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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4:6
바울은 복음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른 복음이 바른 제자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머리로 아는 것이 몹시 어렵습니다. 그 복음을 따라 살면서, 그 복음이 창조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전할 때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공주야! 정말이지 아비는 너희들을 키울 때 마지막 젖 먹는 힘까지 동원해서 키웠다. 자식은 목숨이고, 내 새끼니까 키웠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구나.
Paul was well aware of the gospel's content. But the right gospel does not create the right disciples. It is very difficult to understand the gospel with your head. You can understand it well when you live by following the gospel and convey it while showing the human image it creates. That's why Paul asks you to emulate me. Princess! I'm telling you, my father raised you with the last force of milking. I can only explain otherwise that I raised my child because it's my life and my own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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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하고는 때대로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새끼에게만은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오직 너희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바울이 아마도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레코-로만 사회는 신분에 따라 일이 정해져 있었다는 구나. 몸 쓰는 일은 상대적으로 아래 계층 사람들 몫으로 인식되었고, 머리 쓰는 것은 위 계층 사람들 것으로 여겼던 시대다.
My mother and I used to be proud of ourselves from time to time, but I was the only one in the world who was willing to enter the fire pit if I could only be happy with you. Paul was probably like this. At that time, Greco-Roman society had work decided according to status. It was a time when using the body was recognized as a relatively lower class people, and using the head was regarded as a higher clas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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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모습은 여러 면에서 변변치가 않았을 것이다. 몸도 별로고, 언변도 시원찮은 데다가 머무는 동안 천막 짓는 노동자가 아니더냐?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과 바나바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다. 자기부인의 복음이며 성도 사랑의 복음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을 받은 고린도 성도들은 교만했다. 말씀이 말하지 않는 데까지 나아갔다. 나와 남을 구별하였고 차별하였다. 자신을 세우려고 서로를 대적하였다.
Paul's appearance in Gorin Island would have been immaculate in many ways. Wasn't he a tent building worker during his stay while he was not well and eloquent? Paul and Banaba preached the gospel of the cross as we know it. It is the gospel of self-denial and the gospel of love for the saints. But the Corinthians who received the teachings were arrogant. The Word went as far as it didn't say. He distinguished and discriminated against me. To establish himself, they confronted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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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없는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선물로 은혜와 은사를 받았으면서도 자기 것인 양 자랑하였다. 신비적인 은사에 취하여 더 이상 자신들은 십자가의 원리를 따라 살 필요가 없을 만큼 구원이 완성된 자인 줄로 착각하였다. 바른 말씀을 듣고 본을 보여도 성도들이 그 삶을 따라 살지 않고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으면 소용없다. 좋은 지도자만 구하지 말고 내가 좋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십자가를 몸소 살았다.
While receiving grace and gifts from God, he boasted as if he were his own. They thought they were those who had completed salvation so that they no longer had to follow the principle of the cross because they were drunk on mystical gifts. It is useless if the saints do not live according to their lives and do not use the words as their own, even if they listen to the right words and show examples. I must become a good saint instead of seeking only good leaders. So Paul personally lived the cross he deliv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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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은 왕처럼 행세하고 있을 때, 사도는 마치 죽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갖은 고난과 수치를 당했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살았다. 어쩔 수 없어서 그리고 이례적으로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원래 그것이 십자가를 전하는 지도자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린도 성도들은 지도자는 존경하면서도 지도자의 삶은 배우려 하지 않았다.
The apostles suffered and humiliated for preaching the gospel as if they were living to die when the saints acted like kings. They lived a life of mercy, thirst, naked, beaten, and without mercy. It was not inevitable and unusual because it was the way the leader lived. That's how Jesus lived, but the Corinthians respected the leader but refused to learn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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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십자가를 살고 있는 자신을 본받기를 바란다. 그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삶이고, 그것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디모데를 보내서 가르친 것도 이것이었고, 이제 바울이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은 열매도 이 십자가의 삶이다.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사랑, 나보다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신앙, 주의 복음을 위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진정한 능력이다. 남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아니라 포기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능력이다.
Paul wants the Corinthian saints to emulate themselves living on the cross. That's because it's a life that imitates Jesus, and that's the way of life. This was what he sent Demode to teach, and now the fruit that Paul wants to go and check out in person is the life of this cross. The love of seeing others better than me, the faith of boasting of Christ over me, the life of holding one's cross for the gospel of the Lord, is the true ability of the people of God's kingdom. It's not the ability to rule and rule others, but the ability to give up, serve, and sacri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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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그리스도보다 더 능력 있는 이는 없다. 그런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준 삶이 십자가다. 섬김의 사랑이고 순종의 사랑이 모든 악을 이겼다. 미음을 이기고 원수를 변화시켰다. 그리스도인의 진짜 능력은 바로 그 십자가의 능력이다. 모든 성도들의 삶의 모델은 누구인가? 나는 언제까지 소시오 패스 행세를 할 것인가? 양육의 원칙은 자녀를 훈계하는 아비의 심정이라는 것을 아는가?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Princess! No one is more capable than Christ. The life he has shown us is the cross. It is the love of service, and the love of obedience has overcome all evil. It has defeated the beauty and transformed the enemy. The real power of Christ is the power of the cross. Who is the model of the life of all saints? How long will I pretend to be Socio Pass? Do you know that the principle of parenting is the heart of a father who admonishes his children? Can you tell me to emulate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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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독자들의 잘못을 지적함(6-13)
a.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라:6-8
b.미천한 가운데 있는 사도들:9-10
c.참된 사도의 모습:11-13
바울을 본받아 교만함에서 돌이키라(14-21)
a.내 말을 아비의 교훈처럼 들으라:14-16
b.디모데를 보냄:17
c.거역하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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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내가(6a)
너희를 위하여(6b)
이 일에(6c)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6d)
본을 보였으니(6e)
이는 너희로 하여금(6f)
기록한 말씀 밖에(6g)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6h)
우리에게서 배워(6i)
서로 대적하여(6j)
교만한 마음을(6k)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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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7a)
너를 구별하였느뇨?(7b)
네게 있는 것 중에(7c)
받지 아니한 것이(7d)
무엇이뇨(7e)
네가 받았은즉 (7f)
어찌하여(7g)
받지 아니한 것 같이(7h)
자랑하느뇨? (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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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미 배부르며(8a)
이미 부요하며(8b)
우리 없이(8c)
왕 노릇 하였도다(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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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희와 함께(8e)
왕 노릇 하기 위하여(8f)
참으로 너희의(8g)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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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건대(9a)
하나님이(9b)
사도인 우리를(9c)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9d)
미말에 두셨으매(9e)
우리는(9f)
세계(9g)
곧 천사와 사람에게(9h)
구경거리가 되었노라(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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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10a)
그리스도의 연고로(10b)
미련하되(10c)
너희는(10d)
그리스도 안에서(10e)
지혜롭고(10f)
우리는 약하되(10g)
너희는 강하고(10h)
너희는 존귀하되(10i)
우리는 비천하여(10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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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시간까지(11a)
우리가(11b)
주리고 목마르며(11c)
헐벗고 매 맞으며(11d)
정처가 없고(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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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고하여(12a)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12b)
후욕을 당한즉(12c)
축복하고(12d)
핍박을 당한즉(12e)
참고(1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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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을 당한즉(13a)
권면하니(13b)
우리가 지금까지(13c)
세상의 더러운 것과(13d)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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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14a)
부끄럽게 하려고(14b)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14c)
오직 너희를(14d)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14e)
권하려 하는 것이라(1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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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15a)
일만 스승이 있으되(15b)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15c)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15d)
복음으로써(15e)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1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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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가(16a)
너희에게 권하노니(16b)
너희는 나를(16c)
본받는 자 되라(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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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인하여(17a)
내가 주 안에서(17b)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17c)
디모데를(17d)
너희에게 보내노니(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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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너희로 하여금(17f)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18g)
나의 행사(17h)
곧 내가(17i)
각처 각 교회에서(17j)
가르치는 것을(17k)
생각나게 하리라(1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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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18a)
내가 너희에게(18b)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18c)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1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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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께서919a)
허락하시면(19b)
내가 너희에게(19c)
속히 나아가서(19d)
교만한 자의 말을(19e)
알아 볼 것이 아니라(19f)
오직 그 능력을(19g)
알아보겠다(1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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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20a)
말에 있지 아니하고(20b)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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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21a)
내가 매를 가지고(21b)
너희에게 나아가랴(21c)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21d)
나아가랴(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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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_ Don't go out of the way of the word.
나를 본받으라_Take after me.
능력을 알아보러 가겠다_ I'll go find out what I can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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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 주님,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깊은 침체에 빠질 때가 많은 저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께서 각 각 필요한 만큼의 은사를 주셨으니 자랑 하지도 비교 하지도 말고 오직 자족하며 충성하는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평가를 더 두려워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도 없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표지가 제 삶에서도 나타나게 하소서.
O Lord, who builds the kingdom of God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Please pity me for many times when I want to have more and know more. The Lord has given us all the necessary gifts to build the church, so let us not boast or compare, but be a proud and loyal worker. especially afraid of God's judgment rather than of man's judgment. Let us live a life without a shadow of heaven. So let the signs of hardship appear in my life for Christ.
2026.6.7.sun. Clay
신학 비평//
나는 복음을 아는 사람인가, 복음을 닮아가는 사람인가? 고전 4장은 바울의 분노라기보다 **아비의 탄식**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복음을 배웠지만, 복음의 모양을 닮지 않았습니다. 은혜로 받은 것을 자기 실력처럼 자랑했고, 십자가를 믿는다면서 왕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 앞에 ‘성공한 지도자’의 모델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떠도는 사도의 삶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복음은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드러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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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핵심은 “나를 본받으라”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자기 과시가 아닙니다. “내 말투를 흉내 내라”가 아니라 “내가 붙든 십자가의 방향을 따라오라”는 뜻입니다. 아비가 자식에게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길을 열어주듯,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복음으로 낳은 아비의 심정으로 권면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더 많이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많이 낮아지는 데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받은 것을 은혜로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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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은 남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나를 꺾고 섬기는 십자가의 힘입니다. 좋은 스승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면 지식도 교만이 되고 은사도 자랑이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면 고난도 능력이 되고 섬김도 영광이 됩니다. 나를 본받으라 말할 수 있는 삶, 그것이 복음을 아는 자의 가장 무서운 책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