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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10월 19일)●
1405년 창덕궁 준공
1739년 영국, 에스파냐와 식민지 전쟁 시작
1745년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스위프트 사망
1781년 미국 독립전쟁 종식
1812년 나폴레옹1세의 러시아 원정 실패
1859년 프랑스의 장교 드레퓌스 출생
1894년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출생
1906년 경향신문 창간
1909년 이탈리아의 정신의학자 체자레 롬브로조 사망
1913년 역둔토(驛屯土)특별처분령 공포(일본이민의 토지대여에 우선권 부여)
1936년 중국 작가 루쉰(魯迅) 사망
1937년 원자 물리학의 기초 확립자 어니스트 러더퍼드 사망
1938년 비운의 혁명가 김산, 중국공산당에게 처형
1939년 터키, 영국 프랑스와 상호원조조약에 조인
1948년 대한식량공사 발족
1948년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사령관 초청으로 일본 방문
1948년 일본, 제2차 요시다 시게루 내각 성립
1949년 정부, 남로당 등 133개 정당-사회단체 등록 취소
1950년 유엔군 평양 탈환
1953년 공산측, 한국통일문제의 판문점 정치회담 예비회담 동의
1954년 영국-이집트, 수에즈운하협정 조인
1955년 중국-북한, 무역협정 체결
1956년 일본-소련, 국교회복공동선언 및 통상항해의정서 조인
1957년 서독, 유고와의 국교단절 선언
1959년 유엔 사회인도문화위원회, 아동복리에 관한 선언문 채택(어린이인권선언)
1960년 대한일보 창간
1961년 정치깡패 이정재 사형 집행
1962년 예멘 왕당파, 바드르공을 왕으로 핫산공을 수상으로 임시정부 조직
1962년 한국-세네갈 국교 수립
1963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이사장에 조선일보사 방일영 대표 선임
1970년 멕시코의 대통령(1934-40) 카르데나스 사망
1972년 서울 자유시장에 화재. 120점포 소실
1973년 최종길 교수 의문사
1977년 서양화가 도상봉 사망
1980년 그리이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복귀
1980년 송요찬 전 내각 수반 사망
1981년 소련, 중국에 중소국경회담 재개를 제의
1987년 뉴욕주가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폭락(블랙먼데이)
1991년 소설가 정비석 사망
1995년 박계동 의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을 주장
2000년 2억5천만년 동안 가사(假死)상태에 있던 미생물이 회생됐다는
논문, `네이처`지에 게재
2004년 골프여제 애니카 소렌스탐 2004년 ‘올해의 여자 스포츠 선수’ 선정
2005년 1987년 착공한 `평화의 댐` 준공식
2005년 200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우승
2005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대통령 재판
● 1405(조선 태종 5) 창덕궁 완공
1745 걸리버 여행기 쓴 영국 작가 스위프트(1667-1745) 세상 떠남
"비난받는 것은 대중에게 치르는 유명세다" "사람들이 이론을 따져서 믿게 된 것이 아닌 것을
이론으로 따져서 중단시키려 해도 헛일이다."
1781 미국, 영국으로부터 독립 쟁취
1894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1894-1970) 태어남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조선사람이다. 세계는 넓건만은 조선만이 내 땅이다. 삼천리 강산 위에
곳곳마다 피땀 흔적 이 강산이 역사를 잇고 잇고 다시 이어 이천만이 엉키엉키 살아보세."
1924년, 외솔 최현배는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조선민족 갱생의 도'에 이렇게 썼다.
'식민지'의 현실에서 외솔은 《우리말본》, 《한글갈》 같은 저서로 한글을 현대 학문으로
체계화했고, 국어사전 편찬, 한글 기계화, 가로쓰기 등의 업적을 남겼다.
연세대부총장 한글학회이사장 역임.
1917 전국에 홍수. 인명피해 259명, 가옥피해 6,730호
1933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마련
1948 여수 순천 반란사건 발발
1950 국군, 평양시에 들어감
1954 영국과 이집트, 수에즈운하협정에 조인
1956 일본과 소련, 국교회복 공동선언
1960 대한일보 창간
1962 중국군, 인도국경 전면공격
1982 충북 중원군 국도서 시외버스끼리 충돌. 27명 사상
1987 문공부, 판금도서의 대폭시판을 허용하는 등 출판 활성화조치 발표
1988 인도항공사 소속 보잉 737 국내선 여객기 추락. 130명 사망.
1989 헝거리 의회, 다당제 도입 헌법개정안 통과
1989 법학자 황산덕 세상 떠남 문교부장관과 법무장관, 성균관대 총장 역임
1991 서울 여의도광장서 김용제 씨가 승용차를 몰고 시속 100㎞로 질주 2명 사망, 21명 중경상
1992 민주당 이윤수 의원, 체신부 산하 우정연구소의 서신검열 폭로
mas Browne1605년 10월 19일 태어남 / 1682년 10월 19일 죽음
브라운, R. White가 벨럼지에 그린 연필화 "목숨이란 더없이 여린 팔의 힘으로도 앗아버릴 수 있으되, 제아무리 억센 팔의 힘일지라도 우리에게서 죽음을 거두어갈 수 없나니. "- 토머스 브라운
브라운은 영국의 의사이며 작가로, 유려한 문체의 산문으로 유명하다. 신·자연·인간의 비밀에 관한 명상록인 <종교의학 Religio Medici>의 뜻하지 않은 출판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브라운 스스로 "나 자신을 향한 은밀한 연습"이라고 말한 이 책은 당시 유럽에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그밖에도 화려한 문체가 다른 저술들에 비해 한결 돋보이는 죽음과 인간에 관한 명상 논문 <호장론 Hydriotaphia>과 원예학의 역사를 다룬 <키루스의 정원 Garden of Cyrus> 등이 그의 문학적 소양과 과학적 상상력이 잘 어우러진 수작으로 꼽힌다. 1671년 찰스 2세로부터 기사작위를 하사받았고 의사와 작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미국 독립 전쟁 끝남(1781.10.19)
영국의 가혹한 지배와 중상주의 정책에 항거해 일어났던 독립 전쟁이 1781년 오늘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1775년 4월 보스턴 교외에서 영국군과 무력으로 충돌함으로써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은 전쟁 중인 1776년 독립 선언을 했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태어나(1894.10.19)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1894년 10월 19일 울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성고보(현재 경기고)에 다니던 1910년부터 3년간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강습원에서 한글과 문법을 배웠다. 조선어학회 창립 회원으로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 준비위원도 지냈다.1942년에는 일제가 한글 연구를 탄압하기 위해 한글 학자들을 체포한 '조선어학회사건'으로 3년간 감옥에 갇혔다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석방됐다. 작고 깡마른 체구의 선생은 한국전쟁 중 한글대사전 원고와 자료 분실을 걱정하여 한글학회 지하실에 숨어 이를 고스란히 지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남긴 책으로는 '우리 말본', '한글갈', '글자의 혁명', '나라 사랑의 길' 등이 있다. 특히 '글자의 혁명'에서는 쉽고 편한 한글만을 쓰자는 '한글 전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확정(1933.10.19)
1933년 10월 19일 조선어학회에 의해 한글맞춤법통일안이 확정되었다. 1930년 12월 13일 조선어학회는 총회 결의로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작업에 착수해 3년에 걸쳐 이를 토의 정리했다. 제정위원 이극로 이병기 이희승 장지영 최현배 등이 2년간 원안을 만들었고 개성에서 원안을 심의해 제1독회를 마쳤다.이후 수정위원을 선임해 이들이 만든 수정안을 바탕으로 정리위원 9명이 1933년 10월 19일 최종안을 확정하고 10월 29일 '조선어 철자법 통일안'이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통일안이 마련되던 당시의 실질적인 개혁 내용은 '·(아래아)'를 폐기한 것과 된소리 표기법을 'ㄲ, ㄸ, ㅃ, ㅆ, ㅉ'으로 통일하여 표기한 것이다.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확정1933. 10. 19
1933년 10월 19일 조선어학회에 의해 한글맞춤법통일안이 확정되었다. 1930년 12월 13일 조선어학회는 총회 결의로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작업에 착수해 3년에 걸쳐 이를 토의·정리했다. 제정위원 권덕규·김윤경·박현식·신명균·이극로·이병기·이희승·이윤재·장지영·정열모·정인섭·최현배 등이 2년간 원안을 만들었고 개성에서 원안을 심의해 제1독회(第一讀會)를 마쳤다. 이후 수정위원을 선임해 이들이 만든 수정안을 바탕으로 정리위원 9명(권덕규·김선기·김윤경·신명균·이극로·이윤재·이희승·정인섭·최현배)이 1933년 10월 19일 최종안을 확정하고, 10월 29일 <조선어 철자법 통일안>이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통일안이 마련되던 당시의 실질적인 개혁내용은 '、'(아래아)를 폐기한 것과 된소리 표기법을 각자병서 'ㄲ, ㄸ, ㅃ, ㅆ, ㅉ'로 통일하여 표기하게 한 것이다. 이 한글맞춤법통일안은 8·15해방 후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한국 정서법의 법전이 되었다. 이후 수정이 거듭되어 오다가 1979년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가 1988년 1월 14일 개정안인 '한글맞춤법'이 '표준어규정'과 함께 문교부 고시 제88-1호로 발표되었다.
●여수ㆍ순천 10ㆍ19 사건 일어남(1948.10.19)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읍 신월리에 주둔하던 제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1948년 4월 3일 일어난 제주 4·3사태가 확산되자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제14연대를 급파하기로 했다. 이에 지창수·김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친일파 처단과 조국통일 등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10월 19일 저녁 8시경 무기고와 탄약고를 점령하고 비상나팔을 불어 전연대 병력을 집결시킨 다음 선동과 위협으로 반란군에 동참하게 했다. 곧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하고 여수·순천을 순식간에 휩쓴 뒤 곧바로 광양·곡성·구례·벌교·고흥 등 전라남도 동부 5개 지방을 장악해나갔다.초기 진압작전에서 반란군에게 밀리자 정부는 여순지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소탕작전을 벌여 나갔다. 이들 정부군은 결국 미국군사고문단의 지휘 아래 장갑차·박격포 등을 동원해 여순지역 탈환에 성공했다.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무제한적인 탄압을 제도화시켰다. 또한 대대적인 숙군을 단행해 좌익계와 광복군계를 포함한 모든 반(反)이승만 성향의 군인을 제거하고 더욱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하게 되었다.
●1961년 화폐속의 인물 오스메냐(필리핀) 세상떠남
필리핀 50piso(1999년 발행)필리핀 대통령1878. 9. 9 ~ 1961. 10. 19.
국민당의 창설자로 1944~46년에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1903년 마닐라에 있는 산토토마스대학교에서 법학학위를 받았으며, 세부시티에 있는 스페인어 일간지 〈누에보 디아 El Nuevo Dia〉의 편집장을 지냈다. 1904년 미국 식민정부는 그를 세부 군 군수 겸 세부·네그로스오리엔탈 군의 지방검사로 임명했다. 2년 뒤 그는 세부 군의 군수로 선출되었다. 1907년 필리핀 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필리핀 정계를 주도해나갔던 국민당을 창당했다. 오스메냐는 1921년까지 국민당의 당수로 있다가 그와 정치적 연립관계에 있던 마누엘 케손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1916년 하원 의장이 된 그는 1923년 상원 의원으로 뽑힐 때까지 그 일을 계속했다. 1933년 그는 워싱턴 D. C.에 가서 헤어-호스-커팅 독립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지만 케손은 그 법안 중 독립 후에도 미군 기지들을 필리핀에 존속시킨다는 조항에 대해 오스메냐와 의견을 달리했다. 이 법안은 필리핀 의회에서 거부되었으며, 그 대안으로 필리핀을 상당한 자치권을 가진 연방체로 만들자는 타이딩즈-맥더피 법안이 1934년 3월 채택되었다.
그 이듬해 오스메냐는 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직은 케손이 맡았다. 필리핀 정부가 워싱턴 D. C.로 망명을 가 있던 일본군 점령기간 동안에도 그는 계속해서 부통령직을 맡았다. 1944년 8월 케손이 죽자, 오스메냐가 대통령이 되었다. 1946년 4월 선거에서 필리핀 독립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마누엘 로하스에게 패할 때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1963년 이득주 대령 일가족 몰살
1963년 오늘 새벽 강원도 인제군 이득주 중령의 집에 한 탈영병이 나타나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이 중령을 비롯한 일가족 5명이 무참히 살해됐다. 범인은 고재봉 상병. 이 중령을 전임 연대장으로 오인해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20여일 만에 체포된 고재봉은 전임 연대장 때문에 도둑 누명을 쓰고 육군교도소에 투옥된 데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다. 범인은 같은 해 12월 사형에 처해진다. 이 중령과 함께 피살된 부인 김재옥 씨는 6.25전쟁 당시 동락리 전투에서 국군에게 북한군의 소재를 알려줘 큰 전과를 올리도록 도와줬다. 김 여사는 동락리 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이득주 소위와 결혼해 살다 참변을 당했다.
● [1963년] 고재봉 도끼살인사건 발생
1963년 12월 12일 피고 고재봉씨가 구형공판에서 진술하고 있는 모습. 그는 이날 사형을 구형받았다. 한 가족 6명을 무참히 살해한 도끼살인사건이 1963년 10월 19일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서 발생했다. 살해된 이득주 중령집에 침입한 범인은 이중령과 부인 그리고 두 자녀와 가정부 등 6명을 도끼로 차례로 살해한 후 귀금속을 훔쳐 달아났다.군과 경찰은 즉각 합동수사본부를 설치, 과거 이중령 집에서 구두를 훔쳐 복역한 사람이 있고 이중령집에서 잃어버린 다이아몬드가 홍천읍내 한 보석상에서 발견된 점을 근거로 추적에 들어가 범인이 고재봉인 것을 확인해 수사망을 전국으로 확대했다.범인 고재봉은 수사망을 피해 서울로 달아났으나 1963년 11월 12일 범행 24일 만에 한 땅콩장수의 신고로 서울 청계천5가에서 검거됐다. 고재봉은 12월 12일 사형을 구형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65년 KKK단원 청문회 조사
1965년 오늘 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인 'KKK'의 단원 4명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이들은 앞서 1년 4개월 전인 1964년 6월 필라델피아에서 인권운동가 3명을 살해했다. 또 1965년 3월 흑인인권 시위에 참여하고 돌아가던 백인 여성 1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자들이다. 이 KKK 단원들은 37건의 질문에 대해 모두 묵묵대답으로 일관했다. KKK단은 1963년 9월에도 인권운동가들의 모임 장소인 앨라배마주의 한 교회를 폭파해 4명의 소녀들이 숨지게 했다.
●1973년 서울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
1973년 오늘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최 교수는 중앙정보부가 유럽거점 간첩단사건에 관한 수사협조를 요청하자 앞서 사흘 전인 10월 16일 스스로 중앙정보부로 찾아갔었다. 중앙정보부는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중앙정보부 남산 분실 7층 화장실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한다. 이후 최 교수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듬해 12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최 교수가 전기고문으로 숨진 것으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1988년 10월에는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검찰에 냈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며 수사 중단을 발표한다. 최 교수가 숨진 지 29년 만인 2002년 5월에야 대통령 직속기구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타살'이라고 인정한다.
● [1973년] 최종길 교수 의문사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의문사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당시 42세)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가 인권 탄압이 극에 달했던 유신 초기에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중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중 1973년 10월 19일 사망했다.최종길 교수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 스위스 취리히 대학, 독일 쾰른 대학에서 공부하고 1962년부터 서울대 법대에서 가르쳤다.최 교수를 조사한 중앙정보부는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 수사 받던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가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7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고인을 보며 유가족과 주위 사람들은 `고문으로 죽었을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속에 소리소문없이 장례식을 가졌다.유족들은 "투신자살했다는 시간은 중앙정보부의 모든 창문이 잠겨져 있을 시간이며, 투신현장이 공개되지 않았고, 부검조차 거부됐으며, 거듭된 협박에 급히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으로 유신정권의 고문에 의한 타살 가능성을 주장했다. 유신반대가 한창 심할때 서울법대 학생과장을 지냈던 고인은 `신성한 캠퍼스가 경찰에 짓밟힌다`며 학생들을 감쌌고 결국 정권의 눈 밖에 났었다. 최 교수의 죽음은 유신체제가 빚어낸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이었다.
●1974년 영부인 저격범 문세광 사형선고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총탄을 발사해 숨지게 한 문세광! 범행 두 달 만인 1974년 오늘 사형을 선고받는다. 서울지방법원은 이날 판결공판에서 내란목적 살인과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등 문세광의 공소 죄목 6가지를 모두 인정하고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문세광은 같은해 12월 1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12월 20일 교수형에 처해진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폭로(1995.10.19)
1995년 오늘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 나선 박계동 민주당 의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 원이 시중 은행에 백억원씩 40개 계좌로 분산 예치돼 있으며 '이중 3백억 원은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예치돼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관련 계좌번호와 잔액 조회표를 증거로 제시했다.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같은 달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 검찰에 출두하는 것을 시작으로 은행관계자들과 재벌 총수들의 검찰 소환조사가 잇따랐다.노태우 전 대통령은 결국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되고 재벌총수 등 기업인 35명이 불구속기소됐다. 노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에 2천6백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97년 12월 사면복권됐다.
<참고>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1894~1970) 태어남(1894.10.19)
http://www.knnews.co.kr/news.asp?cmd=content&idx=592732
<참고> 조각가 클로델 사망(1943.10.19)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9036&yy=2005
<참고> 여순사건 발발(1948.10.19)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5681&yy=2007
<참고> 영국 북해유전 발굴(1970.10.19)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0710/e2007101817333963820.htm
<참고> '검은 월요일' 사태 발생(1987.10.19)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6295&yy=2006이 게시물을..
오늘의 관심뉴스는 너무나도 엄청난 일들 하신 주부한 분을 소개합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 넷을 본인이 잘 키웠음에도 잘 자라나 준것이 고마워 본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는 것은 정말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큰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이렇게 각종 봉사활동과 기부 등 활동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 웬만큼 하는 활동은 표시도 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꾸준히 열심히 하는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보면서 주말을 맞이 해 봅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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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의 어머니, 당신은 존경 받아 마땅합니다" [조선일보 2007.10.18 00:08:43]
건강이 좋지 못한 아기를 네 명이나 입양해 기른 어머니가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자 “세상에 감사드린다”며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기로 했다.윤정희(43·대전시 중구 용두동·사진)씨는 두 차례 유산 끝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입양을 결심, 2000년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4명을 차례로 입양했다. 하지만 첫째 하은(10)이는 사시(斜視)여서 3년 전에 수술을 받았고, 둘째 하선(8)이는 입양 당시 폐쇄성모세기관지염 때문에 산소마스크 없이 호흡도 힘들 정도였다. 셋째 하민(5)이는 구순구개열이어서 언어장애 치료를 받고 있으며, 넷째 사랑(3)이는 뇌수막염에 안짱다리로 입양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 잘 자라고 있다. 윤씨는 아이들이 잘 자란 게 고마워 어떻게 보답할까 궁리하다가, 사랑의장기기증운동 부울경지역본부를 통해 10년간 만성신부전으로 고생하고 있는 조모(50)씨를 알게 됐고,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기로 했다.[부산=권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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