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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미국에서 6·25 때 가져간 국보급 옥새를 반환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금으로 된 거북 장식 옥새입니다. 거북은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에 으레 왕가의 장식물 중 하나를 차지하지요. 십장생(十長生)에 드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 거북은 한자로 龜라고 합니다. 음은 귀, 구, 균 세 가지로 납니다. 귀는 말 그대로 거북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구는 원래 서역의 구자국(龜玆國)이라는 나라를 표기할 때 음차하면서 생긴 발음입니다. 구자국은 실크로드 상에 있는 사막 도시인데 지금은 쿠처(庫車)라고 합니다. 구자-쿠처, 지금도 음이 비슷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엉뚱하게 지명은 물론이고 인명으로 쓸 때도 무조건 "구"라고 읽을 것을 강요하다시피 합니다. 구미, 구암, 영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지명이라도 실제 유래가 거북과 관련이 있으면 귀라고 읽어주는 것이 맞습니다. 구미(龜尾)는 거북 꼬리 모양이니 귀미가 맞고, 구암(龜巖)도 거북 바위에서 유래 하였으니 귀암이 맞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렇게 써왔으니 되돌리기가 힘들지요. 다만 한자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원리가 그렇다는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균으로 읽힐 때는 갈라지다, 터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장자』에 대대로 세탁업에 종사하면서 물에 오래 손을 담가도 손이 트지 않는 약을 개발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손이 터지지 않는 약을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이라고 합니다. 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뜻이 생겨난 것은 거북 등 모양이 그렇게 갈라진 데서 나왔습니다. 가뭄 끝에 논이 마르면 뉴스에서 "거북 등처럼 말라서 갈라진 논"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 거북 귀자는 머리가 위로 가고 등이 오른쪽으로 가도록 세워놓은 모양입니다. 옛날에는 노트가 요즘처럼 가로쓰기가 아닌 죽간(竹簡), 목독(木牘) 같은 세로쓰기 노트였거든요. 가로쓰기를 할 경우야 가로로 긴 것도 얼마든지 그려내겠지만 세로 노트에 가로로 길게 쓰기는 불편하기 때문에 이렇게 변형된 것이지요. 말(馬)과 코끼리(象), 돼지(豕) 같은 동물을 나타내는 글자가 모두 세로로 세워진 글자들입니다. 반면 원래 세로로 길게 생긴 글자들은 눕힐 필요가 없겠죠? 식물들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그 예들인데, 벼(禾)와 나무(木), 꽃(華) 등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럼 거북을 한번 세워볼까요?
어때요 많이 닮았나요? 그러면 이번에는 「거북 귀」(龜)자자를 최대한 확대해서 한번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만 글자가 누워버렸네요. 이 글자는 위의 사진과 비교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하죠? 머리, 다리, 등 모양이 아직도 글자에 확연히 남아 있습니다. 「거북 귀」(龜)자의 시대별 자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북 귀」(龜)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거북이가 등을 보이며 헤엄치는 모습입니다. 이 글자를 보면 금문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갑골점(甲骨占)이 가장 권위가 있었지요. 갑골이란 말은 귀갑(龜甲) 즉 거북 등껍질과 수골(獸骨) 곧 소 등과 같은 큰 뼈라는 뜻입니다. 이곳에 얕고 둥근 홈과 깊고 좁은 홈을 파서 불로 지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균열(龜裂)을 점을 주관하는 사람이 읽었습니다. 그 균열이 바로 「점 복」(卜)자이고, 점괘를 설명해주는 입을 그린 것이 바로 「점 점」(占)자입니다. 위의 두 사진은 같은 갑골편을 앞뒤로 찍은 것입니다. 앞의 것은 좁고 깊은 홈과 둥글고 얕은 홈을 파서 불로 지진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뒷면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글자는 점을 본 결과를 적어놓은 것입니다. 물론 점괘를 풀이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온 괘이겠지요. 이 갑골편에는「점 복」(卜)자가 두 개 보입니다. 「점 복」(卜)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갑골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거북점은 귀갑이겠지요. 사실 거북의 등은은 너무 단단해서 점을 치는 도구로 별로 사용되지 않았고 위의 사진처럼 거북의 배딱지를 주로 썼습니다. 중간에 선이 보이는데 이 선을 천리로(千里路)라고 합니다. 이런 배딱지에는 최대 약 70번 정도 지진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점괘는 위와 같이 기록하는데 천리로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 되도록 많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점 점」(占)자의 갑골문-금문-소전 점을 친 기록인 이 갑골문은 19세기도 다 저물어가던 1899년에 왕의영(王懿榮)이라는 학자가 감기몸살에 걸렸을 때 지어온 약재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약재는 용골(龍骨)이라고 했는데 땅에 묻힌 갑골을 잘게 부순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감기몸살로 인해 중국의 문자학은 근본적으로 싹 바뀌게 됩니다. 이전까지 절대적인 표준이었던 허신의 『설문해자』가 졸지에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온 길보다는 가야할 길이 더 많다고 합니다. 갑골편에서 발견된 한자가 약 5000자인데 그 중 확실하게 판독이 된 글자는 1000여자로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 위의 갑골문을 읽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가 있으니 기죽을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책에서도 사진과 위로는 갑골문을 가지고 알아볼 것입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는 한자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시는군요, 한자의 세계에 좀 더 눈이 뜨이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잘봤습니다. 거북이는 중국에서 너무 수난을 많이 당한 동물이라 불쌍합니다. 이 글씨는 획도 참 재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