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의 말씀을 듣고 늘 그 비의와 진의를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새기는 수보리, 만일 왕생하여 21세기 한국 땅에 와서 영화관을 찾는다면 수보리, 필시 ‘웰컴 투 동막골’을 빼놓지 않고 봤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다 보고 정토로 돌아갈 때, 아미타불 생각에 DVD도 하나 사서 갔을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수보리가 항마촉지인을 한 채 젊잖게 앉아계신 아미타불을 만나 DVD를 건네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자. “아미타유스, 바쁘실 텐데, 언제 한국까지 다녀오셨소? 영화에도 다 출연하시고, 껄껄…….” 수보리의 호방한 웃음소리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함께 동막골을 다녀온 우협시보살인 관음보살, 좌협시보살인대세지보살도 미소를 짓는다.
800만이 넘는 관객들이 본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 영화이고 휴머니즘영화이다. 하지만 불교와는 전혀 무관한 영화이면서도 가장 잘 만든 불교영화이기도 하다. ‘웰컴 투 동막골’이 불교영화라고? 수보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오래 전에 보신 분들은 수보리의 눈으로 다시 보시길.
가장 잘 만든 불교적 영화 수류탄이 팝콘되는 동막골 국군·인민군 적대감도 소멸
폭격 속에 웃는 세 주인공 아미타삼존불 모습과 중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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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의 폭격이 빗발치는 포화 속 세 주인공. | ‘웰컴 투 동막골’, 어떻게 옮겨야 할까? “동막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니면 “어서 오세요. 여기서부터 동막골입니다?” 어쨌든 우린 모두 만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이미 동막골을 다녀왔다. 동막골을 다녀온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사 갖고 들어간 팝콘을 거의 다 먹을 때쯤 동막골에서는 이제 막 튀겨낸 고소한 팝콘을 눈처럼 뿌려주었다.
영화 속에서 동막골 사람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영화 제목이기도 한 “웰컴 투 동막골”은 미국사람들 들으라고 한 말인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며 날아드는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를 두고 “올 테면 얼마든지 와라. 여기는 동막골이다”라고 외치는 것으로 역설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동막골은 영어는 물론이고 언어 자체가 크게 소용이 없는 그런 곳이다. 동막골은 영화 속에서일망정 너무나 아름답고, 화면으로 보기만 해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 같다. 공기만이 아니다. 사람들도 모두 해맑다. 그래서 첩첩산중 오지 중의 오지인 동막골은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일 수가 없다. 이 상징적 공간을 잘 이해하면 영화로부터 비의처럼 숨어있던 불교적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영화에서 전쟁은 가장 인기 있는 주제들 중 하나다. 전쟁은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군상의 최악과 최선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건이기 때문인데, ‘웰컴 투 동막골’도 이런 영화들 중 하나다. 하지만 할리우드식 독일군은 나쁜 놈이고 미군은 좋은 놈인 이상한 액션 영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굳이 비슷한 서양 영화를 하나 든다면 2차 세계대전을 비슷한 터치로 다룬 ‘지중해’라는 영화가 연상된다.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영화도 아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잔혹상을 묘사함으로써 치를 떨며 전쟁 자체를 반대하게 하는 그런 영화는 아닌 것이다. 동막골이나 그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전쟁을 아예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니 전쟁이라는 것을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동막골은 현실이 아닌 꿈속 공간이며 불교의 정토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곳이다. 심지어 동막골은 불교마저도 잠시나마 잊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절도 예배당도 없다. 동막골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미 모두 부처이고 도솔천에 사는 이들만 같다.
영화는 전쟁 통에 우연히 동막골로 걸음을 옮기게 된 군인들이 동막골 주민으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1부와 그 다음, 이 변화된 군인들이 현실인 예토(穢土)에서 날아드는 전투기로부터 이제 막 그들이 정토로 인식하기 시작한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몸을 불사르는 2부로 구성되어있다.
정토인 동막골에서는 수류탄도 잘 터지질 않는다. 게다가 수류탄은 동막골에서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인다.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한 강혜정이 역을 맡은 실성한 소녀에게 수류탄 안전핀은 손가락에 끼는 반지가 되고,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은 사람을 죽이는 대신 옥수수 창고로 날아가 팝콘을 튀겨낸다. 뻥 타진 수류탄으로 옥수수는 팝콘이 되어 마치 눈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데 이 장면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주인공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폭탄 장면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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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진 수류탄도 하얀 팝콘으로 변한다. | 동막골에는 폭탄이 떨어질 수가 없다. 아니, 동막골에서는 아무리 많은 폭탄이 떨어져도 무용지물이다.
왜?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이미 그들은 정토의 보살들이 되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들 속에서 환한 웃음을 웃으며 당당하게 서있지 않았는가. 감독이나 작가 혹은 몽타주 하는 사람은 미쳐 생각을 못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섬광을 내며 터지는 폭탄의 눈부신 화염을 배경으로 서있는 마지막 세 사람 모습은 가히 정토에 거하는 아미타불 삼존불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는 조금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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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격은 불꽃놀이가 되고 동막골을 지킨 주인공들은 환히 웃는다. | 하지만 결코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아니다. 아미타불의 본색은 이타행이며 이타행 중의 이타행은 생명을 주는 것이고 지금 정토를 들어갔다 나온 세 사람의 군인은 이제 삼존불이 되어 비처럼 쏟아지는 폭탄을 마치 팝콘처럼 우습게 여기며 껄껄거리며 웃으며 맞고 있다. 그래서 ‘웰컴 투 동막골’인 것인지도 모른다. 폭탄이여 쏟아져라. 우리는 팝콘이나 튀겨 먹겠노라. 껄껄껄…….
해석은 자유다. 그리고 동영상을 정지영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불교의 눈으로 ‘웰컴 투 동막골’을 보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옛말처럼, 불자의 눈에는 폭탄을 맞으며 환하게 껄껄 웃고 있는 세 사람에게서 아미타 삼존불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비 오듯 쏟아지는 저 폭탄으로 엄청난 팝콘을 튀길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며 폭탄을 하찮은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정토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이 정토요, 일심 이외에 다른 정토는 없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처럼 영혼들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저 멀리 서쪽 혹은 동쪽 어디에 있을까? 미군도 인민군도 국군도 모두 옷을 갈아입고 동막골 사람이 되는 곳, 수류탄으로 팝콘이나 튀겨 먹는 엄청난 불심의 세계가 정토일 것이다.
나비는 서구 신화에서도 영혼, 즉 프시케를 상징한다. 신화 속의 인물인 프시케는 나비 날개를 갖고 있다. 비록 영화에서는 겨울에도 나비가 날곤 하지만 그렇다고 ‘웰컴 투 동막골’의 나비를 서구 신화를 통해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고 우리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진짜 재밌었을 텐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폭탄 속에서 국군 표현철 소위가 인민군 장교 리수화에게 건넨 말이다. “다른 곳”, 우리는 그곳이 어딘지 모두 잘 안다. 모두가 쏟아지는 폭탄을 맞아 정토로 돌아간 다음, 국군과 인민군들이 뒤엉켜 자고 있는 골방에 나비가 날아들고 머리에 꽃을 꽂은 소녀가 들어와 자신을 사랑했던 인민군 소년 병사의 머리에도 꽃을 꽂아 준다(하지만 이 장면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족이었다).
수류탄으로 팝콘을 튀겨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영화에서 말하는 정토다. 이 멋진 환상을 영화를 만든 이들은 어디서 가져왔을까? 모르긴 몰라도 정토를 기다리던 모진 시간들을 보냈기에 그런 원(願)이 영상으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정토를 오염시키고 정토를 이용해 먹기만 하는 마귀들에 대해 경고를 던지고 싶은 마음이 누르고 눌러도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이렇게 만나지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만 정토를 읽지 말고 다른 곳에서도 정토를 읽고, 나아가 읽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정토를 만들 수 있을까? 쏟아지는 포탄을 껄껄껄 웃으며 몸으로 받을 수 있을까?
‘웰컴 투 동막골’에는 불교적 관점이 아니라 해도 유심히 뜯어볼만한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멧돼지 잡아 구워먹는 장면이다. 강냉이만 먹고 지내던 군인들이 고기 생각에 땅에 묻어둔 멧돼지를 파내서 구워먹는다(소주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냄새 탓인지 깊은 밤인데도 국군, 인민군, 미군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회식이 이루어지는데, 동막골을 위협하는 유일한 악으로 등장한 멧돼지를 처단하면서 미국군, 인민군, 미군은 하나가 되어 서로를 구해주었고 또 동막골도 구해냈다.
회식이 끝난 다음 날, 국군 표현철 소위와 인민군 장교 리수화는 풀밭에서 똥을 싸다가 서로 만나고 만다. 이 멧돼지 장면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고기 먹고 똥 싸는 대목 때문이다. 사람은 먹고 싸야 한다. 그리고 싸고 또 먹어야 한다. 이 가장 본능적인 생리작용이 두 군인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멧돼지 굽는 냄새, 고기를 뜯으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웃는 미소 그리고 “먹었으니 싸야지”하며 함께 나란히 앉아 똥을 싸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감동스러운 장면 중 하나다. 동막골에서는 군인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다시 어린 아이들이 되어 풀썰매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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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화 속에서도 웃는 주인공들 모습과 겹치는 아미타삼존불(강진 무위사) 이미지. | 서방정토에서는 멧돼지(악의 상징, 공공의 적에 대한 비유)만 잡아야 한다. 절대로 사람을 잡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먹고 똥으로 나오는 것만 먹어야 한다. 그리고 맛 나는 것은 나눠 먹어야 한다. 웃으면서. 살기 같은 것, 어리석은 것, 집착하고 빼앗으려고 하는 좁고 좁은 심보들, 이런 것들은 똥으로 안 나오는 것들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것들을 먹고 소화불량에 걸리나.
정장진 문화사가 jjj1956@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