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경찬의 불교문화 한 토막]
매주 목요일 불교문화에 대한 짧은 글을 올립니다.
68. 극락전(極樂殿), 무량수전(無量壽殿)
< 충남 부여 무량사 극락전 >
극락전에는 서방 정토의 교주이신 아미타 부처님이 본존불로 계십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대부분 아미타여래구품인을 하고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무량수불이라고도 하기에 무량수전이라고도 합니다.
<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여기에서 서쪽으로 10만억의 불국토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는데, 그 이름을 극락이라 하느니라. 그곳에 계시는 부처님을 일러 아미타 부처님이라 하며, 지금도 바로 그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사리불아, 그 나라 이름을 어찌하여 극락이라고 하는지 알겠느냐? 그 나라의 중생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다만 모든 즐거움만을 누리므로, 극락이라 이름하느니라.”
아미타경
< 충남 천안 각원사 아미타불 >
정토(淨土)는 말 그대로 청정한 불국토로 부처님이 거주하는 나라를 뜻합니다.
정토에는 일체의 근심과 고통이 없고 한량없는 맑고 깨끗한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고 하여 극락(極樂)이라 합니다.
또, 지옥, 아귀, 축생의 이름과 어려움과 고통이 없고 다만 자연히 아주 즐거움의 소리만 있다고 안락(安樂)이라고 합니다.
십만억의 부처님께 봉사하며, 모든 부처님 나라에 나아가서 불보살님을 공양하고 기쁜 마음으로 안양국(安養國)에 돌아온다고 안양(安養)이라고도 합니다.
< 경북 경주 불국사 안양문 >
아미타 부처님은 전생에 법장 비구로서 48가지 서원을 세워 수행한 결과 성불하여 서방 정토의 교주가 되셨습니다.
‘아미타’는 범어로 ‘한량없는 수명(壽命)’, ‘한량없는 광명(光明)’을 의미합니다.
이에 ‘아미타불’은 무량수불(無量壽佛)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번역합니다.
생명이 빛이고 빛이 생명입니다. 이처럼 아미타 부처님은 한량없는 생명과 한량없는 광명으로 언제나 중생을 살펴보고 계신 대자대비의 부처님이십니다.
< 전남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이런 까닭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법당을 극락전(極樂殿), 미타전(彌陀殿), 무량수전(無量壽殿), 수광전(壽光殿)이라고도 합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등이 그렇습니다.
< 경북 영주 부석사 안양루 >
또, 불국사처럼 극락전에 이르는 산문을 안양문(安養門), 영주 부석사처럼 극락전에 이르는 누각을 안양루(安養樓)라고도 합니다.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강원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
극락전에는 아미타 부처님만 모신 경우도 있지만, 관무량수경에 의해 보통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 협시로 하여 삼존불을 모십니다.
< 충남 부여 무량사 극락전 관세음보살 >
< 충남 부여 무량사 극락전 대세지보살 >
관세음보살의 보관에는 부처님[화불(化佛)]이, 대세지보살의 보관에는 보병(寶甁)이 새겨져 있습니다.
< 전남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한편,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과 지장보살이 중생의 사후(死後) 문제와 관련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에 의해 극락으로 인도된다는 미타신앙과 지장보살이 악도에 떨어진(또는 떨어질)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신앙이 결합된 것입니다.
또는 관세음보살은 현세에서, 지장보살은 내세에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에서 중생에 대한 아미타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나타냅니다.