지나 성학씨랑 용진씨의 차량으로 두진아파트에 도착하여 기다리던 세사람을 태우고 봉양방면으로 운행을 하면서 오늘 오를 산에 대해 상의하였다.
봉양과 백운에 걸쳐있는 가까운 시랑산으로 가기로 했다.
박달재 정상의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무로 근사하게 묘사한 장승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왕방울 눈을 부라리며 하늘을 향해 잔뜩 치켜세운 남성 심볼도 우람하거니와 무명 저고리 밑으로 불거져 나온 여성의 풍만한 가슴도 다산의 상징인지 여인이 품고 있는 욕망의 발현인지 그럴듯하게 깍아 놓았다.
해학이라면 어떻고 외설이면 어떠랴.
이만하면 웃음을 선사할 좋은 소재가 아니던가
오르는 산길은 응달이어서 아직도 미끄럽다.
어느만큼 가다 TV에 가끔 나오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로 재구성한 스토리를 성옥씨가 구수하게 늘어 놓는다.
첫 번째 언덕을 넘으며 몇 편의 시나리오를 정신없이 듣다보니 길을 잘못들었다.
하산하는 모정리 내리막 길이 아닌가.
변사 아줌씨를 잠시 제지하고 길도 없는 비탈을 따라 다시 산등성이 등산로로 올랐다.
시랑산 정상은 높이 691미터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하던 시절 친구와 몇 번 올랐던 기억이 있다.
동쪽으로는 봉양읍과 왕미 일대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공전방면과 모정리 그리고 애련리 가는 길이 보인다.
정상 표지석 앞에서 젯상을 정성껏 차렸다.
사과와 배, 감, 떡, 술, 포로 약소하나마 구색을 갖추고 향을 피우고 축문을 읽었다.
우리 119산악회가 번성하고 회원들이 무탈하고 좋은 일만 생기게 해주십사고 모든 회원들이 간절하게 소망하였다.
밖에서 그것도 여럿이 먹으면 운이 달아서 맛있게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산에서 먹는 점심은 정말 꿀맛이다.
김밥과 콩을 넣은 구수한 잡곡밥도 맛있지만 김치와 곁들인 라면은 참으로 으뜸이라 할 수 있는데 어묵에 고본주까지 있으니 일류호텔의 음식도 이 맛을 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성옥씨에게 입담을 펼치라고 채근했다.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 새색씨 마냥 뭐 그리 수줍음이 있으랴.
구수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인터넷 유머방에서 훔쳐 모 까페에 올려놓은 것과 같은 이야기다
지금은 군인들도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갈 수 있고 면회 또한 어느때나 가능하고 절차도 간단하지만 예전에 면회를 하려면 위병소에서 정해진 서식에 의해 여러 가지를 적어야 했다.
어느날 충청도 단양에 사는 순이가 전방에 있는 애인이 그리워 물어 물어 면회를 갔다.
위병소에 근무하는 군인은 엄격한 얼굴로 들어오라 하더니 종이를 몇 장 꺼내어 거짓말 하지 말고 꼼꼼하고 정확하게 적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겁에 질린 순이는 이름이며 주소며 나이며 차곡차곡 적어 나가는데 이크 이게 뭐야 관계를 쓰라는 칸이 있는데 에구머니나 망칙해라 관계라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걱정이 태산이다.
다른 것은 다 쓰고 관계만 빈칸으로 제출하니 위병군인 왈
“아니 아가씨 이 칸은 왜 비워 놓으셨습니까? 다 채우십시오.”
에구 에구 큰일이다.
하는 수 없이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여삼보사’라고 썼다.
“여보세요 아가씨!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여삼보사가 뭐요. 다시 쓰세요”
울상이 된 순박한 단양촌 순이 하는 수 없이 다시 썼다.
-여관에서 세 번 보리밭에서 네 번- ^*^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인지 나는 영 모르겠는데 모두들 웃는다.
군대 가기전 애인이랑 순이네 보리를 네 번 베었다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 출발하였던 박달재에 돌아오니 채 세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야간 근무만 아니면 명암이든 영월이든 황토방이라도 가면 좋을텐데 다소 이른 시간이 아쉽다.
다음 2월 등산시엔 더 재미있는 소재를 대여섯 개씩 알아오기로 했다.
2010년 1월 24일 껄떡쇠 일기 끝.
첫댓글 ㅎㅎ 정말 조금 아쉬운게 넘 일찍 산행이 끝났다는거 그리고 축문을 읽는 계장님의 모습이 넘 아름다웠습니다.
ㅎㅎㅎㅋㅋㅋ계장님의 일기 훔쳐보는 재미....ㅋㅋ 고생많이 하셧구요.119산악회 회원을 위해 축문까지...감사합니다.
다음달에 산행시 더많이 기대하세요 "사랑과 전쟁" 근데 묘한 뉘앙스가 생겨요 "전쟁과 평화" 어느말이 맞는겨!!
짧은 산행이었지만 넘~재밌고 즐거웠어여ㅋㅋㅋ깔깔거리며 웃다보니 어느새~~아쉬웠어염~~~~나중 또 뭉쳐여~
산행은 즐거웠고 준비하신분들 수고도하셨고 덕분에 잘다녀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