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호 시인의 첫 시집 <누구의 몸부림인가>가 우리시회 움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간행하는
우리시시인선 024번으로 출간되었다.
이길호 시인은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소화초등학교와 복중학교, 수원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시절엔 교내백일장을 휩쓸었고 수원시 주최 백일장과 한글백일장에서도 연속 입상하는 것
은 물론 학원문단에서도 문재를 자랑하였다.
가정형편으로 진학하지 못한 그는, 졸업을 앞둔 고교3학년 때 수원문화원에서 시화전을 개최하는
것으로 시인으로서의 열망을 불태우기도 했었다. 군 입대 후, 그는 월남전에 자원했으며 맹호부대에
서 혹독한 전쟁을 경험해야만 했다.
현재 참전 유공자이기도 한 그는,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어렸을 때의 꿈인 시를 놓지 못해
오로지 시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길호 자서]
보잘것없이 지나치는 돌부리나 들꽃 같은 것도 자세히 보면 그곳에 머물 가치가 있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둘러싼 가족 친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나는 그중에 한 식구로써 한몫을
해내고 있는지 모른다. 이인숙, 이기호, 이정호, 이정숙, 이평호, 이길호, 이경숙, 이효숙 팔남매 중 큰
형과 작은형 여동생은 이미 작고했다.
배 골았던 시절, 월남전에 자원해서 호된 전쟁도 경험했고 새벽 별보고 기진 할 때까지 장사했던 용
산시장을 거처 가락시장 과일도매 중앙청과 기도상회를 십년 전까지 운영하다가 미련 없이 접어버렸다.
예전 시를 쓰던 감정을 되살려서 칠십 여 편 묶어 시집을 발행한다. 독자 분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다소
두렵다.
고향땅 수원문화원에서 개인시화전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내 나이가 육십이 훨씬 넘었으니 세월이
참 무상하고 허탈하다. 서정의 낱말들은 많이 사용 못하고 직선적으로 표출된 나의 시어들이 독자들과
같이 이심전심을 이룬다면 나는 그것으로도 족하다.
이 시집 간행에 도움을 주신 임동윤 시인과 한민수 후배에게 경의를 표하며 수원 고향친구 최희일, 이운
학, 백종현, 심재익, 김종근, 최춘길 위인들에게도 건강을 기원한다.
삼밭공원에서 이 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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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
한껏 응어리진 슬픔 때문에
줄기차게 떨어지는 폭포는
한줄기 눈물의 소야곡인가
꿈은 허상이요 현실은 냉혹한 실체
현실의 각박한 압박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는 비천밖에 없는가.
두루두루 물보라를 모아모아
머나먼 길을 마다않고
굽이굽이 돌아왔건만
불현듯 토사곽란식
시간의 추락을 이리도 허망한가
어떤 원한을 풀지 못해
그리도 애달피
가슴 쥐어뜯으며 뜯으며 폭포는
오늘도 낙루의 울음을 터트리는가
포말의 거품을 물고
바위를 뚫어 버릴 듯이
부딪쳐 요란하게 소리치는 아우성은
도대체
누구의 절규이며
어떤 의미의 함성인가
월남 전투
가난에 쪼들리다 쫓기다 못해
월남전에 자원해 왔습니다
병력을 이동시키는 헬리콥터
불을 뿜어대는 백오십오미리 직사포
베트콩이 쏘아대는 적탄통과 쏘련제 AK소총
그에 맞서는 M16소총
죽느냐
죽이느냐
두 가지 선택의 숲에서
밤에 벌어지는 월남 전쟁을
소름끼치도록 무섭기도 하고
더러는 구경도 할 만 합니다
베트콩과 맹호부대가 뒤엉켜
한판 호되게 치루는 전투
불꽃놀이처럼
이곳저곳에서 예광탄이 날아가고
하늘 높이 치솟은
조명탄의 환한 불빛은 정녕
축제의 무대를 방불케 합니다
결코 죽지만 않는다면
폭죽놀이만큼보다 요란한
전투 정경이지만
옆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전우를 보면
눈에서 퍼뜩 살기가 서립니다
총탄 한 방에 시간의 길이가 동강나는
생과사의 전투
전투는 생명의 몸부림입니다
여객기
외롭고 한적한 창공에
칼바람이 장대壯大한 쇠붙이와 부딪쳐
자지러지듯 소리를 지른다
하늘이 쪼개지려나
소리가 쪼개지려나
갈 때는 깨끗이 가는데
올 때는 오물 가득 싣고 오는 여객기
마약과 가짜약품
짝퉁시계와 짝퉁가방
외화 낭비가 엄청 심한데
이런 손님은 그냥 그곳에 놔두고
양심 고운 자들만 싫고 오면 어떨가
땅에만 도둑이 있는 줄 알았더니
하늘에는 발자취 없는 도둑이 판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