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명 | 창건년도 | 소재지 | 역사 | 현재 |
정수사 (靜水寺) | 인조원년(1623년) | 유계 앵산아래 | 영조16년(1740) 통영 제승당 수호를 거제 앵산 정수사 승려들이 맡아서 했다. 조선시대 말기에 폐사되었다. (1800년대 말), 현재 정수사지 부도가 있다. | 현재 광청사가 있으며 주변에 부도가 있다. |
북사(北寺) | 고려 현종 17년(1026) | 하청면 유계리 앵산 중턱 | 사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범종은 서기1026년6월에 유종을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범종은 고려말엽 도난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일본 사가현의 혜월사에 보관 중에 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 현재 절터 자리에는 60여평의 금당초석가 부도가 남아 있다. |
은적암 (隱跡庵) | 고려시대 | 옥림산(옥녀봉) | 고려왕조에 창건하여 폐하였다. | 은적사지 흔적은 남아 있다. |
은적암 (隱寂庵) | 고려초기 | 북병산 아래 | 고려초엽에 창건되어 조선 중엽에 왜구의 친입으로 전소되었다. | 주춧돌, 기와, 그릇 등이 발견된다. 현재 은혜사가 있다. |
원효암 (元曉庵) | 연대 미상 617년 추정 | 계룡산 정상 | 거제 계룡산 정상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절에 속해있던 탑과 고적 등이 남아 있다고 하나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 답사해보니 정상 북쪽사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설매암 (雪梅庵) | 고려 초기 | 산방산 | 설매암(雪梅庵) 자리에 석굴암이 있다. 석굴암(石窟庵)에는 세 개의 불상 중 하나는 도난당하고 2개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현재는 작은 불상이 진열되어 있다. | 설매암 주변에 현재 보현사가 있다. |
법률사 (法律寺) | 신라시대 | 아주동 옥녀봉 탑골 | 옥녀봉과 국사봉 사이에 승지산 아래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장흥사 인근으로 추측된다. 이 사찰은 오랫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다 1935년 삼층석탑이 발견되어 현대 한화조선 경내에 있다. 통영군지에는 북병산 일운면 20리에 있다. 옥린산에 있던 은적암과 다른 암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양리 삼층석탑: 경난 문화재 33호 지정 | 1935년 아주 탑골에서 3층석탑 발견 |
귀절암 (貴絶庵) | 고려시대 | 둔덕면 산방산 저수지 위 | 고려 때 창건하였으나 폐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산방산에는 설매암 등 7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 발견된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 산방산 6부 능선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세오암 (洗汚庵) | 고려시대 | 덕포리 강망산 | 고려시대 창건하였으나 약 100년 전에 폐하였다. | 현재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견암사 (見岩寺) | 고려시대 | 둔덕면 우둔산 | 현재 폐왕성에서 400미터 아래에 사찰터로 보이는 주춧돌과 막돌등이 허물어져 있다. 견암선사 중수기를 보면 견암사는 신라 애장왕(1424) 때 중국 승려들이 들어와 불교를 전파하였다. 견암사는 지금으로부터 300년전 설립되었으나 지금은 도정암, 자명암, 견암등이 있었으나 폐하였다. 견암사에는 승려70명이 있었고 土田數가 150전지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에 國寺로 지정된 사찰이었다. 견암사는 667년 창건 당시 “견사”로 기록되어 있으며 거창에 만들어진 절이다. 그러다가 1271년 고제현이 거창으로 옮겨질 때 ‘거제 견암사’라는 기록이 남게되었다. |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각호사 (角呼寺) | 조선 중기 | 견내량 | 임란 시 1592년 8월26일 이순신 배가 각호사 앞을 이르렸다.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 현재 신광사로 주장하는 이도 있다. |
도정암 (道正庵) | 조선 중기 | 둔덕면 우둔산 | 도정암은 견암사 말사였는데 지금은 폐하고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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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암(見庵) | 조선 중기 | 둔덕면 우둔산 | 견암은 견암사 말사였다. 견암사 아래 쪽에 작은 말사였다. 지금은 폐하고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