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서명 현존 서명
포명본교대지서 → 단군교포명서
단군교오대종지포명서 → 단군교오대종지서
성경팔리 → 단군교팔리 → 참전계경
본교, 대종교 → 단군교 → 대종교
==> 위 주장대로라면 백두산에서 본교, 단군교, 대종교의 3가지 이름이 벌써 쓰여졌다는 말이네요. 그게 상식적으로 합당한가요? 세상에 어느 종교에서 자기 종교이름을 3가지로 부를까요? 단군교오대종지포명서 라는 것이 백두산파의 원본을 보기전엔 확증할 수 없습니다. 이게 맞다면 굳이 단군교를 1년만에 대종교로 바꿀 이유없고 정운모의 단군교와 분리될 이유도 없죠. 그리고 오대종지서라는 것도 백년전 인간들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 고경전과 확실한 차이가 있죠. 참고서일뿐 경전취급은 무리입니다.
처음 전해내려오는 대종교의 내력을 보면, 홍암 나철이 처음부터 대종교에 입교하여 포교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마음을 다시 돌려먹게 되는데(1909.1.15.), 그 이유는 아마도 처음부터 포교에 관해 마음이 없었다기 보다 처음 백봉대종사로부터 전수받은 경전들(1905.12.30.)에 대해 약 3년여 동안은 경전들에 대한 연구가 나름대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기간을 일러서 대종교에서는 포교에 전혀 마음이 없었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인데,
==> 단기4238(서기1905)년 섣달 그믐날 밤(서기 1906년 1월 24일) 백봉 대종사는 90고령의 두암백전(頭巖白佺) 선옹을
보내어 구국운동으로 일본을 다녀 오는 홍암나철에게 서울 서대문역에서 만나, 삼일신고 해설집과 신사기(神事記)를 전하여 주었다.
그러나 홍암나철(弘岩羅喆)은 당시 구국의 정치 외교행각에만 관심이 집중된 때인지라 별로 관심없이 집에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그 후
단기 4241(서기1908)년 12월 5일 정훈모 동지와 홍암나철은 4번째로 일본에 건너가 구국외교의 정각행각을 위하여 동경
청광관에 머물때, 백봉 대종사가 두 번째로 보낸 미도두일백(彌島杜一佰) 선옹이 찾아와, 단군교 포명서를 비롯하여
고본신가집(古本神歌集), 입교의절(入敎儀節), 봉교절차(奉敎節次), 봉교과규(奉敎課規) 등의 책을 전하면서, "라공(羅公)과
정공(鄭公)이 금후에 할 일은 단군교포명서 선포에 관한 일이니 명심하시오."라는 말을 하고 따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홍암나철 일행은 일본경찰의 탄압을 피하여 숙소를 개평관으로 옮겼는데, 미도 선옹이 새벽같이 또 찾아와 엄숙한 표정으로,
"국운(國運)이 이미 다 하였는데 어찌 바쁜 시기에 쓸데없는 일로 다니시는가? 곧 귀국하여 단군대황조의 교화(敎化)를 펴시오. 이 한 마디가 마지막 부탁이니 빨리 떠나시오."하고는 바람 같이 떠났다고 한다.
비로소 홍암나철은 대오대각(大吾大覺)하였으며, 그 길로 귀국하여 이듬해 단기 4242(서기 1909)년 음력 1월 15일, 종로구
재동 한 초가집에서 "대황조 단군 신위"의 위패를 북벽에 모시고 단군교 서울시교당을 차리고, 수십 명의 동시들과 단군교 포명서를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삼일신고 위키피디아 설명> : 1906년 나철(羅喆)이 백봉도인의 제자 백전으로부터 전해받은 것이라고 하며, 1909년 대종교를 중광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으나, 얼마 후 경전으로 채택되었다.
위 내용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겁니다. 홍암대종사는 신사기, 삼일신고를 받을 때 관심없었다가 맞습니다. 그리고 1909년 바로 경전채택이 되지 않은 것도 1909년부터 연구하여 그 후 경전채택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대종지 오대종지
(변형 전 발표문- 1909.12.1.) (변형 후 발표문- 1910.4.27.)
경봉조신(敬奉祖神) → 경봉천신(敬奉天神) : 제대로 바꾸었네요. 백두산파는 대황조 숭봉이지만 홍암은 천신 즉 일신숭봉으로 바꾼겁니다. 신사기를 보고 그렇게 했겠죠. 신리대전은 신사기 설명서라 할 수 있습니다. 대종교에선 신사기를 홀대하지만... 위키피디아에서조차 신사기가 검색안되더군요. 말도 안되는 사실이 2013년 현재 중광 100년이 넘었다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삼일신고는 신사기의 교화기에 있으니 대교의 최고경전은 신사기 인데 대교내외에서 백년넘게 홀대받고 있습니다.
감통영성(感通靈誠) → 성수영성(誠修靈性) : 교화주 가르침에 따르면 영성이 아신 성통이죠. 둘다 원문을 따르지 않은 겁니다. 誠修德性通 또는 修德性通 이 경전 가르침에 합당한 표현입니다.
애합족우(愛合族友) → 애합종족(愛合種族) : 신사기 조화기에 五族이라 했으니 愛合五族이 합당합니다. 族友가 오족을 말한다면 원문인 애합족우가 합당합니다. 種이란 서로라는 종이라는 개념이고 族은 조상이 같다는 것으로 신사기에는 오색족이 최초의 인류인 나반과 아만의 자손이라 했기에 種보다는 族이 올바른 표현이며 신사기에도 그렇게 써 있습니다. 오색인종이 아닌 오색족으로. 여러번 말하지만 고경전 용어는 글자 하나라도 소중히 살펴 읽어야 하며 함부로 바꾸면 후세인들이 헷갈립니다.
안고기토(安固基土) → 정구이복(靜求利福) : 경전에 선복악화입니다. 고요함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하면 하늘이 복을 주시는 거죠. 구하는 것은 자성구자에서 쓰는 용어죠. 복을 구하러 선행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니까요. 行善福來 라고 하는 게 좋을 듯 하네요.
근무산업(勤務産業) → 근무산업(勤務産業)
즉, 이러한 경전의 명칭 및 내용 훼손은 외부에서 자행된 것도 아니고 또 세월이 흘러서 전수과정에서 이상이 발생이 되어 생긴 문제도 아닌, 바로 이른바 중광당시부터 의도적으로 첨삭이 가해지는 것입니다.
==> 의도적 첨삭은 당시 세상의 이해와 언어표현에 맞게 바꾼 듯 합니다. 당시는 일반인들이 단군을 알지 대황조는 모르므로 단군교라 한 듯 하고(본교라 하면 더 모르죠), 차라리 천신교라 처음부터 했으면 좋았지 싶습니다.
소위, 신리대전에서 삼신을 강제적으로 일신으로 합치는 문제.
==> 이건 무원종사와도 관련있는 듯 하네요. 그분 저술 신단민사와 신단실기를 읽어보고 자세히 살펴봐야 겠습니다. 홍암대종사나 무원종사만의 문제가 아닌 그 당시 삼신개념이 있어서 그대로 받아들인 듯 합니다. 마침 신사기에도 환인, 환웅, 환검으로 나왔으니 삼신이구나 하고 한거죠. 신사기 원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삼주일신 또는 삼일신이라 주장하셨을텐데 아쉽네요.
한가지, 그런 의미에서 여러가지 현존하고 있는 대종교 경전들은 제가 확인한
것만 해도 현 대종교 경전에 포함이 안된 경전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경전이 없었고, 또 더군다나 객관주의님께서 그토록 염원하시고 계신 수행과 관련한 수행지도 목적의 경전또한 굉장히 많이 일부지만
있습니다.
특히, 이루다 헤아리기 힘든 수행방법들이 저도 깜짝 놀랄만큼 많았었는데, 하나의 보물창고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여해 도형님의 단에서도 보이는 여러가지 수행법에 대한 언급들도 상당수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경전들이 의도적이건, 의도적이 아니건간에 현 대종교 경전에서는 상당수 누락이 되었고 배제되었다는 점입니다.
==> 수행관련 책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 내용은 고경전 가르침에서 벗어난 듯 합니다. 권태훈 총전교도 마찬가지고요. 현재 경전에 편입안된 수행관련 책들은 그냥 경전에 편입안되는 것이 좋습니다. 삼전계경 366사에 정실, 회향이라고 청소해라, 향피워라는 있어도 왜 <경전봉독해라, 조식해라 등>은 없는지 고민해 본적 있습니까? 현재 대교에서는 경전봉독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것이 왜 366사에 끼지도 못했을까요? 지감, 조식, 금촉하라 합니다. 그런데 왜 366사에는 없을까요? 팔조대고에도 역시 없습니다.(권태훈 총전교책에 보면 삼일신고는 원래 천,신,천궁훈의 3훈이었고 세계훈, 진리훈은 후세인의 첨가라 합니다.)
수행법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대교 수행법은 수덕행선입니다. 5대고경전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거죠. 그래서 종교가 신앙이 아닌 수행이라 주장하는 겁니다. 신앙이란 표현은 5대고경전에 한번도 안 나오거든요.
신사기 조화기 : 양선무위(良善 僞)하여 순연자재(鶉然自在)라 주애지(主愛之)하사 신석복(申錫福)하신대 기인(其人)이 수차귀(壽且貴)하여 무요찰자( 夭札者)니라.
신사기 교화기(삼일신고) : 천(天)은 신국(
國)이라 유천궁(有天宮)하여 계만선(階萬善)하며 문만덕(門萬德) ==> 자성구자 : 덕과 선으로 자성에서 알을 구하라는 뜻. 알(아래아) = 천부경의 일
신사기 치화기 : 수기(守己)아 여작운사(如作雲師)하여 주선악(主善惡)하라 인심유망(人心惟忘)하여 전환미상(轉幻靡常)하나니 선유감림(善惟甘霖)이오 악유발(惡惟魃)이라 권선이상(勸善以賞)하대 유신유공(惟信惟公)이면 민열지(民悅之)하여 기악종선(棄惡從善)을 여상운집(如祥雲集)하리라.
팔조대고 : 咨爾有众 惟則天範 扶萬善 滅萬惡 性通功完 乃朝天(자이유중 유칙천범 부만선 멸만악 성통공완 내조천)
삼전계경 : 報者 天 報惡人以禍 報善人以福(284 보), 積者 多數之謂也 修德行善(285 적)
천부경 : 본심본태양 = 수덕 = 성통
여러번 말하지만 신의 말씀과 인간의 주장은 구별해야 합니다. 신은 오직 덕과 선에 대해 말씀 하셨을 뿐. 구체적 방법이 팔조대고에 나와 있죠. 수덕의 방법은 경천이 시작이라고. 효도가 시작이라고.. 그런데 인간들이 욕심만 많아가지고 大道가 자신의 가까이주변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산속에 들어가 주문만외고 앉아서 호흡만 하고 그럽니다. 별별 수행법을 다 내놓죠. 그럼 효도는 언제 하나요? 오대종지에 애합족우라 했죠? 산속에 홀로 있으면 어떻게 선행을 하고 사랑을 베풉니까? 선행을 해야 홍익인세가 실현되는 겁니다.
기존의 백봉대종사로 대표되는 선교와 도교적 개념의 대종교를 현재의 유교 및 기독교적 대종교로 변형시키는데 큰 일등공신역할을 하였고, 경전도 그런 계획하에 임의적으로는 암묵적 합의하에 편집하여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입니다.
==> 신경전에 의하면 대교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다고 합니다. 위 주장은 개인생각인 듯 하네요. 조선말 학자들은 유학자이므로 자신들의 저술에 유학적 개념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솔직히, 현재의 대종교는 백봉대종사가 처음 만드신 대종교가 아닌, 홍암대종사의 제2차 대종교인 것입니다.
==> 백봉신사는 그냥 4천년 전래의 대교의 대종사중 한 분일뿐 그분이 만든 게 아니죠. 이것을 현대화한 게 홍암대종사이고. 그래서 중광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잘못 인식한거죠. 백두산외에도 지리산, 설악산, 금강산, 묘향산등 곳곳에 있었는데 무슨 맥이 끊어졋다고 중광입니까? 소설 단에 보면 8장사라고 나오죠? 흥선대원군의 경호원들입니다. 산속에 파뭍힌 것만 아니고 관직에 진출한 사람들도 있는데 무슨 맥이 끊어졋다고... 3비8주라고도 나오죠? 인천에서 조용히 살다가도 가끔 신기를 행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직업을 가졌지만 그중 한명은 요즘 말로 주식관련일 한겁니다. 산에도 세속에도 관부에도 그 맥이 존재했습니다. 장병두 옹 이야기도 했죠? 그 스승도 도사입니다. 축지법도 하는.. 육경신은 다른 분에게 배웠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했죠.
즉, 제가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김구선생이 꿈꾸었던 그런 대한민국 임시정부 형태의 대종교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이승만이 꿈꾸었던 그런 대한민국 초대정부 형태의 대종교를 만들 것인가 하는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 둘다 선배들인 인간을 따르자는 것이므로 이건 아니고 신의 말씀인 고경전 말씀대로의 대교가 되어야 합니다. 수덕행선으로 성통공완해서 홍익인세 하는 것이 고경전의 가르침이죠.
즉, 삼신을 대종교의 주신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일신을 대종교의 주신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로 압축이 된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사기 상의 삼신개념 신리대전 상의 삼신개념
1. 조화주- 한임
2. 교화주- 한웅 → 1. 신- 한임, 한웅, 한검
3. 치화주- 한검
==> 이건 홍암대종사뿐 아니라 백봉신사도 삼신으로 이해했고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당시에 다 그렇게 삼신으로 잘못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경전가르침대로 일신을 섬기면 됩니다.
* 백봉신사도 삼신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 포명서에 4천년 역사 라는 표현과 일신보다는 대황조만을 숭봉하는 글로 가득한 점을 근거로 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