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선택은 적합성의 유전성 변이가 있을 때에 일어난다. 한 유기체의 적합성은 생존하고 번식할 능력으로서 이것은 확률값으로 표시된다. 예를 들어서 한 집단 내의 유기체들이 알에서 깨어나 성체 단계가 될 때까지 생존할 능력이 다르다고 하자. 그렇다면 상이한 유기체들은 상이한 생존 확률을 가질 것이다.
적합성이 확률로 표시되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에 있어서 우연이 작용한다고 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연이 작용한다고 해서 곧 자연 선택이 무작위적 과정이라는 뜻이 되는가? 자연 선택이 무작위 과정이라면 어떻게 페일리가 그의 설계 논증에서 고찰하였던 그 대안과 다른 형식의 설명을 줄 수 있는가?
하나의 과정이 무작위라면 상이한 가능성들은 같은 (또는 거의 같은) 확률을 갖는다. 공정한 복권 추첨은 무작위로 제비뽑기를 한다. 따라서 모든 복권들은 이길 기회가 똑같다. 그러나 상이한 가능성들이 현격하게 동등하지 않은 확률을 가질 때 그 과정은 무작위 과정이 아니다. 내가 담배를 피우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내가 오래 살 확률은 이런 나쁜 것들을 피하는 그대의 확률보다 더 낮을 것이다. 이 경우에 우리 중에서 누가 살고 누가 죽는가 하는 것은 무작위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연 선택은 동등하지 않은 확률을 만든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것은 무작위 과정이 아니다. 무작위성은 진화론에서 중립성 가설이 고찰될 때 논쟁거리가 된다. 만일 한 집단 내에서 어떤 좌위에 있는 대립 형질들이 적합성에 있어서 동등(또는 거의 동등)하면 유전자 빈도는 자연 선택 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 유전적 부동 때문에 변한다. 무작위성은 진화론에서 중요한 쟁점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연 선택 과정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론자들은 가끔 자연 선택을 폐품처리장에 불어닥친 토네이도에 비유하고는 그것이 "무작위적"이라고 말한다. 그 토네이도는 폐품 조각들은 "무작위적으로" 재배치한다. 이렇게 "무작위적인" 움직임이 제대로 돌아가는 자동차를 조립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창조론자들은 자연 선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작위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 노선이 수학적으로 정밀한 외양을 갖추도록 할 수도 있다. 폐품처리장에 널려있는 부품들이 합쳐지는 수십억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보라. 이 많은 결합들 중에서 오직 작은 부분만이 제대로 돌아가는 자동차를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토네이도가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거라는 편에 거는 게 안전하다. 이 논증이 위에서 살펴본 무작위성의 정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주의하자. 이 논증에는 부품들의 결합 각각이 다른 결합과 꼭 같은 확률을 갖는다는 생각이 암암리에 숨어 있다. 이런 가정이 주어진다면 그런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자연 선택이 모든 가능한 결과들이 같은 확률을 갖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다.
자연 선택 과정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그 집단 내에서 변이가 발생해야만 한다. 그래서 일단 변이가 생기면 자연 선택이 일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변형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달라진다. 진화론자들은 가끔 돌연변이 과정을 기술하는 데에서 "무작위적"이란 말을 쓴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앞에서 내가 말했던 것과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들이 유기체에게 유익을 주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주어진 변이 유도물-예컨대 방사능-은 어떤 특정한 돌연변이를 일으킬 확률이 더 높을 수는 있다. "무작위적 돌연변이"라는 것이 상이한 변이체들이 확률이 똑같다는 뜻은 아니다.
변이-선택 과정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폐품처리장에 불어닥친 토네이도라는 창조론자들의 비유에서 중요한 함축을 갖는다. 이것을 도오킨스(Richard Dawkins 1986)는 그의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에서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숫자 자물쇠처럼 생긴 장치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열아홉 개의 원판을 나란히 포개서 만들어졌다. 각 원판의 테두리에는 알파벳 26 글자가 씌여져 있다. 원판들은 따로 돌게 되어 있어서 상이한 문자열들이 긴 사각창에 볼 수 있게 나타난다.
그 창에는 서로 다른 문자 조합이 몇 가지나 나타날 수 있을까? 각 원판마다 26개의 가능성이 있는데 전부 19개의 원판이 있으므로, 2619 개의 서로 다른 문자열이 가능하다. 이 중의 하나가 METHINKSITISAWEASEL("그건 족제비같애"정도의 의미)이다. 만일 원판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회전하고 한 원판의 각 항목들이 창에 나타날 기회가 동등하다면 모든 원판들이 회전한 후에 METHINKSITISAWEASEL가 나타날 확률은 1/2619가 될텐데, 이것은 정말 무지하게 작은 숫자이다. 그 과정이 정말로 앞서 설명한 의미에서 무작위적이라면 원판들이 계속 돌아간다고 해도 그 기계가 이런 질서있는 메시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엄청나게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겠다. 모든 원판들이 함께 수십억 번을 회전한다고 해도 이런 메시지가 나올 확률은 여전히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제 아주 다른 과정을 생각해보자. 전과 마찬가지로 원판들은 돌며, 또 이것은 "공평"해서 창에 나타날 수 있는 26종류의 가능성들은 기회가 똑같다. 그러나 이제 어떤 원판에서 위의 메시지에 있는 해당되는 글자가 창에 나타나면 그 원판은 멈춘다고 상상해보라. 목표를 맞히지 못한 남은 원판들은 여전히 무작위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과정은 반복된다. 이제 예컨대 50번의 반복 후에 원판들이 METHINKSITISAWEASEL라는 메시지를 나타낼 기회가 얼마나 될까?
그 대답은, 놀랄만큼 작은 수만큼 그 과정을 반복하면 이 메시지가 나타날 거라고 기대할만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모두 그 장치를 갖고 있고 각각 그 실험을 한다면 어떤 사람은 좀 더 일찍 목표에 도달할테고 어떤 사람은 더 늦게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METHINKSITISAWEASEL라는 문자열을 낳는데 평균 몇 세대가 걸릴 것인지 계산할 수 있다. 이 평균값은 그리 큰 수는 아니다.
이 과정과 변이-선택 과정을 비교하는 것은 모든 점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어떻게 진행하는지 중요한 특징을 들춰내준다. 변이는 그것이 "목표를 맞히는지" (즉, 그 유기체에 이득이 되는지) 관계하지 않고 발생된다. 그러나 체류(retention)은 (발생한 변이가 선택에 의해서 존속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떤 변이는 다른 것들보다 더 큰 존속력을 갖는다.
폐품처리장에 불어닥친 바람은 거의 충분히 무작위적 과정이다. 방금 기술된 그 장치의 모든 원판들의 회전도 그렇다. 그러나 변이-선택 과정은 이 양자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생성되지만 변이들 중의 선택은 무작위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