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문화 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멋진 건축물 여초김응현서예관
한국과 중국에서 왼손글씨 전시인[좌수전 左手展]을 열기도한 쌍수 서예가 여초 김응현
그의 일생을 만나볼수있는 여초 서예관을 가다.
호는 여초(如初). '추사 이후 여초'라는 말을 들을 만큼 중국에서 전해온
모든 서예의 장점을 흡수하고 해서·행서·초서·예서·전서와 같은 모든 서체들을 연습해
그 정화를 흡수한 뒤 마음과 손의 조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김충현·김창현과 형제인 서예가 집안으로, 추사 김정희의 맥을 이은
소전 손재형, 검여 유희강 이후 형인 김충현과 한국 서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이 건물의 백미는 탁 트인 1층에 배치된 '투영연못'이다.
기존의 개울을 이용해 조성된 연못은 층간 틈으로 들어오는 주변의 자연을 투영할 뿐 아니라,
전시관을 비추면서 영초 선생의 고귀함을 부각시킨다. 하루의 변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수많은 모습을 비추면서 외형적으로 정적인 공간을 동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 표현되는 곳이다.
전체적인 공간계획은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는 대상인'오브제(object)'가 아니라,
방문객에게 공간적 체험까지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제군은 인근의 만해마을과 연계해 이곳 서예관을 문화 및 레저단지의 연결고리로 계획했다고 한다.[서울경제신문기사발췌]
투영연못은 개관식이후 볼수있을듯하다. 6월중 개관예정
김응현의 글씨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원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며,
고졸하면서도 활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상북도 김천시 '영남제일문' 현판, 김천직지사 현판,
공초 오상순 시비, 현대그룹 제호 '현대'(現代) 등을 썼다.
저서로 30권 분량의 방대한 서예교본인 〈동방서범 東方書範〉을 비롯하여 〈동방서예강좌〉
〈서연기인〉 등이 있다. 특히 〈동방서범〉은 동양 서법사의 대표적인 문헌과 금석문 중에서
각 서체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들만 골라 직접 글씨를 쓴 역작이다.
인제에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여초 서예관은 추사 김정희의 뒤를 이어 한국 서단의 거봉이라는
평가를 받는 여초 김응현 선생을 기리는 한편 국내외 유명서예가들이 작품을 전시하는 건축물이다.
좌측에는 소나무 숲이 있고 대지는 경사져 있다. 건물은 1층과 2층이 수직적으로 분리되있으며
1층은 체험실.편의및 교육시설을 배치하고 2층은 여초 선생의 작품 133점이 전시되는 상설 전시실과
국내외 서예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시실과 다목적 홀로 구성됐다.
분리돤 1.2층의 볼륨사이로 난 수평의 틈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건물을 중첩시키는 역할을 한다.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50~60년 국회보 주간을 맡았고, 국회도서관 1호 정직원이었다.
1956년 '동방연서회' 설립회원으로 참여, 1969년부터 이사장으로 수천 명의 제자들을 길러왔다.
서예잡지 〈서통 書通〉과 〈서법예술〉을 창간하였고, 한국전각협회 회장과
사단법인 국제서법연합 한국본부 이사장을 역임하며 중국·일본·홍콩 등에 한국 서예를 알리는 데 노력했다.
1999년 교통사고로 오른 손목 골절상을 입자, 왼손으로 글씨를 써서
2000년과 2001년에 한국과 중국에서 왼손글씨 전시인 〈좌수전 左手展〉을 열기도 했다.
이후 오른손이 회복되어 쌍수 서예가로 명성을 얻었다. 2003년 광개토왕 비문 1,802자를 쓴 세로 5.3m, 가로 6m의 대작을 남겼다.
여초 생애관 마당
6월중 개관예정입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1119-12
여초 김응현 서예관
033-461-4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